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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2-03-02 오후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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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고급과정 수련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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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렸던 고급과정의 수련 소감문을 올립니다.
여러분의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28회 고급과정 소감문
세계평화님
 
고급과정 수련은 어떻게 진행될까?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일본에서 출발하며 “말없음”의 공부일꺼야 라고 생각하며 행복마을 동사섭에 도착하니 “묵언”이라는 명찰이 기다리고 있음에 고급과정 수련의 목적이 확연해지며 “묵언”의 수행이 이루어진다면 돈망의 공부가 잘 이루어지리라는 기쁜 마음으로 수련에 임할 수 있었다.
 
1. 그냥 있는다.
아공법공이니 안팎으로 관심 갈 것 없다.
그러하니 그냥 무장무애하게 깨어있는 것이 이 일물의 할 일 전부이다.
이 방법으로 계속 돈망을 체험할 수 있고, 일행삼매로 정진할 수 있어 더욱 기쁘다. 능동성구나, 수동성구나로 이어져 옴나로 의식 전환하며 “아공법공을 전제한 옴나” 바로 “돈망”을 잡고 보니 무한 해탈 행복 의식으로 전환되어가는 이 기쁨, 평화로움, 고요함, 환희감에 시간가는 줄 모르며 즐겁고 좋았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공부를 온전히 채워가는 재미의 무한 기쁨의 연속이었다.
깨우치기는 쉽고, 깨우치는 공부를 가르치기는 어렵다는 거울님 말씀에 공감하며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공부가 행복 마중물로 추가되었다.
 
2. 그냥 깨어있는 것만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행복이라 우리가 집착하는 대상들이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우리 의식 공간에 있는 염체일 뿐이니 공한 것이다. 아공법공이니 욕구할 주체도 객체도 “본래 없다”는 이치를 깨달아 가며 일체는 그냥 존재한다. 그냥 깨어있다. 그냥 숨을 쉰다. 그냥 산다. 이 얼마나 좋은가?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온전한 행복이다. 무상! 무념! 무심! 이것이 피안의 세계, 열반! 니르바나가 아닌가? 절대 좋다. 우리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 자유로운 돈망의 길을 가자. 돈망의 즐거운 여행을 떠나자. 돈망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주신 스승님, 거울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3. 돈망의 깨달음의 에너지, “우주는 상생이다. 만물은 복덕이 넘친다.”로 존재의 근원의 밑뿌리를 없애는 방법이 바로 업장을 소멸하는 최선이라는 확신이 확연해졌다.
무심, 니르바나운동, 부동심의 의식운동으로 펼쳐 나가면 “세계 평화” 세계 천국 우주의 상생이 되며 모든 사람의 전쟁의 고통,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행복의 씨앗이 될 거라는 희망의 선물을 받고 가니 더욱 더 행복하다.
 
4. 앞으로 수행 점검표 0표치기에 전념, 정진하며 행복론 전파와 행복 나눔으로 작선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고한 인품의 꿈을 안고 계속 노력할까 합니다.
수십 년 수행의 가르침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행복 해탈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해주신 거울님! 감사합니다. 여러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풀꽃네 유소림
 
다섯 번 째 고급과정인 이번 과정에서 동사섭 고급과정이 이론적으로 명료하게 정리되고 그에 따른 풍부한 느낌들을 알아챌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합니다.
 
(1) 정사유(正思惟)라는 보검
 
보리수 아래 석가모니께서 대각을 얻으신 방편이 되었던 ‘정사유’를 수단으로 하여 우리의 의식자리를 환하고 뚜렷하게, 그야말로 ‘와서 보라’고 할 수 있게 해주신 큰스님께 무어라 할 수 없이 크나큰 감사를 올립니다. 불교 책에서 自性이니, 깨달음이니, 本來面目이니 하는 말들을 만날 때마다 구름 같고 안개 같기만 하던 그 기분, 알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던 그 막막함을 정사유라는 보검으로 깨끗하게 잘라내 눈앞에 보여주시는 스승님의 가르치심. 수첩 하나 강의실 마룻바닥에 던져 놓으시고 우리 의식 세계의 영번지, 그냥 깨어있음을 우리 손에 쥐어주시는 그 가르치심, 그 방편력은 아무리 찬탄해도 다 할 수 없습니다. 思惟라는 인간의 능력 또한 찬탄되나 흙 속에 버려져 있는 그 보검을 헤쳐 내시어 깨달음에 이르게 하시는 스승님의 가르치심은 보검 중의 보검입니다.
 
(2) 돈망 산책
 
* 깨어있는 의식을 의식하며 그냥 걷는다. 수정 알처럼 맑고 투명하다. 뒤로 물러설 곳도 달려갈 곳도 없다. 오로지 투명한 의식을 의식한다. 물러설 곳도, 달려갈 곳도 으니 이 투명함은 이 일물의 외길 운명, 그러나 지극히 행복한 운명, 모든 존재는 행복이라는 질료로 만들어졌다 하던 라즈니쉬의 말을 새삼 알 것 같다.
 
* 이제 이 자리에 돌아오니 축복이 쏟아진다. 온 우주를 생성한 그 무한의 창의성, 그 무한의 사랑이 빛처럼 내려온다. 넝마 같은 ‘나’를 버리면 무궁한 선물이 있으니 그 넝마쪽을 버려라, 버려라 했거늘 지금껏 그것을 움켜쥐고 있지도 않은 문제 속을 헤매었구나. 한 알갱이의 물방물이 얼마나 돌고 돌았을까. 이제 이 물방울, 무궁한 바다 속에 용해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자리, 그냥 이 자리, 부처라고도, 하늘이라고도, 그 무엇으로도 이름 할 수 없는 본래 이 자리에서 본래의 평화, 본래의 축복, 본래의 행복 속에 있다. 우주를 紅爐點雪이라 했던가. 그래도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그것이 화로 속 눈발처럼 사라진다 해도 이 깨어 있음은 이렇게도 생생한 것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면서 그리도 우여곡절 속에 휘청대며 살고 있는지, 도무지 답답하고 장님 같은 기분. 이 일물의 60년 생애를 줄기차게 붙어 다니던 그 갑갑증. 이제 이 일물 스스로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깨끗이 사라지고 너무도 안심되고 시원하고 감격스럽다. 세상을 능동성 구나로 바라본다. 실체가 아닌 존재들, 모두가 하나인 존재들. 아름답고 신기한 이 일물의 살들.
존재의 영번지로 돌아와, 존재의 근원에 돌아와 돌아보니 이 존재가 실체 아님이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지. 이 세상에 수수 많은 그 존재들이 전부 실체라면 이 세계는 그대로 지옥, 실체와 실체들이 미친 듯이 서로 부딪치며 모래 알갱이보다 더 메마르게 바스라져 뿔뿔이 뿔뿔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는 대항의 에너지로 가득한 세상을 생각해보라. 그 세계는 그대로 불구덩이, 지옥불의 불구덩이…. 그러나 다행히, 다행히, 천만 다행히 실체가 아니고 모두 하나이니 이 자리가 그대로 무한, 무궁이구나.
 
조그만 조그만
산새가 노래를 한다.
존재를 찬탄하고
존재에 행복하여
세상을 노래한다.
실체가 아닌 존재들,
존재와 존재들,
서로가 서로에게 근원이 되는
부드럽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리들의 꽃밭에서
 
(3)행복론
 
석가모니 부처님의 연기법에서부터 용수의 空과 세친의 唯識을 거쳐 달마의 自性까지 불교의 에센스를 모두 아울러 하나의 화합물로 만들어낸 최고의 離苦得樂, ‘돈망’. 그것 하나면 불교 공부 전부다. 이제 그것을 손에 쥐는 법을 알았으니 닦아갈 일만 남았다.
 
