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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작성일 : 2013-01-07 오후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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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회 수련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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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회 동사섭 일반과정 소감문
-무애심-
지리산 북쪽 끝자락에서 전혀 이해타산 없는 사람들과 한해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이곳, 동사섭. 우리들 삶의 목적은 결국은 행복이기에 행복한 삶을 위한 동사섭의 오대원리인 대원, 정체, 화합, 수심, 작선 하나하나의 정의와 필요성과 방법을 강사님들을 통해 들었을 때 순간순간이 마음느낌과 변화함을 겪어야 했다.
행복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화합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홀로서기를 지탱해 온 나를 허물을 벗겨, 긍정적 뭉침의 힘과 가족을 돌아보게 하는 새삼스런 계기가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잘 저지르지는 나에게 망설임 없이 저지름의 역사와 제치고 누리라는 인생 3박자는 또 다른 메시지로 남아있고, 경청의 중요성을 느끼며 반성하게 한 받기3박자들이 있었다.
2박3일의 여정이 약간의 피곤함이 있던 날, ‘이것을 놓치면 인생을 놓친다.’라는 눈이 번쩍 뜨이게 했던 기적의 미세정서,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라며 미세+정서를 해야 좀 더 행복할 수 있음의 마음속에 귀한 전달로 되어 왔다.
동사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의 ‘느낌’은 느낌에 눈을 떠야 한다며 느낌의 더욱 느낌을 갖게 하는 강연자의 말씀과 교류사덕의 보시∙감사∙사과∙관용의 4대 덕목은 마음의 눈 떠짐이 있었고, 당연심리의 깨짐에는 조금쯤은 서운했던 가족에게 대화의 소통을 하고 실천을 하게 돼서 소통의 시원함을 경험했다.
12/26 여정에서 ‘안다병’과 지행득의 중한 말씀은 두 가지 촌철이 마음속 깊이 느낌이 와서 열심히 메모했던 내 자신이기도 했다. 언어 중 최고 언어는 덕담, 행동 중 최고 행동은 존중이라는 것과 결국은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특히 가족한테 ‘칭찬을 많이 하자’라는 글귀로 한쪽 끝 메모를 남겨두었다.
마음가짐이 우리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수심! 지족명상을 통해 그 간 잊고 살며 기존, 기성의 행복해야하는 작고 사소함에서 지금 현재의 소유를 감사하며 ‘하물며’에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것에 감사했다.
새로움의 충격 경험에서 1.나를 내려, 2.마음을 비워, 3.이웃들의 빈 마음을 알게 하는 절명상의 3배는 결국 온 마음을 내려놓는 듯 눈물까지 쏟아야 했던 이 나이 먹고 잊지 못할 첫 경험이 앞으로의 나를 지탱해 줄 3박 4일이 지나는 중요하고 행복했다.
마음공부의 하이라이트였던 ‘깨달음은 한 생각의 전환’ 모든 것은 마음먹게 달렸다는 일체유심조. 또한 ‘뿐’의 기대심에서 오는 미성숙의 심리상태에서 오는 것이 화두를 깨는 ‘뿐’
①마음장애를 破하고 완연히 열리는 가능성을 알게 해 ②나를 지키기 위해선 상대의 고통이 있으므로 이웃을 위한 마음씀, 이기심을 없애서 ‘나로부터 벗어나자’는 무아법.
처음 작정하고 올 때는 동사섭의 매력을 보려고 막연한 호기심과 나 자신의 쉼을 위함이 있었는데, 그동안 자존심이라 여겼던 똥덩어리들을 풀고, 쏟아내게 해 변화를 준 ‘맑은 물 붓기’는 처음과는 다른 그 어떤 환희심과 한편 (의구심이)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에 커다란 변화에 나 자신에 놀라워하고 있다.
이 5박 6일의 이 여정이 나를 부추겨 ‘소욕지족’, ‘마음 장애 없애고, 진공묘유로 무아가 된 돈망의 깨어있음을, 그 내용을 마음에 새겨 꼭 실천해야 하리라’ 그리곤 무엇보다 시니어들과의 앞으로의 생활에 이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자신이 반드시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한다.
행복했다.
2012. 12. 29
239회 동사섭 수련을 마치고
-연화신-
‘무한 허공 속의 나, 우리. 확연한 것은 오직 지금 여기 뿐’ 조각조각으로 뒤엉켜져 있던 제 작은 알음알이의 퍼즐이 거울님의 깊은 통찰력에서 우러나오는 명쾌한 설법으로 비로소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됨을 보았습니다.
아하! 바로 이것이었구나. 무한 허공 속의 텅 빈 충만감이. 걸림 없는 마음의 대자유가 무엇인지.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품어져 있다는 진리를 발견한 경이로움과 찬탄으로 온전한 감동이었습니다. ‘나’라는 좁디좁은 틀을 깨부수게 한 거울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 하고 휘청거렸는지 이제는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지표를 찾았습니다.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을 통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진정으로 염원하고, 돈망, 지족, 비아, 나지사, 죽음 명상을 통해 무한 비상하는 이 자연을 체험하였습니다. 지금껏 오랜 시간 삶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목말라 하던 저에게 깊은 사유와 쉬운 체계로 진리를 꿰뚫어 주신 가르침은 제 마음 밑바닥까지 시원해지는 한 줄기 생명수 같은 맑은 물이었습니다. 훌륭하신 스승님, 좋은 만남, 좋은 인연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곳에서 받은 이 좋은 선물(보배)을 어떻게 꿰어 안으로는 마음천국, 밖으로는 관계천국, 나아가 세상천국으로 회향할 지는 오롯이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쉼 없이 맑은 물 붓기를 통해 상처받고 상처 준 모든 생명체들의 행복을 위해 기원하겠습니다.
무엇보다 5박 6일 동안 함께 한 도반들로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동사섭 수련을 위해 세세한 것까지 마음 써 주시고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신 많은(돕는)분들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제가 존경하는 만해 한용운님의 감옥에서 쓰신 시로 지금의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물처럼 맑은 심경, 티끌 하나 없는 밤
철창으로 돋는 달빛 또한 고와라
모든 희로애락은 공(空)이오 마음만 있을지니
석가도 원래는 보통 사람일 뿐인 것을.
고맙습니다.
