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섭 수련 프로그램 중 일반과정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문입니다.
보광님
지난주 일반과정에서 뵈었던 일우님과 동사섭 지인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긴장을 찾아 볼 수 없는 안전지대에서의 15회 화합장 첫만남이다. 이 아니 반가울 소냐?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겁고 유익한 3일의 시작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예감이 좋다. 그러나, 익숙하다고 지난주에 참석했다고 허심하지 아니하고 자만한다면 동사섭 공부인이 아니 터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허심을 장착해본다. 그리고,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라는 말씀처럼 마음으로 경청하리라 다짐해 본다. 그리고 주제에 몰입을 시작해 본다. 일우님의 배려로 강의에 대한 피드백을 하겠다는 신념으로 몰입해 보다 보니, 또 다들 재미가 느껴진다.
이세상의 가장 중요한 삶, 그리고 그것을 경정하는 삶의 핵심 요인은 가치관이다. 동사섭에서는 자리이타에 기반한 바람직한 가치관을 권장을 해준다. 목적 가치관으로선 정체와 대원을, 방법 가치관으로서는 수심, 화합, 작선이다. 기존에 삶의 5대 원리를 목적가치관과 방법 가치관으로 분류하니, 체와 용이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명쾌하다.
인생은 어차피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고 그 안에서 방법이 요청되는 것은 당연하다. 행복론의 기초논지로서 몸체를 삼고 수심, 화합이라는 두 바퀴로 작선 엔 진을 굴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니, 삶이 일목 요연해지는 기분이다.
고통과 전쟁을 피하고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화합이 필요하다. 화3요의 수심 내용인 보는 눈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한다면 스스로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교류를 잘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각이나 느낌을 교류할 수 있겠지만, 우선 생각이라는 것은 결국 관점만큼이나 다양한 것으로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이라는 교류의 한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느낌을 나눌 때는 너와 내가 없게 된다. 따라서 교류로서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하나로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교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관심의 지평이 넓지 않다면, 상대방의 속마음을 감지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표면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온전히 화자중심이 될 때, 속마음 알아주는 실존적 사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침묵을 포함한 비표현이 최고일 때도 있으니 늘 깨어 있어서 시의 적절한 수준으로 하는 것도 요청된다. 역시 동사섭의 법리는 어는 한곳이라도 이로정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번 화합장에서 대어를 낚은 부분은 맥락적 듣기이다. 기존에 단순히 앵무새 받기 등의 경청에 따른 공감과 플러스 알파였다면, 무시하며 듣기, 대충 듣기, 선택적 듣기, 맥락적 듣기 등 총 4단계로 나눠어진 경청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선택적 듣기를 하게 되면 선택적 공감밖에 되지 않고 자아도 남게 되어 온전한 화자중심이 될 수 없다.
즉각 반응을 지양하고 상대방의 에너지를 파악한 후 에 놓기 전 3초를 통해 의중에 맞게 받아준다는 것이 보다 온전한 교류와 화합의 모습이 될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면 할수록 경청의 중요성은 지나침이 없는 것 같다. 온 세포가 귀가 되어 상대방의 저 밑 마음까지 경청하리라 다짐해보니 다시 한번 목표 점이 생겨 군침이 돈다.
동사섭 마음 공부 인으로서 5대 악성받기 중 불경청 받기는 덜하더라도, 에고가 남아 있는 만큼 한풀이 받기와 충고 받기가 동반 될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아하점이 생긴다. 회자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지 않을 때, 일반화 받기와 비교 받기도 따라 올 수 밖에 없다. 악성 받기를 지양하기 위해서도 수심이 요청된다. 3번 이상의 자자청을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충고 받기는 항상 유의해야 할 점이다. 의지적 다짐이 되니 좋다.
상대를 고려하지 말 것, 눈치 사슬에 걸리지 말 것. 공격(역경계)를 만났을 때도 견딜 것. 일우님께서 엔카운터에 대한 방향성을 설명해 주시니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싶어졌다. “저는 질 그릇이에요. 스텐레스 그릇이에요” 라고 호기롭게 말했던 내게 큰 거울이 닥쳐왔다. 엔카운터. 도반님의 솔직한 피드백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달궈지며 몸에 뜨거워졌다. 공부를 직면시켜 주신 도반님께 감사하며 다시 더 억경계에 부딪혀도 공부로 삼고 심다는 의지도 불탄다. 섬세하고 정확하며 간결하게 느낌을 잡아내고 표현하는 것이 보광이 기초수를 수용하는 기본이 될 것이다.
