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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7-05-13 오후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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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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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칭 : 여상(如常)
 
이상공동체 오요 관련
○ 正體 관련( “천하의 주인인 나” )
- 평소 자아에 집착하고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오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습에 따라 타성적인 삶을 살아온 “나”이다.
이는 전적으로 ‘주인의식’의 결여에 기안한 것이라 생각된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인데 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면서 살 필요가 있나?’, ‘나 하나 내 멋대로 산다고 공동체의 행복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나의 행복 아니겠는가?’ 등등. 그리하여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생이 행복한가? 행복은커녕 오히려 지옥지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 즉 ‘천하의 주인’이라는 자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동사섭 첫날 첫 시간, ‘천하의 주인인 나’가 正體라는 가르침을 받고, 그 동안 이를 간과한 채 살아온 60년 가까운 세월의 내 인생에 대한 회한이 몰려왔다. 주체가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그 무엇이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 반성과 회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교차했다.
- 이제 내 자신이 천하 우주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체화시켜 이상공동체의 주인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갈 것이다.
○ 大願 관련( “우리 모두의 행복” )
- 행복하면 한 개인의 행복을 주로 생각하지, ‘우리 모두의’ 행복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이는 공동체와 동떨어진 소속 구성원 개인의 행복이 가능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론’을 차치하고라도, 가족공동체 내에서 부모님, 자식, 형제지간의 행복 없이 자신의 행복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바라보기만 해도, 이는 어불성설의 착각인 것이다.
즉, ‘나와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일체로서의 공동체인 것이다. 각자 인생의 목표가 행복(좋은 느낌)이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의 행복이 꼭 필요한 것이다.
-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행복’이 大願 즉 나의 인생목표라는 가르침은 가슴 속 절절이 와 닿았다. 전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제대로 된 목표 설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제라도 제대로 된 목표를 잡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 이제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향해 정진 수행해 나갈 것이며, 그 목표를 꼭 이루도록 여생을 보낼 것이다.
○ 修心 관련
- 일생동안 마음을 수련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체계적 접근법도 없었으며, 108배를 하거나 ‘금강경 4구게’,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업’, ‘대원성취진언’을 염불선 하듯이 틈나는 대로 되뇌이는 정도였다. 물론 이를 통하여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정과 수행이 가능 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수시로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무언가 구멍이 숭숭이 뚫어져 번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 ‘op100의 원리’는 막연했던 행·불행의 원리를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op(무시)·p100(집착)에 익숙해져 불행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던 나에게 op(지족)·p100(지향·구현)이라는 행복의 원리를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주었다.
- 지족명상은 사물, 사람, 자신에 대한 3단계 명상 실습으로 진행되었다.
- 사물(주전자)명상은 주변의 흔한 물건 하나 조차도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은지를 자각하게 해주었다. 그러한 자각은 이내 자기가 접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한 관심·감사로 확장되어 나와 그 사물들이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일체라는 엄연한 진리를 일깨워 주었다. 이는 제대로 된 명상의 출발점이다.
- 사람명상(절명상)은 부처인 자신과 부처들인 타인들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과 배려를 하도록 마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안 나오던 눈물이 흐르고, 의례적으로 대하던 타인들에 대해 최대한의 격식과 예의를 갖춰 존중하며 성불을 기원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나와 도반들 모두 즉 우리가 활불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진정한 보리심이 마음가득했다.
※ 1주일에 한번 처·딸과 함께 절명상을 꼭 실천하겠다고 공개 약속 했다.
- ‘이 동네 긍정점 3003가지’ (자신에 대한 칭찬) 과정은 환희의 극치였다. 자화자찬을 반원들의 열렬한 성원과 환호 속에서 해보는 경험은 매우 이채로웠다. 그 과정에서 반원 전체는 하나(원래 하나이지만)가 되었으며, 자존감은 최고 극점을 맛보았다. 나는 메모한 내용을 내팽개치고 ‘이상공동체 오요’를 I message 변형하여 원고 없이 7분 동안 외쳤다(그 과정에서 목이 완전히 쉬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야릇한 해탈감을 맛보았으며, 실제로 내가 활불이 이미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활불이 되었다.
- 행복 = 소유/욕구라는 공식은 어렸을 때부터 알아왔다.
그러나 종래 알아왔던 행복론은 분자인 ‘소유’에 국한된 것이었다. 즉, 구현행복론, 지족행복론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족행복론은 경시되었으며, 구현행복론 즉 무엇인가 더 얻고 이루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매우 편협한 행복론이었다.
이는 곧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불행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게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이며 현실이었던가? 제대로 된 행복론 조차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자라온 우리들이 불쌍하고 한심했다. 욕구가 ‘0’로 수렴할 때 행복이 무한대(∞)로 확장된다는 단순한 산수 조차도 느낄 기회 없이 살아오도록 방치된 느낌이었다. 그것을 공식으로 확연히 보여주는 이번 가르침에 대해 너무도 감사하다.
- 탐진치 3독에 착안하여 명상을 체계화시킨 가르침은 번뇌와 그 원인 및 치유책을 확연히 알게 해 주었다.
 
