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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5-03-17 오전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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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회 일반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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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섭 수련 프로그램 중 일반과정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문입니다.


제이슨

 

이번 설과 함께 새로 시작하는 나 자신의 사업 방향성과 그러기에 꼭 필요한 덕을 쌓고 싶은 마음에 동사섭 수련에 참석하게 되었다.

 

동사섭은 한마디로 ‘느낌’이라는 일우 님의 촌철 같은 한 말씀에 그간 내가 왜 덕이 부족했고 인간관계를 왜 어려워했는지가 깨달음으로 왔다. 지금껏 힘들게 부둥켜안고 있던 물 항아리를 놓쳐버린 느낌이었다. 항아리 깨진 소리와 함께 깨달음의 물방울이 온몸에 튀었다. 안타까움과 더불어 속 시원한 느낌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느낌이 최고라니? 지금껏 나는 느낌이 가장 비생산적이고 쓸모없고 가능한 한 없애야 하는 사치품으로 생각해왔다. 공감받고 싶어하는 아내에게 “결론이 뭐냐?”,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그렇게 비논리적이면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할 것인가.” 등등. 가장 중요했던 상대의 기분에 관심이 없었다. 단팥 빠진 호빵으로 살았다. 그런데 ‘느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안으로는 수심 잘해서 나 자신이 마음천국 속에서 행복할 수 있고, 밖으로는 화합을 잘해서 관계천국을 만드는 덕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선은 어쩌면 새로 시작하는 나의 사업방향을 왜 대원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가야 할 길은 교류사덕의 ‘사과’를 통해 이해가 되었다.

 

그간 내가 다른 이에게 얼마나 많이 말로써 행동으로써 상처를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 이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 거꾸로 내가 사죄의 108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OP까지인 이미 이루고 가지고 있는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P100의 부분인 ‘구현 행복’ 부분은 더는 집착의 고통이 아니다. 기대하지 않은, ‘덤’으로 사는 설렘인 것이다. 나의 꿈, 세계적인 금융 그룹을 만드는 것은 핏발선 눈으로 고통스럽고 억척스럽게 해나가야 할 것이 아니다. 설레는 덤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많은 나의 업보를 어찌할꼬?”에 대한 답도 찾은 것이다. ‘느낌’과 ‘P100의 설렘’. 새해에 나의 길을 시작하려는 나에게 이 큰 깨달음은 귀중한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죽음 명상을 통해 죽다 살아나 다시 얻은 삶. 오만의 껍질을 깨고 ‘이 세상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와 신의 뜻으로 오직 모를 뿐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얻은 설렘으로 이미 이루어진 것에 행복해하며 지난 업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믿음, 나의 대원을 향해 한 발짝씩 흥겹게 나아간다.

 

친구

 

첫날 강의에서 “인생이란 행복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그리고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뒤돌아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것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굳이 답을 하자면 사회적 위치, 경제력, 명예 정도라고 했을 것이며, 그것들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행복’이란 ‘좋은 느낌’이라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명예를 얻었다고 ‘행복’할까? ‘신은 행복을 인간 개개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숨겨두었다고 했는데, 어쩌면 가까이 있는 것을 내가 모르고 멀리서만 찾았는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교육이 진행됨에 따라 ‘그 생각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이미 행복한 사람이었어. 앞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기반으로 진정 행복한 마음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전시키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내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대인관계를 잘하고, 모두 날 좋아하며 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이 잘못되었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화합의 세 가지 요소인 ‘화삼요’ 강의를 듣고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른 이의 단점을 먼저 찾고, 단점이 적으면 ‘그나마 나은 사람’, 단점이 많으면 ‘나쁜 사람’으로 분류했었다. ‘나랑 친해지고 싶으면 나한테 먼저 잘하는 걸 보여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지내다가 잃은 사람 중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래. 넌 여기까지야!’라고 자기 최면하면서 책임 전가에 급급했었다. 하지만 ‘나의 보는 눈을 바르게 한다’, ‘내가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한다’, ‘관심을 기반으로 내 마음을 감지하고, 표현하며,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고 거기에 잘 반응한다.’라는 내용은 나라는 사람을 쥐구멍으로 몰아넣을 만하였다. 이 교훈 잊지 않고, 옳은 방법으로 옳은 화합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기며니

