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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5-04-14 오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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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회 중급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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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

동사섭 수련 프로그램 중 중급과정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문입니다.

기린 도용회

지난여름 일반과정 마치고 벅찬 마음으로 집을 향했다. 지금부터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며 집을 향하였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집에 가보니 딸아이가 아빠!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여 기분이 좋았다. 내 삶이 이전과는 다른듯하였다. 적어도 2주 동안은 그랬다는 말이다. 2주 정도 지나니 마음공부의 약발이 떨어졌는지 아이의 입에서 “역시 아빠는 2주짜리군!” 이라는 핀잔을 하였다. 평소에도 워낙 연수를 자주 다닌 편이라 아이가 나의 연수 약효가 어느 정도 가는지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서는 동사섭에 대한 그리움과 중급과정을 공부해서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겨울방학이 되자마자 동사섭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내 일정을 중급과정에 맞추어 짜고 설레는 마음으로 동사섭 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구하는 심정으로 공부에 임했다. 첫날 거울님의 강의에서 지금 이 순간 자유롭고 행복한 것이 올바른 삶임을 강조하심을 듣고 그래 바로 저것이야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어서 가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2주짜리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중급과정 내내 Here and Now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의 화두를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방법으로 5요, 돈망, 나지사, 지족, 비아, 죽음에 대해서 명상하는 방법과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주시면서 실습을 하고 점검표를 작성하였다. 일반과정을 마치고 점검표를 받아 갔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잘 모르고 책장에 그냥 얹어 놓았었다. 공표 치기를 하다 보니 그래 이것을 이렇게 활용하면 최소한 2주짜리 인생에서는 벗어나겠다 싶었다.

 

거울님의 최소한의 인문학강의를 듣고 있는 순간순간 마다가 나에게는 기쁨과 깨우침의 연속이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앎과 깨우침 그리고 진리에 갈망으로 가득 차 있는 내 모습이 예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지금 어떠세요? 인사는 평소에도 많이 받았던 인사였지만, 그것이 “지금 자유로운가?”에 대한 나 자신의 알아차림이 된다는 것을 거울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지금 어떠세요? 라는 인사를 받으면 나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순간 알아차릴 일이다.

 

돈망, 나지사, 지족, 비아, 죽음 명상 중 돈망을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머리로는 좀 이해가 되든듯했으나 가슴에 꽂힐 정도의 이해는 되지 않았다. Here and Now에서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면 제법 돈망이 잘 된 것이라는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좀 안심이 되었다. 공부와 명상 실습이 거듭 돌수록 돈망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아상과 염체덩어리들의 장난에 놀아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지족명상은 평소 다른 공부에서도 했던 터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그동안 있었던 감사의 대상들이 늘어나서 행복했다. 비아명상을 하는 것은 처음에 참 어려웠다. 수업시간 집단 상담장면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수업도 해보고 나 자신도 작성해 보았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생각 놀음으로 했던 것 같다. 비아명상을 통해 내가 나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허상임을 알게 되었다. 거울님의 가르침대로 무엇이 내가 아닌가? 을 찾아가기 위한 명상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무엇인가를 알 방법을 터득하게 되어 기뻤다. 내가 아닌 것을 가지고 나라고 끄달리며 허깨비 놀음을 하던 가엾은 나를 보게 되었다.

 

구나, 겠지, 감사로 이어지는 나지사 명상은 처음 시작할 때 너무 힘들었다. 평소에 나와 모임을 자주 하며 나를 사사건건 무시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후배가 떠올라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겠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아버님 장래가 끝나기도 전에 돈 이백을 요구하던 마을 이장에 대한 생각도 나를 너무나 괴롭혔다. 나의 처지가 아니라 상대의 처지에서 보고 한 부분만 보지 말고 그 사람 전체의 인격을 보면서 풀어가라는 현공님의 가르침대로 해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수월해졌다.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었던 것을 먼저 생각해보니 감사한 마음도 생기고 겠지도 쉽게 풀리게 되었다. 꼭 겠지를 먼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겠지에 걸리면 감사를 생각하라.” 이것이 나의 깨달음이다.

