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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NO1작성일 : 2021-02-16 오후 11:40
제목
[보도자료-한겨레]  '동사섭 창시자 용타스님의 행복법'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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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well/people/983249.html
 

동사섭 창시자 용타 스님의 행복법

등록 :2021-02-16 20:08수정 :2021-02-16 20:20

경남 함양 행복마을동사섭 회주 용타 스님. 사진 조현 기자
경남 함양 행복마을동사섭 회주 용타 스님. 사진 조현 기자


지난 5일 경남 함양군 대실곰실로 261-1 행복마을동사섭을 찾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련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동사섭’이 진행될 때면 전국에서 모인 수련생으로 떠들썩한 이곳도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적막강산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병원에 가는 것 외엔 한 번도 바깥출입을 한 적 없다는 행복마을동사섭 회주 용타 스님이 산 같은 넉넉함으로 맞아준다.
 

그는 참선이나 염불 같은 전통적인 수행만 통용되던 1980년대, 서양의 심리치료 기법을 활용한 동사섭 프로그램을 만든 마음공부의 선구자다. ‘동사섭’(同事攝)은 중생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닫도록 돕는 대승불교의 수행법을 말한다. 지금까지 동사섭의 5박6일 수련회를 비롯한 500여회의 프로그램에 총 3만여명이 참여했다. 동사섭은 참여자들이 새로운 관점을 맞이해서, 더 지고한 행복 해탈의 경지로 나가도록 돕는다. 참여자 가운데는 평생의 분노와 갈등에서 벗어나 새 삶을 연 이들이 무수하다. 다른 수련프로그램이 시효를 다한 것과 달리 동사섭이 40여년간 인기를 구가해온 이유다. 여기엔 80살 나이에도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프로그램을 진화시켜온 용타 스님이 있다.

 

경남 함양 행복마을동사섭 전경.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경남 함양 행복마을동사섭 전경.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용타 스님은 최근 <마음공부>와 <생각이 길이다>(민족사 펴냄)라는 책 두 권을 동시에 냈다. 각 150쪽 분량의 소책자지만 행복의 정수를 쉬운 언어로 전한다. 흔히 불교 수행은 ‘고통을 벗어나 행복을 얻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위함이고,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줄이면 ‘마음 심(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불자들도 무엇이 마음인지, 무엇이 고통을 가져오는지, 무엇이 행복인지에 관해선 막연하기 마련이다. 용타 스님은 책에서 이와 관련한 핵심 테마를 과감하게 요점 정리해 보여준다. 그는 “마음이란 생각과 느낌”이라고 말한다. 행복이란 좋은 느낌이고, 불행이란 나쁜 느낌이라는 것이다. 느낌을 좌우하는 것은 생각이다. 그래서 나쁜 생각을 하면 불행해지고, 좋은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고, 초월적 생각을 하면 해탈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기분이 나빠지기 쉬운 코로나 시대에 행복 바이러스의 선구자인 용타 스님에게 행복의 길을 물었다.


―통상 전통 불교에서는 생각을 번뇌라며 원수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한데, 어떻게 행복의 길에서 생각이 열쇠라는 결론을 내렸나.

“지옥을 만드는 저열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사색 부재의 한국 불교를 만들었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깨달음은 바른 사유로부터 나왔다. 사유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된 것은 48살 때 불교대학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강의하면서부터다. 해마다 강의를 할 때마다 부처님이 깨닫는 과정에서 막혔다. 불서에서도 부처님이 새벽별을 보며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 과정은 두리뭉실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마스타니 후미오의 <붓다 그 생애와 사상>을 읽고, 부처님이 ‘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로병사의 고뇌에서 출가한 부처님은 ‘나는 죽는다’ ‘그런데 나는 죽기 싫다’는 두 생각 사이를 오가던 중 ‘나’는 무엇인가를 사색했고, ‘나’가 독립된 존재가 아니며 모든 존재는 관계로만 존재한다는 ‘관계 철학’인 연기법을 깨달았다. 곧 생각(사유)를 통해 연기적으로 무아를 깨달아 해탈했고, 일체가 한 몸임을 깨달아 대자대비의 지평을 열었다.

 

500여차례 동사섭 수련을 진행한 용타 스님이 동사섭 수련회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500여차례 동사섭 수련을 진행한 용타 스님이 동사섭 수련회 참가자들과 함께했다.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전통 수행에선 일체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희로애락애오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경지를 추구하며 느낌도 백안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은 어떻게 ‘좋은 느낌’을 행복이라고 결론 내렸나.

