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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1-02-25 오후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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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과정 제36회 수련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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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화님
 
동사섭 일반과정이 끝나고 2년 반 만이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발길이 닿으리라 색각한 동사섭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는 날과 동사섭 중급과정이 겹쳐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동사섭으로 향해 있었다. 무엇인가를 마음 가득히 담아주리라는 믿음이 있는 곳, 동사섭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3박4일이 끝나는 지금 나는 한 아름의 숙제를 안고 간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나는 아직 성인이 되고 싶진 않다. 어떤 성인들의 모습에서는 더불어 살기가 참으로 어려워 보였으니까. 그러나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어 마귀의 자랑거리가 되고 싶진 않다.
 
우선 수심명상 산책을 다 외우겠다. 제도교육과정(학교)에서는 외우는 과정이 지겨웠지만, 다행히도 나는 늦은 나이에 외우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감사한 일이다. 시를 외우면 그 시가 내 마음에 다가와 시인과 시와 내가 하나되었던 감동의 경험을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래서 결심한다. 집으로 가서 수심명상 산책을 달달달 외우리라. 그리고 나서 걸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지하철에 앉아서 버스에 서서 수심명상 산책을 읊조리며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리로 마음으로 온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천하의 주인인 내가, 무한 우주의 모든 존재를 위하여, 안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밖으로 관계 화합 잘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세상을 밝게 한다는데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여야 한단 말인가?
 
욕심 내지 않고, 수행점검표에 동그라미를 하나하나씩 채워야 겠다. 동그라미도 정성껏 아주 동그랗게, 모양 있게 할 것이다. 또 하나, 특히 나지사 명상을 창조적으로 해야겠다. 나의 모든 희로애락의 느낌을 담아 나의 상상력을 되살려 나지사 명상의 도사가 되리라. 연습하고 연습하고 반복하고 반복해서 나지사를 통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리라. 그래서 나는 진정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에머슨의 성공처럼
 
<무엇이 성공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하회의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있었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2. 한이만세님
 
지난해 9월 동사섭 일반과정을 마치고 돌아간 뒤 이번 중급과정에 참석했습니다. 그 사이 6개월은 지난 40년의 제 삶을 크게 갈무리 하고 보람찬 결실을 확인하는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소중한 것은 제 남은 생의 비전이 확고해 진 것입니다. 제 남은 생의 비전이 확고해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멋진 비전을 세울 수 있도록 영감을 준 것은 늘 제 곁에 있는 친구들과 책과 함께 동사섭 일반과정 수련의 경험이었습니다.
 
이번 중급과정을 통해 저는 결코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수행점검표 동그라미 치기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일반과정때 몇 분들이 보여주신 수행점검표를 보았을 때 ‘멀 이런걸 하고 있지?’ ‘나는 동사섭 수련을 해도 절대 저건 않할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제 저녘시간에 행복마중물 발표를 하고서 많은 분들의 따뜻한 격려와 포옹을 받았습니다.
이동네 긍정점 행복마중물을 다시 정리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통해 그동안의 제 삶을 다시 정리하고 되새겨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를 어린 시절 괴롭힌 것은 내 마음이 내가 바라는대로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착한 일 하고 싶어서 했는데 그 다음 한순간 남들이 내가 한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튀어나옵니다. 의견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는 제 견해가 최고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또 일어납니다. 겉 모습을 보고 이해심 많고 지도력 있고 순수하다고 칭찬받을 때 마다 저는 저만 아는 제 안의 욕심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제 안 마음과 겉모습이 같기를,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기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만 행할 수 있기를 원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평화롭습니다. 거울님의 말씀을 들으니 이 모든 어려움이 ‘나’라는 생각에서, ‘나’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 것이더군요. 비아명상이 참으로 잘 되고, 응무소주이생기심과 보살행의 도구라는 단어가 제 마음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이제껏 이 ‘나’라는 집착과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상에서 저는 항상 피곤해 하고 몸이 아파 출근을 못할까봐 피로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며 지냅니다. 고급과정, 지도자과정을 함께하지는 주위의 권유에 저는 하고싶은 마음이 있어도 몸에 무리가 있어 주저했습니다.
(※ 한이만세님의 소감문은 여기서 끝납니다만 소감문 발표시간에는 돈망 체험담을 생생히 전해주었고 고급과정과 지도자과정을 신청한다는 말을 하였음.)
 