 

죽음명상을 할 때 나의 죽음 소식을 들었을 때 어머님께서 받으실 충격을 생각하니 정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평소에도 병약하시며 불안과 우울을 달고 사시는 분이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더 심해지셨다. 그런 어머님께서 아버지 돌아가신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까지 죽는다면 어떻게 되느냐는 생각에 죽음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죽음명상을 계속하다 보니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래 지금 나는 내 생각 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야! 거울님의 가르침처럼 내 삶은 여기까지고 산 사람들은 어떻게 던 살아갈 거야! 오히려 나 때문에 마음 놓고 돈을 쓰지 못하던 것을 내가 없다면 그 돈으로 여행도 다니고 만난 것도 잡수시고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걸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작선과 건강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행동명상을 할 때 도반들과 마음껏 자신을 표출하는 가운데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서 좋았고 절명상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어 무척 좋았다. 중급과정은 거울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시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자유롭고 행복 할 수 잇는 방법에 대해서 명쾌하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시고 수행점검표에 동그라미 하며 실습을 하여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곳에서의 가르침대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며 살아가리라 지금 나는 자유롭다. 그래 나는 이 모습 이대로 이미 부처다!

성향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한 점의 빛마저 함께 지고한 행복 해탈을 위해 동사섭에 왔다. 동사섭은 순간순간 대갈님 바르게 잘 써는 것을 중요시하는 듯하다. 여기에서 무엇을 알고 깨달아 행복하게 보다는 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의 씨앗을 안고 가는 행복 느낌이다. 씨앗의 이름은 수행 점검표이다.

 

수심 명상산책의 길목에서 영표치기이다. 오요명상의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 주바라밀 돈망, 그냥 있는다. 기초수를 수용한다. 이공법공이니 그냥 깨어 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이다. 조바라밀: 지족, 비하, 나지사, 죽음명상, 세바라밀: 작선. 건강. 이 순간 걸림 없이 행복 해탈 하는 방면의 씨앗으로 삶을 즐기면서 하기엔 최고인듯하다. 큰스님께서는 잘 안될 때는 벽에 머리를 치라 하시는 데 난 반대다. 행좌 때 수행이 잘 안 되는듯하여 동백나무 가지로 장딴지를 수없이 때려 붉은 피멍이 다리에 온통 물들었는데, 번쩍하는 느낌은 모르겠고 다리가 아파 고생만 하였다.

 

난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여행을 즐기듯 사유하면서 기쁨으로 그냥 물주고 사랑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놓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할 것이다. 행동명상. 즐거웠다. 걸림 없이 편하게 했다. 특히 애의 명상 겨울 집 나간 강아지 복순이 의 명상은 시원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적을 때는 잊었던 행복도 술술 나와 좋았다. 다른 사람의 발표를 들으면 기쁨의 손뼉을 치고 내가 발표를 할 때의 느낌은 즐거움과 자신감도 솟아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감사명상은 이번에 큰 보물이었다. 어릴 적을 사유하면 나는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시절이다.

 

“할머니, 저의 생명 살려 주어 감사합니다.” 로 시작된 감사명상은 놀랄 정도였다. 난 너무 행복하였구나. 마치 어린 시절 행복영화를 보는 듯 거듭거듭 놀라면서 아하 행복한 어린 시절도 많았구나. 70번의 어린 시절. 감사 명상을 쓴다는 자체는 기적의 다이아몬드 빛 그 자체다. 써 내려가면서 지금의 성품은 어린 시절 할머니의 영향이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할머니 감사합니다. 감사 명상을 쓰게 해준 큰스님 감사합니다. 어릴 적 부정 시각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난 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나의 의식은 밝은 에너지로 열려가는 느낌이다. 이 밝은 느낌, 무시 감내로 수행해온 공덕을 모아 함께 수행해온 인연 있는 법우님, 맑고 밝은 상생의 기운이 열려 알아 한 되게 하십시오. 모두 모두 함께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축원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심월

 

왜 중급과정에 왔는가를 말하라 하니 지금 여기에 자유 함으로 있는 것이라 속으로 답변했다. 아직은 체감이 부족한 느낌이지만 바로 답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무엇인가를 하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삶에 대한 답이고 이 답을 결정짓는 요소가 사색이라고 말씀하시며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니 잠깐 내가 얼마나 사색을 하지 않고 살게 되면 습관적인 삶을 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거의 99%로가 추락의 삶을 살게 됨이 더욱 선명히 다가왔다.

