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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2-03-21 오후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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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회 일반과정 수련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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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2일부터 17일까지 펼쳐졌던 232회 일반과정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주옥과 같은 열매를 얻어 갔지만, 그 가운데 여러 사람들이 읽고 다시 감동을 되살리며, 빛나는 개념들을 간추려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몇 편의 소감문을 추려 올립니다. 함께 기쁨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232회 일반과정 소감문
 
새로미 이영숙
 
처음 일반 과정 때 열심히 하느라 했지만 지나고 보니 부분 부분 그 주제에 몰입은 했으나 전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인 ‘안전지대에서 긴장하는 것은 그 정도만큼 미성숙하다’는 촌철로 처음 참석하는 사람들의 긴장감을 완화시킨 후 ‘허심하라, 경청하라, 주제 몰입하라’ 수련3박자를 새기니 수련 기간 내내 수련생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할 중요한 메시지라는 ‘아하’를 하며 수련을 시작하였다. 전체 내용을 나와 우리로 나누어 보았다.
1. 나
인생의 전 과정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1번의 소재는 ‘나’일 것이다. 이 ‘나’를 이제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그냥 살 것이 아니라 지고한 인품으로 만들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라는 identity를 유치원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리고 지고하게 가져야 하는데 산 삶의 흔적인 상이 방해를 한다. 행동명상으로 자연스럽게 부숴버린다.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의 삶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가치관(사고방식) 즉 frame을 잘 가져야 한다. 그 frame은 삶의 9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올바른 frame을 갖기 위하여 ‘이 동네 긍정점 찾기, 칭찬 shower, 1g칭찬 1ton 반응 실습을 통하여 인정욕구, 사랑욕구를 성취시켜 자아실현욕구에 불을 붙인다.
내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감이란 Good feeling이고 지고한 내 삶의 Good feeling은 구원, 해탈의 탁 트인 Good feeling이다. 그 탁 트인 Good feeling인 나는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고 행복의 주체가 나가 아닌 우리가 되고 행복의 목적이 우리 모두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 그런 지고한 탁 트인 Good feeling을 갖기 위해 사물지족명상을 통하여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지족과 감사의 바탕 위에 무한대의 소유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욕구의 주체도 객체도 본래 없다는 초월적인 Good feeling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일물은 구현행복과 지족행복은 이미 누리고 있으니 초월행복을 누리기 위해 죽음명상과 무아관을 통하여 끊임없이 사유하고 적어보고 경험하기를 천지가 툭 트이고 또 트일 때까지 반복할 것이며 천하의 주인임을 한 치의 의심이 없을 때까지 수심할 것이라는 각오를 다진다.
2. 우리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할 일을 짚어본다. 서로간의 화합을 위해서 제시해 주신 거울님의 사랑의 선물인 화3요로 잘 교류하고 화합하여 관계천국을 만들어야 한다. 관계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기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감지하여 촛대 불꽃 형식으로 머리마음과 가슴마음으로 간단, 명료,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것을 받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기반 위에 공감하여 반응하는데 그 원칙에는 받기3박자가 있다.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는 그를 우주의 중심에 두어 귀한 존재로 여기고 나의 전 존재를 기하여 경청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 공감으로 반응한 다음 불꽃의 정서를 잘 감지한 후 찬탄이나 격려를 해 주는데 주의할 점은 5대악성받기이다.(불경청, 한풀이,충고, 일반화받기, 상위비교하기) 이 때 지족명상, 절 명상, 칭찬shower 등을 통하여 사람은 45억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Big Bang 이래 최고의 작품이요 신비이며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인간 존중’심을 자각한다.
화합의 중심에는 교류4덕이 있다. 너와 나 사이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역할을 할 때는 보시요 상대방이 나에게 +역할을 할 때는 감사하며 내가 상대방에게 –역할을 했을 때는 사과하고 상대방이 나에게 –역할을 했을 때는 관용으로 안아주어서 교류를 잘 한다. 그래도 걸리는 것이 있다면 나지사로 해결한다. 화합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느 장소에 임하거나 첫째는 주인 정신으로 임하고 둘째는 좋은 기분과 웃는 얼굴, 수희 공덕을 지을 것이며 행동력으로 양장력을 증장시킨다.
위의 모든 것을 정리하면 거울님의 최대의 걸작인 ‘삶의 5대 원리’가 거룩하게 탄생한다.
천하의 주인인 내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수심 잘 하여 마음천국 이루고
화합 잘 하여 관계천국 이루고
작선 잘 하여 세상천국 이루리라
아하점1. 화3요의 강의를 듣고 상대방을 볼 때는 그 상대의 좋은 점, 부러운 점, 나쁜 점, 무시하고 싶은 점을 분별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실 그 분별들은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filter로 가려진 잘못된 나의 생각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하여 ‘아하’되었다.
아하점2. 주고받기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의 교류라는 것이 아하 되었다. 머리로만 순서를 외우려고 애썼던 내가 그 사람을 가슴으로 안지 않으면 결코 교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 한 명 수용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니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았고 다정하게 느껴짐이 따뜻하였다. 머리에서 내려 가슴으로 들으니 사랑이 잉태되는 것이 감지되었다. 앞사람의 말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함께 내려져서 편안하게 그 사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고 잘 받아지기도 했다.
아하점3. 초월명상 강의 때 지족의 정도를 그림으로 설명해 주셨다. 지족 정도가 100을 넘어야 무한대로 초월할 수 있지 99일지라도 무상이 되고 모래성이 될 수 있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드는 아하가 되었다. 감사점 100건, 지족점 100건을 찾아보고 수심산책 내레이션 등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지혜의 눈 뜨게 하리라. 그리하여 보살행의 도구요 밑거름이 되리라. 나의 스승님인 거울님께 감사함이 사무친다. 같이 했던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곡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육이란 게 다 그런 거겠지 하고 부담 없이 출발했다. 순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해서 남해고속도로와 대진고속도를 거쳐 88고속도로로 들어서니까 함양이라는 이정표 때문에 간신히 행복마을이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속도로 들어설 때부터 계속 사무실에서 휴대폰이 함양까지 계속 울리더니 교육을 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여러분의 추천과 후원 속에 왔는데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행복마을 표석을 발견하고는 휴대폰 카메라로 한 커트해서 아내에게 기분 좋게 메시지 날리고 본 건물 현관에 접어들어 인사드리고 접수하고 나니 휴대폰 맡기세요. 오 마이 갓. 과연 5박6일을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다.
숙소 방 찬탄을 배정받고 들어가니 같이 생활할 도반들이 와 계셔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긴장감 속에 5요실에 모여 현공 원장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는데 별칭 사용, 긴장, 보리밥촌, 허심, 맹구우목 이어서 왜 왔냐? 등 사전에도 없는 말씀을 하시고 지도자님 인사 소개와 각 반으로 흩어져서 15분의 소개를 하시는데 태어나서 처음 보시지만 여기까지 오신 연유나 자기 소개하시는데 모두가 다 자신 있고 당당하시고 참 토론을 하는 형식의 교육은 익숙지 않고 어울려 본 적이 없는 경우라 속이 답답하고 어떻게 여기서 살아남느냐 하는 그 야말로 번뇌가 왔다 갔다 하기만 한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라는 용타 큰스님의 말씀이 가슴을 아주 답답하게 만드셨다. 일상생활이 늘 그러했고 무엇이 목적이거나 무엇을 위해 한다는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격인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이 아무런 가치나 역할 없이 그렇게 사는 삶이였는데 5대 삶의 원리를 설명 듣고는 이거다 싶어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작년에 큰스님 법문 듣고 마음다스리기 책을 세 번 보면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나열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희미하게나마 약간의 문이 열리는 듯 했다.
