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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7-08-01 오전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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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엔카운터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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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빵달
 
한 타임 먼저 간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도반님들께 미안하다. 그래도 충분한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마음으로 기분이 좋다. 매번 동사섭 모임이 나에게 많을 것을 주었지만 이번 모임은 어느 때보다 의미가 깊다. 이제까지는 나의 온전함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이번 모임은 그 ‘온전함’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삶의 현장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인가 보다.
 
냉이님, 생강님의 친숙하지 못한 표현들이 내면의 불편함을 자극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순간 그러한 표현들의 이면에 자리해 있는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 느낌은 순전히 내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간의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했고, 나의 마음을 충분히 뒤흔들어 주었다. 내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함부로 대하고, 내 스타일에 맞으면 간, 쓸게 다 내줄 듯 희희낙락거려 왔던 그간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러한 내 모습에 상처받았을 영혼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떠올라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 반반한 얼굴로 거들먹거리면서 명상을 운운하는 일을 없을 것이다. 찌그러지면 찌그러진 그대로, 못났으면 못난 그대로의 내 속살을 내보이며 살겠다. 이미 상처를 입힌 사실을 돌이킬 수는 없는 문제이다. 또한 상처를 입혀 온 내 자신을 모습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때는 그때대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떠한 형태가 됐건 그 업보는 그대로 돌아올 것이고, 그걸 달게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이제 모든 허울 내려놓고 참회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엔카운터’를 ‘참만남’으로 옮긴다. 이번 엔카운터는 나의 어두운 부분을 보게 해준 참만남의 시간이었다. 앞으로 참회하고 봉사할 기회는 많을 것이다. 여건에 닿는 한에서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 보겠다. 빚진 사람들이 저렇게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그 빚 이자까지 보태서 갚아드려야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감사하다. 그저 감사드린다.
 
 
 
有爲(유위)속에서 無爲(무위)를 배운다
 
푸른산 박영숙
 
둘째날에 합류했다.
역시 예상대로 장에 끼어드는 것이 다소 어려웠다.
특히 참석자가 많아서 팀을 나눠야 되나 그냥 해야 하나 문제로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을 때 마음이 좀 불편했다.
해소될 것을 믿고 길게 마음쓰진 않았다.
 
엔카운터 과정에 대해 ‘이러저러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있었다.
여태까지 단발적으로만 엔카운터를 접했기 때문에
좀더 긴 기간으로 엔카운터를 만나고 싶은 바램이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기대’는 또 하나의 ‘틀’을 형성하기 때문에
꼭 실망이라는 코스로 귀결된다.
이번 엔카운터도 그랬다.
나의 예상과 기대와는 다른 모습이어서 좀 실망이 되고 답답했다.
다만 조금의 진전은
예전엔 그 격차 때문에 장의 몰입이 잘 되지 않고
자신이 고립된 섬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 예상과 실제의 차이로 인해 느끼는 실망감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이게 잘 되어가는 거예요.”
“똥을 감추려고만 해서는 안 되요. 다 드러내야 해요.”
선배 도반님들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엔카운터 장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에 대해 약간의 평정심과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관망과 방관
이 두 가지의 차이는 뭘까?
방관자적인 자세를 싫어했다.
그래서 나름 무슨 일이건
어떤 일이건 열심히 참여하며 인생을 살았다.
그렇다고 내 신념에 몸 바쳐서 내 인생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산 건 아니지만
내 정도껏 적극적인 자세로 살았다.
방관은 비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망은 어떨까?
방관과 관망이 혼동될 때가 많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 입면도 투시도 조망도 등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인생도 다양한 관점의 바라봄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자신 속에 몰입하면서 자신에 대한 관망과 조망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장에 대한 태도에서도 똑같이 필요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자신을 포함한 전체를 관망하고 나아가서는 조망까지 하는 것.
엔카운터라는 등불을 들면서도
때로는 등불을 그 자리에 놓아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는 것.
 