 

가치관 작업으로 5대 원리를 다시 한 번 공수하며 1번으로 해야 할 일이 “어디에 있는가”을 말씀하실 때 내가 어디에 있을까 되물어지며 막막함이 있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어떻게 나갈 것인가를 정할 수 있고 가치관 정립의 첫 번째가 자아관 정립을 가능한 수준 높게 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명쾌하다. 수준이 낮으면 스스로 괴롭고 이기적인 싸움만이 있게 됨이 당연함으로 와 닿는다. 자아가 사라져 버린 상황이 되면 동체대비 대원의 자비가 절로 나온다는 것을 들으며 좀 더 시원한 논리적 사고의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우주의 모든 존재를 다 제도하리라 하는 서원을 하는 존재이다는 정의가 마음속의 큰 울림을 주었다. 구체적으로 선원을 하는 방편을 작선하는 일이 구류중생을 제도 하는 가장 구체적인 모습이다 고 말할 때는 정말 맞다. 우리가 내가 마음공부를 하는 것은 나 좋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끝내 이것 잘하자고 있는 것이지 하는 자각이 더 크게 다가와 가슴 한쪽을 물결치며 뭉클하게 했다.

 

인생의 궁극 목적, 인류문화 문명 역사의 목적은 끝내 지금 여기 자유로움 이다. 지금 여기 자유로움. 행복은 점층적이 긴하나 둘로 나눌 수 있다며 유위의 행복과 무위의 행복을 이야기하실 때 나는 열심히 공부해왔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지라 유위의 행복을 좋아하고 만큼의 무위의 행복을 추구했음이 느껴진다. 좀 더 무위의 행복 쪽에 무게 추를 옮겨 생활해야겠다. 한 생각의 전환이 나를 기쁘게 한다.

 

걸렸을 때 그냥 무시하지 말고 하나하나 명상을 통해 정화 내지, 지워보고 벗어나 보자는 말씀 또한 가슴에 와 닿는다. 그동안 난 괜찮아하며 안 들키려 스스로 무시 내지 외면을 했고 또 그것을 참아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나의 의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까 마음이 아프다. 물론 감정 있을 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차분히 시간이 지난 뒤에 해결해야 할 것이다.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교리상으로 임해보자는 말씀을 들으며 갑자기 든 한 생각이 걸리는 상황에서 교리를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즉 걸려든 상황에서 아, 내가 지금 있다. 좋다. 싶다. 썅 하면서 불만사고를 아주 교리에 맡게 잘 진행하고 있구나 하고. 자기를 돌아본다면 바로 벗어날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나는 상상력의 달인이야. 즐기어지고 가벼워지는 마음. 이렇게 만큼의 자유로움을 누리는 기쁨 좋다.

 

지금 어떠세요? 라는 질문. 다른 말로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다. 과연 나는 안녕한가? 내 마음은 안녕한가? 무엇이 안녕한 것인가? 수많은 상황을 만나면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는 나의 판단이다. 즉 자기 마음을 책임질 자는 자신뿐이 다는 말이며 어느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함과 불행함이란 겪게 될 것이다. 전에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인생은 사실보다 해석이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반 컵의 사이다처럼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가 행복을 결정 짓는다. 그럼 지금 나는 바로 이 순간 걸림 없는 자유로움을 선택해서 이렇게 자유를, 자유로움을 누린다.

 

인생의 궁극의 목적. 인류 문화 문명 역사의 목적은 끝내 “지금 여기 자유로움”이다 하지 않는가. 이번 중급과정은 나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소감문을 이렇게 쓰는 것도 큰 전환점이요, 선명하게 교리를 이해하는 것. 물론 나의 관점이다. 의리 선과 조사선의 분명한 차이. 의리 선의 중요성. 끝내는 지금 여기 걸림 없는 자유로움의 불꽃, 그리고 무엇보다 만큼의 누림을 의식공간에 잘 장착시켰다는 것이 큰 행운이요, 기쁨이다.