연화심 합장
물결 정연주
행복마을로 오는 낯선 길. 처음 와보는 함양. 터미널에서 버스를 내리니 바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약 10분도 가지 않아 행복마을에 도착하니 순조롭게 도착한 듯하여, 낯선 여행길에 불안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첫날 강의에서 용타스님께서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으며, 행복의 본질은 ‘좋은 느낌’이라 하셨다. 행복의 본질에 대한 명쾌한 정의에 속이 시원했다. 이상공동체오요에서 ‘온 세상의 중심인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수련해서 마음천국 만들고, 화합 잘하여 관계천국 만들고, 작선 잘하여 세상천국 만듭니다.’라는 말로 불교의 모든 유파, 초기불교, 유식, 공, 선불교 등을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명료한 느낌이 들어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후 화합을 잘하기 위해 진행된 감지, 표현, 공감, 반응을 위한 나눔공식 연습은 많이 해오던 것이라 익숙했지만 집단원의 하나로 해보니 약간 떨리기도 했다. ‘목숨 걸고 받자’는 촌철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1g 1ton 강의에서 미세정서의 중요성, 감정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여 내 내면에서 그 부분이 성장하는 느낌이 있었고, 교류사덕 설명이 좋았고, 내가 1주일에 할 보시, 감사, 사과할 내용을 정리해보고 이를 1주일 이내에 반드시 실천할 것을 맹세해서 좋았다. 수련회의 성과가 나의 생활에 직결될 것이라서. 장력에 대한 강의 중 인공양장력을 결정하는 5대요인 정서, 표정, 언어, 행동, 환경요인으로 정리되어 명료해서 좋았고, 집단원들에게 칭찬, 덕담해주기를 통해 집단의 양장력이 고양되니 힘도 나고 나도 한결 밝아졌고, 집단원들끼리도 친밀해져 너무 좋았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받은 덕담은 촉촉한 음성, 섬세한 배려, 진지한 태도, 인상 좋고, 주인적인 태도 등이었고 육체은행무리죄를 짓지 말라는 충고가 매우 감사하게 느껴졌다. 지족명상을 배우는 날 처음엔 주전자, 다음엔 사람, 그 다음엔 자기 자신의 긍정점 소개하기를 통해 사물, 사람, 자기 자신에게서 긍정적인 점을 이끌어 내어 긍정적 힘을 이끌어내니 더욱 기운이 나고 좋았다. 이렇게 한껏 고양된 긍정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28일에 진행된 용타스님의 초월명상 강의에서 ‘무한을 원하는 혼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 무위적 가치는 어렵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걸림이 없고 평화로운 성태, 그것이 바로 ‘무위’다 라시며, 우리 모두는 본래 ‘자성’, ‘불성’인 존재라고 하셨다. 24K만 금이 아니다. 18K, 14K도 금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그간 마음공부 길을 기웃거리며 어렵고 멀게만 느껴져 막막하고 힘들었던 심정, 나는 진정한 길을 발견하고, 공부해 놓고도 다가가지 못하고 포기해 버렸다. ‘나’에 대한 한심함, 실망감. 그때의 갑갑했던 심정이 울컥 올라왔다. 이어 지금까지 내가 붙잡고 살아왔던 소위 ‘핵심 감정’이 건드려지며 눈물이 쉬지‘않고 흘러내렸다. 사랑에 배고프고, 기대에 못 미치고, 관심과 애정을 기대하며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성과는 내 노력에 미치지 못했었다고 생각해왔던 내 삶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만들고 쌓아놓은 ‘아상’이었고 그런 아상을 헤집고 ‘자성’인 나의 본질을 끄집어내어 주셨다. 산속에 숨겨져 있는 몇 그램의 금을 볼 수 있는 자는 그것이 산이 아니라 ‘금’으로 본다고 하셨다. 맑고 밝은 존재인 나를 나는 ‘베고프고 우울한 아이’로 취급하고 살아왔다고 보였다. 내가 확고하게 나로 알고 믿고 살아온 그 ‘나’가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비아명상을 통해 이 한 몸이 내 한 몸이 아니라 조상님, 부모님, 민족, 세계로 연결된 존재임으로 자아라고 구분지어 이름 붙일 존재가 아님을 이치적으로 알게 되었다. 명상으로도 그 연결됨을 느낄 수 있도록 ‘나’란 경계를 짓지 않고 연결성을 느껴보려 했는데, 사마타나 위빠사나를 할 때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돈망’명상도 이성을 가동시키지 않을 뿐 연결성을 확보하며 꺠어 있으려 하는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죽음 명상도 비슷했다. 나지사 명상을 통해서 나를 화나게 했던 직장동료에 대한 분노감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어 분노조절방법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맑은 물 붓기’시간에 내가 만든 ‘나’에 집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못된 짓을 한 것 같아 매우 죄송했다. 누구보다도 ‘맑고 밝은 청정한 자성’을 지닌 나의 존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사섭 전체과정이 ‘좋은 느낌’의 고양을 위한 이론적 틀을 습득하고, 소통방법을 연습하기 위한 집단명상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점차 ‘좋은 느낌’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확장될 수 있어서 좋았고, 나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나’란 ‘아상’의 토대를 흔들어 보는 계기가 되어 정말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짊어진 의무, 역할에 이제는 덜 억울해하고, 화내지 않고, ‘관계 속에 존재하는 나’의 역할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해낼 것 같다. 용타스님께서 가장 좋은 수련법으로 동사섭의 길을 안내해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소감문
精進 김희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크리스마스이브임에도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행복마을이 있는 함양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생략)” 인자한 모습의 열매님은 아이보다 더 신나게 동요 몇 곡을 리드하고 “아무것도 안하기”하시고 자리로 앉으셨다. 아니 이건 뭘까? 수업준비인가? 「아무것도 안하기」 궁금증이 커져가는 가운데 횟수가 반복 될수록 순간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져 옴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드디어 닷새째, 거울님으로부터 초월명상을 배우면서 “아하 그동안 짧은 순간순간을 통해 자성을 연습시키려고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으며 동사섭과정의 탄탄한 짜임새에 감탄이 되었다.
첫날 거울님의 과정 개관으로 전체 수련과정은 알게 되었지만 과정 과정을 거듭하며 생각지도 못한 감동과 내가 다시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을 받고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함축적이고 절제된 문장으로 과정의 내용과 의미를 전달하는 촌철은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이나 더운 여름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수 같았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삶이고 그 삶의 목적은 행복이며, 그 행복은 화합, 수심, 작선을 통해 극대화 된다는 正見을 이제야 찾고 몇 번이고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다. 교류사덕을 통해 모든 사람과 和合함을 배웠고 행동명상을 통해 감정의 정화를 가질 수 있었으며, 수심공부를 하면서 마음가짐이 삶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행복의 조건은 욕구의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유한 것에 대한 지족을 알면서부터임을 배우고, 그동안 갖지 못한 것들에 집착했던 내 모습에 반성과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도 했다.