그렇게 한 발은 내디디어 지는 것 같다.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때
감정 이입으로 함께 들끓어오르면서도
10%쯤은 물러서서 전체를 보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문제 해결에 큰 방점을 두고서 인생을 살아왔다.
어떤 문제가 발견되면 그것을 해결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사실 그런 자세는 내 성격에 기인하는바도 크지만
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그렇기도 했다.
정신적인 수준이 높아서 그렇다기보다
해결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이런 삶의 습성이 다른 모든 일에서도 똑같이 그러했다.
시쳇말로 ‘오지랖’이 하늘만큼 땅만큼 넓은 것이다.
‘하느님 증후군’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 문제건, 가족 문제건, 집안 문제건, 나라 문제건,
모두 내 어깨에 짊어지고 해결하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책임감이 강해서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그렇게 키워진 것도 한 몫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못 믿어서가 아닐까?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번 엔카운터에서도 나의 이런 오지랖은 여실히 드러내는 마당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하려하면 할수록 더 꼬인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믿고
지도자를 믿고
자신을 믿으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된다.
그러니 안달복달 애끓을 필요가 없다.
그냥 맡기면 된다.
노력이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진인사에
‘너무 내가 다 하려고 하지는 말아라.’를 살짝 넣으면 된다.
‘인(人)은 나 혼자가 아닌 모두의 ‘인’인 것이다.
‘내가 없음’의 인(人)인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똥은 내가 가진 ‘공격성’이다.
처음엔 교묘히 잘 숨겼다.
다른 이의 드러남을 보면서 그 사람을 삐딱하게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이의 공격성이 내게 ‘동아줄’이 되었다.
다른 이의 공격성을 보면서 나의 공격성의 실체를 여실히 보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싼 똥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밀어내고 은폐하는 습성을 보게 되었다.
더럽고 깨끗한 것의 경계가 달리 있나?
감추면 더럽고
드러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깨끗하게 정화가 되는 것이다.
억압의 오랜 습관을
매미 허물 벗듯 벗어 던지고
정말 싫은 공격성이지만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백안시하지 말고
거머리라도 되는 양 떼어내려고만 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억압하고 은폐할수록
어두운 곳에서 공격성은 더욱 치밀해진다.
 
이제 서서히 나의 공격성과 나의 어둠과 만날 당당함이 자라고 있다.
아직 미소까지 보낼 여유는 없지만 점점 그렇게 되리라는 자신감이 있다.
나의 내 인생의 두려움은 조금씩 깨고 있다.
그것은 실체가 없으므로....
엔카운터도 그렇다.
실체가 없다.
그러나 치열한 有爲(유위)를 통해 無爲(무위)를 배운다.
 
도안님과 보광님
보일 듯 말 듯 엔카운터 프로그램을 도와 가신 보조 지도사님들.
그리고 함께 한 보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기에 함께 하심에 반갑고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함께 하길 고대하겠습니다.
 
 
 
엔카운터 소감문
농부 김종현
 
이번 엔카운터 참가 목적은 내 속마음 알기였다. 재미가 있었다. 이 얘기 저 얘기 편히 듣다보니 부담도 없고 해서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답답함이 일었다. 이럴려고 왔나? 내 마음 잘 알아가고 있나? 이 물음에 NO! 그렇지 못해 하는 답이었다.
내 느낌, 타의 느낌도 좋지만 이전에 내 마음의 느낌에 집중 더 해보자는 결심을 세우고 나니 드디어 일이 터졌다.
예님의 농담이 아니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는 말에 나의 공격 본능이 일어났던 것이다. 여러 심한 말을 쏟아내고 나니 조금의 부끄러움과 장에서 내 느낌에 충실했다는 자부심이 함께 일었다. 물론 예님에 대해 미안함 마음과 함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집에서 아내와 다툴 일어나는 패턴과 꼭 같았던 것이다. 부끄러움, 자부심, 미안함 말이다.
어디서 이런 마음이 일어날까?
왜 일어날까에 집중하다보니 ‘화’라는 나의 정서가 보였는데 화라는 정서의 밑바닥에 뭐가 있길래 하는 이유를 떠 올려 보니 몇 가지 이유가 나왔다.
그런데 이유를 알았는데 하는 반가움은 다소 있었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So what? 그런 가운데 이번엔 질문의 point가 바꼈다. 이렇게 네 감정에 충실하고 표현을 하니까 종현이 네 기분 어때? ‘기분 어때’로 넘어가니 당연 안 좋지 불쾌한 마음 당연하지로 넘어간다. 이어서 드는 생각이 수심의 필요성이다.
늘 아는 얘긴데 하면서도 ‘아하’였다. 엔카운터가 필요한 이유를 그리고 수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내 마음 알아주니 내 마음이 나에게 이렇게 선물을 보내준다. 그리고 이번 장에서 느낌 알자하면서 느낌에 대한 생각과 설명에 머물러짐이다.
다른 사람의 이러한 모습은 잘 보이는데 내 모습 잘 안 보인다.
그러면서도 나는 느낌에 머무는데 다른 분들은 느낌에 머물지 못함에 답답하고 아쉬워하고 앉아 있다.
드디어 드디어 이런 내 모습이 보인다.
 