3. 생명님
 
어느 땐가부터 삶이 너무 힘들게 느꼈을 때, 자신의 삶을 그냥 열심히만 내식대로 살았던 내가 잘못 살았다는 것이 느껴진 것이, 첫째는 행복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건강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인생을 180도 반대의 삶을 살아보자고 한 계기로 자원 봉사할 요량으로 상담을 접하게 되어 자신을 만나면서 점차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신을 표현함에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어 행복감을 느껴 어느덧 다른 이들에도 전해주고픈 목표가 생기었다.
그런 와중 동사섭의 일반과정에서 용타스님의 열정과 놀라운 상담기법 접목에서 접하면서 십여 년 불교에 인연이 있었던 이 일물이 불교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이 생기어 불교학과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공부도 하고 싶기도 하였으나 현실에서 필요하고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택하고 불교공부를 동사섭에 들어가서 공부하면 나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조금 전 말씀하신 것과 같이 스님들의 법문들이 자신의 수준만큼 들릴지언정 너무 어렵고 수행하는데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지침이 없었기에 이번 중급과정에서의 수심명사안책이 명상하면서 글귀를 음미하면서 느끼니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좋았다.
오요명상에서 인생 살면서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에 대한 확연함과 돈망명상이 그중에서 제일 좋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좋은 느낌을 느끼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바쁘게 살았던가! 애쓰고 애쓰면서…….
지족명상은 그동안 상담공부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많아지면서 행복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기존 기성 미성 강의에서 하고 싶은 일에 집착한 이 일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뒤늦게 찾은 자신의 심리적 나이가 어려서 한참 더 성숙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아명상에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하는 보살행의 도구일 뿐이다. 라는 말씀이 와 닿았다.
그동안 과거 미래에 살면서 현재의 나로서 온전히 살지 못했던 나
죽음명상의 그것이 온다. 간다. 걸림이 없다. 고요 적적한 우주에 상생기운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니 안방에 편안하고 폭신한 이불에 누워있는 것 같이 편안하였다.
언제라도 저승사자가 온다면 갈 수 있으리라.
앞에서 언급했지만 수심명상산책 한 말씀 한 말씀이 짱입니다요
나는 행복한 사람~~~~♪♬ 감사합니다 ~!
 
4. 사랑
 
일단 사실 중급과정까지는 할 생각이 처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반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내가 성취할 만한 가치관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동사섭을 끝마치고서 다시 돌아가서 며칠을 보내고 나니 다시 내 안에 잠자고 있던 (100% 뿌리 뽑지 못했던) 부정적인 자아관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중급과정을 통해 이러한 부정적 자아관을 제지하기 위해서 중급과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내가 의도한 시스템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부정적인 자아관을 제거하기 위해서 행복 에너지를 마음속에 더욱 충전시키는 시간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에너지 충전되는 수업이 진행되기보다는 이미 행복 에너지가 많이 충전되었다는 전제하에 명상을 하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나에게 부족한 점은 자기 인정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정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면의 나의 가치관은 인정과 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가치관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내 자신에게 부족한 건은 자기애였다는 것을 동사섭이 끝나고 나는 깨달았다. 따라서 나는 자기애를 느끼러 왔는데 아차 뭔가 잘못 왔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므로 명상법 중에 와 닿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 비아 명상이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자기애가 부족한 나는 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비아명상은 아직 그것이 성립되지 않은 나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고 나의 내면에는 이것이 거의 반쯤은 성공했다고 믿는 이 인정을 더 이루어내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확산되어 명상 전체에 인정하는 다른 명상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여기서 내가 또 100%를 다 얻어가야겠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인정되지 않는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 채로 두고 인정되는 부분만을 일단 수용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는 방식으로 수행을 이루어 나아가면 될 텐데 또 나의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3박4일이란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져서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수행이 3박4일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이 결코 늦지 않았음을 나는 늘 인지하여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여기서 배운 명상을 꾸준히 해 간다면 나의 고민에 대한 진정한 나다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산은 정상에 오르기 전에 더 숨이 찬다.”는 말처럼 내가 이 3박4일 동안 고뇌하고 방황한 것이 더 나은 가치관의 성립을 위한 변화의 계기였으며 발화점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여기(중급과정)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빛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동사섭에 온 것만으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기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남 그 자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무엇보다 큰 원동력임을 동사섭에 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지속하기 위해 동사섭에 또 올 것이다.
 