거울님의 생각의 전환을 통한 무위의 깨달음, -구나, -겠지, 감사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법, 내가 없음, 소욕지족(少慾知足)의 행복론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특히 더럽혀진 내 영혼과, 내가 더럽힌 영혼에 대한 맑은 물 붓기는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하나의 의식과 같아 동사섭 과정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번 5박 6일의 과정은 직장생활 스무 해만에 그동안 갖지 못한, 나 자신을 위한 1주일이었던 것 같다. 같은 반 어느 분의 말씀처럼 이제는 내 자신을 위해, 또 나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좀 더 내야겠다. 나의 가족, 모든 사람, 나아가 우주 만물의 행복, 해탈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아내 선희, 딸 지은이, 아들 규범이의 유리잔에 검은 잉크물을 걷어 낼 맑은 물부터 가득 부어야겠다.
끝으로 동사섭 과정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신 스승님들 그리고 도반 여러분, 청정음식을 먹게 해주신 식당여러분과 과정 과정 준비를 도맡아 해주신 사무장님과 원경님께 감사드린다.(끝)
2012년 12월 28일
소감문
<커피>
회사에서 진행하던 긴 프로젝트를 마치고 받은 20여일의 긴 휴가에 장인어른의 소개로 동사섭에 가기로 마음먹은 후 설렘도 컸지만 망설여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5박6일 동안 고기 없이 풀만 먹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동사섭 5박6일후 고기 없이도 정말 맛있고 훌륭한 식사를 만들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감사했습니다.
식사뿐만이 아닙니다. 행복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맑은 공기와 멋진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위대함과 소중함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거울님, 무등산님, 원경님, 열매님, 도림님, 현공님 이 6분의 강의는 저에게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뼈가 되고 살이 될 만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깨달음과 감동을 주시면서 앞으로 제가 살아갈 길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이순간의 행복이 절체절명으로 중요하다. 거울님의 첫 강의 시작에서 주신 가르침이신데요. 저는 사실 지금의 나는 해복하지만 내가 과연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와 앞으로 살아가면서 혹시나 이 행복이 깨어지진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울님의 그 가르침을 듣는 순간, 아하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중요하지 앞으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들에 대한 똥들로 쓸데없이 불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면서 이제 내 머리 속의 많은 똥들을 버리고 그 시간에 지금 이순간의 행복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행복의 주체는 “나”가 아닌 “우리”라는 가르침에서는 매우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저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나만 잘되면 된다, 나만 좋음 된다, 등 이런 나쁜 삶을 살며 물론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으면서 제 행복의 주체는 나에서 내 가족 즉 “우리”로 바뀌게 되었고 여기 동사섭에 와서는 그 “우리”의 범위가 특정한 소수의 “우리”가 아닌 이 지구 더 나아가서는 이 우주의 모든 범위에서 있다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화합 파트에서는 주기, 받기 강의 및 실습을 통해 아하 나는 정말 이 중요한 부분을 너무나 많이 놓치고 살고 있었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항상 누구에게 내 말을 하기만을 좋아하고 남의 말은 잘 들어 주지도 않았고 들을 생각도 안했었는데 이 강의가 저에게 큰 교훈과 감동을 주었고 앞으로는 동사섭에서 느끼고 배운 주기, 받기를 꼭 되새기면서 살겠습니다.
교류사덕을 통해 보시록, 감사록, 사과록을 쓰고 발표하고 관용 강의를 들으면서 아하 나는 정말 너무나 많은 감사 속에 살고 있구나 하지만 정작 나는 사과해야 할 일들만 너무 많이 만들고 살고 있었구나,앞으로는 모든 사물, 사람 등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항상 보시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수심파트에서는 나는 이미 넘치는 행복 속에 있다는 교훈과 여러 명상들을 통해 제 마음을 다스리고 반성하고 감사하는 방법을 배우고 마음의 평온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제가 이곳에서 호랑나비를 두 번이나 불렸는데요. 이 호랑나비란 노래는 제게 큰 교훈을 주었던 노래입니다. 예전의 저는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자존심 강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표정도 매우 어두운 날카로운 모습의 저였습니다.(쓸데없이 폼만 잡는) 주변에 물론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인기도 물론 없었으며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바꿔준 게 이 호랑나비란 노래였습니다. 군대 있을 당시 진급을 하던 날 기쁜 마음에 동료들과 술을 한잔 마시고 노래방에서 기분도 좋은데 한번 망가져 보자하고 막춤을 추며 부른 노래가 이 호랑나비였습니다. 다음날 술이 깨고 아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부끄러워서 동료들을 어찌 보나 고민하는데 오히려 동료들은 어제 일을 화제꺼리를 삼으며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고 웃어주고 즐거워 해주는데 그때 아 내가 조금만 망가졌을 뿐인데 이렇게 즐겁고 행복해 질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구요. 그 후로는 예전의 제 딱딱한 모습들은 사라지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지고 또 항상 밝게 살려 노력하니 뭔가 막혀있다 생각했던 일들도 잘 풀리는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또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상한 막춤을 추며 노래한다는 것이 부끄럽긴 하지만 창피하진 않았구요. 오히려 이런 것도 하는 데 다른 어떤 것을 못할까 하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솔직히 이곳에서 5박6일간 배운 것들을 다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 부분도 많습니다.(한자도 많고)
명상공부 시간에 거울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틈나는 대로 자투리 시간에 동사섭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실천하고 연습하겠습니다. 노트에 열심히 적은 메모들과 여기서 받은 느낌들 항상 공부하고 연습하겠습니다.
끝으로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동사섭의 모든 스승님들께 감사드리구요. 5박6일간 함께 웃고 울며 수련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39기 일반과정
-깊은산-
○. 삶은 생각이 아니라 실천이다. 헛된 생각의 틀을 깨야한다. 내가 뭐라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출가자의 참모습은 수행을 통한 마음공부의 체득이고, 결국 그것을 통한 중생제도인데 그동안 마음공부는 없고, 시간이 갈수록 보태지는 껍데기에 싸여 본문을 망각하고 살았던 것을 깊이 참회한다.
○. 이제 껍데기 포장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내면을 채울 수행체계와 신념이 필요한 시절 인연을 만난 것 같아 환희롭다. 다행히 큰 스승을 만났으니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삼고자 한다.
○. 감사명상을 하면서 감사함 속에서 살면서 머리와 일로만 세상을 산 것 같아 부끄럽다. 이식의 전환을 해야겠다.
○. 그리고 절명상에서는 교만과 착각으로 잘못 살아온 내 모습에 죄송함과 어리석음과 잘못된 출가상에 눈물이 복받쳐 올라왔다. 스님이라는 아만과 자만과 정체성의 어리석음에 참회한다.
