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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
작성일 : 2005-03-17 오후 10:46
제목
기념 행사일에 부쳐 -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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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에서
"동사섭과 나"
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글들입니다.
1. 민상준님
同事攝 ! 내 마음공부의 지침
동사섭을 만난지 올해로 12년을 맞 는다.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늘 감사함을 느꼈던 동사섭 법회가 이제 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되어서 참 반갑고 기쁘다. 학님으로부터 ‘동사섭과 내 삶’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동사섭의 영향을 많이 받고, 동사섭 사상을 밑거름으로 내 마음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해 왔던 터라 들뜬 마음으로 선뜻 지원했으나, 막연히 내게 묻어져 있는 동사섭 사상의 흔적들을 알아차리고 드러내는 것이 은근한 부담스러움으로 다가왔다. 가만히 앉아서 떠올려보니 크게 5가지 정도가 내 삶에 녹아있는 동사섭 사상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해주었다. ‘正體 ․ 大願 ․ 修心 ․ 和合 ․ 作善’의 삶에 대한 원융한 정리인 ‘삶의 5대 원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과 바람직한 삶의 구체적 모습을 제시해 주어서 참 감사하고 기뻤다. ‘삶의 5대 원리’를 가슴 깊게 새기고, 내 삶의 지표로 삼아 마음먹고, 실천하게 되어 참 기쁘다. 늘 내 정서에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해주었다. 동사섭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음나누기’가 그저 좋아 내 마음의 촛불과 촛대를 살피는데 많은 노력을 했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 늘 일상생활에 내 정서를 살피는 삶이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만큼 행복하고, ∼만큼 알아주고 살아내는 것이, 삶을 얼마나 충실히 채워주는지... 또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좋은 배경을 살피고 안 좋은 마음을 다른 곳으로 투사하지 않고 나의 미성숙으로 돌아 살피고, 행복해지려는 적극적 노력을 하게 되는 습관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知足하지 못해서이다’라는 행복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이 참 깊게 와 닿았다. 초기에는 대상에 대해 가치 판단의 척도를 낮춤으로써 ‘∼이만하니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요즘에는 그냥 그 존재로 감사함이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고 놀랍다. 旣存旣成을 누리고, 만물이나 사람의 그 존귀함에 대해 조금이나마 흠모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들도록 해준 동사섭의 방편과 사상이 참 고맙다. ‘개념이전’의 세계를 조금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본고향을 찾으니 마음이 안락스럽고, 이 세상의 생명 현상을 집착 없이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寂寂惺惺의 고요한 ‘-옴나’ 그 상태로 절로 행복하고, 지혜와 자비의 덕성을 길러주고, 일상생활의 개념 작업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주니 참 감사하고 기쁘다. 관계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상대와 대화나 관계를 나눌 때 ‘화자 중심’이 되어 그 ‘밑마음’을 살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았다. 깊게 상대를 만나니 그 자체로 기쁨이오, 사랑스러움이 절로 나오니 관계가 평화로워져서 기쁨이다. 내 마음의 이해의 지평이 넓어져가는 데서 오는 툭 트인 해탈감이 또한 기쁨이다. 지난 동사섭 사상의 학습으로 이만큼 행복하게 살게 되어 참 감사하고 기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지고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도 믿는다. 하는 만큼 이루어지고 성숙되어지는 것이 영성 계발이니, 지난 12년 동안 변한 나의 모습이 그러했다. 동사섭 법회에 인연 닿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고 기쁘다.