5. 풍경
 
삶의 목적은 행복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 삶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런데날마다 행복감을 느끼면서도 저에게 다가오는 행복감의 강도와 모습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것은 한순간에 가슴을 때리는 다소 쾌락에 가까운 문양을 가졌고 어떤 것은 처음에는 잔잔한 파도였다가 나중에는 거대한 해일로 저를 덮치는 행복감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게 행복일진대 과연 행복감을 비교할 수 있을까?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쁨보다, 좋은 느낌보다 더 높은 차원의 느낌이 있다는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귀가 쫑긋하더군요. 하지만 거울님이 그것은 맹물 맛이라고 하니 김이 확 빠졌습니다. 세상에 느낄 수 있는 환희와 감동 기쁨이 얼마나 많은데 내 가슴을 파고드는 수많은 행복감 중에서 가장 으뜸이 맹물 맛이라니 .... 물론 많은 철학서와 고전에서 말하는 평정심 무아 무념무상이 말하는 게 결국은 맹물 맛이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겪어보지 않아서인지 가슴으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이 환희의 연속이라면 좋겠지만 고통과 슬픔이라는 불쑥 방문할 수도 있을 터 그때마다 애가 끓고 아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상황이 어떠한들 마음의 고요를 유지한 채 미소머금으면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게 거울님이 말씀하시는 돈망이라면 느껴보고 싶습니다. 혹시 그걸 느낀 이후에 세상만사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같은 부작용을 나타내지 않겠죠?
집착은 불만족을 낳는다. 촌철처럼 다가온 이 한마디. 저는 요즈음 책을 쓴다며 일은 뒷전입니다. 제가 출입하는 대검찰청에 별일이 없어서 기사도 별로 나오지 않고요. 하지만 후배들의 기사를 보거나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화가 남는다.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취재원 바지가랑이라도 붙잡아서라도 얘기를 들어야지, 다른 언론사 기사나 베끼면서 기자생활하려면 그만 두라고 쏘아 붙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저의 모습을 열정의 다른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역정이 있으니까 후배들을 깬다고요. 하지만 중급과정을 통해 열정과 집착은 분명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돌아보니 저는 다른 언론사와 취재경쟁에서 뒤지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후배들에게 돌렸던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취재경쟁은 선의의 경쟁이지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점도 간과했고요. 제 열정의 지향점은 경쟁에서의 승리 그 이하 그이상도 아니었습니다. 비뚫어진 열정은 집착이 될 수밖에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기존 기성 미성의 비율을 적어보라는 말씀에 40. 50. 10으로 적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룬게 많다는 자기 잘난 척에 50.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구현해 나갈게 10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동사섭 일반과정에서 기성에 감사하라는 말을 자주 듣다보니 기존은 아예 간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존이 전부다 .라는 말씀에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그나마 이해가 되더군요. 개미들은 열심히 먹이를 나르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애들 소꿉장난만도 못한 하잘 것 없는 것으로 보일 테고 무한 우주공간에서 인간은 개미보다도 더 미미한 존재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온전히 제 것으로 하지는 못할 듯합니다. 아직까지도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이미 이룬 것 앞으로 구현해 나갈 것에 대한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제가 ego가 강한 걸까요? 공부가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용맹정진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보겠습니다. 최근에 재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화가 많은 사람입니다. 누군가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무작정 화를 내고는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스타일입니다. 한마디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화를 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부장이 모든 사회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요즘 자기 일에 나태한 부원이 있다. 특히 안형영. 일주일에 기사를 한 번도 안 쓴 적도 잇는 것 같애.‘라며 무안을 주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입처에 기사라 할 만한 일이 없었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사만 안 썼지 후배들에게 많이 알려줬다. 라는 해명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주변에 누가 있든 정색하며 마음속에 있던 이런 생각을 내뱉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습니다. 먼저 속이 부글부글 끓더니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군요. 한참을 그러다 부장이 국장이나 임원한테 한 소리 들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고통들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또 부장이 나를 본보기로 삼아서 근무태도를 바로 잡으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부장에게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요즈음 책을 쓴다고 좀 나태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씩 웃고 나왔습니다. 제가 화를 냈다면 제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부장도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말이죠. 저는 이게 무슨 조화속인가 하고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일반과정에서 배운 나지사명상의 덕택이구나 하고 흐뭇해했습니다. 이번 중급과정을 통해 만큼의 성숙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고 더없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6. 법정
 