○. 어쩌면 이론으로 살아온 것이다. 머리로 살아온 것이다. 가슴으로 감동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철저하게 따지며 살아온 잘못, 부처님 사상으로 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누리고 살아온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 지금껏 외형은 키울 만큼 키웠고, 누릴 만큼 누렸다. 기득권은 충분하다. 미련이 없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내면을 채우고 싶다.
○.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교리를 체계적으로 연결해서 만들어 내는 논리는 감동이다. 지금껏 단편지식전달 차원에서 논의되던 것이 얼마나 신도들에게 미안하게 느껴져 오는지.
○. 삶의 전환점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고자 한다.
불교대학을 마친 불자들의 신행의 고급과정으로 동사섭을 채택하고 함께 공부하고 싶다.
○. 끝으로 큰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성실하게 강의하시고, 끝없이 공부하시는 선생님들도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소감문
-우송-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할 명상 안내자로서의 길 앞에 나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탐험이 필요했고, 명상지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진심어린 배려를 보완하고 싶었다. 거울님의 강의가 “이 순간 마음이 어떻습니까?”로 시작되었다. 이 순간밖에 없다. 1초 후는 지나갔고, 1초전은 오지 않았다. 오직 이 순간뿐이라는 말씀에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이 왔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부담감과 설렘도 있었다. 총론에서 사유라는 것이 먼저 거론이 되어서 약간 의아해 했다. 보통 수행에서는 정견이 먼저 회자되기 때문이다. 우주 역사상 가장 큰 진화는 사유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과학자는 원자, 소립자의 비밀까지 파악하게 되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사유가 있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으며, 무언가를 이루며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사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삶의 오대원리 – 삶의 오대원리는 내가 동사섭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아닌가 한다. 인생의 목적, 삶에 있어서 가치관이 명확히 세울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다. 삶의 오대원리. 정체-대원-수심-화합-작선 어떻게 이렇게 명확하고 선명한 기준이 있을까 거울님께서 이것을 만드시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셨을까 생각하니 또 한 번 고개가 숙여졌다. 수행자로서 방황하지 않고 잘 갈 수 있는 나침반,아니 보물지도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맑은 물 붓기 – 먼저 우리의 본래의식이 맑은 물로써 표현되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잉크물이 된 것을 잉크 부분을 한 방울씩 빼내는 것이 아니라 ‘맑은 물을 부으면 된다.’라는 결론은 수행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 나에게 잉크로 남아있는지, 타인에게 부은 잉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내가 가장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남이 아닌 나의 가족임을 알아차리니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동생에게 이미 어릴 때 한 잘못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뭔가 해소되지 못한 찝찝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앞에 나아가 담담하게 얘기해야지 하고 앞에 나아갔지만 막상 그 앞에 나오니 동생이 근래에 겪었던 일에 대한 안쓰러움과 겹쳐서 더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반야님의 감정표현을 통해 동생의 아픔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혹시 어릴 때 동생에게 준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서 현재의 동생의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내가 상처를 드린 분들께 사과하는 명상을 하기도 하고 실제로 사과해 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사실이 더 부끄럽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동생에게 상처 준일을 어떻게 사과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정성스럽게 준비해 사과 편지와 함께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며 진심으로 동생이 맑은 물로 돌아가기를 기원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지사명상 – 나지사명상을 동사섭 오기 전에 알게 되어서 현실 생활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화낸 일이 생겼을 때 지나고 나서 이 명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의 일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고, 상대에 대한 분노도 내려놓지 못했고, 그것이 나의 자책으로 돌려지고, 그런 힘든 상황에서, 이 명상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많은 부분이 정리되고 분노 또한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으며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서 내 인생을 망친 원수라고 생각도 했던 적이 있었지만 화해하고 오히려 그 분께 감사할 것도 찾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 명상을 알게 되어 제 인생에 있어서 많은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아하! 이것을 몰랐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이런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의 기회를 주신 거울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리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제239회 일반과정
-태평 최우철-
‘첫 만남’
서울센터 깨자봉으로 벌써 세 번째 행복마을 방문인지라 첫 만남에 대한 긴장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완벽한 안전지대에서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었다.
무장해제…. 늘 나는 어느 정도 인격적으로는 갖추고 있다 자부하고 있었지만 지금 여기 안전지대에서 무장해제가 안 되고 완전무장을 한 나를 보는 순간 ‘아 나도 미성숙한 인간이구나.’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2개의 분반 그 중에 구나반으로 배정된 순간 ‘아 재밌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게 되는데, 직장에서 오신 분들, 스님, 동사섭 유경험자 어르신들, 그리고 처음 오신 분들 모두가 제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이 장에 임하시는데 그 중 내가 가장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중에 현공님의 말씀 ‘이 수련이 끝나면 내 혼이 얼마나 자유로워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순간을 놓치면 내 인생 전부를 놓치는 것’
‘이 순간에 이 순간의 느낌에 깨어있어야 한다.’라는 말씀과 ‘순간을 놓치면 인생을 놓치는 것이다’에 아하!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걱정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충실하지 못했구나. 그리고 내가 생각으로만 판단하고 말하고 배려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느낌이 아니었고 사고 판단에 의한 것이며 주변의 시선, 통념 속에 남을 배려한다는 껍데기(상)에 나를 가두고 있었다는 것에 새로움과 함께 나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행복은 그 시작이 자신의 느낌을 감지하는 것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답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를 위해서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정견), 즉 가치관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할 과제였다. 다행이도 이것은 사회생활을 하며 겪고 느낌에 따라 그리고 이전부터 맘에 담고 있던 ‘일체유심조’라는 말씀으로 인해 나 자신의 바라보는 관점(시각)에 따라 상황을 좋게 혹은 나쁘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해 왔기에 스님 말씀에 깊은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화합’
우주의 한복판에 내가 있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의미가 없다. 우선은 나에 대해 즉 나의 가치관을 바로 잡고 내가 할 일은 보는 눈을 바르게 하고,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하고, 잘 교류하는 일이라고 배웠다.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그에 비해 실상 잘 지켜내지 못한 것 특히 마음은 표현(나누어야)한다는 게 가장 와 닿는 부분이었다. 나는 마음을 잘 나누는 사람인가. 내 할 얘기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 동감/공감은 잘 하는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로 인해서 조금이나마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실습시간에 주고받기를 하며 이러한 방식에 맞추고 생각하여 말하니 머릿속에 회오리가 치며 갑갑해졌다. 내가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르고 살았던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 모른 척 눌러두고 살았던가. 나는 오랜 시간의 답답함이 한 번에 치밀어 오르며 머리가 아파왔다.