 

수미산

 

작년 가을 일반과정을 처음 할 때에도 그랬었지만 이번 중급과정에서도 왠지 오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와 이유로서 쉽사리 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저번 일반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너무나 큰 충격과 감동을 하여서 한동안은 그 추억 속에서 너무나 행복했었고 많은 사람에게 권하기도 하다가 정점 바쁜 생활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때의 감흥과 열정이 옅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칸에는 기회가 되면 최소한 동사섭의 중급, 고급, 지도자 과정까지는 꼭 해봐야 할 텐데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처음에는 누군지도 알아보질 못했는데 알고 보니 동사섭 함양 수련회 사무실에 범웅님께서 중급과정 오시라고 전화를 주셨었다. 그 전화로 반갑기도 했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선뜻 마음을 낼 수는 없어서 그러고 있는데 이번에는 거울님 을로부터 또 권유를 받게 되었다. 이젠 당황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부담스런 마음으로 바뀌었지만 확답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번 가볼까나 하고 살짝 마음을 내어놓고 나니 이상하지 만치 대신 기도해줄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자청하고 나서지를 않나, 절을 돌보아줄 믿음직한 분도 내가 없는 동안 아예 절에서 숙식하시면서 도와주신다고 하니 더는 참가를 하지 못한다고 할만한 중요한 이유가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직은 내 박사 학위 논문도 끝내야 하고 수행도 더해서 가는 것이 맞지 않나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마음을 딱 정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지금 못하면 8개월 뒤에나 중급과정이 있고 자주 일정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갈 수 있는 여건을 줬고. 또 존경하는 사형스님께서 친히 권유하셨는데 너무 빼는 것도 도리가 아닌듯하고 해서 마지못해 참석하기로 해놓고 조금은 석연찮은 발길을 멀고 먼 함양 땅으로 떼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거울님께서 이 마음을 훤히 다 들여다 보였는지 강의 첫 시간에 우리 수련생들에게 중급과정에 왜 왔는지를 물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몇 명은 여기 와서 앉아있어 주어야지 “용타 스님이 좋아할 것 같으니까 왔지요. 안 그래요? 청개구리님” 그리고 갑자기 나를 보시면서 “수미산님!”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왜냐하면, 내가 중급과정에 온 이유 중에 이것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아차 싶어서 나도 빨리 내가 여기 온 이유를 제대로 찾고 싶었다. 거울님께서는 이렇게 좌중을 한바탕 쥐고 흔들어서 정신이 번쩍 나게 해놓으시고는 강의를 시작하셨다.

 

우리가 이 중급과정에 온 이유는 Here and Now에 자유로움 함을 중요시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다. 즉 지금 여기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존재하는 것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자유로움에도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를 높이는 것이 일반과정에서 배운 5대 원리이다. 이 5대 원리에서 정체와 대원은 체가 되고 수심, 화합, 작선은 용이 되는 원융의 논리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중급과정에서는 수심을 더 중요시 다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내심 기대도 좀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중요한 것을 잘 배울 수 있을까 내심 좀 걱정도 되었다.

 

2015. 01. 10 7:00 PM, 저녁마당

 

 인생의 목적과 인류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해서 강의를 하셨다. 이것의 답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 즉 자유로우면 함이다. 자유로우면 함은 해탈, 열반, 무에와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Here and Now에서 나의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것이 마수 요 악아이다. 이 마수에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해탈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달리 생각만 하면 된다. 이것이 실존적 명상이다. 삶에서 결정적으로 걸리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교리상으로 해결을 하면 된다. 인생이 행복론 일진데 행복론 차원에서 보더라도 수심을 하려면 마음속에서 번뇌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떤 구조로 존재하는가를 아는 것이 좋다. 변뇌구조론 은 불교에서 말하는 12 연가의 다른 판인데 여기에 대입해보면 있다, 좋다, 싶다, 썅, 불만사고로 나누어볼 수 있다. 있지도 않은 것 무엇이라 이름을 붙이면서 있다 하고, 나아가 그냥 있는 것들은 좋다가 혹은 나쁘다 하니 치이요, 없는 그것을 하고 싶고 갖고 싶어 하니 욕구요, 욕구한 대로 잘 안되니 썅 하는 분노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탐 진 치 삼독이요 모든 미성숙한 사람의 마음의 뿌리이다. 그래서 이것의 해결은 있다, 좋다는 어리석음은 없음의 관점, 즉 실체상 자체를 거부하면서 척결한다. 이것이 불교의 구원론이다. 나의 모든 고뇌를 느낄 주체가 없으니 고도 없다. 비아 무아 이다. 싶다는 탐심은 죽음 명상으로 썅은 나지사 명상으로 불만사고 인치 심은 지족으로 척결해서 끝내는 무심으로, 개념이전의 허공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불교의 탐 진 희 삼독심을 어려운 불교용어가 아니고 친근하고 입에 짝 달라붙는 뒷거리 말로 정리를 잘 해주셔서 너무 쉽게 이해도 되고 가슴 깊이 잘 와 닿아서 아주 좋다.