돈망
무위
             
실체사고
있다

가치사고
좋다

욕구
싶다

(성취)

(좌절)
분노
썅!

불만사고
돈망
명상
  비아명상 죽음명상 죽음명상 나지사명상 지족명상

번뇌의 원인, 악순환 체계,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바라밀로서의 돈망명상(그냥있음 · 아공법공 · 느낌수용), 조바라밀로서의 비아명상, 죽음명상, 나지사명상, 지족명상. 한 눈에, 우리 모두의 행복을 저해하는 원인과 대책을 보여주었다.
- 나아가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비아명상 실습시간은 그 구체적 명상방법을 체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반 도반들 모두 탐진치 삼독을 제거하는 구체적 방법을 ‘아하’하며 익히게 되었다. 특히,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매일 밤 죽음명상을 실천하였다’는 어느 신부님의 실천사례 교육은 가슴 속 깊이 와 닿았으며, 나도 그렇게 치열한 수행을 생활화해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게 만들었다.
- ‘나 있음’ 관점은 지옥행 열차. ‘나 없음’ 관점은 천국행 열차라는 용타 큰스님의 가르침은 그대로 체득되었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고(과거심 불가득), 미래는 아직 안와서 없고(미래심 불가득), 현재는 현대의학으로 밝혀졌듯이(안이비설신의를 통한 색성향미촉법의 수상행식은 뉴런을 거치는 동안 시차가 있다는 점) 과거의 잔상에 불과하다(현재심불가득)는 가르침은 ‘나 없음’을 확연히 깨닫게 했다. 즉, 아공법공을 깨닫고 체화하여 ‘일체의 경계로부터 걸리지 않는 자유상태’ 즉 행복·돈망의 길로 아나가도록 해 주었다. 너무도 감사드린다.
○ 和合 관련
- 수심을 잘하여 자신이 바로 서더라도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대원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지 않는다면 결코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화합은 나의 행복은 물론 대원성취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가르침이 그대로 와 닿았다.
- 관점을 바르게,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하고, 마음(생각과 느낌)을 잘 나누어야 한다는 화합방법론은 그대로 공감이 되었다.
- 관심의 지평위에 감지하여 표현하고, 이에 공감하여 반응한다는 주기·받기 나눔공식과 이의 기초가 되는 생각(촛대) ㊉ 느낌(불꽃) 나눔형식은 그동안 느낌 표현에 소홀했던 언어 습관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해주었다.
※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이며, 표현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는 가르침은 촌철살인이 되어 가슴에 박히었다.
- 경청, 공감(화자중심), + α라는 ‘받기 3박자’는 불경청, 한풀이, 충고, 일반화, 비교라는 ‘5대 악성 받기’에 너무도 익숙해왔던 나의 표현 방식을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받기 3박자 실습은 그동안의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고 상대방을 더욱 존중·배려하는 교류방식이 무엇인가를 익히는 전기가 되었다.
※ ‘1g 1T의 원리’는 말 한마디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 보시·감사·사과·관용이라는 교류 4덕은 제대로 된 교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체계적·구체적 방편을 제시해주었고, 자신의 행복, 나아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나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 제시를 해주었다. 특히 보시록·감사록·사과록을 배우자·가족·동료·친지 등으로 나누어 작성·발표토록 한 실습은 그동안 얼마나 보시·감사·사과를 등하시 하며 살아왔는가를 깊이 반성하게 해주었고, 구체적 list up을 하여 계획성 있게 이를 실천하여야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게 만들었다.
※ 특히 “自恣請” 방식의 사과 방법은 참으로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되었다.
- 천하의 주인이자 이 자리의 주인인 내가 인공양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심리·표정·언어·행동·환경이라는 5대 인공양장력 결정요인을 구비해야 한다는 가름침도 매우 와 닿았다. 특히 최고의 언어는 덕담(칭찬)이며 최고의 행동은 존중(배려·관심)이라는 가르침은 향후 언행에 있어 꼭 실천하여야겠다고 다짐했다.
- 자유로운 마음을 위해 자유로운 행동을 선행해야 한다. 저질러라, 자유인이 되라, 촐랑대라 등 행동명상 시간에서의 가르침은, 그동안 정형화 되고 경직된 생활습관에 익숙해왔던 나에게는 매우 충격으로 와 닿았다.
○ 作善 관련
- 내가 할 수 있고 하여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는 굳은 각오를 하게 되었다.
2. 기타
○ 새벽 108배 운동은 명상과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심신을 깨끗이 하고 단련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향후 매일 새벽에 108배 운동을 집에서도 여생동안 할 것이다.
○ 마지막 과정인 ‘맑은 물 붓기’는 참으로 인상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도반들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반성과 참회를 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동사섭의 효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가서 나 자신에 대한 참회와 사과의 시간을 갖고 싶었으나, 마음과 달리 공인이었다는 사실이 기어코 나의 발목을 잡아 놓아 안타까웠다. 앞으로 더욱 수행하면 그러한 사슬로부터도 자유로워 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3. 결론
○ 나는 깨달았다.
“無我임을 깨달은 나는 천하의 주인으로서, 수심을 통해 마음천국을, 화합을 통해 관계천국을, 작선을 통해 세상천국을 개국할 수 있다”는 사실을.
○ 나는 이번 깨달음을 실천할 것이다.
각고의 노력과 수행으로 수심·화합·작선을 체화 실천하여 ‘우리 모두의 행복’을 이루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특히, 내가 앞으로 할 ‘作善’이 무엇인가를 더욱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하여 진정으로 행복하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 우선, 동사섭 수행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가능하다면 돈망파지까지 하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사섭에서 지도자로서 기여하는 것도 여생 동안의 훌륭한 vision이자 mission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매우 행복하다.(이것은 질적인 변화이다)
4. 여론
○ 먼저 동사섭을 다녀간 여정(처), 덕향(딸), 무여스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머뭇거리다 이제야 들어오게 된 것이 매우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일찍 왔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라도 시작하여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의 굳은 각오를 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다. 특히, 무여스님과 용타큰스님의 가르침과 인도, 그리고 격려말씀에 대해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 보리심과 열정으로 가득하신 일우님, 현공님, 열매님, 보광님 등 지도자 여러분들의 가르침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분들께도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가 되었던 도반님들 행복했습니다.
 