‘교류사덕’
보시, 감사, 사과, 관용으로 이루어진 교류사덕은 모두 보시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중 인상 깊은 것은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행복한 것’이라는 대목이었다. 칭찬이나 감사에 인색하고 받는 데 있어서도 익숙하지 않던 내게는 아 지금껏 표현을 어지간히 하지 않고 살았구나 하는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또한 실습시간에 칭찬샤워를 주고받으면서 다른 분들께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는 나에 대한 느낌에 기쁘고 쑥스러움이 함께 올라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아무 미동도 없었는데 감정교류의 장에서는 수줍은 소년이 된 느낌이었다.
‘지족 명상-주전자’
생명이 없는 주전자에게도 이렇게 감사할 것이 많은데 나를 둘러싼 그 외의 사람, 사물, 자연, 우주에 그 존재 자체로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가. 우선은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그 감사를 표현해 보아야겠다.
‘절명상’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오직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낮추는 절을 하며 덕담을 해주시는 분들 한분 한분의 모습에서 첫날 내가 인상(이미지)로 가지고 있던 그들의 느낌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예전부터 친했던 형, 누나, 삼촌, 이모들이 되어 진심으로 다가오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며 그들이 내 안의 우주로 성큼 들어온 것 같았다. 이로 인해 나가 아닌 우리가 된 것이다.
‘이 동네 긍정점 3000가지 : 자기자랑’
가장 부담 없이 아니 그만큼 편해져서 그런지 노래도 한가락 뽑고 각자 자기자랑을 하시는데 가장 편하게 어우러지면서 드디어 진정 무장해제된 상태가 된 듯 했다.
‘맑은 물 붓기’
저녁시간 스님께서 태평씨는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에 거울을 쳐다보니 복바가지가 살짝 걸려있는 나를 발견했다. 5일이라는 시간만에 무표정했던 내가 외적으로도 이런 변화를 보게 된 것이 신기했다. 드디어 동사섭 수련의 클라이맥스 맑은 물 붓기. 잉크가 섞인 물은 그 중 잉크는 아주 적은 양이고 그 대부분은 맑은 물이라는 말씀과 그것을 걷어낼 수는 없고….
잉크를 부은 것은 아버지가 아닌 내가 아닌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며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먹먹해서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저 돌아갔을 때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뻐하실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생활 속에서 맑은 물이란 것은 즉 이러한 동사섭 전과정을 하나씩 실천해 보는 것으로 존중을 기반으로 말과 행동을 하며 내 주관을 빼고 사물 자체를 보는 것으로 나(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바로 내 안에 그 따뜻한 행복이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순간의 느낌’, ‘표현’, ‘동감과 공감’ 이 세 가지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마음공부의 시작길이 열린 것이다.
동사섭 239회 일반과정을 마치고
-멋쟁이-
50에 사춘기를 맞이한 듯 기복이 많은 하루하루의 감정과 가치관을 정립(재)해보고 싶었다. ‘동사섭 수련을 신청’한 내 자신이 무척 대견해 별칭도 ‘멋쟁이’로 지었다. 이제 5박6일의 동사섭 과정을 마치면서 나에게 인상 깊고 의미 있었던 실습과 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동사섭 5박6일의 과정은 첫날(12/24), 용타스님의 「주제강의」가 총괄적으로 있었고,(삶의 5大원리) 둘째 날(12/25)은 오요명상, 느낌, 촛대/촛불 실습을 오전에 오후 장에서 받기 3박자 수업·실습과 1g 1ton/미세정서에 대하여, 셋째(12/26) 교류사덕과 칭찬Shower, 행동명상, 넷째 날(12/27) 수심으로 주전자명상(지족명상) 오후는 절명상, 이 동네 긍정점 삼천 가지, 다섯째 날(12/28) 초월명상(~구나~겠지~감사), 동사섭 행복론 등의 강의와 실습으로 진행되었다.
먼저, 나에 감동적으로 다가온 장은 미세정서를 통한 人間관계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 두 번째 날의 실습이었다. 평소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 좌충우돌 하던 나에게는 ‘1g 1ton, 기적의 미세정서’의 실습은 동료들과의 갈등이 나의 둔감한 미세정서로 인한 것임을 알고, 나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을 상대방을 생각하게 되는 경험으로 아하!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 거울님의 첫날 강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서는 삶의 5要-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에 대해서 듣고 5요를 몸동작으로 하면서 너와 내가 더 나아가 우주적인 존재감을 경험하며 아하! 이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마지막 날의 거울님의 강의는 나에게 충격과 함께 잔잔한 흐느낌으로 다가왔다. 동사섭 행복론, 맑은 물 실험 장에서는 평소 우리가 늘 생각할 수 있던 부분의 경험을 공식화, 실험화함으로써, 나의 감동을 불러와, ‘이것이구나’, ‘아하’, 동사섭 행복론을 통해 욕구를 줄이고 나 자신의 자성과 본성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생각의 오류에 빠져 있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여 ‘아하!’를 외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교류사덕의 장에서는 주전자 명상을 통해 ‘별 것도 아닌 사물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내어봄으로써 하물며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의 경우는 하는 깨달음을 받았다. 특히 교류4덕(보시, 감사, 사과, 관용) 실습 중에서 사과할 일을 찾던 중 나와 함께 하던 두 도반(도솔, 의미부여)의 내용이 나와 너무 닮아 있고, 쉽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서 놀라웠다. 더욱이 내가 나의 소유물처럼 아들에게 많은 강요와 요구를 한 것을 이번 동사섭 실습에서 가장 어린 도솔님이 깨우쳐 주어서 다시 한 번 도처에 존재하는 부처님께 아하!
이외에도 이번 동사섭 행복마을 수련회에서는 다 안다병의 처방, 중앙시장에서 물건사기, 춤명상, 개념 없이 지껄이기, 개싸움, 분노표출과 대성통곡 실습 등이 매우 좋았다.
이번 동사섭 명상 프로그램 실습은 내 마음 안에 있는 부처를 찾아내거나, 모든 것이 이 한마음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늘 멀리서 나 밖에서 찾던 ‘깨달음’, ‘행복’, ‘해탈’ 등에 대한 개념을 너무나 쉽고 알맞게 적절한 예를 들어 자각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결코 어렵지 않게 그리고 무겁지 않은 실천적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바른 삶과 가치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중생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 용타스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매 장마다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신 현공, 열매, 도림, 무등산님께도 이 마음을 전한다. 무엇보다 2012년 12월24~29일을 같이 하면서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신 33人의 부처인 도반들에게도 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삶은 실천하는 일만 남은 듯하다.
