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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작성일 : 2012-02-12 오후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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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 중급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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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4일 동안 개최되었던 중급과정의 소감문을 올립니다.
제38회 중급과정 소감문
고니 강은우
일반과정을 한지 오래 돼서 일반과정을 다시 들으려 하였으나, 기다리지 못하고 겁도 없이 중급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일반과정에서 잘 배우고 실생활에서 그렇게 잘 되었던, 힘든 고비고비마다 제게 힘을 주었던 5요! 지족, 나지사, 죽음명상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거울님 말씀이 귀에 들려오나 마음에 오지 않았습니다. 제 안이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 명상들을 할 때마다 “내가 왜?”라는 생각이 불끈불끈 솟아올랐습니다. 그냥 멍하게 넋을 빼놓고 있었습니다. ○표 칠 때는 Ⅹ표를 쳤습니다.
이튿날 아침강의를 듣던 중,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 왔네. 일반과정을 듣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에 간다고 말씀드려야지 하고 마음먹은 때쯤 거울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안 되는 것은 제치고, 들어서 모르겠어도 들으면 무의식에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집에 가봤자 대안도 없으니 그냥 있자’라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생각을 바꾸기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3일째 오전 거울님과 면담을 하면서 ‘제가 명상이 하나도 안 됩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제가 가진 무거운 주제는 제쳐 놓고 가벼운 것으로 시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5요 명상에서 ‘~한 나는’이라는 부분이 거슬리고 ‘모두의 행복’이라는 말이 거슬렸으나 넘어갔습니다. 지족명상에서는 먼저 나를 객관화하고 위로하며 달래었습니다. 나지사 명상 역시 타인을 대상으로 하려 하니 거부감이 들고 안 되던 것이 나를 대상으로 나를 객관화하여 명상해보니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자신이 밉고 용서하기 힘들 땐 나를 대상으로 먼저 나지사 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간 타인으로 인해 힘들고, 내 자신으로 인해 힘들었을 나를 다독여 주고 나니 죽음명상이 저절로 되었고, 온통 Ⅹ표였던 란이 ○표로 바뀌어 갔습니다.
아직 저는 갈 길이 멉니다. 아직 저 자신을 많이 위로하고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계속 명상을 할 것입니다. 예전에도 동사섭에서 희망을 보았듯이, 이번에도 여기 이 시점을 시작으로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제 안에서 나올 수 있도록 사랑과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고 다독여 주신 용타 큰스님과 도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부모님도 동사섭에서 행복해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화 설혜원
일반과정 재수생인 ‘나’.
동사섭의 위대함을 두 차례나 겪은 터라 중급과정을 꼭 가고 싶었지만 중급과정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선뜻 즐겁게 나서지 못하고 어정쩡거리며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일반과정 때 쓴 노트정리를 펼쳤는데 왕만하게 적혀있는 글자!
“똥을 치워버려라” 그리고 들려오는 거울님의 음성 “똥은 두려움, 짜증, 막연함 그런 모든 것이야요, 똥을 치워야 해요.”
아하! 똥이었구나. 똥.
두려움과 막연함이라는 똥이 뭐 그리 무섭다고 쩔쩔 맸는지…. 가보자!!
똥을 치워버리자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다려진다. 며칠이 지나 동사섭 행복마을 도착!! 즐거웠던 재회시간이 지나고 강의시작.
조바라밀. 느낌. 주바라밀. 알 듯 모를 듯 알겠는 것은 깊게 새기고 모르는 것은 과감하게 제칠 때 쯤 거울님의 한마디.
“눈을 감고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하셔서 생각하는 동시에 행복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띠어진다. 가슴이 벅차다. 그 순간 거울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염체일 뿐이라고 생각해보라고. 그러니 미소가 사라지고 가슴은 텅 빈 느낌으로 가득 찼다. 허전했다. 아까는 분명 행복감으로 가득 찼었는데….
들려오는 거울님의 질문. 행복한 상상.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을 때 VS 염체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느냔 거울님의 질문에 당연히 기쁜 게 좋고 가슴이 벅찬 것이 좋지 ᄒᆞ고 생각하며 당당히 손을 들었는데 어머나! 세상에! 염체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고요하고 담담한 쪽이 좋다는 거울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멍~ 해졌다.
왜? 왜? 왜? 왜 그게 더 좋을까. 계속 생각하다가 룸메이트 풀꽃네님께 자기 전에 여쭤보니 딱 한마디에 마음이 꽂혔다. 행복하면 떨어지는 시점이 있다는 말씀. 그러면서 조금씩 그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마음에 담지 않은 나를 한 발짝 떨어져 고요하게 바라보는 상태. 올라가지도 않았으니 내려갈 곳도 없는 제로선상. 그래, 아하! 이것이 ++상태이구나. 이 ++상태로 마음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열매님의 ‘아무것도 안하기~’가 ++마음 만들기의 시작이었을까 생각하며 있는데 시작되는 명상. 돈망, 지족, 비아명상. 우와~ 명상도 종류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하! 돈망명상이다. 마음을 ++로 만드는 명상. 그리곤 아무것도 마음에 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물밀 듯 들어오는 잡생각. 그리고 자책감.
지족명상과 5요. 나지사명상은 뭔가 나름의 틀이 있어서 나름대로 잘 되었는데 돈망명상, 비아명상, 죽음명상은 도저히 알 수 없고 어려워 잡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비아명상은 내가 여기 있는데 내가 왜 없어? 내가 없다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너무 힘들었고, 죽음명상은 해본 게 많이 없어 죽는 게 싫다는 생각만 맴돌았다.