 
 
엔카운트 소감문
냉이
 
엔카운터를 같이 하신 모든 도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가 신뢰하고 참여 할 수 있게 장을 이끌어 주신 도안님과 먼지님께도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저의 엄청난 부정적 감정, 정서들에 당혹해 하면서도 진지하게 같이 해 주신 도반님들께 미안함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엔카운트를 통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한가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차원의 시각들을 봤고 거기서 세상에 대한 안전감이 느껴졌습니다.
경청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알았고 나의 듣는 수준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다름을 보면서 내 시야가 넓어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 힘겨워서 버리고 싶었던 나의 감정들을 이제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잘 느낄 수 있어서 좋구나! 감사하구나! 라는 느낌이 올라왔을 때 스스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내가 부족한 면을 알고 내가 잘 하는 것에 대한 감사가 나를 얼마나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지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생강
 
2월 5회 엔카운터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와 마음알아 주기가 화합이며 수심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바 있다. 8월 휴가를 함양 동사섭으로 오기로 결정하면서, 이번에도 뭔가 소득이 있겠지. 그 소득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나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고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하룻밤, 둘째밤을 지내며 장이 몇 차례씩 진행되면서 장에 함께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야기를 듣고 그 흐름에 집중하는데 피곤하기도 하였으나 전처럼 지루하지 않음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나 옳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100사람은 그 각각의 100가지의 언어로 말을 하며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려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문장과 단어만이 아닌, 사람에 대한 관심 애정 그리고 경청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이번 엔카운터에서도 나의 상대를 고려치 못한 거친 발언들로 인해 장에 불편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끼치게 되었고 그로인한 비난과 충고 걱정 질책 등의 화살을 맞았다. 나의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다시 보았고 머리로 안다는 것을 행으로 나타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다시 깨달았다.
그러나 항상 신뢰하는 엔카운터의 장 도반님. 지도자님들을 따르니 어떻게 나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하여야 상대방이 나의 언어를 이해하며 나도 상대를 오해하지 않고, 상대도 나를 오해하지 않는 표현 방법을 알게 되어 기쁘다.
함양에 오면서 나는 잘 분석하고 집어내는 일은 잘하니, 이제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넓히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왔는데 하늘이 도우셨는지, 감사하고 고마운 도반님들 그리고 지도자인 도안님의 도움으로 아직 모자라지만 좀 더 좋은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는 열쇠를 찾았다. 기쁘다.
좀 더 편안하고 온화해 질 수 있는 나의 모습 오래 유지하고 싶다.
 
