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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편지

NO1작성일 : 2015-11-06 오후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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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속의 그랜드캐니언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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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다, 나다, 나다, 하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허공과 같은 내 자성에 찍어 놓았겠는가.

 

텅 빈 허공, 본래청정의 그 허공에 그랜드캐니언과 같은 엄청난 계곡이 있어서 보았더니 그것은 “나———”라고 하는 계곡이었다.
그 <나>라고 하는 계곡 하나가 한정 없이 고통과 전쟁을 끌어온다 할 때 과연 그것을 허용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러니 <나>라고 할 때도 그것을 편의상 해라.
“아난아, <내>가 허리가 아프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 부처님은 깨어계신다.

“내가 지금 편의상 <나>라고 하기는 하나 <卽非나>다.
<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없는 법이다.
그걸 알고 쓰고 있다니까.” 그것이 부처님의 태도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애야, 나에게 물 좀 떠와라” 할 때 석가모니처럼 깨어 있는가 아니면 나라는 그랜드캐니언을 더 강화시키면서 하는가?

우리는 우리 속에 그 어마어마한 그랜드캐니언을 찍어 놓았다.
그것을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 즉비(卽非)나 시명(是名)나 (‘나’는 ‘나’가 아니다.
그것의 이름이 ‘나’일 뿐이다)> 이 연습을, 명상적인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그럼 명상적인 연습을 몇 번 정도 해야 할까?

나, 나, 나, 나 하고 말하고 생각했던 횟수가 골백만 번이라면 골백만 번을 <卽非我 是名我> 해야 한다는 논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아주 좋은 논법이 있다.

여러분들이 의식의 알파파를 딱 견지한 상태에서(非相非非相處定과 같은 것이 알파파의 끝이다), ‘나 없음’을 단 한 번 하게 되면 나, 나, 천 번 했던 것이 깨끗하게 씻어진다.
그래서 계정혜(戒定慧)삼학이 강조된 것이다.

깊은 고요함 속에서 지혜를 떠올릴 때 그 지혜가 위력을 발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정혜에서 그토록 정이 요청 된다.

그런데 그 깊은 고요함, 삼매는 현대인들 누구나 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업무 및 일상 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백 번 했을 것 같으면 백 번을 ‘나 없다’라고 꾸준히 명상하면서 나가 아니다. 나가 아니다. 卽非나 卽非나…를 반복하는 것이다.
반복이 천재를 만든다.
어느 정도 반복하고 있으면 묘하게도 내가 없다는 감이 온다.
이 일물은 나 없다, 나 없다, 나 없다, 비아(非我)다 하는 명상을 매일 한다. 그래서 이제는 놀랄 만큼 이게 나야, 하는 그런 감은 없다.

여러분과 나는 생긴 것이 똑같다. 그런데 조금 차이가 있다면 나가 아니다(卽非나)를 내가 관행한 정도만큼 평화로운 마음에 있어 차이일 것이다. 

 
- 거울 용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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