촞대를 제대로 보고 촛불을 제대로 켜기 워해서는 치탐진이라는 프레임이 중간에서 바르게 장착 되어야 하는 그림을 보고나니 참으로 시원하다. 사실처럼 보이는 염체도, 있다라고 여기는 것 촛대 모두가 본인의 “치탐진” 프레임에 의한 왜곡과 굴절이니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별로선을 낮추고 미세정서에 집중할 것. 그 미세정서를 알아차리는 것이야 말고 이미 넘치는 감사와 행복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낮아진 별로선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1g으로 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욕과 사랑욕을 채워줄 수 있다. 그들이 허기와 추위로부터 인정욕과 사랑욕이 채워질 때, 자아 실현이 될 것이고, 그 수혜자는 같은 우주 공동체에 있는 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1g 도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야선을 알고 있으면서 나의 아야선을 상대방에게 알리고, 상대방의 아야선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아야선의 반경이 줄어들게 되면 먼저 자신과 주변 사람이 편하게 될 것이다. 그 아야선이 나이나 신분으로 인해서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는 편견은 비워야 함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윤하님의 강의를 통해서 천연 악장력도 얼마든지 양장력으로 바꿀수 있다고 알게 되니, 더 적극적인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가 양장력이라는 촌철은 임장기초 신념과 맞닿아 있다.
인간관계가 모를 때 복잡하지 알고 보면 간단하다. 교류사덕 만큼 안다병과 지행득이라는 촌철이 위력을 발휘 할 수 있을까 싶다. 알고 보면 간단한데 지행득을 떠올려 볼 때, 빈약함이 느껴진다. 이 좋은 도구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집안 장롱에 금송아지 있으면 무얼 하나, 사용하질 않는데. 한달 안에 꼬옥 실천해보리라 다짐해 본다.
최근에 함의로 확장된 우리의 행복해탈에 도움이 되는 민첩한 행동 모두 행동명상이라고 할 때, 365일 24시간이 모두 행동명상 꺼리가 된다.
특히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인생 3박자의 저지르는 것이 요청된다. 대신, 마이너스는 제치고, 되는 것을 새면서 누리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은 나의 살림살이다.
하고 싶은 것을 안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 이라는 뿐 선생의 말씀에 따라 게으름과 절제를 되돌아 본다.
동사섭 전 과정이 맑은 불을 붓기다! 그렇다. 동사섭 과정 내내 맑은 물로 더 맑고 밝아진다.
동사섭 지도자님들, 도반님들을 통해서 채워진 맑은 물이 넘쳐 주변에도 잉크물의 농도를 조금이 라도 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동사섭으로 받은 은혜를 일부라도 환원할 수 있을 것 같다.
윤하님
서울에서 진행되는 장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어 매우 뜻 깊고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주에 함양에서 일반과정을 마쳤으나 지도자 자격을 받은 사람으로서 아직도 동사섭 전 과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함을 시간만 되면 채워야겠다는 법을 익히고 자각이 와서이다. 참 잘했다. 이제 남은 삶을 이렇게 좋은 전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을 명심하고 열심히 배우고 닦으리라. 첫만남 강의에서 “벽을 허물자”에 대하여 벽을 깨기보다는 벽을 가만히 눕히면 너와 나의 소중한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도반님들에 대해 알고 나니 그의 살이 내게 쑥 들어와지며 더욱 친숙해진 것도 큰 수확이다.
만나는 분들이 알면 알수록 가깝고 소중한 존재인 것을 확인하게 된 것도 또한 큰 수확이다.
주제 강의 시작하며 허심, 경청, 주제몰입에 대해 환기해주시니 수련의 자세가 새로 다져져 좋다.주제 강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뒤숭숭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암담했었다. 이제 삶의 목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삶의 5대원리를 벼리로 하여 살아감이 얼마나 가볍고 편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니 행복하다.
70억 인구 중에 이런 혜택을 받았으니, 반드시 주변에 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리라. 다시 결심하게 된다.
보는 눈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모습 바르게, 교류한다. 수련의 양 바퀴인 수심과 화합이 바로 삶을 살아가는 큰 두 측이다. 여기에 작선을 생활로 한다면 화합이 우선되어야겠다.
그것은 정말 노는 눈을 바르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이다.