하루가 지나고 꾀가 생겨 명상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를 지나고 있었는데 세계평화님의 천천히 걷는 걸음에 사로잡혀 무엇을 하시냐고 여쭈어보니 행동명상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세계평화님을 따라서 걸음에만 신경을 쓰며 한 발짝씩 걸으니 잡생각이 없어지고 그저 걸음에만 집중하는 내가 보였다. 아하! 이게 돈망이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이렇게 돈망명상을 시작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비아명상과 죽음명상이 궁금해지고 어서 그 명상의 시작점을 찾고 싶었다.
서둘러 명상하는 5요실로 들어와서 죽음명상과 비아명상을 해보았다. 거울님께서 “죽기 힘들면 죽어! 죽고 나서 생각해!” 그래 죽자. 그냥 죽었다. 죽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죽기 싫은 이유가 뭐였더라.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에 조금씩 답을 내려 보았다. 그래 이건 괜찮아, 이래서 죽어도 되는 거야. 죽기 싫은 이유를 하나하나 없애다 보니 죽기 싫은 이유가 많이 줄었다. 아직은 죽어도 되는 단계는 아니다. 죽기 싫은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태는 되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조금씩 이유를 없애면서 밝음님이 전수해주신 특별비법을 생각하며 명상을 하다보면 죽음명상을 완벽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신난다! 즐겁다.
아차차, 염체일 뿐, 고요하자. 담담하자. 담담한 채로 비아명상을 생각한다. 어렵다. 나는 여기 있다. 하지만 그저 반복부터 해보기로 한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정란미채다.” 어서 비아명상의 아하점을 찾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난 돈망도, 비아도, 죽음도 잘 모른다.
중급과정은 생각만큼 어려웠고, 생각보다 알아들을 만했다.
비록 가뭄에 콩 나듯 아하점을 발견했지만,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동사섭에서 느낀 모든 것이 미래에 아하점이 될 것이라고. 잡생각이 들어 자꾸 자괴감이 든다고 말하는 제게 과외선생님 풀꽃네님께선 방안에 먼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 햇빛이 방안에 들어와 방안을 비추어주니 비로소 먼지를 볼 수 있는데, 먼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다. 마음에, 머리에 먼지가 많다는 것을 나의 햇빛 거울님께서 비추어 주셨으니, 내 먼지를 쳐다보고 관찰하며 차차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마음을 ++상태로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명상을 꾸준히 하며 마음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하며 제 끝없는 궁금증을 친절히 답해주신 햇빛 거울오빠, 그리고 친할아버지같은 만물박사 현공님, 비법도 가르쳐주시고 밝게 웃어주시는 밝음님, 피부미인 연화님, 돈망스승 세계평화님, 그리고 제 개인과외 선생님 풀꽃네님 너무 감사합니다.
저의 인생선배님들 모든 말들이 주옥같았던 38기 중급과정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행복마을 동사섭이라는 공간이 있어 감사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저는, 아니 아니, 이 정란미채는 너~무 행복한 일물입니다.
감사합니다.
수냐 김연희
이미 幸福 解脫에 넘쳐있다.
그냥 있는다. 일체를 방하하고 그냥 있을 때 성성적적하게 깨어있는 의식.
휴식감. 평온함. 무한히 열린 의식. 본래청정한 자성이 있다는 깨달음이 한 치의 불행감도 허용할 수 없는 안전한 안심처임을 확인하며 기쁘다.
我空法空이라는 깨달음. 세상은 시비를 초월한 something. 물자체인데 우리의 의식공간에 찍어 놓은 염체를 두고 분별, 시비, 집착할 일 없지 않은가?
일체의 갈망을 쉬고 평상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논지와 체험이 더욱 확연해져서 기쁘다.
한 생각 일으켜 세상을 둘러보면 무한지족. 감사이다. 이미 있고 이미 이룬 것을 낱낱이 써보면서 더욱 더 확연하게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을 깨달아 기쁘다.
이미 넘치는 사랑과 축복과 풍요로움 속에 있으니 불만족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기존 기성 확인 작업이 중요함을 거듭 자격하여 기쁘다.
慈悲의 人品
人間觀 강의를 들으면서 자비인품 모형이 업그레이드되어 기쁘고 설렌다. 모든 존재에 대한 무연자비. 평등한 자비심을 지향해 왔는데 구체화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간관의 정립을 바로하자는 것이다. 사람을 보면 안아지는가? 내치는가? 아직도 내치는 사람들이 있다. “존경할 만한 사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안기는 쉽다. 히틀러 같은 사람, 악마 노릇을 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연민으로 안아야 한다. 악마 역할을 하는 사람의 아픔의 역사는 온 우주가 만들었다. 주변인과를 살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고개를 숙이라”는 강의를 듣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오열이 일어났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살인자를 구제해 준 부처님 등 성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진정 모든 존재를 지극한 찬탄과 존중, 연민의 마음으로 안으리!
절을 하면서 이대로 존귀하고 성스러운 존재임이 더욱 와 닿아서 따뜻한 자비의 기운이 넘쳤다. 사람에 대한 지족은 지족뿐만 아니라 경계에 걸리지 않는 기초라는 자각이 일어나 기쁘다.
느낌에 눈뜨기. 느낌 연습.
삶의 목적은 좋은 느낌이요, 인지가 수단이라면 목적은 느낌이다. 느낌연습을 통해 인지과정에 상응하는 느낌 차이 연습이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는 +느낌이요, 좋아하는 사람을 의식공간에서 치웠을 때는 ++느낌. 고요, 담백한 느낌이다. +느낌보다 그것을 지웠을 때 더욱 평온하다는 것에 대한 논지적 이해와 체험은 지고한 해탈을 지향하게 하고 가능하게 한다.
