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풀꽃네
동사섭에 와서 가장 기뻤던 것은 역시 우리 인간들은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었다. 처음엔 어색해 하던 참가자들이 점차 주제에 몰입되면서 멀뚱거리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며칠 전까지 완전 타인이던 이들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 앞에서 ‘요즘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 혹은 씁쓸함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참가자들은 무언가 잊고 있었던 가슴 속 불꽃이 조그맣게 살아나기 시작하자 눈물 흘리고 고마워하고 행복해 했다.
우리들은 모두 길동무였다. 그 길동무들이 추구하는 어떤 깨달음이라는 것, 선사들의 기행담이며 초인적 수도담은 그런 것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한 나에게 깨달음이란 거룩하고 신성하지만 지고지난하고 거의 불가능하며 무언가 비현실적인 것만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동사섭은 깨달음의 목적이 가슴 속의 좋은 느낌, 행복이란 사실을 확고히 했다. 깨달음은 저 천상의 순수물이 아니라 세상 만인이 잠시도 잊지 않고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아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모두가 ‘구도자’이지만 고타마 싯달타와는 추구하는 행복의 함량과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은 ‘나의 행복’이었고, 고타마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이었다. 그것은 고타마가 숭고한 성인이었다는 의미가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가능한 행복은 오로지 ‘우리의 행복’뿐이기 때문이었다. 이기주의자의 ‘아하!’였다.
그리하여 동사섭에서는 관계 맺기, 역할 잘 하기, 마음 관리 연습을 한다. 지족명상은 우주가 공짜로 제공하는 온갖 것을 이미 넘치게 누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성취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몇 가지로 하여 싸늘하게 식어가는 내 마음을 따스하게 했다. 봄바람의 ‘아하!’였다.
‘나지사’ 명상에선 ‘구나’만으로도 수용태세가 생겨났고, ‘무슨 사정이 있겠지’나 ‘전생의 업이겠지’는 마음의 평화에 믿기지 않는 효과를 냈다. 무엇이든 관점의 전환이 전부라는 것! 동사섭에서 얻은 최고의 ‘아하!’였다. 그렇게 되찾은 행복은 엉망진창, 뒤죽박죽, 혼란 극치의 우리네 일상을 구원하기에 넉넉했다. 그러나 동사섭은 ‘행복하게 삽시다’로 끝나지 않고 행복해 하는 이 ‘나’가 누구인지, 다시 질문을 던진다. 명상 중에도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며 무력감을 느끼게 하던 그 ‘나’라는 것, 그 ‘나’가 없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기가 왜 그다지 어려웠던 걸까. 어리석게도, 어리석게도……. 그 ‘나’로 하여 가지가지 수수가지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그 ‘나’를 악착스레 방어하고 치켜세우고 있었다니 회한의 ‘아하!’였다. 그 골백만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나’가 실체였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사라졌을 것이었다. 나뭇잎 한 잎에 대해서도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관점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진짜라는 왕관을 쓴단 말인가, 그 왕관을 누가 씌운단 말인가. 무유정법, 즉비, 즉비…. 아하의 아하였다. (이 ‘아하’는 앞으로도 몇 번 더 ‘아하!’의 세례를 받아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그 허깨비는 우리의 세계에 숱한 오염 물질을 던져두었다. 그 오염들은 어떻게 해야 무찔러질까. 스님은 유리컵에 깨끗한 물을 넘치게 부으셨다. 그 투명하고 청정한 아름다움은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기 전, 하느님 보시기에 좋으셨다는 우리들의 세계, 수많은 선지식과 조사들이 보았던 그 ‘자성’, 그리고 갓 태어난 내 영혼의 모습이었다. 순결한 ‘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끌어 모은 온갖 검불들로 시커멓게 변해가는 청정수…. 아픔의 ‘아하!’였다. 그러나 컵 속의 물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허깨비가 뿌려놓은 오염물질은 이 무한 우주 속에서 제로에 가깝다는 것. ‘나’는 그만큼 하찮고 우주는 그만큼 광대한데 두 눈 뜨고도 그걸 왜 못 보았을까. 맑은 물이 부어지면 그것은 화롯불 위의 눈발처럼 사라졌다. 우리가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뒷간의 똥덩이는 1/∞이었다. 산수바보의 ‘아하!’였다.