“나의 발상이기보다는 초기 불전과 행간에 수없이 드러나 있는 가르침이다. 스님들과 토론할 때 느낌조차 사라지는 것을 니르바나라고 하면 내가 묻는다. ‘느낌이 다 사라졌을 때의 느낌은 뭘까’라고. 불교 수행의 목적이 목석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느낌과 감정을 서자 취급하며 깔아뭉개지만, 99%의 중생은 느낌과 감정으로 살아간다. 이를 무시하면 중생의 주된 심정을 짓밟는 것이다. 느낌을 짓밟지 말고 잘 받아줘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해 느낌을 순화하지 못한 것이 지옥이다. 느낌을 잘 받아주고 잘 표현하게 하면 좋은 분위기, 즉 극락이 열린다. 해탈이나 구원도 그 본질은 결국 지극히 좋은 기분 상태다.”

 

―스님은 누구에게나 사랑욕·인정욕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랑욕·인정욕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는 아닐까. 또 어릴 때 사랑도 인정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랑욕과 인정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허기져 더 높은 차원의 욕구로 나아가지 못한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사랑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어려서 그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타인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먼저 스스로 사랑해주고 인정해줘야 한다. 헬렌 켈러는 힘든 처지에도 자신의 긍정적인 점을 3000가지나 썼다고 한다. 그래서 동사섭에선 보통 사람이 헬렌 켈러보다 세 가지 신체 기능을 더 가지고 있으므로 3003가지를 쓰도록 권유한다.”

 

―마음공부나 수행을 한다면서 제 욕심만 차리거나 타인을 존중하지도 화합하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수행에서는 수심보다 화합이 더 궁극적 목적이다. 마음을 닦고 나면 무엇을 하나. 결국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하면서 사는 것, 즉 화합하는 것이다.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수심을 못 하면 화합도 못 하지만, 수심이 가야 할 길은 결국 보살이다.”

 

은사인 청화 스님(왼쪽·1924~2003)과 함께 한 용타 스님. 청화 스님은 40여년간 하루에 한끼만 들고 등을 바닥에 대지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하며 청정한 수행을 해 생불로 존경을 받았다. 용타 스님은 스승 이야기가 나오자 울먹였다. 그는 불교적 깨달음과 서구의 심리학을 융합한 동사섭을 40여년간 펼쳐왔지만, 자신의 수행 근간엔 스승 청화스님이 주창한 염불선과 보리방편문 수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은사인 청화 스님(왼쪽·1924~2003)과 함께 한 용타 스님. 청화 스님은 40여년간 하루에 한끼만 들고 등을 바닥에 대지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하며 청정한 수행을 해 생불로 존경을 받았다. 용타 스님은 스승 이야기가 나오자 울먹였다. 그는 불교적 깨달음과 서구의 심리학을 융합한 동사섭을 40여년간 펼쳐왔지만, 자신의 수행 근간엔 스승 청화스님이 주창한 염불선과 보리방편문 수행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 행복마을동사섭 제공

 

―진리를 내세우는 종교인이 독선이 더 심하고, 갈등과 폭력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독선과 배타는 종교인의 아픈 함정이다. 진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초점은 이고득락이다. 나도 불교를 만난 뒤 이만한 진리가 없다는 생각에 도그마에 빠졌다. 그래서 가까운 이가 크리스천이 됐다고 했을 때 마음으로 수긍이 안 됐다. 자기가 믿는 것만 진리라고 도그마화하면 폐쇄적이게 된다. 그런데 불현듯 ‘진리 진리 하지 말고, 방편 방편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자 내 마음에 휴식이 오고 허용의 폭이 넓어졌다. 그가 교회당에 있건 어디에 있건 이고득락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종교도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하는 이고득락의 방편일 뿐이다.”

 

―욕망의 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행복할 수 있나.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고 욕구에 반비례한다. 행복하려면 욕구를 줄이고, 소유를 늘리면 된다. 하지만 소유에만 매달려 소유욕에 중독돼 끝없이 욕망의 전동차가 달리게 하는 것은 행복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이다. 따라서 의식주와 같은 필요가 채워지면 ‘이만하면 됐다’는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를 어떻게 보나.

“천하에 존재하는 유형 무형의 모든 것은 두루 하나의 메시지다. ‘코로나’도 하나의 메시지다. 필요한 만큼만 취해야지 욕망껏 취해서는 안 된다. 인류는 욕망으로 추락하여 중독이 깊어져가고 있다. 욕망에 중독돼 자연과 생태계에 충격과 상처를 가중시킴으로써 코로나와 같은 변이가 파생된 것이다. 코로나는 욕망의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오라는 메시지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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