취침 잠자리에 들어도 큰스님의 목소리만 귓가를 맴돌고 왜? 왜? 왜? 하는 외침소리와 여기를 왜 왔는가 하는 갈등이 계속 일어나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서 뒤척이다 아침 목탁소리를 듣고 108배를 하고 나니 아직도 정신은 혼미하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전화해서 상황 설명하고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전화는 안 되니까 그리 알고 휴대폰을 직원 앞으로 돌려놓기로 하고 교육에 몰입하기로 작정을 했다.
둘째 날 화삼요, 받기3박자 등 이론 교육을 끝내고 반 교육을 하는데 용어도 어렵고 특히 앉아있는 자세와 마주보고 집중하는 토론식 교육 온 몸이 열이 나고…. 왜 나만 이럴까? 왜 내가 여기 와야 해? 등 온갖 잡념이 나를 불러일으킨다.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르고 교육이 끝났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내 방식하고는 거리가 먼데 자주 나의 아집이 불만으로 가득하다.
저녁식사 후 용타 큰스님의 어떠하십니까? 1g→1ton의 원리, 상대방을 인정하라 등 쩌렁쩌렁하신, 열강하신 내용이 내 마음을 뒤집기 시작했다. 아하! 이거구나! 내 생각을 버리고 교육에 몰입하고 빨리 내용을 파악해야 계속 연결되는 교육에서 살아남을 듯 하는 뭔가의 자신감이 생겨났다. 왜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가? 내가 지금까지 행해왔던 모든 행동들 그리고 내 양심을 속이고 살았던 그 모든 것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의 과정이 과연 무엇이 또 기다릴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3일째 수요일 원경 선생님께서 지도하신 교류4덕 보시, 감사, 사과, 관용 과연 내가 살아왔던 방식인가 하고 비교하지만 모두가 허식이고 대가를 바라는 바가 커서 마음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과연 불자로써 나의 마음을 거슬리거나 상처를 준 사실이 내 마음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반 토론회에서 모두가 당당하게 표현하시는 것 보고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자 빨리 나서라 나서라 하는 마음이 요동을 친다.
열매 선생님과 원경 선생님의 지도 그리고 방원 도반님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고맙고 이렇게 주저앉을 수 없었다.
남의 일은 잘 하면서 왜 내 일을 남에게 미루고 나서지 않는가 하는 나를 불러 세워 일으키는 힘이 계속 억압을 해서 무조건 나서라 무조건 나서자 이와 망가질 거 야무지게 제대로 한번 표현해 보자 하는 자심감이 일어났다.
오후에는 도림 선생님의 장력 강의. 과연 내가 주인공인데 하는 자신감을 심어 준 내용이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덕담 아! 이것은 내성적인 내가 과연 어떻게 표현을 할까 앞이 캄캄하다. 남들은 잘 하시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이야 하는 절규 소리가 가슴에서 들려온다. 적어서라도 표현하니까 마음이 후련하고 앞으로는 무조건 나서야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게 느껴졌다.
휴대폰 없는 세상 너무나 좋습니다. 이런 세상도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욕하고 서운하고 당하고 헐뜯고…. 이곳이 극락이고 천국이다. 공기도 좋고 물소리도 좋고 이제사 주위 환경을 알아보고 자연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녁 강의 짠! 현공 선생님의 주재 아래 행동명상. 웃음, 개 모습, 중앙시장, 야단법석 춤판, 무개념 스피치, 개싸움, 울기, 욕하기 와! 감동이었다. 상을 털어라,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 지금까지는 나만을 위한 삶을 그리고 내 가족들만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더욱 더 봉사하고, 베풀고, 보시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조정해서 세상을 살았는데 눈물을 쏟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고 내가 변하면 세상은 모두 보살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하는 마음과 우리 가족들에 미안한 감이 북받쳐 올라오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평소에 느끼지 못한 자신감이 생겨 가장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오신채 없는 식사와 동사섭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때문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 거듭되고 여기 오신 도반님들 모두가 천사가 따로 없네요.
항상 인사와 웃음으로 잘 대해 주시고 말씀 안 하셔도 다 압니다. 특히 찬탄 방에 같이 한 인자하신 연암님, 미남이신 정안님, 정적인 일월님, 정다운 아우 같은 희망님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형제보다도 더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너무나 고맙습니다.
아예 사무실과 집에 연락을 안 하기 위해 휴대폰을 끈 것이 또한 행복만땅이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휴대폰이 신인 양 모시고 다닌 것이 참 우스꽝스럽습니다. 부모님을 이렇게 모셨으면 대통령 표창 몇 개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차선인지 항상 깨어있는 생활을 하리라 저는 다짐해 봅니다.
넷째 날 용타 큰스님의 수심, 행불행, 행복 공식, 미래 완료 비율. 아 철학이 왜 수학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구현행복론, 지족행복론, 초월행복론 등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주전자에 대한 고마움 등 과연 내가 더 큰 기법을 가지고 움직인들 이런 내용을 알 길이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용타 큰스님의 소욕지족 설법, 사람에 대한 지족명상, 상대가 부처다. 고개를 숙인다. 이기주의…. 내성적인 내가 과연 이 길을 피할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으면 확실하게 즐겨라. 좋다, 확실하게 망가져 보자. 어디 가서 이런 속내를 드러낼 수 있을까. 발표를 하고 나니까 너무나 자신감이 생겼고 환희가 생각지도 못한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감동하고 교육에 완전히 몰입하면서 희열을 체험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간식과 식사 후 후식 등 그렇지 않아도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인사 올립니다.
금요일 다섯째 날 용타 큰스님의 일체에 감사하라, ~뿐, 나와는 상관없다. 나지사 분노의 명상 기법에 참 행할 일이 어렵구나! 반복, 반복 적용 기법 너무나 생생합니다. 부족하지만 실천하고 꼭 행하겠습니다.
오후 도안 선생님의 죽음명상. 아, 과연 당장 죽을 수 있는가? 어렵다. 너무 어렵다. 죽자니 정리가 안 된 것 같고 안 죽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을 것 같고 마음이 뒤숭숭하기만 하다. 과연 죽는 날이 군제대하는 날 같이 정해져 있다면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살 텐데…. 의문투성이다.
9.11 테러 사건 과연 비행기 그 곳에서 가신 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왜 그 분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 가야만 했을까? 등 아하 죽고 사는 게 선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 용타 큰스님께서 설하신 공사상 너무나도 기쁜 설법이었다. 경전 공부에서도 항상 강조하신 것을 들었지만 의문은 항상 풀리지 않았다.
자연고공법 6가지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자연이기에 무아명상을 이해할 수 있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특히 저녁에 큰스님의 물 컵 강의는 내가 23년간 행한 모든 일이 이 물 컵에 있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큰스님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고 어디로라도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불덩이가 가슴에서 솟구쳐서 사과, 감사, 관용 촛불 의식에 당당하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부모님, 내 가족, 저의 직원들, 내 이웃 등 모두를 부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일체유심조! 대선사의 말씀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 마음을 속이는 우를 범했습니다. 큰스님께서 강조하신 절대 맑은 물이 되어 지금까지 입은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언젠가는 마음의 출가를 해야지 하는 약속이 지켜져서 너무 뿌듯하고 너무나 행복만땅입니다. 동사섭에 와서 좋은 시설과 환경 그리고 맑은 공기와 청정한 자연 속에 가장 더러운 저의 마음의 찌꺼기와 묵은 때까지도 모두 내려놓은 것과 탐진치로 쌓인 업보를 여기에 모두 내려놓고 간 것은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며 이제는 당당하게 출가하겠습니다. 모든 이를 부처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용타 큰스님과 여기 동사섭에서 수고하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식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께 깊은 찬탄 조심스럽게 드리며 용기를 내어 행복마을에 오셔서 진솔한 모습 보여주신 것에 대해 한 분 한 분께 찬탄 드리며, 저의 언행이나 행동으로 인해 혹여나 불쾌하거나 마음 상하셨다면 지금까지 같이한 도반님들께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한 번 속죄하고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하나이다. 5박6일의 시간이 번개 치는 시간과 같은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할 것을 정말 후회됩니다. 그리고 동사섭이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조그마한 씨앗이 되고 널리 알리겠으며, 저의 삶의 멘토로 삼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바다
 