의식공간에 무엇인가 세워 놓으면 맑은 의식에 상처요, 쓰레기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放下! 放下! 끝없는 放下! 放下에 따르는 툭 트인 해탈감, 자유감이 좋다.
煩惱構造와 修心體系
그냥 탐진치를 놓아야한다. ‘놓고 싶다’가 아니라 번뇌형성과정을 명확하게 이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번뇌구조와 수심체계 이론이 참으로 머리를 시원하게 한다.
허공 같은 마음에 있다(실체사고) - 좋다 싫다(가치사고) - 욕구 – 분노 – 불만사고의 치탐진 형성을 이해. 각 번뇌를 척결할 수 있는 안내가 감사하다.
至高한 人品
동기의 강화. 지고한 인품지향 논의를 통해 해탈. 자비. 지혜. 자재의 깨달음의 인품과 다양한 통합적 인품을 생각하고, 나누며, 풍부하고 안정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봄이 즐겁고 좋았다.
초월도 돈망도 지족 바탕 위에서 하라
불만족 상태는 행복이 아니다. 고로 지족은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자각이 깊어져서 기쁘다. 초월은 지향할 목표이지 집착이 되면 고통이다.
眞理와 方便
“바람직한 염체는 설정하되 진리시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쓰고 제쳐두며, 염체는 정화하되 번뇌 즉 보리를 유념하라”는 말씀을 듣고 진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음이 기쁘고 감사하다. 동사섭 도구도 방편이다. 사용하되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논지. 자유감이 좋다.
번뇌수용 – 번뇌空 - 해탈이 좋다.
명상의 함정 하나는 매너리즘이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초심으로 수행하리라!
我空法空 → 거듭하는 공덕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무아감이 느껴졌던 것에 비해 지금은 아공법공 空자만 떠올려도 一切放下. 평화감 무한감을 누리게 되어 감사하다.
특히 연기고공은 자아에 대한 실체감이 사라질 뿐 아니라 동체대비심을 느낄 수 있는 해탈 – 자비 특효약이다. 감사하다. 이미 한 몸이요, 무한한 사랑 속에 있음. 무한 축복 속에 있으니 외로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음이다. 존재자체가 사랑이다.
나지사 명상
그냥 그것일 뿐이구나.
나의 행동도 상대방의 행동도 객관화가 쉬워졌다.
멀리서 보면 공이요(遠視故空),
천년만년 수만 년 뒤에 보면 공이요(永時故空),
염체일 뿐이요(念體故空)
구나의 옵션들이 정말로 좋다.
최근에 느꼈던 부정정서 몇 건을 해결하여 기분이 좋고, 참회가 되고 사과를 할 수 있어 기쁘다.
修心명상상책 ○표치기
5요의 통합적 인품과 청정한 자성으로 살아가는 돈망과 치탐진의 정화 – 태양을 노래하며 구름장 치우며 – 보살도의 서원과 자비의 인품을 한 세트에 넣어서 거듭 거듭 수행해감이 참 좋다.
동사섭 문화운동의 발전, 수행표 ○표치기 운동의 활성화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눈물이 흐른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후원에서 밥해주신 성불화 보살님 감사합니다.
함께 수련한 스승이 되어주신 모든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스님들 겸허한 자세로 공부하시는 모습에 존경의 합장 올립니다.
수냐 김연희 올림.
여유만땅 조영심
즐거움과 웃음의 일반과정은 이미 지나간 것이니 없고,
돈망의 고급과정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고,
지족 충만의 중급과정도 찰나 무상이니 없다.
“그냥 ‘○표 치기’ 있는다”
거울님이 온다. 실체사고가 멈추고, 가치사고가 멈추며, 불만사고가 끝난다.
3대 惡사고가 간다. 욕구가 없고 분노에 걸림이 없다.
행복마을에 상생기운이 가득하고, 애쓰지 않아도 그저 지족 충만이다.
지고한 인품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이 일물도 허공처럼 마음이 쉬고 있는 해탈의 상태가 되고 싶다.
듣는다. 머리로 말고, 가슴이 귀 기울인다.
느낌, 오직 느낌이다.
머리로 들으면 일반과정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머리로 들으면 10분해탈에서, 행복여행에서, 마음알기 다루기 나누기에서 보았던 내용이다.
머리로 들으면 동사섭 웹사이트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느낌으로 들어라! 가슴으로 들어라!
5요―돈망―지족―비아―나지사―죽음
다시 5요―돈망―지족―비아―나지사―죽음…
매번 새롭다. 똑같은 내용이거든 머리로 들은 거다.
새롭다. 1㎜라도.
새롭다. 0.0001g이라도 새롭다.
느낌이 종착역이고 느낌이 전부다.
<지족명상>
세상은 온통 감사뿐이라는 무명에서 벗어남이 감사하다.
감사할 일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하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모래 한 알, 바람 소리, 눈 꽃 송이 모두가 감사.
지족 명상을 하니 나지사도, 죽음명상도 한 큐에 해결된다.
화날 일도 화나게 한 상대방도 오직 감사다. 감사할 일뿐인데 죽음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사뿐하다. 오직 감사구나! 감사하는 마음에 다시 감사!
<비아명상>
몸뚱이에 대한 착이 분노와 슬픔을 만들어 내고, 생각에 대한 착이 고통과 공격을 만들어 낸다.