 

2015. 01. 11. 8:30 AM 아침 마당

 

마음공부는 조자룡이의 날카로운 칼도 배듯이 첨예하지 해야 한다. Here &Now에 어떠한가? 과거, 현재, 미래가 과학적으로 따져봐도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행복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 우리는 행복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2015. 01. 11. 2:00 PM

 

우리는 “이 정도로 행복합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인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서 뭘 하기보단 지금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자 물리학에서 보면 물질은 텅 비어 있다. 그러므로 행복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마음을 천국으로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족명상이 0번이 되어야 한다. Tip으로 알려주신 구천조부자론으로 감히 부정할래야 부정 할 수도 없는 지족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걸리면 안되기 때문에 죽음명상의 Tip인 여기까지가 내 몫 인 것과 고통 테마와 허무 테마로 잘 다루어 주셨다. 거듭 강의를 듣고 또 듣다 보니 점점 더 논리구조가 확인해져서 기쁘다.

 

그리고 사람이 진화하려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건강한 마음이어야 된다. 임무를 구현하려면 구현 욕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사랑과 인정이 있어야 실현 욕구 생긴다. 그래서 실천 수행을 위해서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적고 낭독하는 가운데 수강생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스스로 위로해주고 인정해주는 작업을 했다. 사람이 잘나 체하면 상이 되지만 도약을 위한 방편이 되기에 약으로 삼는다. 이것을 통해서 마음이 훨씬 밝아질뿐더러 자존감도 높아짐을 느꼈다. 우리 절에 가서도 꼭 자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 01. 12. 8:30 AM 아침마당

 

방하하라! 거머리가 있으면 바로 떼어버려야 하듯이 바로 모든 잡다한 것을 다 떼어내어 버리고 행복해 버려라.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인문학이 필요하다. 18K도 금이다. “만큼” 자유롭고 만큼 행복해라. OP (현재까지의 성취)까지 이것을 누리면서 위로 올라가야지 이것은 내팽개쳐두고 위만 보면 괴롭다. 지금만큼의 자유로움이 있다. 이것은 의식전환을 위한 복음과도 같았다. 의식의 전환이 해탈이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나는 멋진 강의였다.

 

2015. 01. 12. 07:00 PM 저녁강의

 

 최고, 최귀, 최대, 최종의 일은? 동기이다. 동기가 부디 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사유가 답이다. 그런데 특수한 상황은 어렵고 동기로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사유밖에 없다. 만약에 사유를 포기한다고 하면 지, 정, 의 중에서 1/3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지식이 교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를 했지만 그래도 수행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거울 님께서 불교학자처럼 너무 교리 쪽으로 풀어나 가시면서 개념적이고 관념적으로 자유로우면 함과 해탈을 풀고 가시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는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강의로 이러한 어리석은 나의 기우와 건방진 생각은 말끔히 씻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왜 부처님이 비바라차바린 라고도 불리시는 지가 더더욱 선명히 이해가 되었다. 사실 나는 삼조 승찬 대사의 신심영 구절 “지도 무난 유혐 간택이요 이니 단막중애 하면 통연명백이라. 지국한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구절에 완전히 완전히 가 있어서 뭔가 모르게 내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엮던 것 같다. 불교의 수행은 계.정.혜 삼락을 닦음인데 마지막 단계인 혜의 힘으로 법을 가려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을 간택이라고 하고, 그 힘을 택력이라 한다. 여기에서 택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분별이다. 열반은 이 택력에 의해 얻어진 소멸이기 때문에 택멸 (pratisa khya nirodha) 이라고도 하듯이 지혜에 의한 사유는 굉장히 중요함을 새삼 확인했다. 그래서 개념과 생각의 정리와 전환으로 해탈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듯하여 기쁘기 그지없고 이러한 세세한 교리 작업과 사유 작용으로 일구어 놓은 동사섭의 살아 숨 쉬는 체계들이 더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2015. 01. 13. 02:00 PM 오후 마당