 
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칭 : 재자
 
우리 스님께서 “행복해라!” “행복하냐?” 자주 물으셨다 “예”라고 대답만 했다.
근데 동사섭 5박 6일 동안 경청해 보니 입에서 향기 되어 맴돈다.
사실 행복이란 두 글자를 모르고 살았다. 거의 사용해 보지를 않았다.
머리를 삭발하고 부처님 전 귀의하고 보니 동사섭이란 선물이 나에게 도착했다.
천하의 주인인 나.
행복의 주체인 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느낌, 기분 좋음이라.
그래 이것이었나? 항상 허전 했던 한 구석이 먹먹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나에게 물어본다.
첫 만남, 3박자, 벽을 수고스럽게 부수려 하지 말고 눕혀 버려라.
그래, 이 한마디에 큰 용기를 얻어 본다.
근데 행복의 모던 것의 가장 기본이 관심이 빚어내는 것...
아하! 그렇지 내가 관심이 없으면 무슨 느낌이 나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속세에서 가장 힘든 것이 화합(관계). 내가 수심 잘해서 상대방 기분 알아주기 하면 화합관계 다 이루어지겠지.
그리고 한 번에 해결.
그렇게 해 보리라. 관심 깊게 보고 내 인연 화합관계 꼭 정상 회복하고 웃으며 손잡아 보리라.
그리고 절 명상이 인상 깊었다.
누구에게 고개 숙이는 것. 천천히 정성 담아 온몸으로 표현을 하는데 말이, 그 외의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스님께 말씀드려 천천히 절 명상을 매일 하자고 건의 해 보리라. 행하리라.
그래서 거듭나는 신심과 나를 관찰해 보리라.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관계 회복하며 감사명상 또한 기록하고 실천해서 내속 끓이지 말고 나 또한 너 또한 같이 행복해 지리라.
사과명상 또한 꼭 얼른 빨리 실천해야 할 명상이다.
번호 적어서 체크해 가면서 전화하고 만나서 꼭 진심으로 사과해 보리라.
아! 행동명상. 크게 소리 질러 말하니 당당함, 자신감 충만~~ 속이 뻥 뚫린다.
상대방도 크게 응원해 주니 내속도 2배 3배로 시원하며 우리는 하나구나도 느껴 보았다.
초월명상. 말 그대로 초월해 버리면 더 바랄게 있으리요, 행복 그 자체겠지...
구별, 분별하는 게 “나”이고.
좋다 나쁘다 구별도 “내가”하고
이러고 싶다 저러고 싶다 저지르는 것도 “나”이고
분노, 불만으로도 가득한 것이 나였다.
일어나는 것이 “뿐”이다.
아하! 눈물이 강의 내내 쏟아졌다.
“뿐”인 것을 잡고 내가 그것을 내가 부여잡고 전부 이상인줄 알고 태풍에 폭풍에 비바람에 나를 내몰아서 마구 흔들었구나.
자꾸만 눈물이 내 볼을 적신다.
“뿐인 것을” 재자가 재자를 너무 학대 했구나. 우산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밖으로 내 몰아서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하다. 그 비바람, 폭풍 속에 그냥 마구 내 쫓아 버렸구나. 아~~
재자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사과하고 소중하고 귀하디 귀한 나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나를 쓸어 준다. 안아준다(살포시). 또한 일어날 때마다 구나, 겠지, 감사로 거듭 나를 회복하며
천하의 주인인 나.(재자)
나, 너,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가짐 잘하여 마음천국 이루고
인간관계 화합 잘하여 관계천국 이루고
작선 잘하여 세상천국 이루자
선효(재자) 파이팅!!
나는 오요명상 실천 잘하는 중다운 중이 될 거야.
 
 
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나비
 
  • 지금 이 순간>
5박 6일 동안 동사섭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무엇이고 ‘나’ 없고 ‘없음’ 또한 ‘없다’는 그 생각 또한 ‘없다’는 공이 무엇인지 온 몸으로 깨달았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그 명료한 느낌이 그 깨침이 온 몸으로 몸서리치게 와 닿지는 않고 막연한 느낌만 내 옆에 있지만, 어쩌면 일정을 마치고 저 문을 나서는 순간, 아니, 이다음 순간에도 몸서리치게 깨달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즐겁게 정진해 나가야지.”해본다.
 
지금 이 소감문을 몇 번째 다시 써보는지 모르겠다. 벌써 4번째 다시 쓰는 것이 아닐까. 굳이 이렇게 다시 쓰고 또 쓰고 다시 쓰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 정성을 다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5박6일 동안 프로그램에서, 함께 참석한 도반들을 통해서 느낀 것은 “정성을 다함”이었다. 여전히 습관처럼, 정성 없는, 깨어있지 않은 말과 행동들이 곳곳에서 드러내지만, 그래도 일순간이라도 마음을 다해 정성스러워보자, ‘이 순간’에 깨어 있어보자, 다짐해보게 된다.
 