 
제7회 엔카운터를 마치며
지금 김영학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갈망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엔카운터에 참여했다.
출렁이고 흔들리는 마음자락을 가누지도 잡지도 못했다.
온통 복잡하고 헝클어진 듯한 삶 속에서 길을 잃은 듯 헤매었다. 삶의 의미와 열쇠를 찾고 싶었다. 간절한 마음과 달리 이튿날까지도 내 마음도 모르겠고 도반님들 마음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공부는 되지 않지만 행복마을 밥맛은 정말 보약을 먹는 것처럼 나를 건강하게 한다. 기쁘다. 또한 감사하다. 여기까지 온 식재료들과 만들어 주신 보살님들께.
“폭력이 아니라면 다 된다.” “생각과 느낌을 장에 내어놓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무런 규칙이 없다고 하는데 뭔가 지키려고 방법을 찾으려고 하니 머리는 뒤죽박죽이고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니 자유롭지 못한 내가 보인다. 없는 틀에 나를 맞추려니 힘들고 더 옭죄이는 마음이 알아차려진다. 도반님들께서 그런 것 생각 말고 그냥 나오는 대로 하라신다. 여전히 꼬이는 스텝으로 답답하고 힘들다. 이러는 마음이니 장에 참여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장을 탓할게 아니라 장에 임하는 내 마음이 밖에 있으니 함께 하지 못했구나 하는 앎이 되어 후련했다. 있지도 않는 것을 찾고 있으니 헤맬 수밖에. 결국 내 생각이 만든 틀에 내가 갇혔구나!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인생의 열쇠 따위도 없으니 찾아 헤매이지 않게 되어 기쁨 100.
셋째 날부터는 도반님들이 가벼워졌음을 비춰주신다. 안심되고 기운이 차려진다. 마음 내어주고 거울이 되어주시는 도반님들이 감사하고 가까이 느껴져 따뜻하다.
나와 같은 절박함을 가지고 엔카운터에 참여한 도반님들이 발견되어지면서 기쁨의 눈물이 났다. 같은 마음이구나, 나의 힘듦과 같은 힘듦, 나의 아픔과 같은 아픔이 도반님들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프고 힘든 내 마음이 보듬어지고 도반님들의 아픔도 안아진다. 함께 한다는 기쁨이고 행복함이다.
결국 나와 너 우리, 우리는 하나임을 알게 되니 좋다. 덜 외롭다. 기쁘다.
도안님, 4박 5일 긴 시간 열여덟 명의 마음을 읽어주시고 보듬어 주셔서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도반님들이 부처님이라 생각된다. 한 분 한 분께 삼배 올린다. 감사합니다. 도안님 그리고 도반님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예~ 홍정표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엔카운터.
 
왜 큰스님께서 엔카운터를 접하시고 당신께서 직접 엔카운터를 진행하시게 되었을까?
무엇이 큰스님을 엔카운터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사섭과정들을 만들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수련회 일정들을 지내 오면서 나름 궁금증이 해소 되어 간다.
 
나를 포함한 수련회 동참한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과 마음, 감정들을 접하면서 수용되는 부분과 배척되는 부분, 감정의 대립,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마음과 느낌들.
그리고 각자의 관점과 느낌이 다름에서 오는 분노, 답답함, 안타까움.
 
분노와 답답함의 극점에서 내속에서 일어나는 전환! 그리고 수용과 공감! = 깨달음 이어서 희열과 희망.
이것이구나!
 
동사섭 법리들이 확연해지고, 온몸으로 전해지고, 뼈 속 깊이 새겨진다.
“그의 아픔이고, 나의 부덕이다.”이라는 촌철이 가슴깊이 박힌다.
이제 나와 내주위에 진정 맑은 물 붓기를 해야겠다.
 
이제 더 동사섭 법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겠다는 마음이다.
 
큰스님의 그늘 밑에 있음을 감사드리고,
모든 인연된 존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엔카운터 소감문
자비 김명희
 
엔카운터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다.
폭력이 아닌 한 마음대로 하라.
어떤 규제도 없다로 도안님 말씀에 뭔가 자유한 듯한 시원함을 느꼈다.
엔카운터의 진행 동안 나의 격한 느낌을 느꼈다. 그러나 배경에 묶여 나오지 못한다. 터주고 싶었다. 터지고 난 뒤의 시원함과 미안함이 지나간 뒤 여유를 느낀다. 그리고 내면을 본다. 바램이 있구나. 바램이 충족되지 않을 때, 섭섭함으로 원망으로 미움으로 단계별로 커지는 감정을 본다. 그랬었구나.
치닫는 감정에 바람이 빠진다. 평온해진다. 엔카운터 진행 될수록, 장에 던져지는, 떠다니는 많은 느낌을 본다.
섭섭, 못마땅, 억울, 미움, 분노, 답답, 궁금함, 사랑, 배려, 보호, 지지, 친밀, 따뜻함. 행복감, 온화함. 그 어떤 정서에 느낌에 시비를 거랴!
그 모든 느낌은 나의 느낌이였고, 나의 정서였고, 미래에 경험할 느낌일 뿐이다.
우리는 분별 할 수 없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였다.
 