<제 239회 일반과정> 반야 강은우
2월 동사섭으로 시작했던 2012년을 12월 동사섭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20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이번 동사섭에서 가져보고자 했다. 첫 장을 시작하였다. ‘안전지대에서 긴장하는 것은 그 긴장만큼 미성숙한 것이다’라고 하신 현공님 말씀처럼 모든 긴장을 내려놓기로 다짐하였다. 매번 하는 장인데도 나 역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이나, 그보다는 설렘이 더 큰 것 같다. 반가운 얼굴들을 함양에서 다시 보는 반가움, 새로운 분들과 함께 할 5박 6일이 설레었다.
첫 만남! ‘나를 드러내면 벽이 허물어져 한층 가까울 수 있다’는 말씀과 그에 관한 사례들을 통해 그 의미와 필요성이 한층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동사섭의 중요한 한 부분인 화합은 바로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은 반가워야 하며, 그 만남이 유익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이런 만남이라면 화합의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일 테다. 구나반으로 배정되고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상대방에게 궁금한 것을 내 답으로 내놓는다면 내 소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함이 덜어질 것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망설이고 있었다. 어느 선까지 나를 드러내야 할까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무엇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사유할 주제꺼리가 생겼다. 해결하고 있지만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평가, 기대에 대한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좋게 보이고, 평범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임을 알고 그 또한 내가 만들어낸 나의 상이자 똥이니 그것을 깨기로 작정하고 나의 개인적인 사정을 속 시원히 장에 내놓았다. 그러자 내 자신이 어떤 굴레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것이 자유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239회 거울님의 주제 강의!! 지금까지 들었던 큰스님 강의 중 최고의 작품인 듯!! 요즘 애들 말로 표현하자면… 진짜 대박 쩐다. 매 순간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33년간의 업그레이드 된 강의를 접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 업그레이드 될 것이 있을까?? 했건만…. 불과 6개월 전에 들었던 주제 강의보다 더 선명하고 경이로운 강의내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사섭의 5대원리인 오요를 이번 수련의 목적으로 이끌어내시는 거울님의 강의력이 정말 신통하시다. 무엇을 공부하고 가야할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리해주셔서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정사유, 빅뱅 이 후 지구상에 나타난 동물들의 최고 진화단계인 신피질의 출현으로 인간은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사유를 통해 삶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인 바른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의 비행을 보면 바른 가치관 교육이 절실하다는 거울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내가 근래 들어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에 더욱 와 닿았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이중적인 모습, 특히 온라인공간에서의 거친 언행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동사섭의 메시지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부담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사유를 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 국가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그들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13년 1월 청소년동사섭에서 그 해답을 얻고자 스탭을 지원했다. 청소년 동사섭에서 그 방법론에 대해 배움을 얻고 싶다.
큰 스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론 정해진 답은 없으나,동사섭 권장 답을 들으면 아마 아무도 그 답에 부정치 못하리라 하시며, ‘삶’, ‘생’이라 답해주시었다. 과연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다. 내가 올 상반기 우울증을 겪으며, 세상과 안녕하고 싶은 충동에 수없이 시달릴 때마다 죽음보다 삶이 낫겠지…. 지금 이 순간순간만 견뎌내 보면 살아가게 되고 살아가다 보면 또 무엇인가가 있겠지 하는 희망과 오기로 그 충동적인 순간들을 버텨냈었다. 그 때 그 순간을 이겨낸 나에게 잘 버텨냈다고 칭찬하고 싶다. 그 순간들을 이겨냈기에 동사섭을 통해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소중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왕이면 좋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삶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 바로 바른 가치관이다. 모든 사건은 2단계로 일어난다.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 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고로 바른 행동이 나오려면 가치관이 바로 잡혀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바른 가치관을 통한 최고경지의 삶을 니르바나라고 하셨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한 8가지 법이 있는 그 중 첫 번째가 정견, 바른 견해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바른 사유가 중요하다.
거울님은 사유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써의 추락이라고 하셨다. 깊이 공감한다. 생각에 빠져 스트레스를 받으란 말씀이 아니다. 또한 사유와 망상을 헷갈려서도 안 된다. 최소한의 생각, 수많은 생각 중 꼭 필요한 생각은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럼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생각이란 무엇을 말할까? 우리에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향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목적가치관이 필요하다. 올해 인생가치관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하고 재정립해나가고 있는 나 역시 20대 마지막 동사섭에서 목적가치관을 바로 재정립하고자 한다. 20대 삶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며 놓친 것은 무엇인지 정리하고 30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계속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바로 사유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동사섭의 권장 답은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최고 진화단계인 신피질 존재이전부터 동물들이 좇던 좋은 느낌이라고 해두자. 이고득락, 고통은 멀리하고 즐거움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은 본질과 조건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들은 행복의 본질인 느낌을 들여다보지 못한 채 행복의 조건에 집착한다. 행복의 조건이 채워지면 그저 행복해질 줄 알고, 그 조건만 맹목적으로 좇는다. 그런데 그 조건들을 이미 성취했음에도 공허함을 느끼고 의아해 하며 그것이 대체 어디에서 오는 공허함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때서야 행복의 본질인 느낌을 놓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느낌에 눈을 떴어야 했다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거울님께서 정립하신 행복론 공식에서 보면 행복은 소유를 욕구로 나눈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현행복론’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계속 이루어야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족행복론’인 이미 충분한 행복 속에 있다는 것만 인지해도 삶은 그런대로 행복해질 수 있다. 무한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행복론 공식에서 분모인 욕구를 0으로 만들게 되면 결과값인 행복은 무한대로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초월행복론’이다. 공식으로 설명하니 이론이 확연하게 머릿속에 박혀 이해가 된다. 아마 절대 잊어먹지 못할 것이다. 욕구를 0으로 만드는 방편이 있지 않겠는가? 그 것은 수심강의 중 번뇌사고에 따른 탐진치 정화방편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죽음명상으로 욕구를 정화할 수 있다. 죽음명상을 하면서는 자신이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들에 대한 집착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집착들을 버리는 연습을 하는 명상이다. 나는 그 동안 죽음명상을 하면 너무 잘 죽어버리는 경향이 있어 간혹 이게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재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나는 오만가지 망상을 시작했다. 암이면 어쩌나 죽을병이라고 하면 어쩌지….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혼자 별의별 희한한 소설을 다 쓰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러면서 그 동안의 죽음명상을 진짜 허투루 했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잘 죽어진다고 나는 집착하는 것이 없다고 의기양양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질문이 생겼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내가 무엇에 집착하기에 번뇌가 둥둥 떠다닐까? 깊은 사유 끝에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나는 죽음이라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해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망상과 번뇌로 계속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HERE & NOW, 지금 여기 이순간의 느낌에 집중하고 깨어있자고 하니 죽음에 대한 번뇌는 저 멀리 사라졌다. 욕구사고가 정화된 것으로 보진 않지만 HERE & NOW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뿌듯했다.