이런 정성스러운 마음은 특별히 절명상을 통해 더 깊게 느끼고 통찰하게 되었다. 절명상을 하면서, 동작 하나하나에 “존경과 사랑을 오롯이 담아보고 싶었다. 때때로 집중력이 흩어지기도 했지만, 내 동작 하나하나에 존중과 정성이 깨어 있을 때, 내 몸과 가슴에서 사랑과 감사 그리고 기쁨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꼈다. 매일 매일이 이와 같다면, 내가 만나는 이들을 이와 같이 대할 수 있다면, 일각도 놓치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아가 소중하지 않은 때가, 소중치 않은 사람이, 소중치 않은 느낌이 없을 것 같다. 뿐 선생님의 ‘밥과의 포옹’ 메시지, ‘미세정서에 눈을 뜨는 것이 인생을 살리는 것이다’ 와 같은 말들은, 이전보다 내 삶을 더 총총하게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고 또 제대로 ‘느껴보자’하는 열망을 부채질 했다.
 
 
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칭 : 선학
 
1. 서로 간에 느끼는 벽은 부수려하지 말고 그냥 눕혀라. 아하! 그렇지. 힘들게 부수려 하지 말고 눕히면 되는 것을, 그러면 더욱 더 튼튼한 교량이 되어 관계를 연결해 주었을텐데. 그 벽을 참으로 힘들어 했다.
이제는 가볍게 벽을 톡! 쳐서 눕혀버려야지!
 
2. 박기 3박자.
비움. 경청. 주제몰입
출가하고는 느낌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자꾸 느낌, 느낌을 강조해서 어색하고 불편했다.
speech 교육 받을 때 연꽃님이 발표했던 글을 다시 떠올려 보고 기본 패턴을 잡을 수 있었다. 자꾸 느낌을 써 보니 재미있다.
 
3. 삶의 5대 원리
주인 정신의 정체관 확립.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대원의 바탕위에, 내 마음관리 잘하는 修心으로,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고자 하는 화합의 행동을 엮어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공동체에 회향하는 作善.
각 방 교육 때마다 한 번씩 함께 해보니, 개념 정리가 잘 되어, 머리에 쏙쏙 들어와 좋았다.
 
4. 나눔공식
촛대(생각), 불꽃(느낌)은 처음 대하는 신선한 공식이다.
국민학교 학생이 된 듯 마음이 단순해지고 맑아진다.
 
5. 관심의 지평위에 → 감지 → 표현 → 공감 → 반응은 대인관계, 신도들과의 관계에서 더 편안하고, 밀접하게 해 줄 것 같다.
많이 연습해서 활용할 생각에 설레인다.
 
6. 5대 악성받기
불경청, 한풀이 받기, 총고, 일반화시키기, 비교받기. 큭큭! 부끄럽다(쥐구멍은 어디에?)
신도들을 배려한다는 것이 도리어 5대 악성받기를 줄기차게 해 온 경우가 되었다.
이제는 조금 더 세심하게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복습을 많이 하겠다.
 
7. 아야선, 아하선.
개념이 참 재미있었다.
작은 일들에 “아하” 감동· 감탄· 감사· 감격을 자주 표현하면 더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하루가 될 거라 생각하니 즐겁다. (어른스님들께서는 이해 못 하실 듯, 도리어 걱정 하실텐데 ㅠㅠ! )
 
8. 교류4덕 : 보시. 감사. 사과. 관용.
내가 함께 하고픈 미래 공동체 생활표어로 활용하고 싶다.
 
9.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인 場力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했다.
최고의 행동은 존중이고, 최고의 언어는 덕담, 칭찬, OK. 칭찬샤워를 마음껏 배부르게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다음 모임에 참가 할 때는 더욱 다양한 모습을 개발해서 와야겠다.
 