(4) 28회 고급과정의 말씀들
 
1. 언제나 마을을 비우고 산다는 말은 맞지 않다. 채울 때 채우고 비울 때는 비우는 것이 차원자재인 도인의 건강한 마음이다.
2, 역경계를 만났을 때가 지기 체크의 절호 찬스다.
3. 우리들의 감각기관이 불안전함을 알아 빈 쪽으로도 볼 수 있고 찬 쪽으로도 볼 수 있어 야 한다.
4. 스스로의 존재 뿌리를 무한, 무심에 내리고 있어라.
5. 空이란 존재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6. 영성적 성숙이란: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알아 탐진치가 사라지고 마음이 자유스러워 지며 연민지심이 있고 해야 할 일을 자재롭게 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7. ‘是名돼지’라 해도 너무 오랫동안 돼지 노릇을 하면 돼지 냄새가 몸에 배게 된다. 보현에 게 보낸 문수의 편지를 생각해보라. ‘是名’으로 산다 해도 계속 깨어있음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라.
8. 수행 일 번지는 깨달음이다. 깨달음 없이 수심하는 것은 蒸沙作飯이다.
 
 
 
바람소리님
 
◈ “돈망”이란 무엇인가?
동사섭 일반과정을 2008년 10월에 수료한 후 생활 속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족 내의 불화, 갈등이 현저하게 개선이 되었고, 직장 내의 동료들 간의 다툼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동사섭 지도자 과정에 참여하여 동사섭의 진수를 접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른 과정들은 이해가 되어 생활 속에서 체화시킬 수 있었으나, “돈망”은 잘 이해도 되지 않고, 명상도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생활 속에서 “돈망”이 전혀 체화되지 못했다.
답답했다. 마치 머리 없이 팔 다리만 움직이는 고깃덩어리 같았으며, 가슴 속 한가운데가 텅 비어서 허전하였다.
지도자과정이 10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언가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고급과정을 신청하였다. 도대체 “돈망”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번 고급과정에서 나의 바람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여 상당히 실망스럽다.
거울님의 돈망에 대한 주옥같은 강의는 그러나 이전의 지도자과정에서 들었던 내용과 크게 다른 게 없었고, “옴나”에 대한 강의는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른 도반님에게 보충 설명을 들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고급과정에서 해공십조 등 비아관과 무아관들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강의에 없어서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사실 돈망명상의 “3줄”만 듣고 그에 대한 해설만 들은 것 같다. 이 점 때문에 이번 고급과정에 대해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 왜 거울님은 “돈망명상 3줄”만 그토록 강조 하셨을까? 해공십조 등과 같은 무아관 등에 대해서는 거의 말씀을 안 하시고….
다른 도반님은 비아명상과 해공십조의 무아관 명상을 많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을 하였는데….
 
◉ 마지막 가는 날, 오늘 아침에 거울님은 또다시 “돈망명상 3줄”에 대한 해설(돈망 6위)를 하셨고, 인생3중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망”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돈망지족”의 바탕 위에 “구현천국”을 해야 제대로 “구현천국”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는 공감이 갔다. 내가 바로 그동안 “돈망지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위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과 난관에 봉착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돈망이란 무엇인가?” 돈망 3줄 명상을 하면 잠시 명상 구절을 읊조리면 마음이 안정되고 개운해지는 것을 느끼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돈망”인지는 모르겠으나 “개별면담시간”에 거울님께서 일단 그것도 괜찮다 하셔서 다행이다.
 
◉ 거울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돈망 3줄 명상”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수없이 많은 반복 명상을 해야 만 알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돌아가서 평상시의 수련시간과 일상생활 속에 “돈망명상”과 비아명상을 집중적으로 해보련다. 그러면 무언가 잡힐 날이 올 것이다. 거울님의 말씀대로 누구나 “돈망파지” 할 수 있다는데 나 역시 “돈망파지”할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어 본다.
거울님! 감사합니다! 거울님의 깊은 뜻 반복 실천 속에서 깨달아 가겠습니다.
 
 
 
 
자은
 
1. 돈망! 아공법공을 전제한 옴나! 해탈!
이 일물의 의식이 이렇게 고요하고, 가볍고, 평화로울 수 있다니 경이롭다. 무한 우주에 환한 깨어있음만이 현전할 수 있다니 행복하다.
툭 트인 시원함과 상쾌함이 좋다. 그냥 임재함에 희열이 가득하다.
 
2. 실상이언! 개념이전!
실상은 언어를 떠나있다. 언어작업을 덜 해야 한다. 묵언해보면 들어오는 빵빵한 충일감이 있다. 묵언이 가져다주는 공덕이 크다는 말씀에 자각이 왔다.
보고 듣는 대로 개념화 시키는 개념놀음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정말 빵빵한 에너지의 충만함이 만큼 있었고, 푹 쉬어지는 휴식감과 그냥 있음의 순도가 더 맑아졌다.
지금 여기 온전하게 깨어 있을 수 있게 되어 기뻤다.
 
3. 깨달음(바른 가치관 정립)을 통한 인식의 전환으로 잘못된 인식체계를 바꾸라는 말씀에 아하 되었다. 정말 뒤죽박죽된 의식 체계로 살아온 살고 있는 모습으로 나다나다 하며, 온 우주가 시끄럽게 살아온 벡타 놀음의 거두어짐에 대한 후련함과 새로운 자각이 되어 기뻤다.
 
4. 차원 자재
돈망을 가로막는 것은 염체들이다. 주관적인 나의 염체는 얼른 선반 위에 올려놓고, 다 제쳐 놓고, 돈망을 선택하라는 말씀에 아하 되었다.
그냥 깨어있는 것이 전부이니 돈망지족으로 살다가 구현하러 나갈 때 차원 자재할 수 있는 지고한 인품을 심화시켜 나가야 되겠다는 자각이 다시 되어 설레고 기뻤다.
 
5. 본래 나는 없는데 왜 착각하면서 나다, 나다 하며 지옥 속에 사는가?
나 없다가 깨달음이니 전환해 버리세요. 하시는 말씀에 아하 되었다. 나 없다가 깨달음이라는 명쾌한 말씀에 시원함이 느껴지며, 나 없다 하며 반복 전환하면서 수행해 가야겠다.
 
6. 식주체 기능은 숙명적으로 대상을 갖는다. 근경식 삼사화합에서 니르바나도 고통도 경험한다. 식주체 기능이 그냥 있는 상태를 의식하는 심리과정으로 무심한 상태로 관조해 보자 하시며 옴, 수동성구나, 능동성구나, 아공법공의 느낌의 차이를 경험해 나가는 느낌과 의식의 과정들이 경이로웠고, 더욱 또렷하게 명료하게 심화되는 느낌들이 생생하게 깨어 있을 수 있어 행복했다.
 
7. 미시고공
백만 배 현미경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자.
원래 그 세상인데 우리의 감각구조가 거칠어서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는 말씀에 공감되었다. 정말 그런 세상인데, 비정상적으로 살고 있었음이 반조되며 거듭 명상하리라 다짐했다.
 
8. 우주를 떠올릴 때 선택 문제다.
무한아이덴티티냐! 유한아이덴티티냐! 명상 차원에서 우주의 역사는 억만 분의 1초다. 찰나 생멸이라는 말씀에 공감되며 시원했다.
차원 자재할 수 있는 반복 의식 명상을 거듭 해야겠다.
 
9. 나 없고, 세상 없잖아, 아공법공이잖아!
그런데 성성적적 깨어있는 의식 흐름 있잖아! 참으로 수월스럽게 전달해주시는 스승님의 탁월하신 안내에 놀라웠다. 온전히 공감하며 그렇지요! 되어가는 평온한 의식의 흐름에 행복했다.
 
10. 결국 걸림이 문제다.
걸림이 해결되면 된다. 무심지평 영역을 심화시키고 넓혀가라. 내 지평을 무한한 무심에 두라. 내 뿌리를 어디에 둘 것인가! 무한우주, 개념이전, 돈망에 뿌리를 두라! 이것이 근본 치유다. 지구 위의 모든 재난의 근본적 치료약이라는 말씀에 아하 되며, 무심지평 영역의 심화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어 기뻤다.
 