 

“지금 바로 부처 하라” 우리가 모두 부처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다. 이것이 안되면 중동 함령이 개유불성 하다고 했듯이 내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우리에게도 부처의 종자가 있어서 싹이 트면 다른 그 무성이 아니고 바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이치이다. 이것은 마치 감나무 씨앗에 감나무가 될 인이 있어서 심어서 싹이 트면 대록 나무가 아니고 바로 감나무가 되는 이치이다. 그러할진대 만약에 우리에게 부처의 종자가 인으로 내재해있지 않다면 아무도 부처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존재 부처 될 귀한 존재이고 더 나아가서 이대로 바로 부처인 것이다. 활불인 나는 행복하다.

 

끝나가는 이 마당에 돌아보니 처음에는 마치 소가 도살장에라도 마지못해 끌려가듯이 왔던 나 자신을 돌아오게 된다. 참 많이 부끄러워진다. 그 유치 찬란한 나는 벌써 다 안다는 안다 병에 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일반과정에서 소감문에 구구절절이 참회하듯이 반성하면서 적었던 것이 또 올라와 있었구나 생각하니 참 아찔하기만 한다 언제 또 슬며시 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나를 조종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온갖 번뇌와 걸림이 이번 중급과정을 통해서 또한 커풀 벗겨진 것 같아서 홀가분하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런 기회를 마주하게 해주신 범웅님과 거울님께 깊은 참회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이번에 얻어진 모든 공덕은 임들의 자비하심의 산물입니다. 참으로 기쁘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전에도 걸려있음이 많았다. 이번에도 반드시 얻어가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스님 방으로 가서 절을 드리고 말씀을 여쭸다. 왜 스님께서는 진공을 말씀하시면서 그 실체는 말씀 안 하시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실체가 없는 그림자, 그림자 없는 실체, 과연 있을 수 있느냐! 그러나 난 거기서 주장자로 크게 한방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지금 이대로 자유 한가 다시 나에게 물었을 땐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진공 모유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걸려 있었다. 나는 지금 이대로 자유 한가에 초점이 맞혀져 있는 게 아니라 진공 모유에 걸려 허덕대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디. 한 번 만에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겼으나 좀 더 있어 보자는 생각에 명상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잘 되고 하는데 오직 나지사 명상이 너무 안 됐다. 아니 그리고 싶지가 않았다. 너무나 나에게 크고 큰일이라서 구나에서 부터서 걸려 넘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은 일부터 구나 겠지 감사를 해보니까 할 수 있는데 아직도 그 일은 내 주관이 들어가서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제저녁 행동 명상은 참 잦지 않는 옷이다. 아주 좋은 옷인 것은 알고 있는데 맞지 않는 옷이니 나는 행동 명상은 너무 절제해서 푸는 것을 다른 것으로 풀고 있다. 화내는 일은 혼자 삭혀야 하고 눈물을 안 흘리는지 너무 오래다. 웃음 또한 크게 웃어본 것이 언제이며 노래를 불러본 것이 언제인가? 너무 많은 틀 속에 갇혀 사는 것 같지만 난 스스로 감정을 밖으로 안 나타내는 것이 바르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바로 그에 상응하는 무엇이 항상 다가왔다. 어떤 일이든 반응하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충격은 적다. 하지만 반응을 하면 그 충격은 몇 배나 강하게 돌아온다. 난 수행자로서 행동 명상은 안 맞다 난 내 감정을 드러내기 싫다. 내 감정을 왜 다른 사람 앞에서 들어내야 하는가. 과연 쇠똥구리가 똥을 더럽다고 하겠는가.