10. 행동명상
자유로운 마음을 위해서 자유로운 행동을 한다.
딱 끊어버리고, 하고 싶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저질러 보는 것 – 저질러 보련다.
행동을 함께하고, 격을 파하자
저지르고, 누리고, 제치자.(화이팅!)
저지름을 방해하는 신분·나이·타인의식 등 등은 똥이다.
 
11. 修心
op 100의 원리.(반 컵 사이다 상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 그 태도에 따라 변화는 일어난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오늘을 열심히 살자.
 
12. 주전자 명상(住.傳.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언어로, 세세하게 표현하는 교육생들의 글에 놀랐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기에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듯하다.
 
13. 나에 대한 知足명상
그렇게 크게 소리치고, 박수치고, 열광했던 것이 언제였을까? 후련하고, 신나고, 재미있었다.
함께 장단 맞추어 준 우리 모듬원들 화이팅 합시다.
고맙고 또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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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침 智香
 
그간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이 세계에 내가 너무 가득하여 ‘나’를 다스리는 데에만 온 에너지를 쏟았다. 세상은 그저 분리된 것이어서, 관찰의 대상이었다. 작년 부모님과의 독립을 꾀하며, 찰나의 미움으로, ‘안보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그때처럼, 그리고 지금처럼 미움도, 사랑도 큰 일이 없다. ‘나’에게만 쏟아 붓는 탓에 나를 오해하며 살았다. 나는 사랑이 큰 사람이다. 근래의 화두는, 감지한 이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곳에 써야 할까.이다. 그리고 우연히, 혹은 연이 닿아 동사섭에 참여 중이다.
첫 시간에 ‘만남’에 대한 세가지 1.반가움, 2.즐거움, 3.유익함을 보며, 음 이것 나와 가치관이 일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인간관계에 관련된 모든 수업과 실습이 내 생각을 빼다 박아 놓은 듯했다. 무여스님께서 너의 생각하는 방식이 동사섭에서의 것과도 잘 맞을 듯해 네가 참여하면 참 좋을 것 같다며 적극 추천하신 게 정확했다.
어릴 때는 책잡히기 싫다는 이유로 나 이외의 것에 베풀 것을 만들고, 감사할 것을 생각생각해 찾아내 감사하고, 사과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우러나옴을 느꼈고, 웬만큼 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지금껏 교류4덕 실습 때 “정성”을 배웠다. 감사하고 사과하고 보시할 거리를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 왔다. 더 이상 생각날게 없을 만큼 했다. 근데 웬걸, 정성을 쏟으면 정성을 조금 보탰더니 감사 할 일들이 샘솟더라. 애쓰면 될 일도 망친다는 생각으로 내키지 않는 모-든 일에 대충대충이었는데... 난 착각 속의 바보였네...