 

동사섭 행복마을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고 같은 방을 쓰게 된 분들과 간단한 인사만 나눈 후 각자 방 한 귀퉁이를 하나씩 차지하고는 침묵 속에 첫 강의를 기다렸다. 설렘도 적당히 있었지만, 긴장감과 경계심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첫 강의시간에 현공님은 “안전지대에서 긴장하는 것은 그 긴장 정도만큼 미성숙한 것이다.”라는 촌철을 칠판에 적어 주셨다.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나온 말, 늘 첫 시간에는 나오는 말인 것을 알면서도 나를 들켜버린 듯 부끄러워졌었다.

 

나는 복잡하고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사섭을 찾았다. 첫 강의 후 자기소개를 하는 실습시간에 나는 또 한 번 내 마음을 들켰다. 우리 반 지도자이신 열매 님은 무언가를 해결해 가려는 생각, 특정한 문제에 답을 찾아가려는 마음으로 동사섭 수련에 임하기보다 그때그때 강의를 경청하고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을 강조하셨다. ‘해결하고 정리해서 돌아가자!’라는 동사섭 참여목표를 ‘몸과 마음을 맡기고 흘러가 보자!’로 수정하였다.

 

거울 님의 주제강의에서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당면한 현실은 행복의 조건일 뿐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라는, 행복을 결정하는 뿌리는 내가 가진 가치관임을 일깨워주셨을 때,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에 대해 징징대고 불편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이다.”라는 말이다. 늘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감정표현에 아주 서툴렀고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현공 님의 1g1ton의 원리라는 제목의 미세정서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내 인생의 turning point가 되어 미세정서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매우 의미 있었다. 임용을 준비하던 내가 상담과 논술지도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끌게 해 준 첫 제자들 생각을 하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셋째 날 교류사덕 시간에 주변인에 대한 보시/감사/사과록을 작성하면서 그동안 내가 힘들었던 것, 내 변명만 생각하며 지낸 것 같았다는 반성이 들었다. 교류사덕을 작성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함에 감사를 느꼈다. 이날 저녁, 행동명상에서는 나를 조금 더 내려놓아야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하였는데 더 깊이 빠져들지 못함이 아쉬웠다. 너무 울고 싶은데 주변 걱정 듣는 게 싫어서 눈물이 나도 얼른 닦고 울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목이 쉬도록 울고 나니 어느 정도 시원함을 느꼈다.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미해결된 감정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하고 뿌듯하다.

 

수심을 공부하며 처음 경험한 사물에 대한 감사명상에서 ‘마음에 있는 상처 응어리는 실체가 아니고 그저 생각일 뿐’이라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주전자 하나를 놓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고, 생각을 감사에 초점 맞추니 기분 좋고 긍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라 행복했다.

 

사람지족명상시간에 일일부처님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연장자에게 절을 받으니 너무 죄송하고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들면서 현공 님께서 우리 존재의 소중함과 경이로움을 말씀해주실 때 내 존재의 소중함에 감사를 느끼고 행복하였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채 놓친 인연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다섯째 날 거울 님의 초월 강의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 실체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여 욕구가 생기고 분노가 생겨 불만사고를 하게 된다는 내용에서 행복의 뿌리는 나의 마음, 곧 가치관임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늘 책으로, 글로 보아왔던 나지사 명상을 직접 실습해보니 방법이 조금 몸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내 생활에 어떤 이론보다도 유용하게 접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사섭에서의 모든 수련과정이 다 좋고 행복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고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답을 찾고 마음을 정리해서 가려는 처음의 목적을 과감히 수정하여 흘러가보자는 생각으로 수련했지만 목적 지향적으로 수련했던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얻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고 행복하다. 함께 생활한 256회 도반님들과 지도자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반야