11. 행복론
어쩌면 이렇게 부처님의 깨달음과 불교 전 역사의 알곡만 선택하여 가치관 정립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탄성과 함께 거듭 반복 명상하며 행복론과 같이 무한 행복 해탈화 되어 가리라 깊은 다짐을 하였다.
 
12. 돈망3관, 인생3중주의 삶이 호흡이 되도록 하자!
수행점검표 0표치기의 반복 명상을 거듭 하자!
지금 여기 그냥 깨어있음이 호흡이 되게 하자!
 
13. 돈망지족 위에서 구현해가야 한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해야 세상에 맑고 밝은 에너지가 스며든다. 안으로 자유로워라.(돈망, 지족,해탈, 자비)
자유로운 그 마음으로 작선하라.(구현, 자재)
인생3중주의 삶이 새롭게 자각되어 명료하게 기뻤다.
 
14. 스승님, 도반님들, 행복마을 모든 님들과 함께 평화롭고 행복했습니다.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소 감 문
언제나 두손모음
17일 날 아침 큰스님께서 전화가 왔다.
고급 과정인데 오라고 하시는 말씀이 21일인데 하고 생각을 했는데 와서 보니 진짜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이 두 번째 고급과정이 되어버렸다.
화장실에서 큰스님께서 이번 두 번에 돈망을 마치자고 하신다.
말씀에서 우선 큰스님의 자비심이 느껴져 찡했다.
나는 돈망파지가 쉬울 줄 알았는데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 동안 여기 저기 쫒아 다니다 나름대로 경험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들이 지속적이지 못했다.
고급과정을 하면서 잊어버렸던 것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면서 옛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기쁘고 즐거웠다.
무엇이든지 또 아무리 좋아도 그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고 강조를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그리고 대중이 공부를 시킨다는 말씀이 이번 과정을 통해서 절절히 다가왔다.
대중들이 내뿜는 기운과 행복마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너무 좋다.
바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행복 속에서 빠져 사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나태해지고 생활 속에 끄달리게 되는데….
고급과정을 접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기쁘고 행복 했다.
거듭 큰스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돈망파지를 못했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망? 연습을 하면서 가슴에서 무엇이 쭉 내려가는 것을 느끼면서 시원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서 느껴지는 고요함!
마음이 밖으로 끄달리지 않고 주의가 가슴과 단전의 빵빵함으로 회수되어 저절로 관조가 되어 졌다.
마치 돈망을 하는 것처럼 기쁘고 좋았다.
큰스님께 점검받으러 다녀오면 올수록 뭔가 얻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더 자주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내가 확실하다는 감을 잡으면 다녀와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어제 저녁에는 돈망에 대해서 내가 이해를 잘못 하는 것이 있을 것 같아 교재를 읽으면서 확실히 이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재를 늦게까지 읽고 또 읽고 읽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교재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온통 그 생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아침을 먹지 않고 웅곡 가는 길로 돈망 산책을 하였다.
어제 큰스님께서 돈망 산책을 하다 염체가 떠오르면 염체를 치우면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주제가 아닙니다하고 주제로 돌아오라고 하셔서 그대로 했다.
그렇게 하니 생각이 끊어지고 염체가 끊어지다 보니 중간 중간에 큰스님께서 말씀 하신 1초짜리를 알게 되었다.
바로 1 초짜리라는 걸 이걸 두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아 기뻤다.
그냥 걷는다 하면서 그 1초짜리가 자꾸 경험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느낀 것들은 아공 법공으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이미 안팎으로 툭 터져서 텅 비어 있으면서 그것은 온 우주에 이미 두루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거지가 금을 깔고 앉아있으면서 그걸 모르고 한 푼 줍쇼 하는 큰스님의 법문의 말씀이 기억이 난다.
또 염체가 들어오면 알아차리고 감사합니다하면 염체가 사라지고 그 1초짜리가 자주 경험이 되면서 그 시간들이 길어지는 걸 느꼈다.
바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중에는 저절로 알아지면서 염체들이 마치 물방울이 사라지듯이 툭툭 터지면서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텅 비어 있으면서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만 남았다.
이 상태를 놓치지 않고서 삶속서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은 세상으로 돌아가면 또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또 잊어버리고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알아차리고 감사합니다.
당신은 지금 나의 주제가 아닙니다.
하고 돌아오니 다시 회복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놓치지만 않고 살아간다면 되겠구나 하고 마음의 다짐을 하여본다.
무엇보다도 이번 과정을 참가하게 만들어 주신 큰스님께 무엇보다도 감사드립니다.
 
 
연화님
 
실상이언이니 익어진 개념화를 벗어나야한다. 언어를 떠나있는 실상 즉 참모습을 경험하기 위한 묵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익어진 습관대로 성급하게 툭툭 튀어나가는 말과 쉼 없이 흘러가는 생각의 흐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묵언이라는 이름표를 버젓이 달고도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럽습니다. 보다 한 수 높은 의식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함부로 내뱉는 말과 망상을 벗어나려는 마음가짐과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식의 전환이 깨달음이다. 인식 체계가 잘못되어 불행해진다면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통해 깨달음의 의미와 필요성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그리고 억만 가지의 잘못된 인식 체계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다행이고 본래 없는 나를 깨달음으로써 ‘나는 존재한다.’는 잘못된 인식체계만 바꾸더라도 이고득락 할 수 있다는 말씀이 고개 끄덕여집니다. 그런데 잘못된 인식체계를 옳다고 생각하며 사람에게 99%의 의미로 중요한 깨달음이 닦음 차원에서는 중요도에 있어 1%에 불과하고 깨달음의 반복 즉 닦음이 99%로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릅니다. ‘나란 본래 없다’라고 수긍하면서도 실체로 여겨지는 나를 느낄 때 ‘나는 존재 한다’고 생각하며 습관대로 살아가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니 왜 골 백만 번 ‘나없다’는 깨달음을 반복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왜 그토록 바른 가치관. 바른 생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지 수긍이 됩니다.
 