하루를 돌아보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고통과 아픔을 넘나들면 찰나찰나 변화하는 형체 없는 마음의 근원을 찾아 끝없는 무상을 느끼며 부처님 따라 나선 길에서 수행이라는 것에 내 인생의 반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품 안에 살면서도 온전히 채울 수 없는 허허로움은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나는 우주하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 소중하고 신비한 무한 가능성을 가진 혼이 있다.
·나는 천재예술가 천만 명이 동원되어도 빚어낼 수 없는 대예술품 몸이 있다.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고 신비롭고 무한 가능성을 가진 혼이 있는 대예술품인 나를 일깨워 줌에 감사드립니다.
출가의 길에서 참선 공부해도 통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선방으로 바삐 쫓아다니다 어느 순간에 나의 인생의 회향을 고뇌하다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 한 생을 마무리하고 떠나시는 분들의 연원한 이별 길에 작은 힘으로라도 남고자 들어간 정토마을 호스피스에서 12개월째, 입으로는 무수히 불생불멸을 염불하고 ‘옴도 감도 없다’를 되뇌면서도 그동안 한 줌 재 되어 돌아가는 소중한 분들을 배웅하며 이승의 삶을 접고 소중한 분들을 배웅하며 이승의 삶을 접고 소중한 이들 곁을 떠나야하는 그들의 아픔의 죽음의 길에서 많은 눈물 흘리며 가슴앓이 하는 시간 안에서 아름다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서 가슴이 떠나는 행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팍팍한 마음 안고 온 이 곳 행복마을에서 이 우주에서 참으로 소중하고 귀하게 선택받은 나의 스승이신 크신 부처님으로 선택받아 큰스님의 자신을 온전히 낮추고 또 낮추시는 지극 정성어림 삼배를 받으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감로수 같은 큰스님의 축원의 말씀 들으며 내가 무슨 복으로 하는 마음 끝없이 밀려왔고 저의 심장은 쿵쾅거렸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해와 같은 큰스님의 축원 말씀 가슴에 새길 때 온전한 사랑으로 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는 것에 적응 못해 죽음이라는 가뭄으로 갈라진 메마른 대지처럼 팍팍했던 땅 같은 저의 마음 구석구석 생명의 물이 스며들며 치유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참으로 따뜻한 사랑으로 그들을 더 많이 안아 주고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영원한 길에 웃으며, 미소 지으며 배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저녁 수업 시작 전 몸 푸는 지압(안마) 시간에 큰스님께서 어느 사이 관세음보살님으로 나투시어 손수 그 손으로 저의 어깨, 등을 두드려 주시며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해 주실 때 또 한 번 내가 “무슨 복으로 이런 과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가!”하는 마음에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큰스님! “건강하고 행복하고 소원성취하고 행복한 보살행을 세상 구석구석에 실천하며 전하라.”는 말씀 명심,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큰스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품 안에서 건강 또 건강, 건강하시고 크신 부처님 안에서 행복, 또 행복, 행복으로 넘치소서.
이 자리에 존재하게 해 준 높으신 부처님, 크신 은사 스님, 소중한 부모님, 오늘까지 함께 해 준 귀한 도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동사섭에 보내 준 고산 거사님 내외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5요: 천하의 소중한 주인인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수심하여 마음 극락 만들고
화합하여 관계 극락 만들고
우주의 주인인 소중한 나를 일깨워 줌에 감사합니다.
 
·수심의 정의? 행복론이다.
-행복에 도움 되는 것을 시설하고 행복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라.
-행복의 키는 생각이며 이 세상 최고의 원수도 생각이다.
-한 생각 바로 하면 극락이요, 한 생각 잘 못하면 지옥이다.
 
·지족행복론: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나지사명상: 나의 편에서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어 감사합니다.
 
·죽음명상: 무아를 깨닫는 것이다.
본래 죽음은 없다. 불생불멸이다.
이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의 흐름일 뿐이다.
나는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감을 깊이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큰, 더 살아있는 가슴으로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하고 떠나 보내주지 못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맑은 물 붓기 컵 명상: 선, 악은 그 자체가 선, 악은 없다.
우리 모두는 본래 불성을 가진 부처이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가리어진 불성을 찾기보다 행복한 보살행을 실천하는 맑은 물을 끝없이 부음으로 인해 나는 부처임을 거듭거듭 확인하겠습니다.
소욕지족 안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안에서 불퇴전의 길로 부처님 제자의 길 가겠습니다.
 