 

동사섭 일반과정에 와서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강 님의 강의를 통해 표현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앞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표현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받기 3박자를 배우면서는 특히 경청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학생으로서 수업을 경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말씀도 잘 경청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1g1ton의 원리를 통해 미세정서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나 자신에게는 작은 일이 남에게는 매우 커다란 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언어 중 최고 언어는 덕담이라는 촌철을 듣고 난 뒤, 평상시에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 동사섭 수련이 끝나고 난 뒤에는 가족, 친구,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덕담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칭찬 샤워를 통해 남을 칭찬하면서는 타인의 장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남의 칭찬을 받을 때는 나 자신도 모르던 장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질러라!’라는 촌철을 배운 후 평소 조용하며 약간은 과묵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행동명상에서는 작은 행동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효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OP100의 원리를 공부한 후에는 같은 상황에 대해 나 자신이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동네 긍정점 3,003가지를 배우면서 나 자신의 긍정점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고, 나 자신을 앞으로 더욱더 갈고 닦아 더 많은 긍정점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이들에게 절을 하면서는 그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었고, 절을 받으면서는 그 사람이 나에게 표현하는 감사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느낄 수 있었다.

 

나지사 명상을 통해선 평소 화내고 짜증 났던 일들도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나의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로 할 수 있었다. 이런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준 동사섭에 감사하고 같이 공부하신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바윗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난 사람 관찰하는 게 좋았다. 특성, 말투, 표정을 보고 미세한 부분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이 연습이 내게 긍정적 효과를 많이 주었지만, 부정적 효과를 더 많이 주었다. 어느 순간에 단점 찾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런 내가 칭찬샤워를 통해 오직 장점만을 찾고, 고민하고,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싶고 친해지고 싶다는 느낌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마음속에 만들어둔 벽이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진 주전자에게 감사할 거리를 찾기에서 이 효과가 강화됨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할 거리를 찾고자 노력하니 평소 발견하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있었지?” 하며 빛을 반짝 내는 것 같이, 모든 감사를 마치고 바람을 쐬러 나오는데 햇볕과 공기, 자연과 사물들이 아름다웠다. 마치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올 때 사회의 공기를 손으로 잡고자 허공에 손을 휘젓던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어려운 상황에만 나온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없으면 무척 아쉬울 거라는 느낌들이, 내 마음가짐 하나로 바라보고자 함에 따라 변화함을 느껴 몸에 전율이 일었다. 사람 명상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떠올린 이미지는 드라마에 나오는 황제가 옥좌에 기대어 앉아 사람을 내려다보며 절을 받는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피식피식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연습으로 왕이 된 기며니 님이 절을 받고 울 때 ‘왜 울까? 다른 생각이 나서일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난 도반 님들께 절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내게 공손하고 너무나도 정성스레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느냐는 생각에 복받쳐 울었고 절이 끝난 후 따스한 말 한마디에 다시 울었다. 사람들은 정말 소중하구나. 왜 무시하고 험담하고 상처만 줬느냐며 몇 시간 동안 날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개싸움은 내가 가장 열심히 참여한 프로그램이다. 개가 되어 싸워보라기에 우리 집 개 ‘산이’를 떠올리며 싸웠다. 여담으로 우리 집 산이는 7살인데 여태껏 져 본 적 없는 풍산개이다. 발도 까지고 물집도 잡혔지만 하고 난 후 편해짐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비슷했다. 내가 힘들 때 고통에서 벗어나 보고자 몸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나면 마음이 편해졌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싸움이 내 안에 잠재된 공격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은 나중 일이다. 마음 속으로 난 순하고 평화주의자라고 토닥여본다.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긴장감과 함께 동사섭을 찾아온 난 수련회 마지막 날 밤이다. 함께 울고 웃었던 도반 님들의 얼굴을 기억에 새겨두고자 도반 님들을 보고 또 보고 바라보기를 한참 반복하는 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수선화

 

1일 주제 강의: 동사섭 행복마을에서 주는 다섯 그루의 나무를 마음의 정원에 심는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 이 다섯 그루의 나무를 내 마음속에 심고 잘 가꾸면 내 삶과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귀가 번쩍 뜨이고 반드시 소중하게 심어서 잘 가꾸어보리라 다짐했다.