이미 이 미미한 ‘나’가 저질러 놓아 시커멓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컵 속의 물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퍼내려고 악을 쓰다니 예전의 ‘나’는 날카롭기만 하고 주위를 긴장시키고 스스로 불행할 밖에 없었다. 신경증 환자의 ‘아하!’였다. 무엇이 고통이고 무엇이 절망인가. 동사섭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 행복으로 평화로워진 눈으로 허깨비를 허깨비로 보게 하고 허깨비가 남긴 오염을 정화시킨다.
동사섭에서 가장 강렬한 전율은 바로 용타큰스님이었다. 당신께서 오랜 세월 피와 살을 바쳐 더듬어 온 사색과 수행으로 깨달아진 것들을 수련생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큰스님은 눈물을 흘리시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고 자기 고백을 하시며 마룻바닥을 기는 제스처를 해보이시고 노래를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이 깨우쳐준 행복에 젖어들기 십상인 수련생들이 그냥 재미있게 사는 일로 만족하지 않고 마지막 한 걸음을 더 내딛게 하는 (그 행복은 죽음이라는 산 것들의 운명 앞에서 다시금 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강력한 동기를 심어 주시려고 당신의 개인사를 털어놓으신다. 그리곤 돌쟁이에게 걸음마 떼기를 가르치는 어버이처럼 수행점검표 아이템 하나하나를 몇 번이고 조곤조곤 짚어 주신다.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영양 풍부한 막대사탕 아이템들. 큰스님께서는 그렇게 하여 눈뜬 이들로 하여금 우리의 세계를 맑히는 운동을 하게 하시려는 게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신 가슴에서 솟아나는 자비심이 아니고는 어찌 가능할꼬. 큰스님의 자비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 가르침을 똑바로 경청하고 제대로 이해해야 하련만….
동사섭 마지막 부분에 언뜻 엿보게 한 ‘돈망’이라는 것, 그냥 이대로가 그냥 좋다는 그것을 또 어떻게 맛볼 수 있을까? 이 둔재는 갈 길이 멀다. 5박6일의 강행군과 용타스님의 폭발하는 불꽃은 나를 탈진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사지육신에서 기운이 모두 빠져 나가 부들거리기까지 하는데 가슴에선 무언가가 뜨겁게 쿵쾅댄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느낌일까. 사랑에 빠져 그대 앞에선 밥도 먹지 못하고 그대 모습 바로 올려다보기도 힘들어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그냥 기진해 버리던 그때의 느낌이 이러했던가. 밤새 원고를 쓰고 차가운 새벽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었을 때의 느낌이 이러했을까. 나이 들어가면서 평온하지만 어딘가 차갑게 식어가던 내 가슴 속에 불꽃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저지를 수 있는 청춘기를 회복하고 점점 아기가 되어 가는 듯도 했다. 아,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깍두기공책에 나비, 바둑이, 개나리 따위 글씨를 또박또박 써보는 꼬맹이가 되어 수행점검표를 채워 갈 수 있다면….
허락된다면 용타큰스님께 이 시를 드리고 싶습니다.
스승님, 저의 스승님,
제 영혼이
저 캄캄한 우주 속
먼지 알갱이였을 때부터
부르고 싶었던
스승님
저의 스승님
이 갈증
언제부터인가
싸늘한 고체로 굳어져 가던
저의 갈증에
자비스런 불꽃이 되어 주신
저의 스승님
저를 태우소서.
온전히 남김없이 태우고
흔적 없이 태워서
태양처럼 이글대고
이슬처럼 투명한
한 알의 구슬이 되게 하소서.
모든 이의 가슴에
사랑을 부르는
빛의 파동이 되게 하소서.
2. 충서
우주만물이 유한한데 나의 세상을 영원히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세상이 유한하며 행복한데 나의 세상이 아닌 딴 행복한 세상들에 나의 세상이 간섭을 한대서야 되겠는가? 바람을 일으켜도, 연기를 피워도, 흔들어도, 소리를 질러도 그 어떠한 조그만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되겠지. 양덕(+)이라면 모를까, 음덕(-)은 더더욱 안 되겠지. 이미 나의 세상을 유지해 오면서 저질러진 (-)덕은 계속해서 생각나는 대로 용서를 빌고 사죄할 것이며, 이미 없어진 세상의 것들에까지. 그렇게 하겠다. 나의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모든 것을 펼쳐 보여 주는 것이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부풀릴 것도 없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펼쳐 가겠다.(나의 세상만이라도) 자식들의 세상은 자식들의 세상으로 인정했지 않은가. 마누라의 세상은 마누라의 세상으로 인정했듯 계속 철저히 인정하겠다. 공연히 양덕(+)을 베푼다는 것이 오히려 음덕(-)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용서를 빌겠다. 하지만 칭찬, 격려, 배려, 용서, 사랑 등은 (-)로 작용 않겠지.