돈망 이전 지족!지족만 제대로 되면 행복 문제가 해결되고 지족이 튼실할수록 돈망이 잘 된다는 말씀을 듣고 아하! 지족의 연장선상에 있는 돈망을 잡는다하더라도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함으로써 즉 만족을 알지 못함으로써 마치 잡은 미꾸라지를 손에서 놓치듯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무엇으로 행복하세요?’ 할 때 행복 마중물이 쉽게 나오고 그 행복마중물에 무게감이 있을수록 더 좋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속 살림으로 차려져야할 돈망에 그다지 무게감을 두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며 진정으로 감사. 지족하지 않고 있는 자신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돈망이란 무엇일 것 같다.돈망이란 이러이러한 것일 것이라고 적어 나가면서 돈망에 대한 막연했던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니 은근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진리’로 통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옴’이라는 말과 ‘옴나’라는 말에 대한 도반님들의 관심과 돈망체험과 정신 줄 놓는 것, 삼매 경험, 기수련 경험과의 비교를 통한 접근 등이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개념이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통해 개념 이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고 처음 볼펜이 만들어지고 볼펜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을 개념이전이라고 보아야 할지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그냥 있음’그냥 있음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나의 염체라는 것이 크게 수긍되고 살 때는 살지언정 탁 비우려고 하면 비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아! 정말 그렇다’ 하며 일상생활에서 무한정 채우고 살면서도 돈망 3관으로 내가 의도하고 마음만 먹으면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냥 있음’으로 진입하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비우려 할수록 비워지지 않는 나의 염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또한 ‘그냥 있음’이 얼마나 좋은가 볼 때 재미가 없으니 무의미해져 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떠올랐고 깨달음에 의미 부여를 너무 크게 한 나머지 깨달음 이후 닦음의 중요성을 놓고 피우던 게으름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냥 있음만으로 우주적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온전히 ‘그냥 있음’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제 몫임을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냥 있음 분석 = 식 주체기능 + 깨어있음 + 아공법공 + 느낌!‘그냥 있음’ 심리 현상을 분석적으로 정리하면 어떤 요소로 구성되고 그 중 가장 본질이 되는 요소는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에 “‘식 주체기능’이 ‘그냥 있음’을 대상으로 삼는다.” 라고 할 때 의식이 의근을 통해 법경을 만나는 과정으로 정리되면서 막역하게 생각해오던 식 주체기능, 깨어있음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나 있다’라고 생각할 때 오는 답답함과 ‘나없다’라고 생각할 때 오는 널널함이 느낌으로 오면서 깨어있음을 의식할 때의 느낌과 비교할 수 없는 아공법공을 전제로 한 깨어있음의 느낌(아공법공을 전제로 하지 않은 느낌)을 체험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그냥 깨어있음 또한 아공법공을 전제로 한 깨어있음으로 탁 트이는 감이 있으나 다시금 아공법공으로 쓸어버릴 때 더 툭 트이는 감은 왜 없다고 하고 또 없다고 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무한 부정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합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주제 몰입을 통해 이번과정에서 얻고자 했던 돈망 체험에 대한 자기 신뢰도가 높아지는 만큼 우주가 밝게 빛나고 소원하게 느껴지던 주변사람들에 대한 우호감이 증장되고 왜 궁극적으로는 보살도의 도구로서, 밑거름으로서 작선하고 보시할 뿐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내가 손에 쥐어 만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 경험을 누구나 하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보살도 도구로서 해야 할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지만 일단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분명해져 참 행복합니다.
마음공부 역사로서의 불교사에서 돈망의 위상! + 뉴 버전의 행복론공을 통한 해탈, 공의 허무성을 보완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공론인 유식무경을 통한 해탈, 선을 통한 해탈, 이 세 축을 통합하여 드러낸 돈망의 위상과 새 버전의 행복론에서 전달되는 돈망의 체험이 일치되면서 나도 없고 세상도 없다고 하더라도 드러나는 이것이 의미를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 허공을 노래하고 태양을 노래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듭니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염체를 의식 공간 중앙에 세워두고서 불행을 선택하며 징징대지 않겠습니다. 하더라도 흔적 없이 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잘못된 인식 체계에 걸리지 않고 허공 아이덴티티, 무한 아이덴티티를 유념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하겠습니다. 그냥…이번 과정에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 듯 바라보기 싫은 나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면서 마음공부를 정말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 감격스러웠고 제가 손에 쥔 ‘그냥 있음’의 의미부여라는 온전히 제 몫의 할 일을 찾았기에 제 꿈인 지고한 인품의 함양에 한발 더 다가선 것 같아 기쁩니다. 스승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좋으셔서 우리 모두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 이제야 접수합니다. 그동안 방석아래 금괴를 알아보지 못하고 안팎으로 분주하게 벡터놀음 하던 제자는 오늘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정지한 채 제자리걸음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옆길로 새려고 한다면 혼도 내시고 꾸중도 하시고 야단도 치시고(매도 때리면서) 지금까지 그러하셨듯이 지켜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3박 4일 동안 소중한 체험을 함께 해주신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원경
 
지금 이 순간 평화감과 지복감으로 가득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있는다’의 돈망3관이 더욱 명료하게 복습되었고 무한의식이 만큼 증장되며 어떤 든든함이 우러나옵니다. 이러한 의식체험을 가능케 해주신 큰 스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인생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은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분주하고 허기진 유위적 삶과 널널하고 한가한 무위적 삶 사이의 저울질이 무척 흥미롭고 진지합니다. 만큼의 공덕으로 이대로 OK지 하는 충만감이 더해집니다.
돈망의 불교사적 위상에 대한 말씀을 통해 돈망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되어 유익했습니다. 아울러 ‘돈망의식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공사상이 진공의 차정문적 공론이고 유식사장이 묘유의 포덕문적 공론임을 알게 되어 개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돈망 6위로 정리된 단순명료한 삶의 과정이 감동입니다. 기필코 그러한 걸림 없고 흔적 없는 삶을 살리라 해집니다. 바람 같은 가벼움으로 설렙니다.
행복론의 upgrade가 더 정교하고 많은 것을 아우러 들게 한 점(특히 구현이 1형 행복록 속에 녹아져있음)이 돋보입니다.
수심4위 바른 인식과 사색의 필요성이 배워졌습니다. 기쁩니다.
100일 정진 기간 중 수심명상 산책사경 노트는 체해탈 차원의 훌륭한 도반입니다. 감사합니다.
양장력을 더해준 도반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새로미
 
고급과정에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급 과정에서 미뤄두었던 주 바라밀인 ‘돈망체험’ 일 것이며 나아가 ‘돈망파지’일 것이다.
첫 번째 강의에서 거울님께서는
“돈망은 <나는 존재한다.>는 실체 사고의 인식체계 변화와 <세상은 없음>으로 인식 전환을 발견해야만 가능하므로 ‘나 없잖아’, ‘세상 없잖아.’ 라고 할 수 있는 인식변화와 수용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돈망체험>은 나도 없고 세상도 없다는 신념 속에서 아무런 개념을 잡지 않고 개념 이전의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라 하신다.
스승님의 말씀을 하늘같이 믿고 그대로 따라가 보았다.
 
<그냥 있는다 명상>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상태의 ‘그냥 있음’이 실감되었다. ‘나없다. 세상 없다’를 해오니 툭 트여져 내린다.온전한 휴식의 느낌, 이제까지 수도 없이 듣고 보았던 ‘쉬어라’의 그 느낌.
아무것도 안하고 있음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음이 바로바로 이런 것이구나.
지금 이 순간의 그냥 있음이다.
좋다. 참 ~ 좋다. 안심. 안식처. 푹~ 쉼이다.
 
<돈망산책>
걷는다. 그저 걷는다.
걷고 있지만 쉬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생전 처음으로 존재 전체가 땅에 서 있다. 온전한 존재감 이 일물의 전 존재가 지금 여기 있다. 그저 몸은 없고 발만 옮겨지고 있다.
한없는 자유와 해탈감으로 그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할 일이 없다. 걸림이 없이 그저 깨어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한 경험은 명료했고 사실 언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스승님께서 잘 가고 있다고 하시니 불씨에 부채질을 살살하여 화력 좋은 불꽃으로 만들어 긴긴 세월동안 쌓아온 산 삶의 업식에 길들여진 얄궂은 습관들을 한 순간 몽땅 태워버리고 눈앞에 가려진 filter로 흔적 없이 태우는 오롯하게, 그리고 현현하게 실상이 드러나 지속 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거북이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히 반복, 반복을 계속할 것이다.
사자 같은 용맹심으로 정진에 임할 것이다.
일반 과정을 2011년 마지막 날 마친 후 오늘로서 동사섭의 기본 가정을 단숨에 마치게 되었다. 이제부터 진정한 동사섭에서의 과정이 시작될 것 같다.
그동안 게을렀던 수행정진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하여 가슴이 벅차다.
이 일물의 회향처가 걸림 없이 깨어서 응무소주 이생기심 하는 도구이며 밑거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탄탄한 밑바탕으로 하여 셀 수 없는 upgrade를 거듭하며 만드신 program으로 단 한명이라도 더 영원한 행복이 보장된 진리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대원을 세우시고 보살도를 행하고 계시는 거룩하고 자랑스러운 거울 스승님 앞에 읍소 3배 올립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울러 개체로서, 그리고 전체로서의 삶을 환상적으로 잘 살고 있는 방짝들,
한께 했던 도반님들 감사, 또 감사합니다.
 