 

나에게 다시 묻지만 절 명상에서 어른스님께서 율학을 배움에 더욱 정진하라고 하신다. 나도 열심히 정진하고 잘 배우고 싶다. 21세기에 맞는 청정하고 청정할 수 잇는 그런 율법으로 정립시키고 싶다. 그리고 강하고 청정한 그 의의에 벗어나지 않는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 정진해야 하겠고 매끄럽지 않은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정

평소에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을 가지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몇 십 년 그리 살면서도 멈추지 않는 탐심에 지치기도 하였지만 멈추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비움보다 채움이 덕목과 유익이 되는 곳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좋은 것들을 놔두고 환자복만 입은 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훌륭한 아버지이셨지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여태껏 가지를 위해 살아왔던 모습을 다시 점검하고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 들었습니다. 그때 10년 전에 참석했던 동사섭, 거울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실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나를 위해 스키장 숙소를 준비한 친구들 초대와 동사섭중 나는 동사섭을 선택하였습니다.

 

첫날 요요 명상을 하며 여러 책을 읽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었지만 긴 텍스트로만 남아있던 삶의 남은 흔적 모습이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되었습니다. 둘째 비아문장은 나인 줄 알고 살았던 몸을 분리해보니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믿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지구가 네모난지 믿고 살아온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구나, 겠지, 감사를 통해 2동안 비웠다고 생각했던 과거일 듯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고 화가 났습니다. 나는 그럭저럭 잘살고 있는데 왜 끄집어내 문제를 만드는 게 아닌지. 여쭈어보니 문제는 정리되지 않아 그렇다고 답을 들었습니다. 척결하지 않으면 언젠가 폭발하게 된다며 그동안 비운 게 아니라 쓰레기통에 처박아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스님조차 대학 노트 한 권을 채우셨다는 말을 기억하고 집에 가서 많이 연습해서 과거를 척결해서 내 기억 속의 잊었던 원수들을 용서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희로애락 명상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관찰한 뒤 나가서 해보니 생활통관대로 남 앞에서 울지 않는 자존심과 누리지 못하는 제 모습을 여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또 하나 알았습니다. 내가 속한 자리에서 일도 열심히 하겠지만 빈 마음으로 주위와 열심히 노는 것. 그래서 올 한 해는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죽음 명상은 10년 전에는 전혀 이해 못 했던 주제였습니다. 수련회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 저항했던 주제였습니다. 이번 잘살기 위해 죽음에 대한 명상하는 목적을 가지고 해보았습니다. 걸림이 참 많았습니다. 그동안 아껴 모은 물건들과 내 자랑이었던 예·적금 통장들 남겨두고 죽기 싫은 마음이 컸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죽을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을 배웠으면서 꼭 쥐고 있었습니다. 역시 어리석음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죽고 나면 드릴 기부처와 친척들과 금액도 정해보았습니다.

 

마당

 

중급과정이 네 번째다. 0표치기를 중심으로 명상하는 내용을 심고 있게 익혔다. 목표는 내 마음을 지고한 평화 쪽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유롭고 행복 해탈을 확인한다. 의식은 단순 명료하게 정리 정돈한다. 우주는 허공과 같다. 천하는 없다.

 

돈망명상: 이만큼의 행복을 느끼며 사니 얼마나 훌륭한가. 지금 바로 행복 해탈, 자유로워진다. 만큼 행복, 만큼 해탈, “만큼”에 눈뜬다.

 

지족명상: 눈에 보이는 것 모두 감사한다. 욕구는 줄이고 소유는 늘어나 간다. 많이 가졌음을 확인하며 아하 한다. 나는 이미 넘치게 소유하고 있다. 혼과 몸으로 이 세상을 경험하고 사는 것만으로 빌 게이츠가 부럽지 않은 구천조짜리 부자다.

 

비아명상: 무한우주전체가 나인데 전체가 나일 뿐, 어디에 독립된 내가 있는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함을 깨닫는다. 환경은 내가 아니다. 몸은 내가 아니다. 마음은 내가 아니다. 식주체를 내가 아니다. 순수의식은 내가 아니다. 묘유는 내가 아니다. 반복하다 보니 내가 없음이 확연해졌다. 아하. 이렇게 걸림 없이 살면 끝내는 자유롭겠구나 하고 깨닫는다.

 

나지사명상: 무한우주가 이렇게 존재하는구나. 감사할 뿐이다. 없는 허상을 잡고 무어 그렇게 집착하나. 사람에게 걸리는 것은 나의 부덕, 그의 아픔으로 벗어난다.