앞으로 나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본의 아니게 남의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즉시 속죄하고 모르고 저지른 잘못은 매일 잠들기 전에 속죄하겠다. 미약한 힘이지만 힘닿는 곳까지 행복한 세상을 위해 맑은 물을 부어가겠다. 나의 세상에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며 남의 세상도 더럽히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신선한 파도가 일게 하겠다.
두 주먹 불끈 쥐고 70년을 달려 봤어도 세상은 제 갈 길로 갔고, 배 터지게 70년을 먹어 봤어도 제 배만큼 부르고, 목이 터져라 70년을 소리쳐 봐도 세상은 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영원히 같이 살자고 그렇게 애원을 했어도 사랑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전부 제 갈 길로 갔고. 그렇게 긁어모으고 그렇게 주머니 끈을 조였어도, 돈은 제 갈 길로 갔으니 예전엔 보이지 않던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저 많은 행복들을 한 개 한 개씩 주어서 감상하며 즐기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나 주어야겠다.
동사섭에서 일 주일을 지내며
사띠
새로이 살아난 것은 ‘느낌, 느낌들!’이다. 난 그 동안 정말로 열심히 ‘나무 심기’만 했을 뿐 내 정원에 피어나는 꽃들과 새싹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사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촛대만 열심히 깎고 다듬었지 촛불을 켜는데 인색했고, 타인의 촛불이 비춰 주는 밝음에 둔감했다.
이제 돌아가면 우선 내 소중한 내 soul mate에게 정성스레 3배를 올리고 ‘그대가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의 천사’인지 고백하겠다. 새로이 정리할 기회가 된 동사섭의 ‘행복론’을 더 깊게 성찰하며 지족의 감사를 실천하고, 구현의 힘이 됨을 매일매일 실감하겠다. 그리고 이 실천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눌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겠다.
무엇보다 일일 수행점검표를 활용하여 매일매일 5요명상, 돈망명상, 지족명상,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작선과 운동을 반복 실천하면 동사섭의 행복을 깊이깊이 체험하고 널리널리 나눌 수 있겠단 확신이 든다.
지금, 그러나 무척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내 혼 깊숙이, 재 존재 전체가 흔들림에 당황스럽고 불안하다.
비아명상과 죽음명상이 나의 혼을 흔들기 시작한다.
행복-나-동사섭-역할(나의)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모르겠다. 어떤 의미로, 모습으로 만들어질 것인지.
그냥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벼이 여기지 않고 혼란스러워하는 내가 당황스러운 것이 이상할 따름이다. 아무튼 지금 얻었단 확신이 드는 것은 “느낌을 알아채고 나의 느낌과 타인들의 살아 있는 느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확실한 “아하!”로 행복임을 알겠다.
감사합니다. 동사섭과 도반 여러분!
3. 해서
자유의지로 동사섭에 온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와서 유익한 것을 배울 수 있어서 기쁘다.
기억에 남고 기억해야 할 것이 많지만 그 중 몇 개를 써 보면, 첫 번째로 나지사명상이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구나,겠지, 감사”를 함으로써 이 일물(나)의 성냄을 잠 재워 더 큰 싸움이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할 경우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배운 지 오래 되지 않아 습관적으로 명상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 쭉 실천하여 체득시켜 바로 나지사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두 번째로 화합의 방법론 중 하나인 교류에서 받아주기 부분이다. 예전에 친구 두 명이 서로 다툰 후 한 친구가 나에게 와서 자신과 싸웠던 친구 욕을 한 적이 있다. 이 일물(나)은 경청 후 그 ㅊ친구에게 다른 친구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며 조언해 줌으로써 오히려 그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적이 있었다. 악성 받기 중 하나인 충고를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잘 경청하고 공감(이해)해 줄 것이다. 또한 할 수만 있다면 +∂도 해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칭찬해 주기이다. 1g의 칭찬이 상대방에게는 1T의 격려가 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아하×∞가 되었다.특히 이 말씀은 이 일물(나)의 꿈(교사)에 매우 도움 되어서 감사하다.