 
수페서
 
아하!
원래 내가 살던 교향이 ‘돈망’이라한다. 스승님의 이 말씀에 기쁨과 설렘이 크게 일어난다. 내가 ‘돈망’으로 살고 있었다는 발견함과 기쁨으로 뿌듯하다.
사람은 이미 그리 살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리 살고 있는 것 가르쳐 주겠다고 고급과정이 있다. 어이가 없을 법한 현상이다.
<옴>이 나의 근처에 있고 그것에 깨어있으니 그것이 큰 즐거움이다. 현재란 엄격한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내가 책임질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꿈이다. here and now 도 흘러가버리니 찰나요, 입김이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조차 온전히 ‘그냥 있음’을 하지 못한다면, 너무도 억울한 일이다.
그냥 스승님 안내에 따라 그저 따라가면 된다. ‘그냥 걸어라’, ‘뭔가 떠오르면 감사하고 넘어가라’ 그렇다. 그냥 하라는 대로 쉽고 단순하게 하면 된다. 내가 어찌 해보려고 애쓰거나, 알고 있는 신념과 개념을 연결 지으려는 저항과 실수를 할 필요가 없다.
아공법공이라!
내가 없고 몸도 없고, 마음도 없고 순수의식도 없고 묘유도 없다. 없다. 없다. 그렇지….어떤 것이 존재하는 것이 있는 것 같으나 존재하지 않는다. 그거 그곳에 충만감과 평안, 자유, 평정심, 빔, 걸림 없음, 뭔가 일어나지 않음을 느낀다. 이 중요한 것 얻기 위해 일물은 안내자를 따라간다. 이건 순종과 신뢰, 사랑일 것이다. 안내자가 자비심으로 나를 안전하게 잘 데리고 갔듯이, 이 일물도 무한 신뢰와 깊은 사랑으로 안내자를 따른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느끼고, 함께 나누어가지 이것이 행복이고 천국이다.
행복론 1,2,3이 버전이 달라졌다고 신나서 작업하여 따끈따끈한 강의록 나눠 주시는 거울님이 행복해 보여서 귀여웠다. 무엇 때문에 열의를 쏟을까 하니 이 일물의 행복 때문이고, 다음 생에 좋은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염원이다. 진정으로 큰 자비와 사랑이고 작선이다. 우리의 행복함을 지그시 바라보고 행복해 하는 거울님. 그 깊은 자비와 사랑에 고개 숙여진다.
 
‘아미타불’ ‘아공법공’ ‘묘유’ ‘비아’ ‘작선’ ‘돈망’ ‘합장’ ‘삼배’ ‘108배’ ‘일물’ 이라는 것들은 말로만 해본 적도, 행동으로 해본 적도 없는 것을 동사섭에서 배웠다. 이 말을 이대로, 고유함을 지켜 입에, 몸에 익히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내가 경험한 것과 임 알고 있는 개념들과 섞어 비빔밥을 만들거나 혼탁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동사섭이 하라는 대로, 사용하는 언어대로, 살라는 대로 하면 정말 행복해진다. 절대 섞으면 추락한다.
늘 열심히 수련하는 내가 기특하고, 이런 제자로 기쁨 누릴 수 있으니 스승님은 복이 터졌다. 함께 이 자리 끝까지 있으니 도반들께 감사하고 보이는 곳이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염원하며 환경의 평안을 준 분 들께 감사하다. 지금 깨어있으니 행복하다.
 
 
 
여유만땅
 
이 일물의 행복 마중물 동사섭! ‘행복마을’이 새겨진 입석이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거울님의 자비의 기운이 이 일물의 몸을 뜨겁게 달군다.
이 일물. ‘그냥’ 행복하다. ‘그냥’ 기분 좋다.
 
돈망이란 무엇인가?
개념이전. 그냥 있음. 툭 트임. 텅 빔 우주 등의 단어 나열로
돈망이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망을 펼쳐본다.
‘개념이전’을 개념이후‘로 접근해 본다.
 
돈망의 에센스는 식 주체기능으로 그냥 있는 이 상태를 관조하는 심리과정.
이 일물의 식 주체가 초점을 두었던 대상들을 잠깐 떠올렸다.
성공. 돈. 명예. 세간의 인정. 진리탐구. 깨달음에 대한 갈증….
모두 고통. 분노를 전제로 한 초단기 유통기한의 일회적 행복이었구나….
 
들은 대로 식 주체기능의 포커스를 그냥 있음으로 채널변경시작!
 
첫 번째 실습
아공법공을 전제로 한 옴나로 시동 걸어본다.
아공법공에 의식을 집중한다. 일물이 공하고 일물의 육근의 육경이 공하다.
자! 이제 아공법공을 전제했으니 옴나를 얹혀보자!
어라랏? 아공법공에 집중하느라 옴나가 ‘옴나空’이 되어버린다.
재미있지 않다.
 
두 번째 실습
here & now에 온전히 깨어있다.
식 주체의 대상을 깨어있는 상태로 채널 고정!
here & now의 상태에서 다소 숙련된 아공법공을 입힌다.
이 일물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니 아공완료.
자연에게 현미경을 들이대니 에너지로 변한 법공.
자! 돈망이다!
 
순간 거울님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떠오른다. ‘거울님 감사합니다만 선반위에 계세요!’
here & now로 식 주체를 갖추고 아공법공을 맞으니 아름다웠던 새소리가 그냥 소리. 물레방아의 청량한 맑은 소리도 그냥 소리. 담담하다. 그래도 오리털 파카처럼 전심의 주위를 둘러싼 회수된 에너지 덕분에 추운 바람도 덜 춥게 만들어준다.
 
아공법공이니 시야에 들어온 바위가 이 일물이 된다. 이 일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된다. 아하! 이 일물의 작은 몸뚱이에서 벗어나 바위도 되고 나무도 되는구나.
돈망이 이 일물을 이렇게 걸림 없고 자유롭게 만드는구나! 온몸에 홀스가 퍼지듯 시원하다.
 
업식.편견.선입견.가치.관념.경험.기억등의 프리즘을 눈앞에 두었으니, 봐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순간이지만 프리즘이 제쳐지니 맨눈으로 본다. 이제야 비로소 보는구나! 안경 벗은 핑크공주처럼 난 이제 프리즘도 벗어봤다! 좋구나. 돈망. 편하구나!
 
존재와 실체를 혼돈시하여 공을 빙자한 허무감에 빠지기도 했던 일물에겐 오직 넘기는 기쁨으로 머릿속이 선명하고 밝아진다.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한 조화로움 속에서 어우러져 지내고 있고 이 일물은 유영하듯 자유자재로 우주의 상생을 느끼고 만물의 넘치는 복덕을 알아차리고 행복감사하면 그 뿐이다.
이 일물 완벽한 조화 속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그냥 개념 이전 놀음만 하면 그뿐!
텅 빔에서 깨어있기만 하면 그뿐!
 
이 일물의 행복마중물 거울님에 이어 개념이전 놀이가 추가!
먹거나 놀거나 일하거나 자거나 움직이거나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돈망이다. 이제 이 일물의(여유만땅)의 생활은 돈망만땅이다!
 
끝으로 이렇게 귀하디귀한 돈망을 쥐어주시기 위해 거울님의 전 존재, 전 에너지를 기하여 전하여 주시니 뜨거운 눈물만 흐른다. 감사합니다.
법열을 나눠주시고 활불임을 몸으로 증명하시는 새로미님과 그리스도의 사랑과 존중 그리고 순종을 몸소 보여주신 수페서 룸메이트분들 감사합니다. 제 복이 이리도 넘칩니다.
같이 공부해 주신 고급과정의 기성 돈망파지인 님들, 미래 완료형 돈망파지인 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백산 예약자 분들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우광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非我체험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환경 없다 (쓸어낸다)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몸 없다 (쓸어낸다)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마음 없다 (쓸어낸다)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식 주체 없다 (쓸어낸다)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순수의식 없다 (쓸어낸다)
(상대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묘유 없다 (쓸어낸다)
 
반복할수록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頓忘散策
아무 생각 말아야지, 눈에 띄는 것들 그냥 스쳐지나가야지 이런저런 생략이 떠오르면 밀어내야지 돌 틈에서 새순이 움트고, 냇물소리 들리고 개짓는 소리로 나고, 집사람 모습이 떠오르고 Biz 과제도 떠오른다..
몇 번을 산책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면서 온갖 짓을 다하고 있었다. 마음은 담담하고 좀 지루하고….이렇게 하는 게 맞나? 궁금하다.
 