 

2일 화합: 화합을 잘하면 행복과 평화가 온다.

 

화3요: 보는 눈을 바르게 한다.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한다. 잘 교류한다.

 

교류공식: 관심의 지평 위에 감지하여 표현하고 공감하여 반응한다. 그런데 무엇을 교류하는가? 마음 중에서도 ‘느낌’을 교류한다. 촛대(상황)와 불꽃(느낌)으로 표현하는데 불꽃을 밝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느낌을 모르니 그 사람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실습 시간에 촛대와 불꽃으로 마음을 나누어보니 느낌을 알게 되어 그 사람을 좀 더 선명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받기3박자: 경청, 공감, +α. 실습을 해보니 앵무새처럼 경청하여 말하는 것,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었을 때의 흐뭇함,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줄 때의 기쁨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감이다. 공감으로 대화한다면 사람들 사이에 행복과 신뢰가 가득해질 것 같다.

 

1g1ton의 원리 (기적의 미세정서): 나는 1g을 주었는데 다른 사람은 1ton으로 받아들인다. 별로선 이하의 잔잔한 정서를 무시하는 것은 인생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야선- 이야하라, 이야선을 존중하라, 이야선 변경을 줄여라. 메슬로우의 욕구 위계설을 바탕으로 한 동사섭의 욕구 위계설- 안전욕, 생리욕, 인정욕, 사랑욕, 자아실현욕. 어렸을 때 인정욕과 사랑욕을 충분히 받으면 그 자녀는 자아 실현을 훨씬 잘 이룰 수 있다. 내 자녀, 내 학생들에게 넘칠 정도의 사랑과 인정을 베풀어서 허기지지 않도록 하라는 현공 님의 말씀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내가 인정욕과 사랑욕에 허기져서 자신감 없고 항상 사랑을 갈구했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고 이제라도 내가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앞으로는 내 자식들, 학생들에게 정말 철철 넘치도록 인정과 사랑을 베풀어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내 소임을 다해야겠다고 꼭꼭 다짐하였다. 또 너무나 외롭고 힘들어 술밖에 친구가 없는 우리 아빠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고 미안했고, 이제부터라도 아빠의 친구가 되어 자주 전화 드리고 찾아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3일 교류사덕: 지행득을 실천하여 잘 교류하기 위해서는 보시, 감사, 사과, 관용을 잘 실천해야 한다. 보시록, 감사록, 사과록을 적고 모둠원끼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시를 베풀 생각을 하니 기쁘고, 감사한 분들을 떠올리니 기쁘고, 사과록을 발표하고 나니 이 사과만 잘해도 내 몸과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것 같아 기대되었다. 또 자바 님, 공감 님과 나누기를 하고나니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흐뭇했다.

 

장력: 장력은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로 그 중에서도 인공양장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양장력을 높이기 위한 정서, 표정, 언어, 행동요인 중 언어요인인 ‘덕담 쓰고 칭찬샤워하기’ 실습을 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덕담을 일일이 떠올리며 쓰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누구도 칭찬 거리가 없는 사람이 없다는 대단한, 소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칭찬샤워를 해주면서 장은 매우 훈훈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니 기뻐서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행동명상: 어떤 행동이 명상적 효과를 거둔 것인데 정화와 평화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행동명상이라 한다. 행동명상 실습을 하며 가장 웃기고 통쾌했던 것은 눈치, 부끄럼, 어색함을 똥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실습해보니 똥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내가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해 개싸움을 있는 힘껏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실컷 울고 소리 지르면서 시원했고 선우 님께서 “엄마 미워, 아빠 미워” 하며 울 때엔 우리 아이들의 울음소리 같아 마음이 아팠다.