‘나’라는 떡덩어리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과녁이 되어 화살 상처를 받는다.
‘나’라는 떡덩어리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벽이 되어 분별하여 갈라놓고 고립시킨다.
지수화풍이 ‘나’라고 수상행식이 말한다.
이 일물을 쪼개본다. 정란미채, 수레바퀴 부품 나누듯이 팔, 다리, 가슴, 머리, 눈, 코, 귀, 입.
엑스레이 사진처럼 몸뚱이를 분해해 본다. 분해해본다. 분해해본다. 분해해본다.
분해된 틈새사이로 바람이 분다. 시원하다. 후련하다. 가볍다. 날아갈 것 같다.
자유롭다. 이 일물은 자유다.
이 일물이 자연이다. 자연이 이 일물이다.
이 일물이 우주다. 우주가 이 일물이다.
<나지사 명상>
오래전 분노의 염체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감정염체, 욕구염체, 의지염체, 인상염체, 사실염체… 염체가 점점 커진다.
10%, 50%, 99%가 된다. 괴롭다.
화가 났던 상황들을 원시고공, 영시고공, 억분일공, 염체고공으로 ‘구나’ 해본다.
감사만으로도 부족한 염체들이 있다. 그의 아픔이 나의 부덕이다 라고 말한다.
㊀를 일으킨 상대방을 안아본다. ‘그럴 뿐’이라고 되뇐다.
아하! 상대방이 보낸 ㊀의 메시지는 이 일물이 보낸 메시지였구나.
이 일물을 돌봐 달라고, 이 일물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관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준 것이구나! 결국 감사!
비아를 적용해 보고 해결되는 염체, 지족에서 불가능하던 나지사가 비아에서 풀린다.
지족이 충분하니 죽음명상이 가볍다. 가뿐하다. 이 시간에 하늘로 가도 걸릴 것 없다.
아하! 지족. 나지사. 비아. 죽음명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 있구나. 지족이 나지사와 죽음을 돕고, 비아가 나지사와 죽음을 돕는다. 지족과 비아, 나지사, 죽음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면서도 그 나름의 맛이 있다. 그 맛마저 사라지게 할 대자유. 우주의 돈망 맛은 어떨까?
고금과정의 돈망과정이 설레게 만든다.
활불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Super Ultra Fantastic 활불, 거울님! 감사합니다.
우광 천동욱
至高한 人品을 갖추는 要素를 생각하고 記錄하고 綜合하고 共有하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개념화, 의식화를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반복과정이 삶의 方向性을 결정하고 肯定的 Mind를 형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 든다.
知足명상, 非我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을 한 次元높게 경험하면서 自身의 명상 Style을 찾고 習慣化시키는 수행점검표를 活用하는 방편이 效果的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차례를 반복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애매하거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용타스님과 面談으로 해소시켜주는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사를 드린다.
한낱 교육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삶에 적용되고 活用이 되도록 支撑하는 體系를 갖추어 주려는 노력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의 存在方式에서 六根과 六境이 만나는 지점에서 受(느낌)가 일어나며 좋은 느낌, 나쁜 느낌이 離苦得樂의 원리에 의해 경험으로 축적되고 이것이 pattern化된다는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아하 나의 경험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만들어졌는지 깨닫게 되어 감사하다.
과정을 알게 되면 이를 활용할 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는 내 可能性에 기대가 된다.
幸福論이 한 次元 높게 정리되면서
人生의 3중주. 일이 내 삶의 모두라고 생각하고 달려온 궤적에 한 지혜를 던져주는 기쁨을 느낀다.
그냥 있으니 돈망천국이요
한 생각 일으키니 지족천국이요
일터로 나아가니 구현천국일세
이것이 나인가 自然故空의 방법이 無我 非我를 받아들이고 경험케 하는 논리로 생각된다.
나인가 自然인가의 선택의 결과로 예상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소득이라 본다.
나의 約束
5要동작과 명상은 사람을 만나거나 과제를 수행하거나 새로운 장에 임할 때마다 실시한다.
집중적으로 감사 목록을 만들고 이를 명상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불쾌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나지사 명상으로 정화한다.
깊게 죽음을 명상하고, 知足에서 현재, 현실을 보는 명상으로 생활화한다.
축복기도, 기전향으로 양장력을 키워간다.
매일 팔굽혀펴기 300번, 이미지 트레이닝 스트레칭을 생활화한다.
空 명상 동작을 생활화 하겠다.
풀꽃네 유소림
空은 최고의 자비이다.
거울님의 이 말씀이 두 번째 중급과정의 모든 공부를 꿰뚫었다.
60년을 살아오면서(아니면 수천 생, 수만 생을 살아오면서) 이 일물이 겪었던 모든 문제는 이 세계를 너와 나로 갈라서 인식하면서, 그렇게 갈라진 세계를 ‘진리’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 너무도 자연스런 사실로 여기고 살았음에 기인한 당연한 ‘과’였다.
그렇게 갈라진 세계로 하여 이 한 몸뚱이가 뿜어내는 시비분별만으로도 헷갈리는데, 80억 인간이 저마다 시비를 걸고 있으니 어떻게 이 지구에, 이 세상에 온전한 평화와 사랑과 행복이 가능하겠는가. 그 어떤 정치지도자, 그 어떤 체제, 그 어떤 제도도 용을 쓰고 기를 써도 영원히 해결 불가능해 보이던 문제를 단번에 그 뿌리부터 해결하는 空이라는 프레임은 진정 최고의 자비이다.