* 내 능력의 발견 ⇒ 공감능력. 공감하려는 의지
* 나를 쪼개서 표현하기 ⇒ 말로 인해 상처 받았을 분들께 미안하다.
* 부정정서와 긍정정서의 편견을 느꼈다.
* 공감과 지지 ⇒ 가장 필요하다 ⇒ 필요성
* 다름에 대한 = 매력으로 보기.
* 생명의 소리를 함께 해줘 감사합니다.
* 판단하고 분별하면 충고한다. 충고하면 그를 잃는다.
* 그랴.
그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 그 어떤 느낌도 오로지 그럴만한 이유가, 환경이, 배경이 있었겠지.
오로지 그냥 수긍하고, 오로지 그냥 수용할 일임 뿐. 이지.
* 큰스님의 법리가 활구가 되어 가슴에 사무칩니다.
 
이번 엔카운터를 마치며
기존의 눈과 의식이 만큼 자유함을 느끼며 기쁩니다.
함께한 엔카운터 도반님들 고맙고 감사하며
도안님, 먼지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o 자신이 좋으면 좋은 것이다.
o 내가 좋으면 일단 OK다.
o 공격성.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인생이다.
공격을 말이나 행동으로 하지 말고(공격성 강화)
↳ 내 속에서 공격성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면 정화된다.
벌레가 기어 나온다.
↳ 벌레는 우리 모두 힘을 합해 해결한다.
기쁨을 해결 한다.
↳ 기뻐구나. ~공유, 공감이 해결 한다.
엔카운터 속의 원리를 봐라.
↳ 용기 있게 벌레를 내놔라.
↳ 벌레가 공감, 공유 받으면 휴식에 들어간다.
본인의 감정을 억눌린다.
↳ 공격은 참는 것에 비하면 좋다.
↳ 내놓도 못하고 안아버리면 물이 썪는다.
 
 
 
제7차 엔카운터장을 마치며
윤하 정덕모
 
일반과정이나 지도자 과정에서 엔카운터장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으나, 동사섭 첫 시작의 긴 엔카운터장을 경험해 보고 싶은 바램이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를 갖게 되어 기뻤다. 엔카운터장에 들어갈 때 늘 긴장되고 걱정되었던 마음이었는데 ‘그냥 되는대로 하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음이 우선 뿌듯했다. 억지로 이렇게 하리라 저렇게 하리라 하던 것에서 놓여 진 기쁨도 있다.
동사섭 역사상 의자에 않아서 하는 엔카운터는 처음이라 매우 불편했고 어색했으나 차츰 익숙해져 다음에 바닥에 앉아하면 시비분별이 일어날 것 같았다. 얼마나 조금이라도 익숙해지면 그것이 옳은 것으로 착각하여 고집세우고 옳음을 주장하려는지 볼 수 있는 경험이 됨을 알아채니 좋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깨달음과 성찰이 마음공부구나! 장의 초반부에 뜻하지 않게 ‘안쓰럽다’는 말에 걸려 장에 내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나의 말하는 성향에 대한 것으로 주인공이 되었다. 나에 대해 느끼는 상대들의 불편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내가 그렇게 할 만한 이유들이 있다는 것으로 상대를 설득해내지 못함에 대한 답답함과 억울함으로 온 몸과 마음이 흙탕물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다. 너희들이 모두 나를 잘못 보고 있는거야.라고 외치고 안보이고 안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모두가 나를 올라타고 짓밟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쉬며 사색하니 얼마나 진짜 나를 사랑하지 않고 외면하고 포장하고 합리화시키고 있는지가 보여지며 ‘그래서 어떻다는 건데’ 잔디는 잔디로 살면 되고 나무로 살면 되는데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왜 알기 싫은데? 묻고 또 묻다보니 평화가 올라오고 그런 진실을 직면하게 해주는 장에 와 있음을 인정했다.
아! 나를 알고 사는 게 얼마나 편안하고 다행스러운 일인데 뭘 거부하려 했는지, 받아들이기 싫었는지 답을 하고 있다.
다음장에 편안하게 임하는 자신에게도 놀랍다. 나를 사랑하고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남들의 태도에 못마땅해 하고 밀어내고 싶어 하는 자신도 그냥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상대가 주는 감정은 100%로 받아들이며 상처받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큰 소득이다.
그리고 오리와 독수리와 토끼와 참새가 서로 잘 어울려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 할 수 있어 기쁘고, 자기 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게 우선되어야 함이 다시 다짐 되는 시간이었다. 울고 웃고 떠들고 싸운 모든 분들이 모두 나??????? 알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능조님
 
