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회 동사섭 온라인 (줌) 엔카운터- 소감문
보광 조혜윤
*무엇을 하자는 자리인가?
다경험에 따른 감으로 적당히 장에 임하려 할 때, “무엇을 하자는 자리인가?” 라는 거울님의 문도는 주장자를 내리치시는 듯 놀랍다. 깨어 있지 않으면 촛대를 향한 호기심, 질문에 대한 답변,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한 해명 욕구와 그에 따른 변명, 사실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에 빠져든다. 그것들을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느낌 공유에 우선할 수는 없다. 매 순간 느낌을 공유하는 목적에 깨어있기만 해도 실족은 피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수시로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물어야겠다고 다짐하니 안심된다. ‘지금 나는 내 느낌을 잘 표현하고 상대방의 느낌을 잘 공감하고 있는가?’를 물을 때 엔카장의 주제에 삼엄하게 깨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편안하다. 무엇을 하자는 자리인가의 문도가 회를 거듭하면서도 의미가 점점 더 다가오는 것이 놀랍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감상하는 것은 큰 자비심이다.
자비로운 인품의 향기를 내는 사람이고 싶은 오랜 바람이 있다. 말이나 행위를 표현하고 해야만 하는 것이 자비가 아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 자비의 출발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판단평가 없이 오롯이 감상하는 하고, 함께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생육사를 함께 하고 존중하는 일이라 자비라 생각하니 숙연해 진다.
거울님께서 긍정, 밝은 에너지로 사람을 떠올리고 기도하면 내 자비의 샘은 깊고 넓어진다 하신다. 유형무형, 유정무정, 모든 존재들의 행복해탈과 맑고 밝은 상생기운을 위하여 전 존재 전 에너지를 기하여 전하오니 무량한 복덕이 향상 되소서...길은 있었다. 걷지 않았을 뿐, 자비의 길을 걸을 방법을 두 가지나 챙겨서 뿌듯하다.
*엔카운터는 속사정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곳이지 인품으로 덮는 곳이 아니다.
표현의 세가지, 명료,간단,적절 중에 가장 고난이도는 적절이라고 생각된다. 적절은 나와 상대방, 그리고 장 전체의 상황에 깨어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딱 하면 좋을만한, 혹은 나올 만한 말을 했을 때 장에서는 “시원합니다.”의 표정과 메아리가 나온다. 엔카운터 장에서는 진실을 우선시한다. 그 이유는 개인이 내 놓은 생각과 느낌은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닌 공론화 된 장에서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다. 진실하지 않으면 미진함이 남아 덜 시원하거나 답답해한다. 놀랍거나 당연하게도 그 진실성은 상대방에게 그대로 여과 없이 전달되기 쉽다.
나의 진실성을 요청하는 상황이 3일차에 왔다. 진실을 선택 했을 때의 예상되는 파장이 떠올랐다. 그러나 보니 진실성의 깊이에 고민이 되었다. 장의 평화를 위해 적당한 선의 표현을 선택했다. 장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 감지되었다. 4일차에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의 엔카운터 주제에 맞추어 한 걸음 더 나아간 진실한 감정을 털어 놓았다. 시원하다는 반응과 동시에 마지막 날인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만 했냐는 식의 불편한 반응도 접했다.
3일차의 표현에는 진실을 요청하는 반응과 함께 그 정도 선의 받기를 잘했다는 칭찬도 받았다. 4일차의 표현에는 시원하다는 반응과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했냐는 반응을 받았다. 이틀 동안 상반된 두 반응을 경험하면서, 약간 혼란스러웠다.
나는 하고 싶은 내 표현을 한 것이었을까? 장에서 요청하는 것을 표현 했던 것이었을까?
나도 살아야겠고 눈치 인격도 있으니 각각의 비율이 작동해서 그 당시 나의 BEST를 했으리라 믿는다. 장이 끝난 지금까지 두 가지 플러스와 마이너스 감정이 함께 머물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마이너스 발언에 대한 여운이 좀 더 깊어서 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이 순간 나의 BEST는 무엇일까?
두 가지 반응에 대해 모두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 할 일이다. 각자 다 나름대로의 사정을 기다리고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그렇고...
이번 역동적인 장에 함께 해주시고 역할 해주신 분들께 미안함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끝내는 공부의 소재임을 알기에 내 주신 숙제에 감사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