앞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 동기를 생각하고, 만약 없다면 만들고, 복습의 중요성을 명심하며 살고, 마음공부뿐만 아니라 학문적 공부에도 수련 3박자(허심, 경청, 주제 몰입)를 지킬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어 감사하다. 한 편으로는 아직 상을 다 버리지 못했고 동사섭의 행복론을 100% 익히지 못해 슬프고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동사섭 N수생이 되어 복습할 것이다.
4. 루돌이
동사섭, 아버지에게서 막연하게나마 들은 기억만 간직한 채 나는 이곳으로 떠밀려 왔다. 약 1주일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저 그대로일 뿐인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원효스님이 유학을 가는 도중 겪으신 해골 물 마신 사연은 어릴 적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 동안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동사섭을 통해 그 의미를 몸에 깊이 새긴 기분이다. 순간 그 동안 내가 겪었던 기분 좋고 나빴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또한 미세정서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석양 지는 모습, 매미 울음소리 하나하나에도 행복을 느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무덤덤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나에게 큰 실망감이 들었다.
사실 동사섭에 오기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그런 아버지 말씀을 나는 이행하지 않았다. 동사섭을 통해 내가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를 깨닫게 되어서 정말 고맙다는 기분이 들었다. 용타스님께서 사색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셨는데, 그 사색의 토대가 바로 독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생각 없는 인간으로 살아왔는가 하는 후회감과 죄책감이 들었다.
동사섭 첫날부터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점은 소규모든 대규모든, 어떻게든 자기 감정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숫기가 없었던 나에게 발표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괴로움도 잠시였다. 한두 번 발표를 하고 나니, 그 후로는 신기하게도 더 편히 말을 할 수가 있었다. 그 기분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순간, ‘저질러라’라는 그 말이 떠올랐다. 지지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바에야 속 편히 저지르고 보는 것이다. 앞으로 나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느낌을 생각하고 표현한 것 같다. 나에 대한 칭찬을 여러 가지 적다 보니 ‘내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고, 죽음 명상을 해 보았을 때, ‘내가 이 세상에 집착하는 것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슬펐다. 그리고 나지사 명상을 하고 나니, ‘세상일에 대해 내가 화를 낼 필요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궁극적 가치인 행복을 추구하는 동사섭, 동사섭은 그 동안 내가 놓치고 살아왔던 점을 절실히 깨우쳐 주었다. 이를 통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듯이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약발이 수개월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느껴질 때마다 여기서 공부했던 노트를 펼쳐 보며 이 초심이 평생 나와 함께 했으면 한다.
5. 큼빔
먼저 이 좋은 곳으로 왜 절 보내주셨는지 사장님의 깊은 뜻을 알았고, 그 점에 감사드립니다!
천하의 주인이라고 하는 나한 존재가 이 세상을 지금까지 목숨 부지하고 살긴 살아왔는데 내 자신이 과연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지금 현재 행복한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불행한 면과 부정적인 면을 더 생각하고 무엇이든 나 혼자서 남을 경계하며 아등바등 가치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관심 받기만 바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그것을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하며 남을 대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고충도 남의 아픔도 함께 공유하며 관심 가져줘야 한다는 걸 가슴 깊이 느꼈고, 내 장점은 남이 알아주기 바라면서 정작 상대방은 단점부터 봐 버리는 부정한 삶을 살아왔다는 게 후회스럽습니다.
수업을 하면서 (행동명상) 남을 의식해 지금까지 크게 웃어 보지도, 울어 보지도 못한, 마음에 응어리진 모든 것들을 끄집어내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 속이 후련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참 좋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이후 순간부터라도 물 흐르듯이 보이는 것 그대로 자유롭게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 있다는 존재 가치만으로도 감사하며 하루하루 보시하고 작선 잘 하며 안일한 머리로의 생각만으로가 아닌 가슴 속 깊이 떨림을 즐기며 살아가겠습니다.
자필로 써 주신 좋은 말 감사드립니다.
6. 좋은 생각
12년 만에 다시 동사섭에 돌아왔다.
12년 전의 5박6일 동안 내내 힘들었던 기억이 잇다. 그때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지괴감이 나를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이번 동사섭에 참여하면서 모든 과정에 몰입하며 즐겁게 참여하고자 노력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첫날, 아직도 스스로 정한 원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기쁨이 다가왔다. 동사섭에 들어오자마자 마음공부꺼리가 발견되다니….