온유천사
 
상담공부를 하면서 내 안의 상처를 접하고, 개인 상담에서 만난 소장님께 살짝 반했다. 그런데 그 멋진 소장님은 동사섭에 홀라당 반해 있었다. 4개월 가까이 내 상처에 온전히 공감해 주고, 받아 준 그 분을 홀라당 반하게 한 동사섭!
“도대체 뭘까?”라는 궁금증과 “그 멋진 분이 반한 동사섭이라면 분명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거야”라는 믿음 하나로 무작정 행복마을을 향했다.
도착 첫 말! 첫 만남의 동사섭 행복마을(화성인) 사람들의 해맑은 표정들이 남다르다. 기대만땅이다.
첫 강의-거울님의 “우리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고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강의에서는 그동안 가장 소중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가를 돌아보게 했고 나를 사랑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확연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나부터 행복해야 함을 알고…. 수련 내내 오요 춤을 열심히 추면서 나의 행복, 우리의 행복을 알아가고 키워 간다.
둘째 날의 ‘화합’ 강의
내 마음이 하나인 줄 알았는데 겉마음과 속마음이 있단다. 그래 나는 속마음이 아닌 겉마음으로 사느라 그동안 많이 힘들었음이 느껴졌다. 가슴으로, 느낌으로 살아야겠다.
받기삼박자를 접하면서 경청과 공감, 감탄과 찬사의 공식을 따라 하니 마음에서 기쁘다고 작은 울림을 보낸다. 그동안 5대 악성으로 살았음을 알아차린 시간이었다.
셋째 날 교류사덕을 만났다.
인간관계가 모를 땐 복잡하지만 알면 간단하다는 진리를 만났다. 더 많이 보시하고 감사하며 사과와 관용의 덕을 일상 안에서 더 많이 실천해 봐야겠다.
실습하는 동안 그동안 사랑해 주지 못한 나에게 자자청을 청했다. 마음이 용서하겠다고 따뜻이 답해준다.
밤 강의에서 행동명상.
평소 나와는 너무 먼 당신의 장이었다. 웃음의 달인이 나지만 가가대소의 어색함, 개장, 중앙시장 놀이~갈수록 태산이다. 너무 어렵다. 그런데 춤판에서의 반전이 있었다. 어정쩡하고 뻘쭘히 서 있던 나에게 현공님의 손 내밀어 줌은 반갑고 고마운 수호천사였다. 드디어 행동명상에 날개를 달았다. 신나게 놀았다. 그동안 나의 상이 깨어지는 기적의 순간이다.
‘아하 이 느낌이구나~나에게 해방된다는 것이…. 눈물도 실컷 흘렸다. 후련하다.
넷째 날 거울님의 수심 강의
욕구의 주체, 객체가 원래 없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이 이렇게 많았음이 감동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 실습에서의 주전자 명상은 그동안 물 담는 그릇으로만 생각했던 커피 물 끓이는 정도로 생각했던 주전자에서 이렇게 많은 감사와 칭찬거리가 있음이 또 다시 놀람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늘 제자리에서 제 몫을 다해주는 모든 것들에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 사랑하겠다는 마음의 울림을 듣는다.
칭찬샤워의 장, 나의 장점 찾기의 장!
너무 행복하고 좋다. 나에게 칭찬을 쏟아부어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과 감탄을 온 마음으로 받았다. 조금은 어색하고 낯선 나의 장점들을 하나하나 드러낼 때 환호해 주고, 진짜라는 강한 긍정의 메시지를 받으며… 지금의 내가 장점으로 똘똘 뭉쳐진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재발견한다! 흡족하고 행복하다.
절 명상을 만나다.
절 명상은 소중함을… 나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며 참 많이도 울었다.
나지사명상~
~구나 ~겠지 ~그만하니 감사하다. 그동안 얼마나 내 중심으로 살았는지 알아차린다. 너의 입장으로… 너의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 무조건적인 수용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순간이었고 천국으로 향하는 장이었다.
죽음명상
시작의 순간부터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강한 저항이 온 마음에 인다. 더 살아서 누리고 싶은 것들이 많다고…. 끝날 때까지 앞의 볼펜을 치우지 못했다. 그런데 10년의 시간을 더 주는 보시를 받았다. 감사로 받으며 돌아가면 행해야 할 감사, 용서, 사랑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마음이 바빠진다. 찬찬히 바빠진 마음을 가라앉히며 삶의 우선순위를 묵상한다.
무아명상
자연일 뿐인 것을 나라고 박박 우기며, 힘겹게 살아온 일물을 본다. 짝꿍이 된 도안님의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단호한 질문에 “환경은 내가 아닙니다.”를 답하며 그 어디에도 내가 없음을 그 무엇도 내가 아님을 텅 빈 의식을 느끼며 가볍다. 새털처럼 가볍다. 지금의 이 경이로움이 돌아가서도 계속되기를… 기원하는 순간 이 또한 집착이라고 마음이 소리한다. 공부 잘 한 덕이다.
동사섭의 가장 감동인 장, 맑은 물 명상
본래 맑은 물이었던 나! 수많은 상처들로 인해 혼탁해진 나! 사랑과 감사, 위로와 지지로 다시 정화된 맑은 물로의 나! 맑은 물로 ‘앙~’하고 새로 태어난 기쁨의 나! 이 기쁨으로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하리라. 이 행복의 장이 되어준 동사섭~ 고맙고 사랑합니다. 행복마을 화성인들 사랑합니다. 사랑으로 함께 해 준 도반님들 사랑합니다.
소감문을 마치며 무척 아쉽다! 나의 감동은 100배 더인디~이 감동을 온전히 전하는 소감문을 쓰기 위해 재수를 해야 할 것 같다. 고맙습니다.
 
여유만땅 조영심
눈 먼 거북이 여유만땅이가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다 동사섭이라는 최고의 가치관 나무 도막을 만났다. 이젠 쏟아지는 보배비를 받기 위해 담아가는 과정이면 족하다.
<주제 강의>
·어차피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 낼, 정의해 낼 완벽한 어떤 도구도 명제도 없다. 게다가 그 한계성마저도 유한하다. 자! 그럼 무언가로 불가능한 이 일물의 존재를 규정할 것인가? 우주의 중심으로 이 일물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한다. 이 일물의 드넓은 아이덴티티에 후련하고, 우주의 중심에 안정감마저 느껴진다. 우주의 중심인 내가 나와 동일한 우주의 중심인 너와 우리를 바라보며 행복을 기원한다. 흐뭇하다. 배경 우주도 그려졌으니 그 위엔 행복놀이로 그림 그리면 된다. 무슨 그림이든 행복프레임이면 온통 행복그림.
·행복의 기초 논지를 통해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행복은 좋은 느낌이다. 인생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좋은 느낌이다.
·느낌에 귀 기울이는 것이 실존적 사랑이다. 생각, 주장, 의견, 이념을 24시간 교류해도 개운하지 않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0.24초만 나눠도 선명하다. 우리 모두는 느낌이라는 끈으로 둘도 넷도 여섯도 무한대도 하나로 묶일 수 있다. 느낌을 공유하는 순간 우리가 된다. 생각으로는 둘 넷 여섯 여덟 무한대로 나뉘고 갈라진다. 너와 나가 만들어진다.
·모든 인지 과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느낌을 수반한다. 세포 개수만큼 많은 생각들과 그 사이에 묻혔던 느낌들 발견하면 된다. 느낌은 살아있음이다. 느낌에 눈 떠 생생해진 이 일물을 생각하니 풍성해지고 환희롭다.
 
<화합>
·고통과 전쟁으로 지옥을 선택할 것인가 기쁨과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화합은 남을 위하기 전이 이미 이 일물의 내면과 외면을 위한 행복이라는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인다.
·조원들과 주고받기 교류를 한다. 조원들의 촛대 안에 드러나지 않았던 숨어있는 불꽃을 따라가 본다. 답답했겠구나, 서운했겠구나, 억울했겠구나. 궁극적으로 주고받아야 할 것은 느낌이라 했다. 느낌을 잡아보니 조원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느낌! 그것이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고 그 느낌을 알아준다는 것이 존중이구나.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를 통해 그 사람의 느낌이 온다는 것이 그 존재가 온다는 싯구에 아하! 된다.
·인정욕과 사랑욕을 구걸하지 않겠다. 자체 생산, 자가 발전하는 인정 사랑 공장장이 되겠다. 초과 생산하여 나누고 싶다. 동사섭을 만난 내 스스로가 뿌듯하고 사랑스럽다. 잘했다. 대견하다. 잘하고 있다*∞
·1g1t: 보이는 덩어리 말고도 먼지 티끌 같은 칭찬도 발견하고 표현하겠다. 상대방의 장점에 돋보기를 들이대자. 그리고 저지르자.
 