생강님이 "다른 사람 마음은 받아주고 왜 내 마음은 안 받아주세요? 그래서 섭섭해요." 한다. 내가 그랬지 하고 돌아보니 말하는 사람의 마음만 귀기울여 듣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생강님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아, 이제는 생강님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생강님 마음이 어떠할까 살피는 마음을 내도록 해야겠다. 말하는 사람의 마음만 쫓아가는 내 좁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줘 고맙다.
화자가 입으로 하는 말 너머 화자의 마음을 보는 것이 공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 뜻을 전하는 언어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마음을 전하는 언어 못지않게 그 사람의 눈빛, 말투, 태도와 자세 심지어 손가락과 얼굴 근육의 떨림이 그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까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말만을 쫓아가다 숱하게 놓친 주변 사람들의 마음들이 지나간다. 미안하다.
지금까지 공감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하는 사람이 언급한 느낌 단어만 입으로 내뱉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이 순간 화자의 느낌 하나는 그 사람의 전 인생과 전 역사를 담고 지금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 왔다. 이제는 화자의 말 너머 화자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고 화자에게 관심이 가는 내 마음이 돌아다 보인다. 내 안의 분노, 통제 욕구, 주기 에너지, 공격성,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돌아보고 안아준다. 그래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알아주지 않고 밀쳐서 미안하다 하고 안아준다.
지금껏 촛대가 분명해야 화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촛대 없이 화자가 눈물만 흘리더라도 그 눈물을 흘리는 화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공감된다는 것을 알았다. 경험은 촛대가 분명해야 한다는 원리를 찾게 했고 또 다른 경험은 촛대 없이 공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슴 먹먹할 정도로 경이롭다.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내 생명의 소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도안님과 중조님, 생강님, 예님, 새미님, 푸른산님, 지금님, 보광님, 먼지님, 농부님, 자비님, 냉이님, 윤하님, 환영님, 빵달님, 흙바위님, 숲님, 표현님 감사합니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숲 (성수)
 
도안님을 모시고 엔카운터를 한다고 하니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장에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존에 했던 것과는 약간 다름에서 오는 신선함과 빨리 적응하지 못함에서 오는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장이 진행되며 무조건 빨리 수용해보자 하는 마음을 내니 적응이 빨라져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일” 할 일은 이것 뿐 아니겠나 그러다 보면 결과물은 자연히 나오겠지 하며 장에 집중을 했습니다.
이번 장을 통하여 여러가지 얻음이 있었으나 제게 가장 컸던 것은 예님께서 다른 분의 부족한 부분을 안아주는 말씀에서 감동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 뭐 다른 것 있겠나 이거지 더 큰 깨달음도 좋으나 저는 이번 엔카운터에서는 이 마음 하나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안아주는 것이 힘겨웠던 저로서는 그 때 느꼈던 감정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예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분 한분이 소중하게 제게 다가옴을 느끼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도안님과 도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함께 해주신 큰스님, 원장님, 후원보살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편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중조 김수자
 
4박 5일의 엔카운터 참석은 처음이다.
매번 엔카운터 시간에 “느낌”을 찾지 못해 답답했던 경험이 엔카운터에 참석하게 된 동기다.
4박 5일은 언제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시간이었다. 시작 할 때 웃고 시작했는데 금방 갈등 상황이 벌어지고 또 느낌을 찾아가면서 화해하고.... 이런 시간이 되풀이 되면서 이상하게 서로 간에 친근감을 느끼고 얼굴이 밝아졌다. 때로는 공포심을 느끼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되풀이 되는 동안 나는 화자에 집중하면서 공감하고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도 하고 그러면서 매듭은 하나씩 풀려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함은 더해갔는데 나는 어느 순간 나 자신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화자와 동일시 되지 않고 한 발짝 물러나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혼자 고요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생겼다. 도안님께 물어봤더니 “자신이 좋으면 좋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살이의 각박함 속에서 고요하게(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있을 수 있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많이 나서지는 못 했지만 온전히 함께했다는 기쁨이 있었다. 다들 애썼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보광 조혜윤 2017.08.04.
 