‘절 명상’은 특히 신선했다. 내가 절 한번 받아보려면 50년은 걸릴 것 같아, 빡빡 일우님의 절을 받았다. 코딱지만큼의 장난스러움도 허용치 않으시며 절을 하시는 모습이 매우 섹시했다. 난 매료당한 것이다. 그 정성에. 절을 받으며, 절을 올리시는 분들게 쪽팔린 사람이고 싶지가 않아졌다. 처음으로 진지하고 싶어졌다.
용타스님께서 ‘마술’이라 명명하시며 무언가를 꼼지락 하셨다. “어디서나, 마술과도 같은 일이!”하는 주문을 외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이후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비아명상 실습을 했다. 언젠가부터 ‘과거와의 제대로 된 화해를 꾀했기에 나름의 편안-한 마음상태였다.
<헌데>...! “에잇, 한 수 당했다! 더 편한 게 있었네.... 이런.”.... 나지사명상과 죽음명상까지는 그래도 원만히 넘어갔다. 압권은 비아명상이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나는 항상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모두가 나에게 “당신은 무엇이다” “당신은 무엇이다” “당신은 무엇이다” 심지어 “당신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할 때마다 “나는 무엇입니가?”하고 질문했었다. 근데 실은, 누군가가 물어봐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저 종이 위에 인쇄되니 잉크를 보며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죽음명상에서도 느끼지 못한 착을 느꼈다. 난 자유에 집착하고 있구나. 언제나 당연하게도, 또 어리석게도 나는 자유이다라고 생각했다.
난 변했다. 남녀노소 모든 친구들이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면, 최대한 듣기만 했다. 그리고 뭔가 조언을 구하면 항상 “니 좃대로 해라,(하세요) (하시면 좋을 것도..)”라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여 한 말들이었다. - 만 오늘은 문득 저 말이 항상 나를 향해 걸던 주문이었나? 싶다. (문단 확인)
그간 나는 “이미지의 세계”만을 신뢰해왔다. 거만한, 거짓한, 그럴듯한, 쉽게 잡히는 마음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올 때마다, 나를 붙잡던 그 이미지. 그 이미지들의 세계. 히말라야 해발 4000m에서 펼쳐지던 상상도 못한,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와 강물에 가까운 세찬 물줄기, 그 경이, 어떤 것도 단정지울 수 없게 만드는 그 이미지. 중학교시절 날 때리던 아빠의 표정, 학교에 간식 챙기러 온 추레한 겉모습을 한 엄마를 쪽팔려하던 내 표정, 초등학교 때 얄미운 친구를 괴롭힌 날에 날 바라보던 그 아이의 눈빛, 그 이미지.
난 아직도 그 이미지들을 신뢰하지만, 몇 시간 전부턴 그 이미지들이 나를 발목잡지 않음을 느낀다.
여러 사람들의 맑은 물 붓기가 나를 감싸준다. 내가 부은 맑은 물이 퍽퍽하던 마음에 수분을 준다.
언젠가 혼자 방구석에서 좌우명 비스무리 한 걸 적어볼까 할 때, 마지막 남은 말이 ‘지혜롭고 용기 있는’이었다. 그걸 적은 이후로 왠지 그 말이 머릿속에 떠다녔다. 큰스님께서 지혜로운 향기라고 말씀하신 찰나에 그 말이 머릿속이 아니라 마음 안에 콕 내려와 떠다닌다.
결국 “대의”인가? 하던 요즈으막의 의심을 동사섭 식구들께서 확신으로 바꿔주셨다.
이 ‘나’ 밖에 들어있지 않던, 못난 내 마음의 틈을 비집고 살 비벼주신 여러분, 환영한다. 이제 시작입니다.
※ p.s 실천 : 겨울 동사섭 참여하기!
 