돈망을 경험한 사람 손들라 할 때 손을 들 수가 없다. 민망하고 어색하다.
거울님이 자신의 돈망산책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신다.
 
그냥 있는다
我空法空이니 안팎으로 관심 둘 것 없다.
그러하니 그냥 무장무애하게 깨어있는 것이 이 일물의 할 일 전부이다.
 
이 말과 제스츄어가 그대로 와 닿는다.
내가 없고 이 세상이 없는데 관심 둘 게 없지. 그냥 이를 깨닫는 것만 있다.
Here & Now
앞이 훤하게 뚫리며 확 열린다.
깨달음이 오는 것 같다.
희열을 느끼고 기쁨이 막 솟는다. 절로 웃음이 난다. 주위를 살피며 히죽거린다.
당장 돈망 산책을 다시하고 싶다. 창밖을 보며 명상과 동작을 하며 다시 느껴본다.
누군가를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계평화님과 나누며 더 증폭되고 고조된다.
노래도 부르고 포옹도하고….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다. 성령 충만의 방법을 얻은 것 같아 기쁘다.
잘 지키고 유지하고픈 심정이다.
수행점검표를 계속 해나가야지 다짐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수냐 김 연희
 
1. 깨달음과 닦음, 명징성과 지속성
‘깨닫기 전에는 깨달음이 99%이지만 깨닫고 나면 닦음이 99%의 의미를 지닌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깨닫도록 하고, 깨달은 사람은 돈망이 질적으로 순금이어야 하고, 양적으로 많아야 한다.’는 거울님의 말씀을 듣고 겸허하게 정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뿌듯하다. 돈망의 힘 기르기는 돈망의 명징성과 지속성을 늘려가는 것이라는 정리가 되어 기뻤다.
 
2. 역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고통과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심(無心)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신다. 세상을 위한 선한 행위를 표방한다 해도 그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고통과 전쟁이며, 의식공간에 오염에너지를 갖고 있으면 우주에너지에 오염을 시키기 때문에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집착, 무심 운동이 일어나야 함을 깊이 자각하게 되어 기쁘다.
 
3. 돈망명상
空(공)의 깨달음이 일체의 사념놀음과 욕구로 달려가는 에너지를 완전 봉쇄하는 역할을 하게 됨이 논지적으로 확연해져서 기쁘다. 그냥 있으면서 일체의 사념과 대상에 대한 주의를 회수하고 있는다. 그러면 휴식감과 평화감, 무한감이 느껴졌다. 맑고 평화로움을 느끼는 이 의식 상태에서 한 번 더 아공법공(我空法空)하면서 염체를 쓸어버리면 훨씬 더 개운함이 느껴졌고 무한감이 크게 느껴졌다. 다 쓸어버리고 쓸어버려도 남아있는 의식, 오직 깨어있는 의식이 의식된다. 담백한 이 의식. 허공심이다. 음~ 오직 마음뿐이라더니, 오직 깨어있는 의식뿐이로구나. 의식에 아무런 번뇌가 끼지 않은 이 의식이 본래 청정한 자성 아니겠는가. 본래 있는 이 마음. 이 마음이 부처다. 일심(一心)이며, 우주적 의식이다. 맑고 고요한 이 의식으로 존재함이 자신과 세상에 주는 최고의 자비로운 행위요. 최고의 선물이겠다는 것이 수긍되면서 돈망의 의미가 더욱 살아났고, 진정 지고한 돈망도인이 되리라라는 소망을 갖게 되어 기쁘다.
나와 너의 경계가 본래 없는, 본래 하나요, 본래 무한이구나. 한 몸이니 동체대비로구나. 존재자체가 사랑이구나. 내가 너를 위해 보살도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너를 위해 하는 보살도가 아닌 내가 나에게 하는 사랑이요, 보살도이니 이 얼마나 좋은가? 가슴이 떨린다.
사념을 보지 말고 사념 사이 무심의 순간을 보라고 하신다. 1초짜리, 무심을 보다보면 점점 무심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먹구름이 아닌 본래 청정한 하늘을 노래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 번뇌타령을 했던가? 일물이 이미 태양이거늘! 반복 수련으로 이제는 제법 무심놀이가 몸에 익어져 가니 기쁘다.
 
4. 본래 없음, 깨어있음
‘있다’ 관점과 ‘없다’ 관점의 차이. 있다 관점은 전쟁과 고통이요, 없다 관점을 취하면 평화와 행복이니 없다 관점을 취해보라.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음을 확인하는 무아명상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도반과 짝이 되어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환경은 없습니다. 몸은 없습니다. 마음은 없습니다. 식주체기능은 없습니다. 순수의식은 없습니다. 묘유도 없습니다를 거듭 반복하하니 없다를 반복할수록 의식이 맑아지고 확장되었다. 없음 확인, 깨어있는 의식, 없음 확인, 깨어있는 의식이 영롱하게 느껴지고 자유감이 느껴졌다.
 
5. 돈망의 불교사적 위상.
돈망의 불교사적 위상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돈망명상의 논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서 기뻤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한 것이 연기를 깨달았음이요. 연기의 이치를 깨달음은 정사유라 하신다. 연기론의 무아는 해탈이요, 동체대비는 바로 자비이다. 모든 것이 중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론에서 굳이 나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무아요, 동체대비이니 자비이다.
무아가 강조되다보니 아공법유사상이 나오게 되고 그러다 보니, 법유시함에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용수의 아공법공사상이 나왔으며, 공이다, 없다를 하다 보니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식이라 보는 유식론이 나왔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네가 바로 부처다’라는 선불교가 나왔다는 단계까지의 불교 이론사를 이해하게 되어 기쁘다. 다 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이론이든 한계가 있을 수 있으며 이론은 발전한다는 것과 돈망이론이 과거 이론들의 장점을 통합하면서 더욱 견고하게 초월적 행복론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어 기쁘다.
 
6. 행복론
행복론을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해주신 것이 좋았다. 행복론 1. 욕구를 소유해서 행복해지리라 하는 행복론, 행복론 2는 이미 넘치는 소유, 넘치는 행복 속에 있음을 깨닫고 행복을 누린다. 행복론 3은 공리, 유식, 자성을 깨닫고 무한행복을 누리는 행복론이다. 와! 놀랍고 기쁘고 감사하다. 구현만 강조하면 긴장, 스트레스일 수 있고, 초월만 강조하면 초월에 집착하면서 지금의 행복,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행복론의 통합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행복에 대한 관심수준이 다른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 상태에 맞는 행복론을 채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아 기쁘다.
 
7. 돈망6위
옴- 구나- 아공- 법공- 걸림 없는 삶- 흔적 없는 삶.
그냥 깨어있음인 옴으로 시작해서 세상을 만나면 단지 바라다보는 구나로 산다.
옴나 의식은 시비 분별 집착이 없다. 그러나 무의식권에 실체시하는 번뇌가 북적거리기에 아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는 아공, 세상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는 법공- 집착이 없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형으로 걸림 없는 삶 – 흔적 없는 삶이라는 돈망 6위가 활구로 살아 움직인다면 참으로 행복한 삶이 될 것 같아 기쁘다.
 
8. 수심사위.
마음공부를 애매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치관정립- 체해탈- 용해탈- 무의식해탈의 수심사위이론이 깨달음의 중요성 강조와 닦음의 중요성을 모두 강조하고 있음이 좋다. 깨달음은 인식론의 전환이요, 바른 견해의 정립이다. 바른 견해의 정립과 인품으로 완전히 체득하는 체해탈, 살면서 걸림 없는 용해탈, 무의식에 잠복된 미세번뇌까지 제거될 수 있도록 반복, 반복, 반복 수행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지고한 해탈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 그렇구나! 참 좋다. 감사하다.
 