엔카운터를 두 번이나 경험했음에도, 이번 엔카운터를 6주 마라톤 수련 중에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으로 착각하다니..
지난 일반과정과 청소년캠프에 못지않은 감정 소모와 출렁임으로 천국과 지옥을 한마당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 하는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정원이 초과된 채 운영되는 엔카운터에 불편했던 참가자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나에게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던 분에게 참여자의 한분으로서 그분의 불편함을 존중보다는 나의 과중한 업무와 마라톤 수련 뒤에 숨고 싶었고, 그리고 그러할 만한 사정이 살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로 시작되었던 수련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조짐이 남다르게 시작되었던 큰 선물을 받게 된 엔카운터 시간들에 감사하다.
 
부정과 긍정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부정을 이렇게도 싫어하는 성향인지 좀더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근정을 들으면 맘이 편안해졌고, 따스했고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부정이 나오면 일단 긴장과 밀어냄의 에너지가 솟구쳤고 접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지소 올라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의 견해와 같은 부정이 나오면 속 시원하고 짜릿했다. 참으로 일관성 없고 내 멋대로 긍부정의 오가는 나의 의식을 알아채게 되어 기쁘다.
감정에는 시비분별이 없다지만, 긍정을 추구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뿌듯하다. 단, 부정에 대해 좀 더 포용하는 것이 내 스스로의 이고득락을 위한 방편임을 알아차렸으니 그쪽으로 지향해 가련다.
 
2. 알아도 고쳐지지 않는 미숙함
위아래 구분하지 못하고 가르치려는 에너지, 한번 털어 놓으면 밑바닥 까지 탈탈 다 털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 에너지양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청자의 상황을 미처 고려치 않고 내 방식대로 다 쏟아내고 알아서 소화하라는 자기중심성, 시간과 장소를 고려치 않고 실마리가 생기면 담다두었던 것들을 일단 지저르는 분위기 파악이 덜 되는 미숙함.
 
그 동안 여러 차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았던 부분이 정신 차리라는 따끔한 사랑의 매를 맞는 것 같다. 주변에서 말씀해주셨던 분들을 가벼이 여겼던 것에 대한 톡톡한 댓가이자 선물이다. 같이 겪었던 분들의 건네주신 조언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다. 감사하고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안다는 것을 말하는 그 순간에도 저지르고 있는 실수. 첨예하게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그 말에 휩싸여 또 미성숙을 표현한다. 어찌하랴. 이렇게 계속 넘어지는 것을. 그래도 이렇게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려는 내 자신이 사랑스럽고 대견하다.
 
3. 그때그때 쪼개서 표현하기.
한 두 번의 부정은 그 사람의 날카롭고 엣지 있는 스타일로 인식 되지만, 장기적인 부정 시각에 함께 하는 것은 버겁다. 다친 마음을 그때그때 쪼개서 표현하지 않으니 누적되어 갔고,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화선이 생기니 부정적인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 엔카운터에서 부정적인 표현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전히 습관대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못 꺼내고 있었다. 가볍게 그때그때 쪼개서 표현하리. 그것이 나를 보호하고 상대방에게 나의 상황을 알리는 것이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게으름이 없어야 하겠다. 황당하게 뒤통수 맞았던 느낌이었을 분들에게 미안하다.
 
4. 사과. 그리고 그 이후
사과를 받더라고 해서 화가 안 상태의 말은 지속적으로 남게 되어있다. 이것이 1g 1t인가?
사과의 밀도가 내 식으로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과가 전해졌다 하더라도 한번 내 뱉어진 말은 그대로 가슴에 상처로 남는 것 같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지켜야 할선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원색적인 비난은 여전히 상처로 남는다. 내가 저 밑바닥의 말을 뱉은 것도 그대로 상처로 남아있겠지? 순간의 시원함을 위해서 두고두고 남을 상처의 인을 새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그동안 나의 밑바닥 표현에 상처받았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주홍글씨로 가슴에 새겨졌을 주워 담지 못하는 말에 대한 회한이 올라온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마무리
온몸과 마음을 던져서 장에 참여해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특히 이 많은 인원을 이끌어주신 도안님께 깊은 존경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많이 위로받았고 배웠고 감사했습니다.
 
 
 
제7회 엔카운터 소감문
2017.8.5. 먼지 강희영
 
치영라고 격렬했던 또 하나의 삶의 현장이 되돌아 봐 집니다. 이번 엔카운터는 많은 숫자로 충분히 용해하여 음미할 만한 여유가 좀 부족하긴 하였으나 장의 한 분 한 분 혼신을 다해 최선의 참여를 하시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엔카운터 장이 이미 충분히 존중받는다는 생각에 도반님들께 깊은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장의 가장 근원적인 공격성과 분노 표출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으나 과거보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았습니다.
 