<교류4덕>
·보시는 깨달음을 가는 지름길이다. 주었다는 생각 말고 그로 인한 기쁨은 이 일물의 마음을 맑고 밝게 밝힐 것이다.
·감사해서 행복하다. 이 일물의 힘으로 이룬 것 어느 것 하나 없으니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 없다. 당연한 것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을 항상 감사하자.
·존재 자체를 사과하는 마음이 된다면 그 무엇이든 그대로 수용될 것이다. 만났었던, 만나고 있는, 만날 사람들에게 이 존재로 인한 어떠한 불편함에 사과드린다.
·장력: 이 일물이 머무는 장소가 이 일물과 끊임없이 교류한다. 활불로서 사·언·행 다짐해 본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옆방에 부처님 계시듯 신경 써 보리라. 아직은 조금 부담스럽다.
·행동명상: 개싸움을 했다. 후련했다. 개 역할에 더 충실하고 싶어졌다. 개가 되고 났더니 지금의 사람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
 
<수심>
·나와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은 생각이다. 성공과 실패도 모두 생각의 산물이다. 사실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맡겨두지 않겠다. 한 생각, 행복 쪽으로 사다리를 펼칠 것이다.
·사물명상: 도안님의 주전자 명상은 감동적이었다. 주전자 하나로도 도통할 수 있고 엄청난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구나. 온 세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이것인가 싶다.
·사람명상: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면서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이 일물의 존재를 바치는 기분으로 절하고 나니 존경심이 높아진다. 이 일물의 편안함과 연체동물처럼 부드러워짐도 느껴진다.
·자가지족명상: 이 동네 긍정점 3,003가지. 이미 가진 것뿐만 아니라 될 모습도 칭찬했다. 난 이미 충분하다. 그 모습을 그렸으니, 이 일물 발견해 나가며 지족할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초월명상>
있다-좋다-싶다의 귀결점은 고통. 분명한 논리구조가 명쾌하다.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고통 발생의 근원이 있다. 휴~다행이다. 지족으로도 커버되지 않는 여집합도 초월이라는 것으로 풍전등화를 피할 수 있다. 유위를 살고 누리면서 무위에 뿌리 둠을 인식한다. 엄마의 품처럼 푸근한 무위가 있다니 안심이다.
 
<나지사명상>
객관적으로 구나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겠지하고 어찌됐든 이만하면 감사다. 그러한 모든 일들 결국 감사뿐이로다.
 
<죽음명상>
흙이 바위가 되고 바위가 다시 흙이 되듯이 이 일물의 삶과 죽음도 자연과정이다. 죽음명상에 접하니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발견된다. 흔적을 남기고 싶은 집착이 발견된다. 했다라는 상이 있었구나. 죽음명상 할 때마다 지워진 듯 다시 떠오르는 욕구들. 전환의 방법을 사유하며 자유로움을 느끼고 이 일물의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면 된다. 소중한 것이 명확히 드러나서 좋고 전환할 욕구들이 떠올라 할 일이 생겨서 좋다.
 
<비아명상>
본래 자아는 없는 법이니 본래 자아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본래 없는 내가 할 일은 ‘그냥 있음’이다. 그 곳에서 무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없는 내가 그냥 있으면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음, 그것이다. 자연에서 온 신생아에게 ‘나’라고 이름 붙인다. 자연으로 돌아가니 공이 된다. 환경, 몸, 혼, 식주체, 순수의식, 묘유는 그것들일뿐 내가 아니다. 이원화되니 주체 없음이 좀 더 선명하게 받아들여지고 편안해진다. 모두 그것으로 두면 정말 쉴 수 있겠다 싶다. 길면 겨우 120년. 지수화풍, 수상행식의 일시적인 조합물인 이 일물 흩어짐으로 확장됨을 느낀다. 후련하다.
 
<맑은 물 붓기>
맑은 물 붓기의 오류 ‘모두 검게 변했다. 잉크 물과 싸우자.’하는 생각들이다. 바른 견해를 접하니 다행이다. 이 일물 동사섭에서 말하는 돈망, 무아, 엔카운터, 나지사, 교류사덕, 감사 표현 모두가 맑은 물 붓기 작업이라고 하니 원래 청정의 자아가 되는 길이 보여 행복했다.
 
이 일물, 잘 차려진 진수성찬의 동사섭 밥상을 받았다. 꼭꼭 씹어 먹고 음미하다 보면 이 일물의 몸도 마음도 맑아지겠지. 맑은 컵 아이덴티티로 행복한 이 일물,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무한 우주에 맑은 물 부어주시는 큰스님 감사드립니다. 가야 할 길을 구체적으로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지도자님들 감사합니다. 5박6일 같이 해 주신 조원님들, 존재로서 감사드립니다. 행복마을의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진산 강정수
 
같이 공부한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입소하여 교육 받기도 힘든 상황인데 위로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사섭을 참가하게 된 이유가 두 달 전 잘못된 나의 행동으로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고 나도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는데 우리 제수씨와 딸의 권유로 동사섭 교육에 참가하였지만 처음 교육시간에는 정신을 놓고 있어 교육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잡생각만 들어 집중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울님의 강의에서 나라는 개념과 행복의 개념을 들었을 때 스스로가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수업에 다소나마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행복이라는 게 지금까지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잣대를 대고 살았는데 진정한 행복은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른 feeling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행동명상을 통하여 직접 몸으로 체험하니 지금까지의 우울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이 방법을 힘들 때 계속 쓰면 평온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절 명상 소감을 통해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존경과 중요시 여기는 마음으로 절을 해 보니 내 자신에게도 인간의 소중함을 통해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음이 생겨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구나, 겠지, 감사 방법을 통해 그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아있던 지나온 작은 억울함의 분노를 시간을 통해 정리하고 마음속에 편한 상태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자기 마음을 편안하기 위해 상대방 입장도 이해하기 쉽게 활용 가능한 것 같습니다. 죽음의 명상과 무아의 명상을 통해 어지러운 내 마음을 정리하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기술로서 지속적으로 실생활에서 반복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맑은 물 붓기 하면서 그동안 아내와 자식에게 잘못했던 무관심과 고집 욕심으로 희생된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는 소중한 사람으로서 존중과 사랑으로 가족과 생활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이번 동사섭 교육을 통해 그동안 잃었던 감성을 찾아 느끼며 사랑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고 꼭 돌아가서 실천하는 생활이 되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카페지기 송은경
 