요즘 자꾸 내가 상대를 볼 때 온전히 그 존재로 소중하게 보는 인품이 부족함을 느낀다. 보는 눈을 바르게 하는 인품을 성숙시키고 의도적으로라도 교류하는 태도를 키워야겠다.
장에서 공부한 것을 장에 두고 가지 말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에 눈을 부릅떠야겠다. “어머 그랬다면 많이 힘드셨겠어요.” 보다는 아직도 5대 악성 중 충고하거나, 불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인품자가 할일이 무엇인가?
상대의 마음 공감해 주고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되도록 축원해주는 것이다. 선공감 후 답변후 설명에 깨어있으리라. 특히 어머니께.
내 작은 말 한마디가 상대에게 1ton의 도움을 줄 수도 있고 1ton의 해약을 끼칠 수도 있음에 깨어있자. 더구나 앞에 자꾸 나세게 되는 사람은 그 말과 행동이 자비해야 한다.
아야선을 줄이자. 주조세바라밀의 명상을 생활화하여 모든 내게 주어진 상황이 감사와 행복임을 눈떠야 한다. 나를 어떻게 성숙시키려는 의도인가로 시비 분별할 것이 없음이다.
이번에 강의 한 꼭지 기회 주심에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반복반복 열심히 공부하여 동사섭원리 잘 전하는 수행자 되겠습니다.
일우님
- 이미 낯익은 인연들과 함께 진행한 화합장. 반갑게, 즐겁게, 유익하게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 처음엔 유 경험, 다 경험자들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강의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단물 빠진 껌을 씹게 되는 싱거운 일로 여겨졌으나 참가자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적극적 참여를 해주셔서 도리어 나에겐 축복의 시간이 되어 좋았다. 참여해 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 익히 알고 있는 오리지널 수련에 비교되는 부담과 소수정예지만 장력이 크게 형성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충실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점은 동영상 촬영의 덕이기도 하여 사무실의 배려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 어쨌거나 참가자나 진행자 모두 안다병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자가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점도 이번 수련회의 공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지혜가 되어 용 해탈적으로 활용되려면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는 촌철과 지행득 이라는 안다병 치료제를 사용하여 초심을 회복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 매 강의마다 피드백을 받아 봄으로서 강의 품질 향상과 나 자신의 갖고 있는 악 패턴인 ‘간혹사’ 습관과 유쾌한 유머 남용으로 숙연한 성착 효과를 낮추게 되는 염려 등도 큰 소득으로 기쁘다. 그리고 보다 논리적 전개가 필요하다는 것과 극적인 효과. 강약, 침묵, 완급조절 등을 통해서 여백과 정돈된 표현의 강의 미학이 요청되었다. 개인적으로 매우 값진 시간이 되어 기쁘다.
- 오직 나를 위해 3일이나 헌납해주신 참가자, 사무처, 동사섭, 큰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월님
<인생은 만남의 과정이다>
동사섭 첫 시간 첫 강의 첫 말의 대표적 표현이다. 그 동안 수없이 듣고 고개 끄덕이며 아하! 하며 머리와 가슴에 자리한 문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소감문을 쓰기 위해 노트 첫 페이지를 열고 보는 순간 이 문장에서 더 이상 나가지가 않는다. 왜 이리 가슴이 묵직해지며 깊어지고 숙연해지는지. 인생은 만남의 과정이다. 인생은 만남의 과정이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만남을 가져왔고 그 만남의 연장선 속에 현재의 나와 모습이 있는 것 아닌가. 이 모습에 수많은 경험과 역사가 스며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무거워진다.
모습의 무거움, 모습의 가벼움, 모습의 책임감, 모습을 어떻게 하느냐의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앞으로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의 답은 잘 알고 있다. 최고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것은 닦아가는 행위 일 것이다.
이번 화합장은 나라는 모습을 좀더 뚜렷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은 정서적 체험을 겪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무겁다. 더욱더 각오하고 다짐한다. 처절하게 깨어 있어야 된다는. 그래야 업을 벗어 날 조그마한 발판이라도 만들어 질듯하다.
인생은 저질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고의 저지름은 나를 이겨가는 저지름일 것이다.
나의 만남이 소중하고 귀중하듯 너의 만남도 소중하고 귀중함을 깊이 각인하며 모든 만남이 반갑고, 즐겁고, 유익함이 되도록 또 노력하고 노력하겠다.
나와의 만남으로부터 아픔을 경험하신 분들께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조금이나마 속죄를 해보겠다. 내속에 있는 상대 부정적 정서를 지워가는 작업도 먼저 선행해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