둘째 날, 미세 정서를 발견하는 공부를 하며, 잊고 살던 것들을 다시 되새기는 것이 참 그윽한 맛이 있었다. 이날부터 한 반에 모인 분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고 목소리가 친근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후, 교류4덕과 행동명상을 하면서 정말 내 자신이 예전과 달리 많은 성장을 했음을 발견해서 기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나는 매우 존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게 되어 매우 행복했다.
죽음 명상을 통해, 어머님이 마음에 들어왔다. 처자식이나 아버지도 장애가 되지 않는데 왜 어머님이 마음에 남았을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알고, 내 죽음도 당신이 겪어야 할 업보일 수 있음을 알지만, 차마 내 주검에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단순한 사랑에 비해 내 사랑은 너무 타산적이었나 보다.
이어 맑은 물 명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 왔다. 깊은 떨림과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아픔에 대해 나누고 축복해 주는 것뿐임을 생각했다.
12년 전이나 지금의 동사섭에서도 나는 역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느끼고 공명한다. 오히려 눈물에 집착하지 않고 내 마음 속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삶의 번뇌도 화도, 자기에 대한 질책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이제 돌아가면, 어머니를 찾아뵙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겠다.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발을 씻어 주고, 그 동안의 무심함을 사과하겠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원리에 대한 공부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규칙적인 명상 시간을 확보하겠으며, 생활 명상 항목을 세워 매일매일 실천하겠다.
이번 동사섭에 함께 해 주신 분들에게 깊은 사랑을 느낀다. 이런 인연이 더욱 좋은 결과로 연결되기를 기원한다.
7. 보댕
아무 기대 없이 온 동사섭이었다. 4일간의 수련이 끝난 지금 소감문을 쓰는데 가슴이 살짝 떨린다. 마음이라는 것에 이렇게나 집중해서 관심을 쏟은 데 대한 작은 울림인 것 같아 반갑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느낌을 촛대 불꽃 형식으로 표현해 보려고 하고, 경청하기에 진땀 흘리며 좌절도 맛보고 또 지족의 행복감과 긍지감에 푹 빠져 보기도 하며, 나 자신의 미세 감정 그리고 다른 이들의 느낌에 대해서 없던 관심이 자라난 듯하다. 큰스님께서 화합의 전제 조건인
관심이 무엇인지, 관심을 받으며 알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것이 오가는 순간들은 수련회 도중 스치듯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순간들을 지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스님께서 말씀하신 수많은 덕담, 깨우치는 말, 세상의 원리, 그리고 행복을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것들은 이미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있었고, 몸이 기억하고 있지만, 생각 때문에 도무지 발현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들이었다. 교류4덕을 깨치며 내 생활 속에서 행한 것들이 보시, 감사, 사과, 관용에 다 해당되는 것을 생각해 보며 다시 ‘아하!’하는 정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실로 깨달음은 시간성이 없구나.
머리마음을 가슴마음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강의 말씀들은 듣고 나서 했던 실습 시간은 ‘나’와 ‘나’를 버리고 마음과 마음으로 만났던 시간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상대방의 말을 잘 공감하고 경청할수록 그 마음에 공감하게 되고, ‘나’를 중심으로 하던 생각이 바뀌어져 갔다.
가장 큰 아하점은 가슴으로 울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온몸으로 웃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한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내 자아를 꺼내고, 보듬어 주고, 또 용서하고 사과하고 감사하며 결국에는 ‘내 자신’이 없어진다. 솔직히 아직 나를 부정하고 ‘비아(非我)’하는 것의 의미를 몸으로 개달았다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 수련장에서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칠 것들에 조금은 눈길에 보내고, 시선을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4박5일간 내 시선을 붙잡아 주시고 머물게 해 주신 기회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도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 자신에 대한 칭찬을 하고 또 칭찬을 받으며 한없이 오만하고 또 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한 때의 맑은 물이었던 내 모습이 그리워진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은 편으로서 생애의 의지와 희망이 다시금 마음속에 생물처럼 고인다.
누가 그랬던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에 나는 작은 우물 하나를 발견했고, 이제 막 행복이라는 마중물을 들 준비를 하고 있다.
견고해지고, 동시에 또 한없이 비워져서 가벼워지며, 내 안의 우물을 길어 맑은 물을 나눌 수 있는 그 느낌을 잊지 말아야겠다.