 

4일 수심: 행복에 도움이 되는 염체는 옆에 항상 장착해두고 행복에 방해가 되는 염체는 제거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원수는? 생각. 가장 큰 은혜는? 생각. ‘된다’, ‘안 된다’ 하지 말고 ‘만큼 된다’ 하기이다.

 

행복의 원리: OP를 지족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P100을 구현한다.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지족)이 99.9999%이다. 지족의 대상은 사물, 사람, 나로 나눌 수 있다. 주전자에 대한 감사와 찬탄으로 주전자 지족명상을 하고 나누었다. 주전자 명상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단순하게 주전자의 기능만 썼나? 창의력이 부족해.’ 하며 남과 나를 비교하며 부끄러웠다. 그 순간 나에게 떠오른 마법 같은 생각. “이미 나는 99.9999%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공 님의 말씀이 생각나며 갑자기 가슴이 든든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장에 계신 다른 분들도 99.9999% 완벽한 분들로 보이며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충분한 나와 우리를 흠뻑 느끼며 행복했다.

 

사람지족명상: 당연악덕(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 고마움을 모른다). 있고 없음을 생각하면 그 소중함을 바로 알 수 있다. 실습으로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여기고 3배 절을 하고 덕담을 하는 명상을 했다. 한분한분에게 정성으로 절을 하며 누구든 칭찬을 찾겠다 마음 먹으면 10가지도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절을 할 때마다 감사와 행복의 마음이 솟아올랐다. 늘 가까이 너무 당연히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남편, 우리 아이들, 가족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 동네 긍점점 3003가지 쓰기: 쓰면서 이 모습이 꼭 현재 내 모습과 맞지 않다는 생각에 조금 답답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선언을 하듯이 발표를 하고 나니 그것들이 다 이루어진 것 같았고 ‘이분들 모두 이토록 각각 개성이 넘치시고 대단하시고 훌륭하신 분들이구나!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더욱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5일 초월: 다 놓는다.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 다 놓은 상태로 무엇이든 하라는 뜻. 초월하기 위해서는 첫째, 동기가 좋아야 하고 둘째, 반복실습(만 시간의 법칙). 산할머니 이야기에서 밖에 있는 것은 밖에 있는 것으로 건너다 보고 내 마음은 고요히 있으니 비빔밥을 만들지 말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원효 대사 이야기의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 ‘내 이 소중한 마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리라! 평화롭게 하리라!’는 원을 굳게 가슴 속에 새겨 넣었다.

 

맑은 물 붓기: 검은 잉크가 들어간 물에 맑은 물을 계속 부으니 맑아진다.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맑은 물을 부어주자. 듬뿍. 맑은 물 붓기 실습을 통해 가족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니 너무 시원하고 행복했고, 소중한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일을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5일 동안의 동사섭 공부를 통해서 나에 대한 긍정적 정체관을 갖게 되어 감사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마음의 걸림 없음, 진정한 자유로움에 대한 원을 세우고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 5대 원리의 나무를 잘 가꾸어 행복한 삶을 살 것이다.

 

나지사명상 실습을 했다. ‘-구나’에서는 나의 감정이 섞이지 않는 말이나 일로 여기고 저 멀리 우주에 혹은 몇백 년 전에 등으로 떨어뜨려 보며 ‘-하는구나. -겠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감사’를 하며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를 존중하며 ‘겠지’를 하는 것에 큰 감동을 하였다.

 

죽음 명상에서는 세 아이가 떠오르며 ‘아이들을 놔두고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고 이것을 통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원 없이 듬뿍 사랑 주고 행복하게 키우는 것임을 깨달았다.



 

소나무

 

기쁨과 감사, 내가 경험한 깨달음.

 

내가 이렇게 가슴 벅찬 느낌을 느끼다니!

 

출발 당일에도 ‘가야 하나? 가도 별거 있겠어?’ 하던 의구심이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동사섭은 ‘동사섭’이라는 말에 대한 나의 미진하고 어렴풋하고 흐릿하기만 한 이해를 단박에 깨버렸다.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는 실천덕목들; 실사구시적인 내용과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식으로, 너무나 명료하고 예리하게 나의 아둔함을 밝혀주셨다.