 

죽음명상: 죽음이 왔으면 가는 게 순리지. 1분 후에 170억의 인구가 떼로 죽는다고 상상하니 죽음이 쉽게 수용된다. 죽지 못하게 걸리는 것들은 잡아서 관점을 바꾼다.

 

작선: 우주 상생, 만물복덕, 하고 기도한다.

 

운동: 건강한 130세의 여인이 분위기 있는 커피숍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상상을 한다. 실감 났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태어난 신비롭고 기적적인 존재들이다. 우리는 모두 부처다. 부처로서 말하고 부처로서 생각하고 부처로서 행동한다. 용타 스님의 절을 받을 때 최고였다. 내 인생 최고의 영광스런 순간이었다. 스님을 만난 것이 이 지구 상에서 내가 만난 최고의 행복이다. 만학도이지만 마지막 열정을 모아 열심히 공부해서 돈망을 뚫고 그 심심하고 맛없다는 그 맛을 꼭 맛보고 싶다.

 

전단향

 

나지사 명상에서 걸려있는 것을 찾아내어 써보니 먼 과거 일인데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걸리면 나지사하고 해탈하면 된다는 것이 왔다. 죽음명상에서 사는 것에서 죽음으로 가는 자체에 늘 걸려 있었는데 하루 일상생활을 그려 보면서 하니 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잠에서 깨어나서 잠자는 시간까지가 늘 반복되는 생활이다. 이러한 것들과 이별을 못 할 이유가 있는가 하나하나의 물어보니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지족명상에서 혼 몸 경험에 대한 지족명상으로도 자족감이 벅차올랐다. 혼이 있다는 자체로 모든 것을 얻었고 몸이 있다는 자체로 옵션을 얻었다는 기분이 들면서 이대로 행복하다는 행복감이 왔다.

 

아명상에서 환경, 몸, 마음을 두고 나라고 하는데 환경, 몸, 마음, 식주체 기능, 순수의식, 묘유가 나인가 물어보면서 하나하나 내가 아니다를 확인해 가면서 나에 대한 짐착심에서 벗어나고 특히 몸, 마음을 연기로 사유하니 연기적 존재일 뿐 내가 아니다가 수긍되면서 해탈 감이 왔다. 돈망명상을 하면서는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음이 내 인생 전부이라고 하며 돈만 3관대로 관행으로 하니 무한 해탈감이 느껴졌다. 희.노.애.락. 행동 명상을 하고 나서는 어려운 것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하는 중에 어색한 느낌을 제치고 하여보니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감사점을 적으면서 계속 나오는 감사함을 발견해서 불만요소가 살아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이 벅차올라 옴을 느끼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찾아내어 발표하여 보니 나에 대한 존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절명상에서 한분 한분을 부처님으로 모시니 한분 한분이 거룩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부처로 보는 인간관을 심화시켜가야겠다는 다짐이 왔다.

 

풀꽃 정견

 

중급 과정은 일반과정을 몇 번 거쳐 오는 줄 알았다. 큰스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중 중급 과정이 있다는 소식과 중급과정을 들을 기회가 되어 1월 계획을 바꾸어 중급과정에 신청하였다. 일반 과정 후 그동안 노트 정리를 하며 차츰 동사섭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동사섭 사이트에 들어가 큰스님 10분 명상을 들으며 한국 조계종 용타 큰스님이 계셔 얼마나 다행이고 승려로서 큰 자부심이고 축복임을 자랑스럽다.

 

끊임없이 강조하는 지금 여기 자유로운 마음으로 존재하는가? 용타 큰스님께서 평생을 다해 동사섭 행복론 체계를 나침반과 같은 5대 원리를 상세하게 편집하여 세부적으로 나누어 중급과정에서는 수심을 중심으로 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 명상, 죽음 명상을 중심으로 지금 여기 자유로운 마음이 되기 위해 큰스님의 열정 에너지에 환희로움과 75세 연세가 믿기지 않으리만큼 모두에게 자비의 향기로움을 전해주시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체대원에서 가치관 정립을 통해 큰 대원의 마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서원의 마음이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연꽃 피는 집에 내 모든 열정의 에너지를 주리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번뇌 패턴(있다, 좋다, 싶다, 썅, 불만사고)에서 불만사고는 지족명상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지족사고를 행복으로 이끌 수 있는 열쇠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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