8. 우리
행복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구나. 보고, 듣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 같아 정말 기뻤다. 사색하고 독서하고 메모하는 사소한 것들이 동기 부여와 함께 마음공부의 큰길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했다.
5요 천하에 주인인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안으로 수심 잘하여 마음 천국 이루고/ 밖으로 화합 잘하여 관계 천국 이루고/ 작선을 잘하여 세상 천국 이루겠습니다.
동사섭 인생관의 내용을 마지막 날 이해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조금만 더 집중해서 학습을 하였다면 더 많은 것을 건졌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5요의 내용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같아 정말 좋았다. 받아주기 교육에서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정말 싫은 시간이었다. 학습과 배려 등으로 조금은 남 앞에 나설 수 있었고 조금의 자신감이 생겨 기뻤다.
받아주기의 내용 중 ‘5대 악성 받기’ 부분은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내용을 항상 기억할 수 있도록 가훈처럼 만들어서 생활화해야겠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내가 교육을 시켜야겠다.
마음공부의 마중물이 되어 내가 아는 이에게 5요를 심어줘야겠다. 교류4덕 누구나 해야 했던 보편적인 것인데 나는 행동하지 않아 후회스럽다. 이렇게 좋은 사람 사귀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일깨워 주신 동사섭에 감사하고 고맙고 꼭 실천으로 옮겨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싶다.
마음공부 와중에 8자 목 돌리기 운동을 알려 주셨는데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목 디스크가 있어 항상 목이 답답했는데 목 운동 중에서 제일 좋은 것 같다.
사물명상에서 죽어 있는 것이라 생각된 것들이 죽지 않았구나,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주위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고마웠다. 조금은 부담스럽고 수련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사소하게 생각한 것들이 배움을 통해 중요하게 여겨지는 ‘아하!’되는 순간에 나 자신에 놀랍고 신기하다. 모든 사물에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작은 불꽃같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좀더 큰 불꽃으로 피워 나가는 마음공부를 열심히 실행하여 행복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한 나만의 행복 기준을 다시금 마련하여 항상 행복으로 여겨지도록 생활해야겠다. 나 자신을 항상 사랑하며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여 항상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갈아갈 것이다.
다소 다혈질인 나에게 나지사 명상은 새로운 발명품이어서 기뻤다.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발명품, 나에게는 전기보다 훌륭한 발명품이 나지사 명상이다.
발명품을 잘 활용하여 나의 행복 도우미로 항상 지니고 다녀야겠다. 동사섭을 통하여 마음의 평온, 상대방의 배려, 사랑, 평화, 인간다운 삶, 행복한 삶을 느껴 정말 행복했다.
같이 5박6일을 보내신 구나반, 겠지반, 감사반 동기 여러분과 이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
동사섭 감사합니다.
9. 조이
한 주일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열심히 지냈습니다. 열심히 지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머리는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가슴은 쉼 없이 요동쳤습니다. 팔과 다리도 큰스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땀 흘렸습니다.
잃어버린 보물 주전자를 다시 찾아 기뻤습니다. 쉼 없이 나오는 감사거리들, 동사섭이 주전자가 되어 저에게 맑은 물을 쉼 없이 부어 줍니다. 맑은 물은 내 속의 탁한 기운을 몰아내고 맑게 넘치는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간절한 동기가 절실하다는 것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의 비참함 속에 있는 네 형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준엄하게 경고하셨죠.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벽이 찧으며 공부하겠습니다.
받기 3박자에서 열매님의 기가 막힌 안내로 상대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불꽃을 이해할 수 있어 매우 기뻤습니다.
아야선이 없다면 성자라 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 아프다고 얘기할 능력도 없고 쉽게 아프니 회피하며 살았습니다. 동사섭에서 ‘아야’가 ‘아하’로 바뀌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행복의 명제는 정말 멋진 반전이었습니다. 행복은 욕구가 성취될 대 오는데 우리는 이미 성취되어 있었습니다. 북까지 치시며 생각이라고 외치셨죠. 그 지극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지나온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은 이미 가진 것을 원하던 때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족 명상에서 서로 절을 주고받으며 그분들이 모두 성스런 존재가 되고 나 또한 부처가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제게 초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큰스님, 그리고 도움님 저도 주전자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탁하게 되어와서 동사섭의 맑은 물만 받아야 할까요. 큰스님께서 목숨 걸고 하시는 O표치기에 매진하겠습니다. 백산도인은 못 되어도 백 한 번 째 산이 되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