9. 인생 3중주.
인생하면 떠오르는 O번지는 그냥 있음이다.
한 생각 일으키면 감사할 일이 많으니 지족천국이요.
깨닫고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은 보살도이다. 그것이 구현이요. 작선이다.
돈망지족을 바탕으로, 해탈과 자비를 전제한 구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와 닿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면 세상에 악장력이니 주의하라는 말씀이 폐부를 찌르며 뇌리에 박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자연, 사물에 맑고 밝은 기운이 넘치기를
두 손 모아 기원 드린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 없는 부동심의 평화와 하염없는 자비, 상황에 맞는 자재의 지고한 인품을 지향하리라.
 
무한행복의 길 안내해주신 거울 스승님 감사합니다.
함께한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고급과정 소감문
 
공명
 
이번 고급과정에 참여하게 된 데는 선광님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지도자과정 때 옆에 앉아 인사를 나누며 ‘공명님의 돈망파지 소식을 기다렸는데 기대보다 오래 걸려서 궁금하던 중입니다. 이번 고급과정에 참석하실 건가요?’ 그 한 말씀에 전혀 계획에 없던 고급과정을 신청해 두고 돌아가서는 바쁜 일정과 돈의 압박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몇 번 취소한다 하려고 휴대폰을 들었지만 막상 내 마음 속에서는 가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미루고 있다가 수련 당일 점심때가 되어서야 무조건 간다는 마음으로 서둘러 일을 마치고 참가하게 되었다.
첫날 강의가 다 끝난 시간에 겨우 도착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꼭 오고 싶었나? 난 이번 고급과정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생각해 보았다. 일단, 조금만 더 해보라고 하신 거울님의 말씀대로 가능하다면 이번 수련에서 돈망을 파지하고 싶었다.
다음날 첫 강의에서 거울님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흘렀다. 첫 마음은 이 자리에 내가 앉아있고 거울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음에 감지덕지하다는 것이다. 다시 눈물이 흐른다. 지금 이 눈물은 왜 흐르나? 생각해보니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에서 오는 것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내 삶과 무관하게만 여겼던 마음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나는 참으로 귀한 것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많이 가진 내가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문제가 지금 나에겐 큰 고민이다.
그동안 내 삶의 겨울 같은 시기를 견디기 위해, 오직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이파리 다 떨구고 안으로만 웅크리며 맨가지로 매서운 겨울의 눈바람을 견뎌왔다. 그 시기를 넘기고 보니 이젠 겨울나무의 identity를 벗고 봄 새싹이 되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40년 세월을 살고 지금 나는 다시 봄 새싹이 될 것이다. 이 40대를 새싹으로 살고 나면 5-60대는 이파리 무성한 여름 나무로 찬란 왕성할 것이고 7-80대는 열매를 맺으며 가을걷이를 준비하고 90대 이후로 마지막 겨울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이번 고급과정은 나에게 겨울나무의 옷을 벗고 새싹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될 것이고 돈망파지 수련은 새싹이 언 땅을 힘차게 뚫고 나오게 도와주는 양분,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여기까지가 수련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3박 4일을 하루처럼 보낸 지금, 나는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룬 듯하여 뿌듯하고 행복하다.
돈망명상 점검을 거울님께 제출해 놓고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 생각해보니 ‘잘못되었다’ 싶었다. 내 마음에 완벽하지 못한 거다. 무엇이 부족할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내 잠꼬대 소리에 내가 놀라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나는 벼랑 끝에 매달려 나를 해치려는 사람에게 ‘도와주세요.’했다. 간절히 애원하다 보니 소리가 크게 나면서 잠꼬대를 한 것이다. 이게 무슨 꿈! 하고는 마음을 잡고 “그냥 있는다….”하며 돈망명상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아하! 돈망이란 이렇게 꿈에서 깨는 소식이구나.’ 하는 깨침이 왔다. 꿈에서야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꿈에서 깨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현실에서의 내 삶이 이처럼 꿈에 불과하고, 돈망이 실상인 것이다. 하니 돈망으로 사는 삶, 돈망에 뿌리내린 삶이라면 죽고 사는 것이 고통거리가 되지 않고 시련과 고난이 있다한들 무슨 문제이겠는가. 이 꿈이 연극이라면 맡은 배역에 충실하면 되고, 흙바닥이라면 한 판 신명나게 놀면 되고, 마루바닥이라면 아름다운 춤으로 한마당 채울 수 있다. 이 꿈에서 깬 소식을 되새길수록 기쁘고 행복하고 누워서 춤이 나올 것 같고 이것이 돈망이니 계속 반복하고 싶을 만하다 싶었다.
돈망점검을 받으며 ‘그냥 무장무애하게 깨어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이다’에서 내 마음에 걸림이 있음은 아직 아공법공의 공리를 온전히 체득하지 못해서임을 알게 되었다. 깨어있는 의식만 잡고 제대로 아공법공 하지 못해서 명상이 막혀있음을 이해하는 순간 내 팔 다리의 세포 하나하나에 빛이 켜지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돈망점검을 받은 후 잘 되는 줄 알았던 아공법공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다시 처음부터 되새기는 과정에서 다 놓은 줄 알았던 내 안의 집착거리가 새롭게 보여 울기도 했다. 실컷 울고 나서 그 욕심도 염체고 집착하는 나도 염체임을 되새긴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도망치듯 무심하게 살았고, 하늘 무너지는 일 아니면 신경 안 쓰며 그게 아공법공인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공법공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이 생각도 염체다. 그저 탁 내려놓고 공~하면 된다. 이제 제대로 무심하고 아공법공하는 연습을 한다. 이전까지 머리로, 논리로 하던 돈망명상을 이제부터 몸으로 하기로 했다. 계단을 오르며, 밥을 먹으며, 화장실에서도 수없이 “그냥 있는다.”한다.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아공법공하고 돈망할 때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몸으로 할 것이다.
돈망파지까지 가는 과정의 명상 속에서 내 의지로 산 18살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내 삶이 통합되어 정리되고 있다. 내 밑바닥까지 훑어 다음 단계로 가기 전 버릴 것 버리고 챙겨가야 할 것만 씨앗으로 챙기게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돈망수련하면 내 새싹이 더 파릇파릇하게 싹을 틔울 것이고, 내 나무가 더 무성해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되어줄 것이다. 내 겨울의 끝자락에 동사섭을 만난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고급과정 수련동안 건강한 에너지로 함께 해 준 도반님들과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켜봐 주신 거울님께 감사드린다.
 
 
소감문
(제28회고급과정, 2012.2.21~2.24)
밝음
 
이번에 저는 小悟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한 체험과 깨달음의 飛翔(비상)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축하며 기뻐하고 있는 그 언저리를 소감문으로 나누겠습니다.
과정이 시작되고서 둘째 날,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최근 자주 마음을 나누는 도반에게 평소와 같이 간단한 몇 줄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읽고 느낀 단상이었습니다. 고도원 편지의 내용은 마음의 근육도 단련이 필요하다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그 단련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이제는 알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침 공양 후에 도반으로부터 이에 대한 답신 메일이 와 있는 걸 발견하고 열어봤습니다. 메아리로 온 내용은, 정진 단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모두를 놔두고 여여하게 쉬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simple하고 cool한 멘트를 접하고 나니 왠지 가슴에 애잔한 정서가 물결처럼 오전 내내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반은 아마 큰 의미까지 두지는 않고 가볍게 써 보낸 한 마디였겠지요. 그 애잔한 정서는 그 날 아침만이 아니라 최근에 종종 내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어떤 정서(+쪽이든, -쪽이든)의 흐름이 감지될 때마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나보다~ 하며 습관적으로 긍정예언을 독백하곤 하여왔습니다.
 