이번 수련 오는 길은 설국과 춘국을 넘나들며 설레는 마음으로 봉사 차 왔다가 원경님의 권유로 부담 반 의무 반으로 수련을 받게 되었다. 수련이 한 순배씩 넘어갈 때마다 그 투박하고 천령산 바위같이 무거웁던 원경님이 보들보들 날씬? 게다가 문수보살 보는 듯 미남으로 까지 보인다.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1. 수심의 원리가 간단 명료하게 체득된다.
가. 행복을 해치는 염체는 제거 전환한다.
나. 행복에 꼭 필요한 것(효소와 같은 것)은 시설한다.
이것이 수심이다.
중급반에서는 가.에 역점을 둔다.
다. 행복을 해치는 염체 중 제일 원수는 무엇인가?
‘나’라는 한 생각(치)을 부모로 욕구(탐)이라는 아들이 생기고 탐이라는 부모로 분노(진)이 생 긴다.
그래서 중급반에서는 치탐진을 없애는 작업을 한다.
행복을 해치는 99%는 불만사고에 있으며 불만사고 특효약은 지족이다.
또 돈망도 지족 연장선상에 있으니 지족이 전부다.
여기에서 중급반 과정이 한손에 들어온다.
2. 지족명상
이동네 긍정점에서 신바람이 났다.
종전에는 몸을 좀 평가절하했던 것이 몸에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렇다. 몸이 건강해야 핵심소임인 보살행을 잘 할 것 아닌가?
끈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3. 보살행의 작심
이번 수련에서는 보살행 밖에 할 일이 없고 또 이것이 제일 재미있고 할수록 자아를 자연으 로 환원하는 느낌이 확연하고 또 다음 생에도 보살행을 하리라 다짐을 하니 이미 보살이구 나.
4. 기존:기성:미성=100:0:0으로 명상을 할수록 젖어든다.
그렇지 무한에 비하면 어떤 것도 0이지 하는 생각에 모든 것이 여지없는 지족이구나.
큰 얻음을 얻고 감에 등을 떠밀어 주신 원경님 감사해요.
 
7.나무님
 
‘ 나는 이미 복권에 당첨되었다! ’
복권에 당첨된 6자리 숫자에 표시를 하는 것보다 훨씬 확률의 만남으로 태어난 행운아다. 그것은 이미 하찮은 일이 아니다. ’
 
‘ 요약해 보자.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1억분의 1인 기회.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1백만분의 1의 기회. 그들의 만남은 10억분의 1의 기회. 합하면 10의 23제곱분의 1이다. 같은 말을 또하게 된다. 내 생명은 무엇에 달려 있는가, 내 생명은 무엇에 달려 있었던가! ’
 