2. 임지영님
지족명상의 기적 !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동사섭을 만나왔지만 내가 용기를 내어 동사섭을 찾은 것은 2000년도 여름 법회 때였다. 단학 선원에서 수련을 하며 나름대로 나를 찾기 항해를 시작한 지 반 년만의 일이었다. 그 때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내 가정사에 대한 열등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고, 나의 에너지는 항상 밖으로만 향하려 했다. 혼자 있으면 엄습해 올 슬픔과 외로움이 두려워 항상 일거리를 찾아 나를 혹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을 숨기기 위해 항상 나를 포장하였고 포장되어진 나는 남의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 열등감은 내 자신을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방해꾼이었다. 지족할 줄 모르며 항상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불안한 삶이 이어져 갔다. 간간이 동사섭 법회에 참가해보라는 남편의 권유가 있었지만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무시하곤 했었는데, 이는 내 속의 나를 만나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점점 나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가고 있었고, 그 불안 속에서 새로운 삶을 자리매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스스로 동사섭을 찾게 되었다. 나눔의 장, 미세 정서에 깨어있기, 지족명상, 독배 명상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인 듯 여겨졌다. 나눔의 장에서는 내 안에 너무 몰입되어 있기에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냉담해 있던 나, 남의 마음에 자맥질해 들어가기에는 너무 단단해져 버린 나를 볼 수 있었고, 거울님의 미세 정서에 대한 말씀 속에서는 과거와 미래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현재의 소중한 정서들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아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족 명상 시간에는 나에 대해 쓸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며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고, 독배 명상을 통해서는 자식도 아닌 내 자신 때문에 죽지 못하는 나에 대한 두터운 집착을 볼 수 있었다. 30여년을 가슴 속에 품어왔던 슬픔을 통곡으로 풀어내며, 개 싸움을 통해서는 억눌러 왔던 분노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맑은 물 붓기에서는 내 정서의 뒤엉킴에 의해 상처를 받았던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내 속에 있는 참사랑을 확인하기도 했다. 내 자신의 열등감이 건드려질 때는 이를 거부하면서 절규하고 몸부림쳤다. 5박6일 후 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현실로 돌아왔다. 법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공덕은 지족과 행복은 비례한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확신한 것이었다. 우선 나에 대한 지족 명상을 찬찬히 해 나갔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누렸으며, 많은 운도 따라 주었음에 감사할 수 있었고, 그 감사함은 엄마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연민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정사에 대한 열등감이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 내 생일 날 남편으로부터 “호수를 사랑하는 101가지 이유”를 적은 편지를 받아들고 나는 감사함과 죄책감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조차도 감쪽같이 속여 왔던 내 열등감에 대해 고백했다. 남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또한 그 열등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 이후 우리 집에서는 가족의 생일 때마다 소중한 선물을 주고받는다. 내 미성숙한 감정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애린이의 생일날, 우리 부부는 ”애린이를 사랑하는 101가지 이유”를 준비했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부터의 일들을 회상해가며 적다 보니, 애린이는 우리 부부에게 많은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 사랑스런 아이였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남편은 일본유학 시절 매일 아침 유아원에 데려다 주면서 자전거 뒤에서 노래도 부르고 조잘거리던 사랑스런 모습을 떠올리며 행복해 했고, 나는 내 문제로 인해 그 아이에게 상처 주었음을 가슴아파 했다. 애린이는 눈물로 읽어 내려갔고, 나도 함께 눈물 흘리며 참 만남이 이루어지는 감동의 순간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 모녀간의 문제들은 서서히 풀려나갔고, 지금은 편안한 관계 속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 윤식이 생일, 시아버님의 생신에도 101가지 선물은 이어졌고, 시어머님 생신이 돌아왔다. 왠지 저항하는 마음이 생겨 쓰기가 싫었다. 어머님에 대한 긍정 부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내 마음을 본 것이다. 과거의 아픔은 이미 지나간 것, 현실을 그대로 보자고 스스로 달래며 마음을 열었다. 항상 어머님의 부정적인 면만 보고자 했던 내 마음을 제쳐두고 나니 편안함속에서 어머님의 좋은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받아 드신 어머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은 과거의 어머님에 대한 감정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가장 힘든 부분은 어머님에 대한 지족이지만, 만큼 노력하며 서로 행복을 줄 수 있는 건강한 고부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번 내 생일에는 어머님, 아버님이 내게 메일로 보내주셨다. 내가 며느리로 들어온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며… 결혼 초 여러 가지로 나를 힘들게 하셨던 어머니지만 나는 연로해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가슴 속에 미움 대신 사랑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동사섭의 크나큰 지혜들 중 단지 지족의 단편만을 실천한 것뿐이지만, 우리 가족은 ‘101가지 사랑’을 나누는 지족 명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하며 작은 행복들을 소중하게 가꾸어가고 있다. 나와 남편, 우리 가족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여주신 거울님, 학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이 세상의 모든 이들과 그들 가정이 풍성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동사섭 문화가 더욱 창성하기를 기원합니다.