그런데 도반의 그 말이 돈망 산책할 때에도 뇌리에 맴돌면서 더욱 진한 애잔함으로 이어졌습니다. 눈가에는 눈물이 적셔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날도 문득 문득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이러는가~ 하고 독백을 하였고요. 그런데 게스트 하우스 입구에서 다시 돌아 내려오려고 방향을 트는 순간 아! 그렇지! 하는 외침이 한 순간에 속에서 소리로 나오면서 내 영혼이 take-off(이륙)하는 것을 생생히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의 裏面(이면)에 감춰진 것처럼 있는 침묵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 침묵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여여실상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침묵으로 있는 내 가슴에 우주 일체가 쑤욱 스며드는 기분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의 애잔함은 햇빛에 이슬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대신 광활한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존재의 근거랄까 중심이랄까 하는 것이 완전히 침묵과 하나 되어 있음이 설명 없이 그냥 알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주 일체가 그냥 이 광대 무한한 침묵 속에 더불어 있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가 침묵에서 나와서 침묵에 근거하여 침묵과 같이 있음이 알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빨리도 걸어보고 뛰기도 해보았습니다. 이 몸을 어떻게 굴리더라도 소리 없이 도도하게 있는 침묵 속의 존재감은 그대로였습니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모습, 누가 보면 방정맞은 돈망 산책을 하고 있는 중에 노자의 ‘爲無爲’가 바로 이 마음자리에 있는 도리였구나 하는 아하가 뒤따라 왔습니다. 이 침묵의 거대한 힘이 스스로 무슨 일이든지 해내는 것이라고 인식하니…, 참으로 당당한 배포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좁은 틀 안의 나를 비워내면 비워진 그 자리에 전체가 남김없이 들어온다는 도리를 어디서 읽은 듯도 하고 누구한테서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정말 비워져서 空으로 있으니 그냥 空으로만 있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空에서 나온 일체가 다시 空 속으로, 도도한 침묵 속으로 들숨같이 회귀하여 들어오고 날숨같이 탄생하여 나가고 할 뿐이라는 느낌이고 앎이었습니다. 좋다거나 텅 비어 개운하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당당함, 自尊感, 不動感이 꽉 차오르는 느낌입니다. 일체의 中心이라는 느낌입니다. 오고 감이 없이 그냥 충만하게 있는 존재감입니다. ‘나는 일체를 바라보는 존재다’라고 선언하는 느낌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반의 멘트를 읽고 애잔한 슬픔으로 눈시울이 적셔졌던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찾아지는군요. 친숙한 삶터를 뒤로 두고 떠나야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이별을 앞 둔 상황에서 서글픔이 섞인 정서가 감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고급과정 첫날 밤 잠자는 동안 내 영혼이 본래의 고향 앞에 가까이 다가왔음을 먼저 알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래서 떠들썩한 세상을 벗어나는, 즉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삶의 한 마디가 죽는 것 같은 조짐으로서의 애잔함이 있었던 것이라는 해석이 찾아지는군요. 내 의식은 그러한 영혼의 정서에 당혹해 하고 서글퍼 했던 듯싶습니다.
 
웰컴! 웰컴! 웰컴! 하는 환호소리에 이끌려 이제 웃으며 굿바이! 땡큐!를 외칩니다. 굿바이~! 땡큐! 굿바이~! 땡큐! 굿바이~! 땡큐!!! 땡큐! 땡큐! 땡큐!!!! 그러나, 이러한 체험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에 머물려 하지 않겠습니다. 삶의 매 순간마다에서 오는 그 체험 모두는 이 마음이 지어낸 현상이고 경험일 뿐임을 알기에 그냥 하나의 좋은 체험으로 여기고 지나 보내겠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체험이 오더라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래의 고향이자 태초인 침묵은 지금 여기에서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소리 없이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명
 
참회합니다. 마지막 날 밤 내내 참회하며 비몽사몽 잠 못 이뤘습니다. 고급과정은 묵언 수행이라는 시작 말씀을 무색하게 보냈습니다. 3박 4일간 묵언 수행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참 배움의 기본자세 ⓵ 허심 ⓶ 경청 ⓷ 주제 몰입을 알면서도 기본자세가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며칠을 못 참아 촉새처럼 재잘거리며 보낸 것 깊이깊이 뼈저리게 참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라도 잘못을 알고 회개하게 된 것에 감사드리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연단하심이며 나를 정금으로 만드시려는 은혜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실상이언(實相離言: 진리는 말을 떠나 있다. 침묵하라!)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각골난망입니다. 첫 날부터 거울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나의 목마름을, 갈증을 시원하게 적셔 주시고 채워 주셨습니다.
도덕경의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신심명의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
단막증애 통연명백(但莫憎愛 通然明白)에 대한 설명을 통해 돈망의 위상을 개념 이전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돈망에 대한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적어보고 나누면서 돈망이란 해탈이요 대자유를 누리는 자가 가진 심리 상태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 걸림이 없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심리 상태, 마음 자세, 돈망 산책을 더해 갈수록 지족 명상을 통해 유위 해탈할 수 있으며 공과 유식 그리고 자성을 완전히 이해 통찰하므로 돈망에 이르는 무위 해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작 이전의 마음자리로 회복되면서 모든 장애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처구니없기까지 했습니다. 이제야 一切唯心造의 의미를 아는 것을 넘어가 원효대사님의 해탈을 함께 느껴 봅니다.
그렇지요, 나도 너도 대상도 세상도 사라졌습니다. 경계가 없는 세계를 맛보았습니다. 지금 맛 본 세계가 실재의 세계이며 이전의 세계는 몽환포영로전이라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번뇌 즉 보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통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이 은혜이며 선물이며 더없는 기회였다는 통찰이 오면서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고 경계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作善할 일만 남았습니다. 기꺼이 기뻐하며 어떤 처지 상황 속에서도 평화롭고 고요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현공 박기주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텅 빈 의식 공간에다 잘못된 인식체계를 가지고 산다. 이를 전환시키는 것이 마음공부의 요체다. 그 가운데 으뜸가는 잘못된 인식체계는 ‘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며 사는 일이다. 그 무엇으로 규정하든 그 무엇은 나(그 사물) 자체일 수 없다. 이에 대한 깨달음이 큰스님의 법문을 통해 더욱 명료해지는 시원함이 있어 후련하고 개운했다. 걸림 없는 존재일 수 있는 가치관이 더욱 든든해지고, 그리 사는 나를 상상하며 기뻤다.
내 사는 모습의 스케치
나는 그냥 있음의 절대 좋음을 알고 즐기며 살고 있으니 지극한 기쁨의 누리에서 산다.
나는 살아 있음 자체만으로 넘치는 행복임을 알고 체험하며 산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그저 무심히 해 나갈 뿐, 그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설렘을 즐기며 산다.
가로막는 것은 염체다. 그것인 줄 알고, 의식공간의 변방으로 치워 두어라. 심지어 바람직한 염체조차 선반 위에 얹어 두어라. 비우고 비워서 허공 같은 마음이 되게 하라. 그 좋음을 즐기는 일이 삶의 베이스캠프가 되게 하라. 그러나 비우고만 살 수는 없다. 비울 때 비우고, 채울 때가 되면 채우되 집착 없는 ‘그저 해 나감’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하는 기쁨이 있다.
역경계를 만났을 때 자기를 시험하기 좋은 순간임을 알고 군침이 도는가 하는 질문에 수긍하는 마음이 되어서 뿌듯하다.
식주체 기능은 숙명적으로 대상을 갖게 마련이다. 대상이 되는 이 경을 ‘그냥 있음’으로 삼는 것이 돈망이요, 이것이 제대로 된 ‘깨어 있음’이다. 오직 ‘지금 여기’에 깨어 있어 보자. 내 몸 구석구석이 설렘으로 가득 차는 듯한 환희로움이 있다.
“‘나’에게서 자연 아닌 것을 1㎜, 1g이라도 있으면 가져와 봐라.”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우레처럼 머리를 친다. 자연고공이 온 몸으로 실감된다.
생사란 없다. 다만 변화하는 흐름만이 있을 뿐이다. ‘과정고공(過程故空)’이라고 명상하여 보니 산뜻하게 정리되는 기쁨이 있다.
불교사를 조망하여 보며, 그 속에서 돈망의 위상을 살펴보는 강의가 돈망에 대한 이해를 더욱 뚜렷하게 해주었고, 돈망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여 주었다.
돈망 명상이 거듭될수록 6경이 빛을 잃은 듯 내게는 있으나 없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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