뒤 돌아보니 이 일물은 한 마리 벌레였다. 온몸에 ‘나’라는 털을 촘촘히 곧추 세우고 있는 한 마리 쐐기벌레. 그 가엾은 벌레는 검불만도 못한 제 몸뚱이 지키겠노라고 털마다 독을 품고는 이 무한 우주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뚱이가 이슬처럼 빠르게 사라져 감을 한탄하고 절망하고 원통해했다.
무엇이 ‘나’인가. 시간은 현재라 할 것도 없이 한 찰나에 과거로 사라지는데, 그 찰나에 이 고정불변의 ‘나가’가 어찌 존재한다는 것인가. 이 세계는 重重緣起. 모든 것은 모든 것의 존재 근거인데, 그 어디에 똑 떨어진 이 몸뚱이가 있단 말인가. 그렇구나. 없구나. 없구나. 본래 없구나.
“몸뚱이의 경계를 없애보라” 거울님의 말씀에 독 오른 털가죽을 벗어던진다. 버러지가 사라지고, 버러지의 시비분별이 사라지자 세계는 한 덩어리, 그대로 본래청정. 무한에서 구태여 검불만큼 떼어 내(아니 떼어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에 제멋대로 ‘나’라는 딱지를 붙이고 굳이 굳이 유한자로 살면서, 아니 유한자라고 우기면서 삼라만상에 가치를 매기려는 그 수고로움에 지쳐 끝도 없는 고통이다, 고통이다 했던 이 버러지가 그 몸뚱이의 경계를 벗어나 창밖의 나무를 그냥 바라본다.
아름답다. 나무는 ‘나무’라는 메마르고 앙상하고 편협한 틀에서 벗어나 사방팔방의 공간 속으로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퍼져나가며 주변과 스르르 용해되며 무한이 된다.
명주실처럼, 나비날개처럼, 공기처럼 가볍고 가벼워진 이 일물이 천하를 둘러본다. ‘나’가 사라진 자리엔 그냥 아름다운 여여함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일물은 이 세상 모든 존재의 행복해탈과 맑고 밝은 상생기운을 위해 티끌하나 없는 이 존재를 오롯이 바치는 보살행의 도구일 뿐.
그것이 온다. 호흡이 멈추고 피돌이가 멈추며 사회적 역할이 끝난다. ‘이것’이 죽는다. ‘나’가 아니라 ‘이것’이 그냥 사라진다. 흐르던 시냇물이 땅속으로 스르르 사라지듯 그냥 사라진다. 그리고 무한우주에 가득한 상생, 상생. 처절하게 대치하는 너와 내가 아니라 그냥 상생, 오로지 상생. 좋구나, 눈 한번 깜빡여도, 손가락 하나 움직여도, 입술 한번 벙긋해도 그 모든 것이 너와 나를 함께 살리는 상생, 오로지 살리고 살리는 상생이라니, 좋고 좋구나.
그러나 어찌 죽음만 있으랴. 삶도 있는 이 세계에서 몸뚱이 지니고 밥 먹고 사는 이 유위의 세계에서도 ‘나’라 지칭하고 ‘너’라 지칭하며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도 행복해지고 싶나니. 그렇다면 그 방법은 오로지 지족뿐, 감사뿐. ‘나무’라 지칭되는 저것을 그저 맹숭맹숭 멀뚱하게 쳐다보면 저것은 그저 메마르고 무뚝뚝하고 딱딱한 저것이지만, 그 ‘나무’라 지칭되는 것을 감사의 마음으로 안아보면 그이는 즉시 이 가슴에 따스함을 채워주는 사랑하는 그대가 된다. 창문의 커튼도, 손끝의 볼펜도 감사로 안아보면 그 순간 이 가슴이 따스해진다. 이 세상의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는 감사 그 마음 하나로 축복이 되고 천사가 되어 이 일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냥 있는다. ‘나’가 꾸며낸 모든 개념을 버리고 그냥 있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와 법이 본래 없거늘 어째서 이 한 덩어리 무한 우주에 애꿎은 풀딱지를 가지가지 갖가지로 붙여대며 스스로 지어낸 한정 없는 문젯거리에 스스로 걸려 허덕이는다.
모든 개념을 벗겨낸다. 그것이 벗겨진 자리에 본래의 것이 드러난다. 그냥 깨어있음. 깨어 있을 땐 과거도 미래도 없다. 과거도 미래도 없으니 현재인들 있을쏘냐. 그냥 깨어 있는다. 이 본성품의 무궁한 평화. 이 일물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궁무진으로 깨어 있음, 그것뿐이다.
평생을 바쳐 치밀한 프로그램을 만드시고, 그 프로그램으로 이 일물을 자아의 질곡에서 건져주신 거울님. 저의 스승님 고맙습니다.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 고맙습니다.
이 감사함과 기쁨을 본래 부처인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바칩니다.
자은 김은규
1. 이번 중급과정을 하면서 나를 있게 한 것은 우주이며, 나를 키운 것도 우주라는 사실이 뚜렷해졌다. 한 덩어리이므로 어디까지를 일러 나라 할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연기법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나란 욕구의 주체도 법이란 욕구의 객체도 있을 수 없는 공리가 더욱 뚜렷해졌다. 주객이 없는 텅 빔. 텅 빈 느낌. 후련하고 확 트인 시원한 느낌. 그냥 깨어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인 또렷한 무한감이 느껴졌다. 담담한 평화로움과 고요함의 맑은 평온함이 다북찬 생명력에 계속 고개 끄덕여졌다.