 
 
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칭 : 연지
 
안으로 정화하고 밖으로 평화하기 위해 행한 행동명상. 자유로운 마음을 위해서 자유로운 행동을 선행해 보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웃음명상이었는데, 나의 저지름을 방해하는 검불이 얼마나 나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나이, 신분, 타인의식들이 똘똘 뭉쳐 어찌나 내 몸 속, 마음속에 있었는지, 1~5의 스케일 중 5로 신나게 웃으라는 지시에도 아무생각 없이 웃을 수가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 “내 나이가 이런데 어르신들 앞에서 감히” 등의 생각 때문이었다. 동사섭을 나가서, 신호등 앞에서 “제가 이제 길을 건넙니다!!”하고 손을 들고 길을 건너볼 것이다. 더 지지르며 살아야지!☺
 
인격은 다발이고 오류는 1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라. 잘못된 교육(환경)으로 오염된 물(잉크물)을 한방울 두방울 퍼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웠다. 맑은 물을 부어 잉크물을 다시 맑게 하는 맑은 물 붓기 수업은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오랫동안 원망했던 엄마가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절을 드리고, 당신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힘드실 때 내가 더 많이 들어드리고, 좋은 친구가 되어드렸다면 아프지 않으시지 않았을까? 원망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 미안한 마음으로 돌리니 모든 원망의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피해자’라는 마음에 좋은 뜻으로 하시는 말씀에도 틱틱댔던 것들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동사섭에서 나가면, 엄마께 절을 3번 드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행복해져서 진심을 담은 엄마에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드릴 것이다.