임장기초신념, 주인인 자세로 장에 임하라는 말이다. 내게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나는 평소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장의 주인이 되는 것을 회피하고, 눈치를 보며 서성거렸다. 그 이유에 대해 잠깐 고민을 해보았다. 책임회피가 아니었나 싶다. 낯을 가린다는 핑계로 뒤로 숨어버린 이 일물이 부끄러워진다. 이번 수련에서는 확실하게 이 장의 주인이 되어 239기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자! 내가 속한 장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긴 한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거울님께서 10년을 사유하시고,정리하시어 근본불교, 대승불교, 선불교의 모든 말씀을 깔끔하게 요약하셨다고 한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많은 경전과 그 내용에 어디서부터 접근해야할 지 몰라 막막했는데 그 모든 것을 동사섭 오요로 정립하셨다. 10년을 공부하시고 33년간 업그레이드해 오신 작품을 우리는 일 주일 만에 날름 받아먹기만 하면 되니 거울님의 공덕에 또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한편으로 거울님은 조금 억울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동체를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 우리 삶의 영역은 이 5가지 영역에 들어간다. 수련 3일째부터 이 오요에 대해 공부를 더 깊게 하게 될 설렘에 들뜬다. 거울님이 말씀하셨다. 불교는 즉비불교다. 불교는 편의상 불교라 명칭된 것이지, 불교가 아니다. 불교란 행복해지는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론인 것이다. 너무 흥미롭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내가 불교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현공님의 강의로 셋째 날 오전 장을 시작하였다. 주제강의였던 이상공동체 오요를 복습하면서 (중간에 다시 한 번 더 삭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위해 살지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갈등에는 두 가지인 수심과 화합이 안 되어서 그럴 수 있다 하셨다. 화합부터 학습하였다. 화합, 화합하는데 그 화합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화합의 원리만 명확하게 알 수 있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화합을 잘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노벨평화상감인데…!! 하는 찰나에 거울님께서 짠~! 하고 방편을 선보이셨다. 첫째, 화삼요이다. 보는 눈을 바로 하고 보이는 모습을 바로 하고 나아가 교류도 잘 하라는 말이다. 상대가 이유 없이 예뻐 보이는 것, 미워 보이는 것은 내 눈의 문제이므로 내 눈을 바로 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내가 보는 눈을 바로 한다고 해서 남이 나를 예쁘게 봐주는 것이 아니다. 예쁘게 봐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내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은 가치관폭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쁨 받고 싶으면 나의 보이는 모습을 바로 하면 된다. 바로 나처럼!! 부끄부끄^-^;;; 이것이 전부일까?? 나아가 교류를 하지 않으면 내가 상대를 예뻐하는지 어쩌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이것이 화삼요의 화룡점정이 되겠다. 이 화삼요가 너무 좋다. 평소 생활에서도 내가 정말 즐겨 쓰는 말이다. 누군가 나를 칭찬할 때 나는 당신의 ‘보는 눈이 바로 되어 제가 예뻐 보이시나 봅니다.’ 라고 1g, 1ton 을 날린다. 내가 출력한 1g이 상대에게는 1ton으로 닿는다는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봐주시는 그 바른 눈에 감사드리는 한편 나의 보이는 모습도 그럭저럭 괜찮나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때는 화삼요를 떠올리며 그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화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화합을 잘하는 두 번째 방편은 나눔공식이다. 관심의 지평 위에 ‘주기’로는 내 느낌을 감지하여 불꽃으로 표현하면, ‘받기’로는 공감하여 반응하면 된다는 말이다. 위의 짧은 말로 된 공식하나에 모든 원리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감탄스럽다. 들을 때마다 시원하다.
주기를 할 때는 촛대와 불꽃이 선명해야 하는데 느낌이 바로 불꽃이다. 느낌을 감지하고 나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느낌에 눈 뜬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느낌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1초 전의 과거라도 그 것은 이미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없다. 지금 이 순간만이 내 인생의 전부인데, 지금 일어나는 느낌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일어나는 느낌을 무시한다는 것은 내 인생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이일 때는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느낌을 잘 감지하고 표현한다. 허나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지식은 늘어나지만 감정과 느낌은 줄어들어 마음은 빈약해진다. 정말 슬프다. 나조차도 올 상반기에는 생각으로만 사는 삶을 살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걱정하고,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망상을 갖다 붙여 내 스스로를 괴롭혔다. 하지만 꾸준히 현재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미세정서에서 행복을 더 자주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99%의 작은 느낌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감지하니 많은 좋은 느낌들에 깨어있게 되고 내 안의 일어나는 숨은느낌찾기로 재미까지 생긴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함께 하는 도반님들이 그 느낌들을 잡아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내가 누리는 이 재미를 도반님들도 알아가는 것 같아 왠지 모를 공감대가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열매님은 매 시간 전 동요로 우리들의 기분과 마음을 전환시켜주셨다. 열매님은 나눔공식 중에서 받기부분에 대해 집중강의를 해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상한 것이다, 기억, 지식들을 말하며 그 것이 느낌이라고 착각한다고 하셨다. 나 역시도 아직 “ ~~것 같아요”, “ ~~라고 생각해요”라는 말들로 생각을 느낌처럼 표현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부끄러웠다. 하지만 열매님께서는 자신도 그런 때가 있으셨다며 ‘애기가 걸으려면 3천 번을 넘어져야 한다.’하고,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라는 촌철을 들려주시며 위로를 해주셨다. 한결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야지라는 다짐이 생겨난다. 받기에도 방법이 있다. 받기 3박자라고 부르는데, 경청, 공감, +a가 그 내용이다. 한 가지 팁을 내자면 경청과 공감을 할 때는 온전히 화자중심으로 에너지가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과 ‘동감’을 헷갈려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공감은 화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온전히 화자중심에서 그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그에 반해 동감은 나도 너와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인데, 둘은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청은 상대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면서 말끝에 “~~라구요”,“ ~~군요”를 붙이면 적절하겠다. 공감은 “~~공감이 됩니다..”, “그러셨겠어요~.” 라고 받으면 된다. 거기에 +a가 된다면 관심과 호감을 더 표현하는 것이 되며, 그 내용은 격려, 지지, 칭찬정도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받기를 잘 못하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다. 5대 악성받기가 그 것인데, 첫째는 불경청이다. 듣지 않거나 말을 자르는 것이다. 가끔 내가 하는 실수다. 내가 아는 부분이 나오면 아는 척이 하고 싶어 상대의 말을 자를 경우가 간혹 있다. 깊은 반성이 되었다. 그 외에 한풀이받기, 충고, 일반화, 비교받기가 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그래서 더욱 실수하기 좋은 패턴이라 유념해야 할 것이다. 처음 해보시는 도반님들은 받기를 다소 어려워하시기도 했고, 본인도 모르게 악성받기를 하시기도 하였다. “목숨 걸고 받아라.” 라는 촌철이 나올 정도로 나눔공식에서 받기는 정말 중요하다. 열매님과 함께 하는 엔카운터에서 받기연습을 목숨 걸고 했더니 이제는 누군가 다른 이의 말을 받지 않을 때는 조마조마해 하는 나를 볼 수 있어 재미도 있었다. 실습을 하면서 장내에 흘러가는 에너지를 둘러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 내 자신에게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감지해도 표현하기에 주저함이 생겼는데, 그 주저함이 생긴다는 것까지도 바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익숙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장에서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내 마음느낌 알아차리는 것이 재미가 있어 실습장이 더욱 즐겁고 신이 났다.