2. 지고한 인품에 가깝게 하고자 사유하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매우 의미가 깊었다. 마음공부의 동기부여가 새겨지며,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른 모습의 의견을 내놓아 우리 모두의 지고한 인품으로 모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지고한 인품의 상을 정립해 가는데 이렇게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지고한 인품을 지향해 나간다면 더욱 행복할 것 같다. 하루에 1초씩 한번만이라도 100일 동안 이 지고한 인품을 생각하고 명상한다면 여기에 상당히 가까워졌을 것이라는 말씀에 아하가 되었다. 사유과정을 통해 더욱 선명해짐을 느꼈고, 이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겨 보람 있었다.
3. 중급과정의 주제가 걸리지 않는 마음 ‘해탈’이었다. 걸리지 않는 마음이 되려면 수심(조바라밀)을 통해 마음공부의 반복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탐진치의 삼독심과 불만척결을 위해서 방편을 선택하게 된다. 조바라밀의 반복명상을 통하여 해탈감과 평화로운 느낌이 더욱 확대되었다. 본래 걸림 없는 마음임이 더욱 확연해지는 과정들이 새롭고 신선했다. 깔끔한 의식의 정리가 되어 갈수록 개운함이 확대되어 좋았다.
4. 느낌이 어째서 소중한가? 인생의 과정은 결국 느낌 좋자고 하는 것이다. 동사섭의 핵심 소재는 느낌이다. 느낌이 목적이다. 육근(세상 바라보는 기관)이 육경(대상)을 만나게 되면 모든 감각인지 과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수반된다. 수(느낌)가 좋으면 행복하고 수(느낌)가 좋지 않으면 불행하다. 근의 숙명은 경의 마주침이다. 의와 법 사이에 그 깨달음이 들어 있다. 이 과정에서 절체절명의 중요함이 느낌이다. 이것이 동사섭 중급과정 영역이다. 느낌은 없을 수 없다. 이것이 불교의 우주관이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우주관과 삶의 목적이 더욱 확연해졌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염체, 무유정법의 느낌,그것이 바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는 말씀에 깊이 자각되었다. 그래서, 네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네가 바로 부처이며 우리 모두는 바로 부처일 때 그냥 깨어있는 이 느낌을 놓치면 바로 인생을 놓치는 것임이 확연해지고, 느낌에 꼭 유념해야 함을 다시 깊이 자각하게 되었다.
5. 다양한 느낌 연습을 하는 과정이 매우 재미있었다. 느낌의 차이에 흥미로웠다. 담담한 느낌이 화들짝 느낌보다 좋음이 점점 오게 되어야 한다. 담담한 느낌이 더 높은 수준이라는 말씀에 수긍되며 좋았다. 마음의 상처 없는 텅 빈 쪽을 선택하라는 말씀에 수긍되며 수심해 가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6. 번뇌구조와 수심체계의 과정이 더욱 선명하게 와 닿아 좋았다. 욕구 자체는 탐이 아니라 집착하게 되면 탐이니, 반복 명상을 통해 번뇌구조를 확연히 정립하고 수심체계로 마음을 정화하여 행복론으로 지족 해탈해 나가는 수행 과정이 더욱 확연해져 기뻤고 반복하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새롭게 되었다.
7. 지족명상을 6단계로 해 보면서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이 더욱 선명해지고 내 자신이 있게 되는 모든 원동력은 이미 다 우주적으로 되어 있고 나는 이미 우주로부터 키워졌음이 확실해졌다. 내가 있으려면 우주적인 원동력의 순환의 감사함 속에 이루어지는, 대 지족의 관계임이 선명해졌다. 어느 한 부분을 나라 할 만한 것이 없음도 선명해졌다. 연기일 뿐 공하다. 자연일 뿐 공하다는 사실도 선명해졌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라는 공손한 마음이 되었다. 이렇게 지족명상을 해가는 과정에서 불만사고의 정체는 흐려지고, 자취도 없음을 볼 때 지족명상의 효과가 더욱 강력한 수심 명상 방법임이 확연해졌다.
8. 죽음 명상을 하면서 탐욕에 걸려있는 사슬을 실감나게 직면하여 전환해 가니 후련함과 해탈감이 높아졌다. 명상의 방법대로 또박또박하다 보니 걸림 없는 감에 평화로웠다. 본래 나란 실체 없음이 또렷해졌다. 죽음 명상을 하루에 한 번씩 늘 하라는 말씀이 공감되었다.
9. 마음공부의 기초 신념에서 내가 없는 법인데 내가 있다고 이러고저러고 한다. 그러면 불원간 침하 현상이 일어나 바로 무너진다는 말씀에 아하가 되었다. 내가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인생이 비정상적인 삶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렇게 살아왔던 모습이 회상되며 마음공부 기초 신념이 바르게 정립되어야 함의 중요성을 다시 자각하게 되어 좋았다.
10. 동사섭의 중대 입장 하나는 마인드다. 일체의 일어남은 마음이 만든다. 마음의 투영이다. 마음이 좋아야 좋은 것이 만들어진다. 의식 공간의 염체를 자각 내지 정리에 민첩해야 하며 바람직한 염체라 해도 그 염체를 진리시하지 말고, 방편시해야 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해탈이라는 말씀과 동사섭 법도 방편시하라는 말씀에 아하가 되었고 개운했다.
11. 우주 공간과 물질 공간과 심리 공간이 온통 빔이므로 오직 식일 뿐 경계는 없다는 말씀에 아하가 되었다. 텅 빔의 아이덴티티로 여유를 갖자는 말씀에 더욱 빔이 자각되어 좋았다.