 

‘느낌’, 느낌의 교류를 기초로 한 화합의 도리, 마음(생각)의 전환을 기초로 한 수심의 도리, 미세정서의 중요함을 깨닫는 것, 지족과 감사의 원리 그리고 전 과정에서 실습의 원리철학인 행동주의는 보리향을 실천, 마음을 증득하는 구체적이고도 적절하며 너무도 신선하고 충격적인 선언으로 다가왔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 나는 내 가슴이 확 트이는 경험을 거듭했다. 공부 과정은 단지 정보의 습득, 숙지가 아닌 체득을 지향하는,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의 긍정적인 감정들이 넘쳐 흐르고 서로를 전염시키고 고양하는 도저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생동감 있고 강렬했다. 그 감동의 교류 속에서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던 은근한 ‘의심’의 응어리가 서서히 녹아내리고, 대신 그 자리에 홀가분함, 편안함, 충만함, 감사의 마음이 들어차고 있음을 느끼며, 찬찬히 새기고 그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특히 미세감정의 중요성,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주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의 중요성 부분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그동안 내가 저질렀던 많은 실수와 억압의 원인을 알게 해주었고, 해결책도 제시하는 귀한 공부였다. ‘서로를 이해하자, 잘 지내자’고 말했지만 나는 기실 아이들에게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말로 전하거나 인도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로 잘 지내는 것만 말했지,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바탕 심리를 마련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들에게 각자의 마음을 더 잘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아이들도 그렇지만 가족과 이웃, 친지들에게도 좀 더 자상하고 친근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물과 자연에 대해서도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통제대비의 마음을 낼 수 있게 되었다.

 

과정을 해가면서 내가 감사 할 것이 너무나 많음을, 아니, 나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것, 나의 존재의 경계 전부가 나를 온전히 지원하고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속 좁은 이기심으로 그 넘친 도움의 기운과 축복을 온전히 누리고 감사하기는 커녕 이기심으로 그 충일한 도움으로 살아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살아온 게 너무 한스럽고 부끄럽다. 사실 그동안도 말로는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한다.’ 했는데, 그 말의 진의도, 그 말에 상응하는 적실한 실천도 없는 빈말을 발산하고 있었던 게다. 그리고 이 마당에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네가 할 일은 온전히 은총과 축복을 기뻐하고 누리고 감사하는 것뿐임을! 더는 내 개인의 호불호에 바탕한 선택적인 사랑의 시계 같은 것은 성립할 수 없는 만산임을!

 