내가 태어날 때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거쳐 얼마나 어렵게 선택되어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내가 겨우 나라는 작은 울타리를 쳐놓고 창들고 “너 들어오기만해 봐” 라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왔다. 내가 있음에 세상이 열렸고, 내가 있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있음을 잊은 채, 그 작은 범위만 지키려고 애를 쓰는 나를 바라본다.
정말 많은 것이 모여야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다.
내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공기가 내 속에 있고, 내가 먹은 수많은 소, 돼지, 닭, 많은 과일과 곡식, 그리고 내가 그토록 집착하는 지식들이 내 안에서 쌓이지 않으면 지금의 내가 탄생할 수 없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관계들이 얽혀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김광규 ‘나’ 시처럼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이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님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이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내 속에 담긴 것, 내 속에 담긴 관계들을 살펴보니 하나로 규정되어질 수 있는 나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다. 관계들 만인가?
내가 그토록 욕심 부리는 지식. 내가 아는 지식 중에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나도 없다. 역사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 준 생각을 모으며 살아왔고, 그것에 내 것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을 뿐이다. 만약 그 역사속의 사람들이 ‘남주기 아까운데..’ 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이루어놓은 학문적 업적을 내게 전해 주지 않았다면 난 어떻게 되는가? 그들이 남겨 놓은 것을 거저 주워 모았으면서 ‘내꺼야’ 라는 확인을 해두고 싶었나보다. 아무리 돌아봐도 내 것이라고 말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왜 내 안에서는 계속에서 무언가 내꺼야 라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이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또 하나 그렇다면 내 몸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내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손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이 손의 자유는 450만년 전 어설픈 자세로 두발걷기를 시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내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을 보며 웃음짓지만 그 고릴라처럼 보이는 인류가 인간의 삶에 준 변화는 어마어마하고 놀랍다. 그 덕분에 손이 자유롭게 되었고, 불을 사용하게 되었고, 도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다시 생각해봐야할 필요는 있지만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들어 버렸다. 자기를 방어할 어떤 힘도 지니지 못한 인간에게 자연을 자기 맘대로 바꾸고 변화시키고, 지배하게 한 힘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어설픈 두발걷기다. 참 놀라운 일은 그로인해 변화된 인간의 삶의 모든 시작이 지금 나의 힘으로 담겨 있단다. 그래서 지금의 내 나이는 44살이지만 사실은 450만년 44이다. 그리고 두발이 똑바로 걷기 위해 온 인류가 죽을힘을 다해 성취한 것을 내게 거저 물려준 것임을 생각해보면 감사하며 살아오지 않은 지난 시간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더 많은 돈과 재능이 주어지지 않아서 가끔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으나 인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돈이 아니었다. 네발의 빠르고 편안함을 뒤로한채 어설픈 두발을 선택한, 청각과 후각을 버리면서 시각을 선택해온, 허리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손의 자유를 선택한 용기와 결단이었다. 온전히 인류를 변화시킨 용기와 결단 그리고 두발걷기로 인해 주어진 이 두 손의 힘, 그 힘이 고스란히 내게 전수되었다.
난 그 에너지를 아무 값없이 내 것으로 만들고 감사함조차 잊어 버렸다. 난 하나이지만 내 속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담겨 있다. 450만년 내내 자기 삶을 성실히 살다간 그 많은 분들의 에너지를 가득 받은 채 지금 내가 있다. 이런 깨달음을 얻고도 계속 교만하며 불평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난 동사섭의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났으니 없고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으며
현재의 나는 찰나무상이니 없다.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일물은 응무소주이생기심하는 보살행의 도구일 뿐이다.
 