우리는, 나는 늘 행복해지기 위해, 행복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한 방편으로 수다도 떨어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책도 읽고,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강의도 들어보고…. 그 때마다 순간순간 환해짐이 있었지만 그 자체가 key는 되어 주지 못했다. 처음 동사섭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회사에서 듣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먼저 다녀오신 말씀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단다. 난 흔히 TV에서 보았듯 열렬한 행복 강의가 이루어질까라고 상상했는데 내가 체험한 일주일은 그 이상이었다.
둘째 날 아침 목탁소리에 맞춰 자리를 잡고 108배라는 절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볼 때 저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고 늘 생각했는데 반복적으로 하는 동작 속에서, 숨을 고르면서, 묘한 집중력과 상쾌함이 일기 시작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할 때마다 내가 정성스러워지는 것 같고 맑아지는 것 같고, 함께 나오는 말씀 소리를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고 잘 살아야지라는 다짐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환하게 했다. 이거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위해 감사의 마음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절 의식…. 난 집에 가서도 하리라 결심했다.
언젠가 출산 전 행복학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가 아니라 나만의 행복, 내 자식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에 타인의 지식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왕따 같은 문제들이 생긴다고 피력했다. 그 때도 ‘맞아’라고 끄덕였는데 이곳에서 삶의 5대 원리를 들으면서, 진심으로 나의 소중함을 알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수심, 화합, 작선한다면 가깝게는 내 주변, 내 회사, 우리나라, 세계가 어우러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기쁜 깨달음이었다.
우리는 화합을 잘 하기 위해 주고, 받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문득 머리를 누구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소소하게 파도치는 타인과의 갈등의 원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주고받기…. 내가 잘 주지 못하고 내가 잘 받지 못했기에 서로 오해를 빚어내고, 마음의 생채기를 내고, 벽을 만들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돌아가면 그동안 주고받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껄끄러웠던 모든 것을 털어 내리라 마음먹었다. 너와 내가 주고받기를 잘못 했음을 알리고 나 먼저 사과하리라!
1g⇆1t의 원리를 배웠다.
사과 편지로 인해 더 이상의 살생을 막고 자수를 하게 했다는 미국의 사례는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가 그런 위력이 있다니…. 늘 진심어린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사과, 용서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가슴 속 깊이 진심을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성했다.
사과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돌아가면 용기 내어 진심으로 사과의 손을 내밀어야겠다. 또한 우연히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처럼 별 생각 없이 던지게 되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명심했다.
지족행복론의 첫걸음으로 주전자 명상을 해 보았다. 주전자가 왜 감사한지 보려고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쓸 수 있었다. 놀라웠다. 감사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 오만하게도 난 그동안 참 긍정적이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풀, 예쁜 돌, 하늘, 햇빛, 바람…. 이런 것들에 난 늘 감사하고 있었기에…. 그런데 중요한 건, 하다못해 사물 하나도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이렇게 많은데 하물며 고귀한 생명 존재인 나 자신에 대한 고마움,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해 무한히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마침 인간이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실천해 보는 절 명상 시간이 되었다. 큰스님께서 바다님께 마음을 다해 덕담해 주시고 삼배를 올리시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리고 나도 절을 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 온전히 존중하는 마음으로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도 온전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벅찼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감정인가! 나는 결심했다.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날 이 의식을 꼭 해 주리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 속에서 행복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 나지사 명상을 해 보았다. 내 머리 속에는 아침에 큰스님에게 들은 “시어머니 감사합니다.”에 대한 내용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미 다 감정 정리를 했다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 상황을 써보면서 나는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건 난 이미 어느 정도 힘든 일에 대해서는 나지사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제 발표했던 상황도 3년 전에 그렇게 정리했었는데…. 마음의 앙금이 컸던 일도 한두 번으로 안 되나 보다. 반복해서 주문을 외워야 하나? 앞으로 작은 상황에서도 보다 폭넓게 적용하며 많은 연습을 해봐야겠다.
죽음명상 시간이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마음속으로 되 내며 눈을 감았다. 상상해 보라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니 상상하기 싫었다. 다시 집중해서 내가 죽으면 하고 떠올려 봤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아들을 못 본다는 것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의 미래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함께하고 싶은 추억이, 행복해지고 싶은 시간이 너무도 많은데 라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집착 때문이었다. 그래도 죽을 수밖에 없다면? 여러 가지 편하게 마음먹을 수 있는 이유들을 찾았지만 난 결국 죽지 못했다.
이어진 초월명상.
나의 영혼이 맑지 못한 걸까? 무아, 비아 모두 내겐 어려웠다. 아무리 집중해 보아도 비워지는 그 느낌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시작과 끝 그리고 인생 전 과정이 자연이라는데…. 아무래도 초월을 만나기까지는 긴 여행을 해야 할 것 같다.
동사섭 과정을 통해 난 그동안 행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희미하게 알고 있는 내용들을 각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든 허물을 벗고 나를 드러냄으로써 상대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벼워짐을 느꼈으며, 베스트 프렌드라고 수년간 공공연하게 얘기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직장 동료의 아픔을 마주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나 또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 난소암 투병으로 힘들었던 1년, 결혼 후 불임클리닉을 다니면서 느꼈던 외로운 시간들, 시어머니와의 갈등. 그러나 난 그것들을 이겨내고 털어내는 방법들을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홀로 방에서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코믹영화를 보며 미친 듯이 웃기도 하고…. 내 마음의 편화를 위한 나지사법도 쓰고…. 동사섭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인함과 긍정력이 있는 나를 발견했고 이곳에서 배운 행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보다 체득하여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나의 +에너지를 전파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백련
 
모 강의처에서 큰스님을 처음 뵙고 첫 강의를 듣게 되었다. 보는 순간 풍겨 나오는 편안함, 숭고함,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닮고 싶었다. 아, 그런데 법문 한 말씀,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혀(으흠, 인과관, 지족관) 기쁨으로 충만하게 했다.
그러던 12일 아침 일찍 동사섭 수련회 가자고 갑자기 형님의 전화가 왔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지? 어딘지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 나섰다. 역시 프로그램 내용은 알 길 없고 그날그날 진행에 좀 부담감 느끼며 따랐다.
첫 날 역시 큰스님 강의에 내 가치관을 완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 이 우주에서 가장 귀한 ‘나’가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행복은 가장 “좋은 느낌”이란다. 느낌이 지극히 좋아서 탁 트인 상태가 해탈, 열반, 구원이란다. 나의 삶의 목적은 늘 해탈, 열반,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해탈, 열반이 ‘좋은 느낌’이라니. 아하, 내 삶의 목적을 지금 이곳에서 5요춤을 추면서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성취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받기3박자. 낯선 사람들과 둥글게 앉아 받기3박자를 하루 종일 하니 왠지 부담스런 시간이었다. 상대의 맘을 이해 못하니 자연스런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늘 낯선 사람과 만나지만 정말 그들이 되어 그들의 맘을 이해하고 경청했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그가 되어 함께 세심하게 그들의 고민을 보듬어 주리라.
교류4덕. 칭찬하는 말에 인색한 나. 매사에 감사함이 우주에 가득한데도 이를 느끼지 못하고 표현 못하고 살아왔다. 또 불자들에게 보시란 말 자주하면서도 실천 못했던 나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이 우주 공간에 존재함부터 감사하자. 그리고 나부터 행복의 에너지를 충만 시키고 그 에너지를 나와 인연 닿는 이에게 전하여 행복의 바라도 함께 가련다.
칭찬샤워. 모두가 좋은 말들만 골라 해주니 내 자신을 그렇지 못한 것 같은데 샤워하고 나온 듯 기분이 맑고 산뜻하고 조금은 들뜬 기분이었다. 1g의 칭찬이 100t의 출력이 나옴을 정말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 삶 곳곳에서 실천해 보자.
행동명상. 쌓였던 어떤 찌꺼기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시원함 느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라는 상을 내려놓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수많은 ‘상’들이 떨어지는 날은 언제가 될는지? 공의 도리를 깨는 그 때(공 속에서 놀 때)가 될 것인지 나도 궁금하다. 씨앗을 심었으니 언젠가 열매가 열리고 수확을 거두겠지.
수심. 수행자로 ‘마음 닦음’이란 말 달고 살았지만 왜 닦고 있었는지? 깨달음.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심한다고 행각하며 살아왔다. 수심론은 행복론이라는 말씀, 말씀이 크게 와 닿았다. “한 생각 바로 하면 천국이요, 한 생각 잘못하면 지옥이라”는 생각, 생각을 하자. 주위에 여여히 존재하는 작은 사물 하나하나에 정말 감사함을 생각, 생각하고 생각하자.
어찌할 거나 어찌할 거나 부딪치면 일어나는 번뇌 덩어리들(가장 큰 것 개념, 탐진치) 일어나는 마음을 순간순간 “-구나. -겠지. 그만하니 감사하다.” 할 수 있는 나지사 명상 반복하다 보면 어떤 경계에서도 이해하고 수용하여 찌꺼기가 남지 않겠지. 이젠 남은 건 반복으로 살필 일만 남겨졌다. 부딪치기 전 이전 자리로 가서 놀아야지. “그것은 그것일 뿐”으로 가야지.
비아명상. 모든 것 내가 아닌데 ‘나’라고 집착하며 살아온 세월뿐이다. ‘그냥 자연일 뿐, 그냥 자연의 흐름뿐인데’ 집착하여 ‘나’란다. 환경도, 몸도, 마음도, 식자체도, 순수의식도, 묘유도 내가 아니라니. 순수의식을 맘이라고 알고 잡고 있었다. 큰 착각이었다. 묘유도 나가 아님을 알고 그 곳을 향해 정진하여 진공묘유의 맛을 보자.
‘나’명상. 나에게 이런 소중함이 있는 줄 아는 시간이었다. ‘너 부처야. 너 그대로 여여해’ 밖으로 안으로 갈 곳 없는 나임을 알게 되는 시간이며, 올 100% 가벼워지도록 정진하는 삶으로 가자. 나와 다른 모든 존재들이 정말로 소중하고 귀하고 신비한 존재임을 눈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절 명상. 누구를 위해 머리 끝 부터 발 끝 까지 온 맘을 다해 절을 한다는 것은 나를 낮추고 그를 최상으로 존중함이다. 온 맘. 온 지극함은 그 공간을 밝고 맑음의 공간으로 정화하고 서로 간에 정화되어 한 몸, 한 맘으로 되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맑은 물 붓기. 각자 저 속 깊이 쌓인 한들이 봄 눈 녹듯 녹이는 그런 시간이며 감사로 환희로 화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이의 감정에 나도 함께 그들과 함께 되어 눈물, 콧물, 흘리며 앞으로 그들의 진실함에서 우러나오는 삶으로 살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다 쓰고 나니 30년 만의 반성문이 되었다. 이 반성문을 계기로 다시는 반성문 대신 넘치는 행복론, 감사론, 수행론을 쓰겠다.
“그냥 있으니 돈망천국이요,
한 생각 일으키니 지족천국이요,
일터로 나아가니 신나는 구현천국일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일 뿐.’
‘나’ 중중 연기하는 자연일 뿐.
이 세상 이대로 완벽함. 여여함인데 혹여 맑은 물이 필요한 곳곳에 맑은 물을 가득 채우리. 무심 자리에 노니면서 모든 존재들에게 행복을 전하며 그들의 행복 속에서 함께 하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 동사섭이란다.
 