여기서 지내면서 두 번 마음이 트이고 오래 돌고 있던 궁금함이 해소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두 번 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문득 떠올라 형상, 개념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첫째 은 부처님의 탄생 다음에 나오는 부처님의 한생게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의 내용이 다름 아닌 동사섭에서 강조하고 있는 정체와 대원, 그리고 편안케 하리라는 말에 있는 바, 편안함이라는 느낌을 모두 담고 있었음이 명료해졌다. 말씀 전에 일곱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자리에 연꽃이 피어났다는 건 그저 예쁜 말로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한 실천이며, 부처님 호칭 가운데 하나가 양족초인데 이것은 부처님의 지극하신 보리향의 원만하심을 뜻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결과 태어난 화합과 자각으로 살아가다 ‘상가’의 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는 하나는 오늘 아침이다. 문득 동사섭의 전 과정이 경전을 그대로 구현한 것임이 명료하게 드러났다. “나는 이처럼 들었습니다.”의 구성 전체로 시작해서 “모든 동석한 사부대중이 크게 기뻐하고, 믿고, 수식하고, 애써 실천하였습니다.”로 끝나는 형식인데 그것이 아 진실한 기쁨과 환희, 감사의 현장을 여실히 담고 있고, 실제로 재현, 아니, 실현되는 현장 자체임을 알게 되었다. 참 즐거웠다. 그리고 깊은 믿음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제 다시 내 삶 터로 간다. 잊지 않고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고 살아가리라고 다짐한다. 그중에서 아이들 속마음 알아주기, 인정해주기, 공감해주기, 내 삶의 조건에 지족하고 감사하기는 꼭, 반드시 실천하고 살겠다. 같이 생활한 도반 님들, 큰 가르침 주신 용타 큰스님과 지도 법사 님들, 식당 보살 님들, 사무처 식구들, 행복마을이라는 공간 모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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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경계를 스스로 두르고 그 무겁고 답답한 경계 안에서 오래도 살았다. 어떤 목표가 100%이었다면 90%를 달성할 시에도 나는 스스로 실망했고 자학했으며 실패라고 생각했으며, 다음 날에는 130%의 계획을 세워 지속적인 자학으로 몸과 정신이 피폐했었다. 하지만 OP 100 원리는 나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어떻게 같은 결과를 가지고 이처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지? 그래. 난 목표의 90%나 이루어 냈어. 난 최선을 다했고, 만족할 만한 결과인 것을 나 스스로 알잖아. 그리고 애초에 무리한 계획이었다는 거 역시 알았잖아.’ 모든 결과를 해석하는 기준은 내 한 점이며,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결과의 성공과 실패, 자학과 자찬의 기준은 나 스스로 관점이었을 뿐이었는데 왜 그토록 스스로 옭아버렸는지. 앞으로는 OP를 먼저 중요시 생각하고 지족하여 나에게 더 관대해질 것이다. 또한, 지족명상에서 나의 장점을 기술하는 과제에서 ‘40개나 있을까?’ 라는 걱정에서 시작하였는데 막상 쓰다 보니 자신감을 400개도 쓰겠더라. 그동안 스스로 너무 옭아맨 결과 자신감을 잃고 살았나 보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믿고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실로 괜찮은 사람이다.

 

예전에 산에 오를 때는 정상만 생각했었다. 정상에 오른 이들이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그 기분이 최고라고. 그 기분에 산에 오른다고 많이들 해서 말이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 목표를 세우는 못된 버릇도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같이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경쟁자였다. ‘내가 저 사람들보다 빨리 올라가서 저 사람들보다 먼저 정상의 맛을 볼 거야.’ 그러다 보니 체력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며 발걸음이 힘들었고, 막상 정상에 올랐을 때는 힘에 부쳐 느낄 여유도 없이 쉬기 바빴고, 내려갈 걱정을 해야 했었다. 막상 내려오면 힘듦만 있었고, 운동은 된 거 같은데 산이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사섭의 교육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그릇된 생각에 관해 느끼며 점심마다 오른 산책길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저 나무는 말라 비틀어졌는데도 슬프지 않게 보이네. 돌을 밟는 느낌과 흙을 밝는 느낌, 풀을 밟는 느낌이 이렇게 다르구나. 저 나무의 뿌리가, 저 큰 돌을, 저 단단한 돌을 갈랐어. 파란, 뻥 뚫린 하늘만 좋은 게 아니라 나무 사이 비치는 작은 하늘도 매력 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천천히 오르는 것도 좋구나.’ 그리고 한 시간 반 정도의 산책이었는데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함을 느꼈다.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인생이란 것도 그렇지 않을까? 행복이란 것도 그렇지 않을까? 어차피 가는 길은 같다. 하지만 어떤 이는 여유 없이 달리다가 행복을 못 느끼고 닳디 닳은 몸과 정신으로 정상에 올라 허무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조금은 늦을 수 있지만 하나하나 작은 고마움과 행복을 느끼며 정상에 올라 함박웃음으로 진정한 산 정상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어차피 계속 걷다 보면 정상에는 오른다. 지금까지의 나는 전자였다. 하지만 이제 후자처럼 산에 오르겠다. 그리고 그처럼 인생을 살겠다. 지금 생각해 본다. 둔자와 현자도 모두 내 안에 있었으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 역시 나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절대 잊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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