12. 화가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이치를 확연히 자각(인식)하고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해서 수행을 거듭함으로써, 화나고, 욕심내던 습관성을 정화하는 것 이것이 길이라는 중급 언급의 말씀에 아하 되었다. 동사섭의 수심 명상은 바로 욕구의 주체와 객체가 본래 없는 이 이치를 반복 명상하게 하여 모든 바라밀에서 해탈감이 느껴지게 하는 과정이라는 중요성이 다시 자각되어 좋았다.
13. 자투리 시간에 도인된다. 나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 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수행점검표 ○표치기의 반복이다. 기분 좋은 느낌이 행복의 목적일진대 목적을 향해 나의 의식이 전환되지 않는다면 행복은 무의미하리라. 무위법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유위법의 삶의 전환이 자유로워져야 되는데 걸림 없는 삶을 살게 하는 지침서는 바로 나의 의식을 전환시키는 수행점검표○표치기다. 하면 할수록 내 의식권이 정리되고, 자유로우며 범사에 감사함이 가득해져 간다. 무한한 평화감에 행복하다. 수행점검표 ○표치기 반복 수심을 계속하여 해탈감의 행복을 거듭 누려 가리라.
14. 인간관에서 인간을 바라볼 때 긍정적일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 아하 되었다. 안아지는 쪽인가? 내치는 쪽인가? 건조한 쪽인가? 인간은 그지없는 신비의 극치이다. 인간관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계기가 되었고, 사람 지족 명상, 절 명상을 하면서 온전한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부처님들께 절을 올리고 받고 나니, 가득 찬 따뜻함에 행복해졌다.
15. 행동명상을 하면서 다양한 명상의 모습을 보면서 흥미로웠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찬탄의 마음이 들었다. 한 분 한 분 모두의 무아지경의 순간들이 고귀하고 그 자체의 모습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무한 해탈감의 장력에 행복했다.
16. 지족명상. 10대 행복마중물을 나누면서 존중과 찬탄과 축복의 나눔의 장에서 새로운 용기와 힘이 생기고, 풍요로운 지족 명상 수심의 장에서 행복감이 급상승되어 신이 났고 설레었다.
17. 오직 만법은 유식일 뿐 경계란 없다. 염체일 뿐 내가 아니다. 우주의 양파 껍질 분석고공 6단계의 빔의 우주관을 명상하며 개운했다. 생활 속에서 거듭 명상할 때 지고한 행복의 깊이가 깊어 가리라 더욱 믿게 되었다. 최고의 행복 마중물 돈망으로 무한한 빔의 해탈감에 그냥 깨어있기를 반복하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 뿌듯했다.
18. 행복 마을의 모든 분들의 행복한 삶의 모습에서 온화하고 평화로운 행복감을 느꼈고, 온전한 감사함의 깊이가 느껴지는 중급 과정의 매 순간들이 평화롭고 행복했다.
새로미 이영숙
일반 과정에서 개론 과정을 거쳤다면 중급 과정에서는 전공 과정으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인생3박자>는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라는 깨달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충만한 마음으로 행복 사회를 구현하라는 거울님의 참으로 위대한 정리였다.
원래 인간은 허공과 같은 존재이나 6근과 6경이 접촉하여 일으키는 6식에 의하여 모든 물질은 고정불변한 실체가 있다는 ‘실체사고’와 그것에 자동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가치사고’가 형성되어 ‘밀어냄’과 ‘끌어들임’ 두 종류의 욕구가 생기게 된다. 그 욕구는 점점 더 밀착되어 탐심이 그 뿌리가 된다. 탐심은 분노(진심)을 생성시킨다는, 3대 악사고 설명은 중생 구제에 대한 자비심으로 끝없이 노력하신 거울님의 고뇌의 결과물인 것 같아 더욱 소중함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우리는 본격적으로 일체가 툭 터진 허공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기 위하여 거울님과 함께 ‘줄탁’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5요 명상’을 시작으로 고정불변한 실체인 ‘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내’가 원래 없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기 위한 ‘비아 명상’에서 ‘정자와 난자’의 만남부터 현재의 모습까지를 ‘나’라고 할 수 없다는 것과 육신은 오직 자연일 뿐 실제 ‘내’가 아니라는 설명은 정말 명쾌하게 그러하였다. ‘비아 명상’의 결과 ‘실체사고’와 ‘가치사고’는 힘을 잃어 갈 수밖에 없었다. ‘죽음 명상’ ‘나지사 명상’ 또한 일반 과정을 마치고 중급 과정에 오기 전까지 꾸준히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는지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그 힘은 요술 방망이처럼 신기한 효력이 있었다.
‘지족 명상’도 마찬가지로 1g1t 원리 행복은 소유/욕구라는 원리를 통하여 내개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를 생활화 하다 보니 거의 일상으로부터 충만한 상태였고 좀 더 진지하게 세밀하게 명상해 보니 사람이든 물질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안 보이는 것이든 나와 인연된 것은 있는 그대로 감사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중급 과정에서 나를 가장 크게 깨쳐 준 원리는 ‘실체와 우주 공간’ 설명이었다. 99.9999%의 빈 허공에 0.0001%의 물질에 걸려 희로애락을 일삼던 나를 생각하니 부끄러워 어디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고 실감나게 비워졌다.
끝으로 3박4일의 짧지만 꽉 찬 그렇지만 텅 비어있는 일정을 마쳤다. 명상 점검표를 통하여 자신을 매일 매일 순간순간 점검하며 살다 보면 나의 삶은 무한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여 이 일물과 인연되는 일체들과 보듬고 뒹굴며 살 것을 감히 약속드린다.