3. 서형석님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
우리 인생에는 소중한 만남이 세 번 정도 있다고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첫 번째의 소중한 만남은 문학과의 만남 이었고, 두 번째의 소중한 만남은 불교와 의 만남이었으며, 세 번째의 소중한 만남 은 동사섭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거울님을 최초로 만나 뵙고 동사섭을 처음 접한 것은 벌써 15년 전의 일입니다. 이 만남은 저의 청년기에 있었던 문학과의 만남, 그리고 불교와의 만남을 더욱 의미롭게 결정 지어주는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상당 기간의 서정시 습작을 거쳐 문단 데뷔를 짐짓 미루면서 영문학에 심취해 있던 저에게 영어를 통한 불교 문헌자료와의 만남은 결국 제가 문학의 길을 버리고 불교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불교 경전과 교학의 심오함과 정밀함에 매료되었고, 문학이 해결해주기 어려운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인생고에 불교가 해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바른 길을 암중모색하며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무렵 금륜회보에 실렸던 거울님의 명상 칼럼 몇 편을 읽고 마음이 흔들려 지리산 백장암에 계신 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를 처음 보신 스님께서는 저에게 “지금 느낌이 어떠십니까?”하고 물으셨고, 저는 “스님을 처음 뵈오니 다소 긴장되고 설렙니다.”하고 말씀드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렇게 해서 저의 동사섭 역사는 시작되었고 은사와 상좌로서의 성스러운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거울님과의 교류를 드문드문 이어가면서도 동사섭 수련회와는 좀 멀어진 채 지내는 동안, 저는 빠알리어 경을 소의 경전으로 삼는 근본불교에 큰 관심을 갖고 오부경 국역의 기초 작업과 남방불교 문헌의 번역활동에 동참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켠에는 “내가 지금 머리로만 불교를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회의와 자책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출판된 거울님의 명상록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를 읽고서 저는 백장암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된 동사섭의 세계, 활불교의 세계를 재발견하였고, 이어 수련회에 열성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동사섭은 저의 영적 진화사에 있어서 관념불교에서 활불교로의 대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이를 좀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팔만대장경을 다 불사르고도 지인으로서, 붓다로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새로운 이해를 얻은 것입니다. 나의 일상적 삶에 즉하여, 삶이 즉 공부가 되는 길을 찾았으니 이제 번쇄한 교학은 하면 좋고 안 해도 좋은 부차적인 과제가 되었습니다. 동사섭은 석가모니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근본불교, 근본불교의 핵심인 정념수행과 수념처관을 시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첫소리인 느낌에 눈뜨도록 시종일관 고구정녕하게 안내하는 동사섭의 방편은 바로 정법의 현대판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사섭은 불교사의 꽃이라 할 대승불교, 대승불교의 종착점인 보살의 대원을 동시에 머금고 있습니다. 대원의 실천행으로서 수심, 화합, 작선을 가르치는 동사섭이야말로 원통불교의 길인 것입니다. 동사섭은 불교만은 아닙니다. 마치 불교가 종교만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동사섭은 유불선 삼교를 아우르고 기독교의 복음과 현대의 진화된 인문학적 세계관 등을 두루 포용하여, 이 시대 만중생의 행복을 위해 항해하고 있는 영성 운동의 거대한 함선입니다. 이 배에는 남녀노소 세대 계층 인종 종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탈 수 있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지고한 행복의 오아시스, 피안의 항구에 도달케 할 것입니다. 동사섭은 우리가 곧 이대로 부처요 예수요 성자요 지인임을 일깨우고,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부처로서 예수로서 성자로서 지인으로서 살아가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개념작업에 물들어 시달리기 이전의 고결한 의식상태를 지금 여기서 각자 누리는 만큼 누려보도록 권합니다. 지금 여기서 업 짓기를 멈추고 윤회의 사슬을 풀고 우리는 각자 역량만큼의 성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범부와 성현의 차별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사섭과의 만남은 제 인생의 축복입니다. 제 삶의 역정 속에 문학과 불교와 동사섭이 있었기에, 그리고 존경하는 거울님과 돕는 이들과 여러 도반님들이 계시기에, 저는 지금 이대로도 사람으로 태어난 값을 했음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환희롭고 축복된 일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들 모두가 세세생생 영원토록 지고한 행복을 누려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4. 조현숙님
세상 이치를 깨닫는 근간이 되는 정체의 원리...