희망
 
아내의 권유에 마지못해 참석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어떤 힘이 있기에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내어 참석하는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보다 기독교인인 내가 불교적 문화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이 컸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불교적 문화를 좀 더 가까이에 체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작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종교간 평화의 문제에 대해 고민이 있었던 나에게 많은 배움을 열어주었다. 스님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체험이었다. 멀리서 보면 다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같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믿는 기독교의 본질을 새롭게 파악하고 더욱 사랑하게 되는 역설적 경험을 하기도 했다.
경청과 공감, 보시, 감사, 사과, 관용, 수심, 화합, 작선 등 여러 덕목들은 용어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도 매우 강조하는 덕목들이기에, 가장 불교적인 것이 가장 기독교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좋은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하셨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는 좋은 나무이고,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는 나쁜 나무라는 것이다. 좋은 열매는 착한 행실이다.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와 십리를 동행하는 행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선행을 행치 않는다면 좋은 나무가 아니며, 반대로 불교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선행의 열매를 맺고 있다면 좋은 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 끝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반대로 예수님의 품에 안길 불교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 말이 불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관용을 기대하며 적어 본다.)
하지만 차이점도 동시에 느낀다. 그것은 ‘나’에 대한 설명이다. 이 또한 소감 발표 때 말할까 말까 망설였던 내용이다. (그 때 썼던 내용을 옮겨 본다.)
(자연고공법에 대하여)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수소와 산소의 성질이 사라지고 물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질을 부여받듯이 우리 자신을 원자나 분자들의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없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의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속성을 부여받게 되고, 인격체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다. 비록 발현되지 않았지만 인격적 가능성이 부여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능성이 발현된다. 씨앗에서 싹이 틔워지듯이…. (방하 고공법에 대하여) 인격은 지성, 감성, 의지의 총합체이다. 그것은 무한한 지성, 무한한 감성, 무한한 의지의 편린이다. 혹은 아버지를 닮은 아들과 같다. 즉 신과 같은 DNA를 가진 존재다. 우리가 그 무한한 존재를 보거나 파악하지 못한다 하여 부정할 수 없다. 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존재를 짐작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닐까? 이러한 자아의식을 가졌다고 하여 초월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자아를 있게 한 무한한 존재에로 흡수되는 것이 초월이고 구원이 아닐까? 무한한 사랑의 실체에 흡수되고 그 존재를 무한히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나 또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은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오직 그만 계신다는 고백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이 대목에서 자아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기에 그와 같은 생각도 충분히 존중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다만 겸손한 자세로 탐구할 뿐이다. 진리는 광대하고 인간의 인식은 협소하다. 기껏해야 100년을 살기 어려운 피조물이 감히 창조자의 실체에 대해, 우주의 원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가? 다만 자신이 믿는 바를 겸손하게 고백할 일이다. 그것이 맞고 틀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한계다. 끊임없이 궁구할 일이나 우리의 한계를 잊어버리면 안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은 이미 분명하게 나타난 진리들을 얼마나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실천 없이 이론만 논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쌓은 성이라는 경고를 새겨야 할 것이다. 어떤 이론체계가 실천을 견인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나 자칫하면 본질에서 벗어나 공리공론에 치우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에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실천들을 발견하는 것이 감동이었다. 주전자 하나에서 수많은 감사점들을 발견하고, 인간 존중의 자세로 깊은 절을 올리고, 서로의 말을 성실하게 경청하고 공감해주고, 부지런히 남을 섬기고 베푸는 모든 것들이 크나큰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만약 이 곳에서 체험한 불교적 문화가 불교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면 감히 말하건대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은 90%가 넘는다고 할 수 있다. 이론의 차이는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핵심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 그것은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이곳은 무균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은 온갖 악들이 득실거리는 전쟁터와 같다. 언제 독한 말들이 날아와 나의 가슴에 꽂힐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기서 배운 것들이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힐 때까지 꾸준히 연습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 같다. 나의 등을 떠밀어준 아내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이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시는 용타 스님과 열매님, 원경님 외 지도자들과 함께 참여한 동반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1. 절: 절 안에 담긴 극진한 인간 존중의 마음. 학교 아이들에게 이러한 절을 하면 어떨까?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선물과 편지와 더불어 극진한 인간 존중의 마음을 담아 절을 하면 좋겠다. 혹은 아이의 발을 씻어주면 어떨까?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절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에 대해 절을 하고 시작하면 좋을 것. 원래 예배는 절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은가?
 
2. 첫인상: 솔직한 충고를 받다. 굳이 남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부분도 바꿔야 한다면 바꾸자.
 
3. 행복한 기분: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한 데서 오는 부산물이 아닐까?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면 오히려 행복이 멀리 달아나는 역설은 어떻게 설명이 될 것인가? 오히려 행복에 무심하고 단지 옳음을 추구할 때 어느 날 문득 내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이 아닐까? 고로 행복한 기분은 진리 가운데 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아닐까?
 
4. 반복과 복습: 코메니우스가 말한 배움의 이치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느 정도 찾다.
 
5. 유치원 아이덴티티: 그렇다. 하늘나라는 어린 아이들의 것이다.
 
6.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
 
7. 머리와 가슴의 역전 현상: 내 안의 느낌에 민감하게 귀 기울여야겠다. 내 안의 촛불의 흔들림을 민감하게 감지하여야겠다.
 
8. 마음의 공간에서 최상의 것을 붙잡기; 왜 나는 백지가 아닌 점을 보고 있는가?
 