이 외침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와, 스케일크다’ 라고 생각하며 만난 ‘천하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이제는 온전히 인정한다.
도저히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나, 그러나 동시에 모든 존재가 다 담겨 버린 너무도 큰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소심한 내 모습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자유스럽다. 왜 그렇게 작은 일에 얽매여 살아왔나싶다. 누가 조금만 나에게 뭐라 해도 상처 받고, 내내 생각하고 며칠은 그 일에 신경 쓰며 일상에 집중 못하고 피곤해 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내 천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그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그것들이 결국은 내게 유익하게 사용되어지는 일이 되리라는 생각까지 함께 든다. 거울님이 말씀하신 저 우주에서 지금 나를 바라보라는 그 자세로 불과 며칠 전의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이제는 정말 여유 있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냐?” 하고 웃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아픔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업 때문에 어쩌면 구조 요청을 내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다 그런 그들과 내가 기싸움을 하며 살아오다니. 상처 받을까 두려워서 사실은 용기있게 말하지 못했고, 주장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가진 자답게 여유 있게 사람들을 품어주고, 받아주고, 웃어 줄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그리고 잠깐의 생각변화가 나를 괴롭히던 많은 일들을 이렇게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다니 정말 놀랍다. 그렇다면 거울님이 말씀하신 ‘느낌의 실체 없음’은 맞는 말씀이신 것이다. 이렇게 실체 없는 것에 실체를 내 스스로가 부여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열심히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내가 늘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천하의 주인으로 자처하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먹은 수없이 많은 곡식이 수없이 많은 치킨이, 수없이 많은 과일들이 내게 에너지를 전해 줄때는 그들의 몫까지 잘 살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과연 나는 그들의 바램만큼 내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나에게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게 인간으로의 환생을 포기한 정자와 난자들의 몫까지 내가 살아내야 하는 건 아닌가? 세속적인 기준으로 내가 아무리 별볼일 없다하더라도 나는 나뿐아니라 내게 생명을 양보한 사물들의 몫까지 살아가야 함에 감사한다. 그래서 교만 할 수 없고, 다만 감사함으로 책임감 있게 깨어있는 일물로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다.
 
천하의 주인이요,
보살행의 도구이며 밑거름인 이 일물은...
무한 우주에 있는 유형무형,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해탈과 맑고 밝은 상생기운을 위하여 이 일물의 전 존재, 전 에너지를 기하여 전하오니 무량한 복덕이 향상되소서
이에 안으로 <돈망명상-지족명상-비아명상-나지사명상-죽음명상>등의 주조세 바라밀로 수심을 잘하여 마음 천국이루고 밖으로 보는 눈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하며, 잘 교류하는 등 화합을 잘하여 관계천국이루며, 나아가, 핵심소임, 수명소임, 보시-감사-사과-관용등의 비소임을 잘 작선하여 세상 천국이루리라.
 
이 문장을 내 마음에 받아들임으로 난 감히 세상을 품어줄 수 있는 큰 목표를 가슴에 안아 버렸다.
늘 고민하고 살았다. 어느 순간에는 삶이 보람차다고 느껴지기도 하다가 어느 샌가는 무엇을 향해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동사섭의 중급 과정을 오기 전에도 문득, 왜 이렇게 바쁘게 살지?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었다.
그런데 5요명상의 큰 꿈이 내게 들어오고 나니 마음이 즐거워진다. 5요 명상의 힘은 내 마음에 사소한 것의 힘을 바라보게 하면서도 큰 이상을 부여해 더 이상 나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여기지 못하게 한다. 40이 넘어서면서 어느 순간 ‘꿈, 희망, 바램’의 낱말이 나와 멀어져 버린 듯해, 잘 늙어 갈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마음 다스릴 줄 알고 그 힘으로 모두를 화합하게 하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천국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일은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여유 있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세월의 깊이를 간직한 채 많은 이들을 품어주고,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까? 겨우 내 마음하나 상처받을까봐 뾰족해 져서 주변을 찔러대는 삶과는 정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생각만 해도 설렌다.
감히 이렇게 큰 문장을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내 삶의 곳곳에 새겨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짧은 문장이지만 이 문장을 완성시킨 거울님의 지혜와 깊이까지 내가 가늠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지혜가 다르듯, 이 수련을 통해 받아들인 이 지식은 이제 매일 수행점검표에 동그라미 쳐가며 내가 삶에 적용하며 지혜로 변화시켜야할 내 몫이 남았다. 작심삼일로 지금의 이 결심이 끝난다 하더라도 열심히 도전할 것이다. 작 심 삼일을 삼백 번 하면 그 또한 어마어마한 일이 내게 벌어지게 할 테니까.
그 오랜 시간 묵상해온 그 귀한 지혜를 내게 거저 전해주신 거울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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