수심을 학습하기 전에 화합을 먼저 학습, 실습하는 이유를 알겠다. 어색한 도반님들과 화합을 이루고 나니 한층 분위기가 훈훈해지고, 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공양장력도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수심장에 임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살면서 장에 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관계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 속에 행복과 불행이 있을 수밖에 없다. 행복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교류사덕을 기억하면 된다. 보시! 좋은 일하고 베풀고, 고마운 일 있으면 감사표현하고, 사과할 일 있으면 바로 사과표현하고, 기억안난다면 자자청하면 되고, 지난 일을 사과하고 싶다면 시간이 오래 지났어도 사과표현하면 되고, 사과하면 관용을 베풀면 되는 것이다. 교류사덕 실습을 하면서 남동생에게 보시, 감사할 일이 많았고, 꼭 지키기로 도반들과 약속하였다. 교류사덕을 하면서 거북님과 우송님과는 더 친밀감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관계, 화합은 알고 보면 정말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인공양장력 5대 요인인 정서, 표정, 언어, 행동, 환경요인 중 언어와 행동요인 실습장에 임하였다. 언어요인 실습은 칭찬샤워였는데, 너무나도 감사하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소감을 말할 땐 감동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엄청난 칭찬거리를 내놓으신다는 것도 감탄이었지만, 그만큼 도반님들 모두가 진실된 모습으로 장에 임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칭찬샤워로 우리 구나반 분위기는 아름다운 인공양장력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과 손길엔 따스함이 가득 배어나왔다. 나에서 우리가 되었음을 느끼기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저녁 장에서는 행동명상 실습을 하였는데 어느새 재밌겠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나를 볼 수 있었다. 이를 발견하며 예전엔 긴장을 많이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자연스레 비교가 되니 나의 똥이 많이 떨어져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행복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어도 행복해진다는 행동명상의 여러 가지 중 마지막인 분노, 울음명상에서는 목탁이 울리기 전부터 눈물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도 내 안에 분노와 슬픔이 많이 쌓여있음을 확인했다. 우울해하는 나약한 엄마가 미웠었다. 내가 힘든 시기에 엄마가 아프고 있는 상황에 억울했고,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화가 났었는데 울음명상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엄마의 아픔이 느껴졌다. 어머님의 은혜를 부르면서 더욱 더 엄마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엄마는 나에 대한 걱정, 집안살림걱정, 외할머니의 죽음, 동생의 장래 등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옴에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어머니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상실감을 이해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너무나도 아프고 죄송했다. 한편 그와 함께 왜 자꾸 엄마아빠에 대해 화가 나는지 내 안의 문제를 풀고 싶었다. 그 이유는 나의 똥 때문이었다. 엄마아빠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상을 내가 만들어 놓고 어리석게도 그 상에 나의 부모님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집착 때문이었던 것이다. 위 주제를 번뇌구조로 풀어본다면 내 머리 속에서 엄마아빠라는 실체사고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상적인 엄마, 아빠 상이나 역할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다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부모님의 모습이 충족되지 않으면 욕구가 좌절되어 불만사고로 이어진다. 불만사고는 다시 실체사고를 자극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치사고를 더 강화시키고 그에 따라 더 큰 욕구가 좌절됨에 따라서 아주, 아주 더 큰 불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번뇌구조를 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에서 말한 정화방편이 쓰이게 된다. 부모님이 이상적인 역할을 해주시지 않아 분노가 생길 때 그 상황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보며 나지사 명상을 한다. 주관적인 관점을 완전히 배제한 채 상황만을 바라보는 구나에 에너지를 기울이면 이미 그 단계에서 분노가 정화됨을 느낄 수 있다. 지족명상을 하면서 부모님의 존재, 부모님이 나에게 주시는 소소한 사랑들, 그 동안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불만사고가 정화된다. 꼭 내가 원하는 형태의 이상적인 사랑을 받겠다는 집착을 버리도록 하는 명상이 바로 죽음명상이다. 솔직히 말하면 명상을 하면서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객관적인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답답하다. 이론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특히 부모님에 관한 부분인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객관화하고 감사하려고 한다. 공표치기를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
지족명상을 하는데 하루를 다 썼다. 너무 즐겁고 신이 나는 시간들이었다. 제일 처음은 사물지족명상인 주전자 명상을 하였다. 도반님들의 주전자 명상 발표를 들으면서 각자 자신의 필터로 주전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여 흥미로웠다. 주전자가 내 우주로 들어왔다. 그 순간 너무도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눈을 감고 집으로 가니, 그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역할을 해줌이 감사하고, 그 것들의 소중함이 절절히 다가왔다.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떠할까? 절 명상을 하면서 내 앞에 계신 분의 존재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더니, 그 존재의 고귀함이 마음 속 깊이 떨림으로 전해져 와서 먹먹해졌다. 특히 공명현상을 경험할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동네 긍정점 3003가지를 할 때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동안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습을 하면서 내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 뜻 깊은 시간이었고 뿌듯하고 벅찼다.
바른 가치관으로 바른 행복관을 가지고 용감하게 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맑은 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힘든 2012년이었지만, 거울님과 동사섭, 그리고 많은 좋으신 도반님들 덕에 행복한 2012년이기도 했다.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던 20대의 마지막 해였다. 앞으로도 더욱 바른 마음과 바른 가치관으로 당차게 세상을 살아가보련다.
5박 6일의 시간이 5분 6초처럼 빨리 지나가버렸다. 그만큼 학습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하다. 2012년 마지막 주를 마음공부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했던 도반님들과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고 깨달을 수 있도록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해주셨던 돕는이 선생님들!! 그리고 스승님이신 거울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그 어디에 계시든 늘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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