9. 1그램 1톤의 원리: 그렇다. 말의 힘은 얼마나 놀라운가?
 
10. 설득: 논리 정연한 주장보다는 마음을 녹이는 한 마디.
 
11. 교류4덕: 평소 3대 원칙으로 정리한 giving. forgiving. thanksgiving에서 사과가 빠져있음을 발견. 화해가 실패하는 이유가 용서할 준비는 되어 있으나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다.
 
12. 감사: 매일 하자. 자세하게 적자. 노트를 마련하여 보시, 감사, 사과, 용서의 칸을 채워 나가자.
 
13. 나에 대한 평가: 곧음과 부드러움이라는 인상. 어느 정도 맞는 듯.
 
14. 상: 나의 내성적이라고 소극적인 성향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상일까? 한편으로는 이런 성향 자체가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 안에 어떤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극복할 터.
 
15. 지족 행복: 주전자에 대한 수십 가지의 감사점 찾기. 신선한 충격. 하물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의 회복이 필요. 감사와 좋다는 것은 개념 구분은 필요할 듯. 감사는 인격에게 하는 것. 사물에 대해서는 좋음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을까?
 
16. 절 운동: 고정 관념을 극복, 어깨와 무릎이 좋아진 것 같다.
 
17. 나에 대한 칭찬: 나를 꾸짖기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칭찬할 필요가 있다. 아내의 긍정점100가지, 자녀의 긍정점 100가지 찾아보고 적고 표현하자.
 
18. 시어머니에 대한 감사: 감동적인 이야기. 말의 힘, 은혜의 힘. 우리 가정에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까? 결국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용서다.
 
19. 초월: 있다. 좋다. 싶다. 고. 있음에 머무는 것. 아무런 가치 판단도 하지 않는 경지
 
20. 뿐: 결핵 환자의 타액을 먹다니 경악. 문둥병자의 고름을 빨아낸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이 그런 것일까?
 
21. 구나: 어떻게 우리 집에 난 불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 있을까? 나를 객관화,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22. 겠지: 그럴 수도 있겠지. 화가 날 때마다 주문 외듯이 외우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인간은 연약하다. 잘 하고 싶어하지만…. 그 소원을 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고쳐질까?
 
23. (자연고공법에 대하여)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수소와 산소의 성질이 사라지고 물이라는 전혀 새로운 성질을 부여받듯이 우리 자신을 원자나 분자들의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시켜 설명할 수 없다. 정자와 난자의 결합의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속성을 부여받게 되고, 인격체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다. 비록 발현되지 않았지만 인격적 가능성이 부여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능성이 발현된다. 씨앗에서 싹이 틔워지듯이…. (방하 고공법에 대하여) 인격은 지성, 감성, 의지의 총합체이다. 그것은 무한한 지성, 무한한 감성, 무한한 의지의 편린이다. 혹은 아버지를 닮은 아들과 같다. 즉 신과 같은 DNA를 가진 존재다. 우리가 그 무한한 존재를 보거나 파악하지 못한다 하여 부정할 수 없다. 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존재를 짐작하는 것이 합리적이 아닐까? 이러한 자아의식을 가졌다고 하여 초월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자아를 있게 한 무한한 존재에로 흡수되는 것이 초월이고 구원이 아닐까? 무한한 사랑의 실체에 흡수되고 그 존재를 무한히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24. 죽음: 죽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 관건.내가 그것을 위해 살다가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일을 하다가 죽는가 하는 것이다.
 
25. 맑은 물 붓기: 그렇다. 악과 싸우다 나도 악이 되는 오류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맑히는 것에 좀 더 집중하자. 그러나 구조적 악이 이렇게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일까?
 
26. 밥: 채식이 이렇게 풍성할 수 있다는 것. 먹거리를 바꿔야 지구가 사는데 요리를 배워야 할 것인가?
 
27. 하산: 무균실을 떠나 온갖 악이 득실거리는 전쟁터로. 언제 독한 말의 화살이 날아와 가슴에 꽂힐지 모른다. 연습 또 연습만이 살 길. 한편 이곳도 좋지만 내 쉴 곳은 우리 집. 우리 집을 천국으로 만들리라.
 
기쁨
 
첫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인데 “나”가 어떤 “나”인가가 중요하다. 수식어인 “긍정적인 나”는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의 지향점은 행복한 나이다. 그 행복은 나의 행복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 공동체의 행복 등 가능한 한 넓은 범위까지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심을 통해 나부터 행복해져야 하며 화합을 통해 타인이 행복해져야 하며 행복한 “너”와 “나”는 작선을 통해 큰 공동체의 행복을 이루어내야 한다. 수심, 화합, 작선을 “이상공동체 3요”라 하며 정체와 대원이 포함되면 이를 삶의 5대 원리 즉 오요라 할 수 있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나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절체절명의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삶에 대한 신념, 가치관 등과 같은 “사고방식”이며 일명 Frame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삶의 태도로 접근하느냐가 그 질을 결정한다.
·인생의 목표가,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그 “행복”은 무엇이고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그것은 가난한 이는 “돈”, 아픈 자는 “건강” 등 다양한 관점으로 얘기될 수 있으나 이런 것은 “행복의 조건”이라 볼 수 있다. 놀랍게도 행복이란 good feeling, 좋은 느낌, 좋은 기분의 상태이다. 이 관점으로 들어오면 의무론적으로 타인을 봐오고 나를 봐왔던 “should” 또는 “must” 즉 사람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에서 나의 “기분”과 타인의 “기분”에 초점을 맞추는 대전환이 이루어진다. 당위를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라 “당위”를 중시하면서도 사람의 “느낌”과 “기분”을 살펴주는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행복 주체는 “나”와 “너”의 “우리”이며 따라서 인생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행복인 것이다.
 
2. 둘째 날, 셋째 날
·화합이란 “너”와 “나” 상호 우호감의 총화이다. 화합이 중요함은 화합이 없을 시 “나”는 안으로 고통스럽고 밖으로는 싸움과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화합을 이루는 3가지 요소 즉 “화3요”란 보는 눈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하며 마음을 교류하는 것이다.
·올바른 서로의 교류를 위해서는 타인과 자신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올바른 “마음 주기”와 올바른 “마음 받기” 작용이 필요하다. “주기”는 내 속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감지하여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받기”는 상대의 마음 주기에 공감하여 반응하는 것이다. 이때 상대의 마음 받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① 화자 중심으로 앵무새처럼 경청하고 ② 상대의 마음을 자맥질하듯 헤엄치어 이해와 공감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나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교류를 촉진시키는 4가지 덕은 “나”와 “너”의 플러스 교류의 결과인 “보시”와 “감사” 그리고 마이너스 교류의 결과인 “사과”와 “관용”이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처럼 상대에 대한 “덕담”은 우호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며 혹시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면 이를 인지시 “사과”를 통해 “용서”받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넷째 날, 다섯째 날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면 수심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이다. 나와 내 주변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는 최고의 원수는 “생각”이며 행복을 촉진해 주는 최고의 은혜도 “생각”이다. 이는 컵에 담긴 사이다라는 동일한 “사실”에 대해 “부정적 생각”과 “긍정적 생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따라서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행복이란 욕구하는 것이 소유될 때 느끼는 긍정적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행복은 소유한 것에 비례하며 욕구에 반비례하는데 욕구하는 것을 소유해서 행복해지는 것을 구현행복론이라 하며, 이미 갖고 있는 소유가 많음을 지각해서 느끼는 행복을 지족행복론이라 한다. 미래 소유 욕구를 크게 하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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