지금님의 슬픔과 외로움 깊이 함께 머물러 보는 시간 가지며 성장과 자유를 위한 절절한 몸부림을 느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과거, 현재에 대한 수용을 깨달아 가시는 모습에 박수와 지지를 드립니다. 그 먼 길을 온 몸으로 부딪치고 깨져가며 달려오신 냉이님이 환하게 웃으시니 저도 기쁩니다. 잡고 있던 것들에서 점점 여유를 찾아가시는 모습, 장에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춰주셔서 모두의 내면의 공격성과 분노, 사랑, 기쁨들을 재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 기원드립니다.
 
빵달님이 그 동안 살아오시면서 완전함, 온전함을 추구하시던 것을 전환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시는 모습이 큰 감동이었고 저도 함께 가까운 분들과 과거 인연들에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사죄하고 사과 받는 감사함이 컸습니다. 농부님의 눈물도 오래 여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근엄한 직장 타이틀을 볼 새 없이 신나게 물 만난 듯 잘 노시는 환영님, 흙바위님의 깊은 참여 에너지가 새삼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생각님의 표현력의 발전이 놀랍고 그 동안 배우지 못한 연습을 끝가지 해내고 있는 모습 멋지고 더욱 부드러운 내면도 자주 보여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오랜 인연이신 자비님의 활발한 에너지와, 아침마다 고생해 주신 윤하님의 따뜻한 사랑도 늘 감사합니다. 능조님의 뛰어난 관찰력이 다음번에는 뒷마당보다 앞마당에서 더 잘 박수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아주 조금씩 능조님이 가까워지고 더 좋아지고 있어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기쁩니다.
 
예~님의 튼튼한 울타리 같은 공간 에너지 감사했고 함께 시간 보내어 좋았습니다. 중조님의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끝가지 마음 나눠주시고 젊은 팀들에게 힘을 보태주시는 큰 소나무 역할 모습에 감사했습니다. 푸른산님 솔직담백한 표현 부럽고 건강, 행복 다 찾아가시는 공력에 박수를 드립니다. 보광님의 솔직히 자신 되돌아보는 모습 감사하고 믿어집니다. 새미님의 엔카운터에 대한 열정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온전히 임하시는 모습 감동이 큽니다. 표현님의 장 전체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 배워졌고 조잘거리는 새처럼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부럽습니다. 숲님의 화려하고 정확하고 꼼꼼한 주기-받기의 표현력은 언제 봐도 멋지십니다.
 
도반 여러분들과 특히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영혼을 나눈 인연과 깨우침과 감동이 진하게 남습니다. 푸른산님의 따님이 했던 말, “동사섭은 교회 같다.”를 평가를 엔카운터의 주제거리로 삼아봐야겠습니다. 어마한 집중력으로 장의 에너지를 소화하시며 함께 지켜주신 도안님이 계셔서 충분한 표출과 자연스러운 체험으로부터 얻어진 깨달음의 장이 이루어져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엔카운터 참가 수련기
흙바위(노상충)
참가기간: 2017.8.1 ~8.5 (4박5일)
 
나에게 엔카운터는 한마디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난 4박 5일간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9시까지 그 상황에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과정 자체가 고통이었고,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런 치열한 과정 속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부정정서와 긍정성서에 대한 편견입니다.
누군가 무엇을 이야기 할 때 그것이 누구에게는 가슴을 찌르는 부정정서로, 누구에게는 동정이나 지지로 느껴진다는 것을 통해서 이 마음/이 정서가 온전히 내가 지어내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으로, 공감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의도치 않게 많은 고통에 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끝으로, 다름에 대한 확고한 이해입니다. 다름의 자연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매력으로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화와 고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강의장으로 내려오면서 우리의 일상이 고요고 행복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번 엔카운터를 통해서 참가자 한명 한명의 삶 속에서 나를 보았고 내 고통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모두 내 스승이었습니다. 오늘의 인연으로 그들의 삶이 더 가벼워지고 행복하며 늘 고요함이 함께하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스승인 도안님의 가르침과 일깨움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_()_

소감문 타이핑 보시 : 연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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