감정이 섞인 문장을 객관적으로 정화시켜(마치 영화 카메라를 들이댄 듯)보고,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그만하니 감사하다. 감사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하며 화장의 입장에서 생각,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바라보며 감사해보는 나지사명상을 해보았다. 그때 아하! 화자는 이러한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의 서운함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겪었다. 이 나지사명상은 집에서 혼자서도 자주 쉽게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명상인 것 같다. 앞으로 동사섭을 나가서도 사소한 말투, 언어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나지사명상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동사섭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 행복에 도움이 되는 생각 덩어리 염체를 키우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알고 있었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잊기도 쉬운 행복의 원리는, 지족!!이라는 것. 강의 중 들었던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하고,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 것 같다. 칭찬샤워를 통해, 지족명상을 통해 나는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인지 깨달았다. 동사섭을 나간 뒤 집에 도착하면, 책상 위에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 오늘은 나의 최고의 날이다‘를 적오 놓고 그렇게 되기까지 반복 반복 반복 또 반복할 것이다.☺☺
 
 
267회 일반과정 소감문
별칭 : 시푸
 
동사섭은 명상들을 하며 꽃이 핀다.
행동명상을 하며 나를 놓아보며 지족명상을 하며 삶을 만족해본다.
절명상을 하며 나를 위로하고 초월명상을 통해 나를 넘어본다.
이 모든 것이 5박 6일 동안 일어난 일이다.
그다지 필요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았지만 동사섭은 말해줬다.
더더더 행복하여라. 넌 그럴 자격이 있다. 넌 이미 행복하다. 느껴라.
첫날 상대방과의 주고받기를 통해 내 감정을 표현하는 법과 상대방을 받아주는 법을 익혔다. 상대방과의 화합. 동사섭에서의 제1 과제인 만큼 어려웠다. 계속 의문이 떠오른다. 이게 맞는 건가? 이런 걸로 될까? 괜히 온건 아닌가? 언제 끝날까?
동사섭의 시작과 끝은 느낌이란다. 뭔가 올 듯 말듯 답답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웃으라는 동사섭의 가르침은 행동명상을 하며 제2막으로 접어들었다.
행동하니 마음이 조금씩 표출된다. 내 마음이 생각했을 때마다 격해지던 감정을 터뜨렸다. 시간이 지나서 조금은 무뎌졌다 생각했다. 분노표출, 욕하고, 나무라고, 돌던지고, 때리고 내 몸에 묻은 때를 털어 내듯 표현하며 털어낸다.
털고 나니 그 일 때문에 내가 나를 학대한 일이 생각나 후회스럽고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다음 강의를 들어본다.
아 이거였구나. 지족명상에서 주전자님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며 감사를 느낀다. 주전자 하나도 이럴진데 내 주위의 물건이나 사람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감사함을 깨닫자 내 것들 내 사람들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고 싶었다.
절명상과 칭찬샤워는 나 자신을 위한 순서이다.
절 받을 때 부처님 마음으로 받아야 되는데, 받으려고 노력하는데 절 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 아니 내 마음이 느껴져 당황스럽다. 눈물이 시작되니 끝을 모르고 나온다.
슬픈 내가 내가 아니고, 기쁜 내가 내가 아니데 넌 누구냐?
상대를 보며 애잔한 마음과 연민하는 마음, 내가 그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리라. 그렇게 울고 위로 받고 나 자신에게서 반보정도 떨어질 수 있었다.
칭찬 샤워는 말이 필요 없이 꼭 해보라!! 무조건 해야 하는 것!!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남들한테도 적극지지 받는 이 기분 꼭 느껴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를 초월할 수 있는 초월명상. 이 명상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없음을 느껴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는 것으로 동사섭은 클라이막스를 찍는다.
비아 1g 만큼으로 죽음 1t을 놔 버릴 수 있는 경험. 신기하다. 지금의 나는 몇 일전의 내가 아니다. 난 한발 더 나에게서 떨어져 나를 보며 웃는다.

소감문 타이핑 보시 연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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