아! 이제야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일체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시절 인연이 도래한 것 같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수행 점검을 하여 도사가 되어야겠다.
거울님 그리고 함께 하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극히 감사합니다.
연화 김정현
-매너리즘, 게으름, 허공 아이덴티티 그리고 명상 방법론
: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가?
나는 게으름 피우고 있는가?
나는 허공 아이덴티티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1. 지족명상-불만사고는 가라
이 동네 긍정점 등 지족 명상을 실습하기 전 구체적으로 적은 것 하나하나에 상응하는 느낌에 유념하라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감사 내용을 채우기 바빠 온전히 감사하지 못하면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하나하나 적은 것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음미하며 상응하는 느낌에 유념하니 행복해졌습니다. 명상은 감각인지 과정이니 이에 상응하는 느낌이 수반되므로 명상 결과로 만큼 또는 1g의 좋은 느낌을 체험하고 그 느낌에 유념할 때 명상을 꾸준히 반복 관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선명해졌습니다.
2. 비아명상-실체사고·가치사고는 가라
① 자연고공: ‘털 끝 하나 내가 만든 것이 없다’는 말씀에 ‘나다’라는 생각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는 자연고공의 이치가 확연하게 이해되어 기뻤습니다. 앞으로 “자연이니 공하다”를 읊조리며 느낌에 유념할 때 자연고공이 비아 명상의 한 방편으로 내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듭니다.
② 연기고공: ‘내가 있으려면 아버지·어머니가 있어야 하고 조부모님이 있어야 하고 외조부모님이 있어야 하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하고 결국 나는 다른 것 즉 무한우주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일물이므로 딱 떼어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구나. 그래서 나와 너의 경계가 없이 한 몸 즉 동체로구나’가 수긍되면서 막연하게 이해해 오던 연기고공과 동체의 의미가 또렷해져 개운합니다. “연기이므로 공하다.”를 읊조리며 비아 명상을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⓷ 분석고공: 분석고공을 방편으로 할 때 몸은 정란미채 또는 지수화풍이고 마음은 수상행식이라고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몸은 정란미채야. 내 몸은 지수화풍이야. 내 마음은 수상행식이야.”를 읊조리며 명상해 가다 보면 정말 이 일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듯이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체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명상 방편을 다양하고 정밀하게 다듬어 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3. 나지사 명상-분노 잦아지다
구체적인 사안을 떠올려 또박또박 나지사 명상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미흡했던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부분이 해결되어 상대방의 마음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진심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느낌 즉 불꽃에 끌려가지 않고 그 때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유념하니 생각 외로 쉽게 상대방의 입장이 따뜻하게 안아졌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쏟아질 정도로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주를 갖고 나지사 명상을 하되 구체적인 사안을 떠올려 나지사 명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알 것 같습니다.
4. 죽음 명상-욕구 놓이다
실감-직면-전환-해탈감-의미로 죽음 명상에서 유념해야 할 점을 안내받고 죽음 명상을 되도록 실감나게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명상으로 들어가니 죽음 이후 축생으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또는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감이 잡혔습니다. 동시에 죽기 전 마음공부에 매진하지 않고 매너리즘에 빠져 게으름 피우던 상황에 대한 후회가 있었습니다. 죽음은 이러한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고 죽음이 오더라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심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 세계 또한 불가지요 영원한 초월자요 피안의 세계이니 수용하자. 그리고 있고 없음의 차이로 생각해 볼 때 지금까지 마음 공부해 왔으니 감사하고 만큼의 소득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됐다’라고 인식 전환하니 만큼 개운해졌습니다. 이 외에 순간순간 드러나는 욕구를 직면하고 전환하니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직면했던 욕구를 통해 나에게 ‘삶이란 중요한 것이구나!’하는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번 죽음 명상을 통해 그때그때 달라지는 나의 욕구를 발견했고 예전에 한번 전환했던 욕구는 어느 정도 강도가 느슨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죽음명상은 진짜 죽음이 왔다라고 생각하며 실감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하는 인식을 하였습니다.
5. 오요 명상-인생!
‘나의 삶이 이미 오요였다. 뻘소리라도 늘 하라. 대뇌에서 집중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을 파고 들 수 있다’는 말씀에 명상의 결과로 드러나는 느낌에 유념하지 않더라도 그냥 해 나가야 할 이유가 선명해져 들쑥날쑥한 ⊕느낌에 끌려 다니지 않고도 명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명상을 해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그러한 힘을 길러나갈 자신을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매너리즘과 게으름이라는 걸림돌이 스르르 해결되어 주춧돌로 거듭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제 인식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식 전환이 바로 이어져 시원하고 기쁩니다.
6. 허공 아이덴티티-아, 정체관!
외우주도 텅 비어 있고 물질도 텅 비어 있으며 내우주 즉 의식 본바탕도 염체가 아무리 많더라도 무한히 열려있는 텅 빈 공감임이 확연하므로 허공 아이덴티티를 취하는 것은 순리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텅 빈 외우주를 보듬어 안는 내우주의 공간은 염체고공으로 염체를 내려놓으면 더 휑하고 염체를 내려놓지 않더라도 무한우주를 포함하고도 남을 정도로 텅 빔으로 다가오니 내 의식공간에 있던 염체로 향하는 에너지가 쏙 빠지는 듯 홀가분해집니다. 심은 허공과 등하니 텅 빈 허공의 정체를 취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스승님과 도반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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