동사섭 수련 체험담을 발표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난감한 느낌이 밀려왔다. ‘못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서도 “네”라고 대답이 나갔던 것은 그동안 동사섭을 통해 나의 삶에 얻어진 유익함이 얼마나 큰 것이냐 싶어지면서 동사섭의 성과를 모아내고 보다 진전시켜 나가려고 하는 뜻 깊은 자리에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함께 느껴진 것이다. 늘 그렇지만 동사섭을 통해서 변화된 삶과 감동을 충분히 표현해낼 자신이 없었고, 아직도 동사섭의 개념적 이해가 부족하고 실행하여 인격화 해나가는 데에는 더더욱 그러하여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많은데, 뭔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7년 전 처음 동사섭을 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그간의 삶을 헤아려보니 실로 엄청난 변화들이 있었고, 동사섭 수련 이전의 삶과 비교하여 현격하게 다른 질의 지금의 삶이 감사하고 감격스럽다. 7년 전 처음 동사섭 기초과정에 참여했을 때 동사섭에 참여하게 된 각자의 동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한 말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사람들이 마음, 마음 하며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도 마음이 있는가? 내 마음은 어떤가? 하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어떤 두꺼운 벽 속에 갇혀 숨도 못 쉬고 질식해가고 있는, 혹은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처럼 뭔가 지치고 피곤해 사그러져 가는 그런 느낌으로 내 마음이 느껴진다. 나도 마음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든 과정이 어색하고 적응이 안됐다. 다른 사람들의 풍부한 감정표현과 적극적인 참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별로 느껴지는 것도, 공감되어지는 없었다. ‘아 내가 참으로 황폐하고 문제가 많은 인간이로구나.’ 하며 오히려 자신에 대한 절망감만 더욱 가중시켜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동사섭 장에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겉돌면서 삼사일이 지나고 사람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당신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인가? 이름이 당신인가? 직업이 당신인가? 사회적 지위가 당신인가?......’ 하면서 파트너와 함께 서로 질문을 하면서 자신을 분해해 들어가는데, 순간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껍데기 같은 것이 해체되어 나가면서 내 안의 어떤 것이 감지되는 것을 느꼈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고 믿어왔던 아니 ‘나는 무엇인가?’ 에 대해 별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이 그냥 막연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조건들에 규정받아온 나의 자아가 그것을 뚫고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나’를 떠올리는 것이 늘 두려웠다.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자신의 내면은 너무 어둡고 혼란스러워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흠칫 놀라 얼른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나의 현실을 불행하게 느끼면서 오랜 세월 비관해 온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규정들이 내가 아니며 그 속에 뭔가를 느끼고 있는 존재가 나 자신이며 그 존재 자체로 긍정이라는 가치에 눈이 떠지면서 동사섭 장이 비로소 올곳이 나의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굳어있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공간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 오고 그들의 속마음에 귀 기우려졌다. 이어지는 삼배명상과 맑은 물 붓기에서 오로지 나 자신에게 삼배를 올리고 맑은 물을 부어줬다. 오랫동안 어두운 골방 속에 가두어 놓았던 내 마음을 해방시켜 햇빛을 쏘여주고 자유롭게 풀어준 날이었다. 정체성(자아관의 정립)은 세상이치를 깨닫는 근간이 되는 것 같다.(그래서 동사섭 5대 원리에 제1에 해당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아니 마음공부의 목표이면서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수준이 다르겠지만 낮은 차원의 자아관에서 긍정적, 초월적, 혹은 그 이상으로 수준을 높여 나가는 것이 수심의 과정이고 내용이 아니겠는가? 그 후 나의 삶 전반에 긍정적 변화들이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우선은 정서가 달라졌다. 느낌이 행복해졌다. 가볍고 환해졌다. 그 이전에도 느낌은 항상 있어온 것이다. 그 느낌의 밑바닥에는 흐르는 감정상태가 자기에 대한 부정과 혐오감으로 무겁고 어두운 상태였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들여다보고 아무 두려움 없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지금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인 것이다. 똑 같은 나인데 느낌이 달라진 나이다. 표면적 삶은 같은데, 내용은 완전히 다른 삶이다. 표면적 삶은 같은데 그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새로워지니 느낌도 새로워진 것이다. ‘지고한 행복은 정서의 순도를 높여 가는 것’이라는 동사섭 가치관이 적극 수용되어진다. 정서의 순도에 대한, 정체성의 함수관계에 항상 관심이 간다. 일체에 대한 나의 일감을 지켜보면서, 경계로 느껴지더라도 이제는 에너지가 상대방에게 가지 않고,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 온다. 내 눈을 교정해보려고 노력하고 끝내는 나의 자아성찰로 돌아온다. 때론 나를 더 긍정하고, 나를 지우는 무아관으로 그 경계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한다. 늘 찾아 들던 우울증도 지금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동사섭을 하고 얼마 후에 용타 큰스님을 뵌 자리에서 “스님께서는 혹시 우울해지실 때가 없으십니까?" 라고 여쭈어 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딱서니 없고 외람된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었으나 나에게는 꽤나 진지한 사안이었다. “허어 그것 참 신선한 질문이군.” 하시면서 스님께선 전혀 그런 감정이 들 때가 없다고 단언하셔서 전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졌다. 달라이 라마가 서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부정하는 괴로운 심리상태의 사람이 있다는 걸 듣고 굉장히 놀라워하며 그런 심리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를 못했다고 한다. 자기들은 자신을 너무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이기적인 생각들을 극복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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