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고급과정 소감문
표현 박영애
32회 고급과정에 참여하고 나서 느낀 소감문입니다.
적응이 곧 해탈입니다. 저항 없이 적응함이 극락입니다.
돈망명상 돈망 3관에 따라 명상해봅니다.
1관은 그냥 있는다. 간에 머물러 봅니다. 무한 ok입니다. 확 트인 시원함을 경험합니다.
2관 기초수를 그대로 수용한다. 저항 없이 연기를 사유하며 그대로 느껴줍니다.
3관 아도치우고 법도치웁니다. 오로지 깨어있는 의식뿐임을 깨닫습니다.
아하 이 깨어있는 의식이 바로 거울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던 개념이전 니르바나, 자성 본래청정, 돈망, 태허 등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을 때 가슴이 탁 트인 시원함, 아프던 어깨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며 날아갈듯 한 무한 자유로움, 환희심이 올라왔습니다. 정말 시원합니다.
Here and now에 깨어있음이 순수의식 돈망임을 알았습니다.
* 의식상태
번뇌로 가득 찬 상태.
쉴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비워주는 작업을 하는 상태
돈망 경험 후 의식상태
<아주 깔끔한 텅 빈 의식상태> 그렇게 갈망하던 내용을 강의해주시니…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을 그대로 꿰뚫어 보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시원해졌습니다.
저는 이번 고급과정 참여 이유가 내 번뇌를 좀 소멸시키고 다 소멸하지는 못하더라도 깨끗하게 정렬시키고자 하는 바람으로 참여했거든요.
결론은 기대보다도 더 정렬되고 소멸되어서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언제나 지혜롭게 깨어있는 상태에서 구현천국을 만들 수 있는 방편을 체득했습니다. 그래서 이 후의 저 삶은 이리저리 끌려가지 않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혜롭게 선택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저는 이번 소득이 강의 때 자주 들어오는 용어들이 아주 세밀하게 이해되고 체득되는 재미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 색즉시공 - 물자체
-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다. 즉 사과가 시간이 지나면 썩엇 없어진다. 하지만 씨가 남는다.
-나무는 그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키가 자라고 단풍들고 낙엽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돋아나고 변화합니다.
-즉 이것이 공이요, 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는 깨달음의 수준입니다.
*식주체기능이 개념이전 본래청전 여여실상 아미타불 공성상일여 자성 순수의식 니르바나 돈망 본래각아님이 없다는 것을 이번 32회 고급과정에서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 이번 고급과정이 최고의 과정이었습니다.
*천하는 고요하고 여여하고 평등하고 걸림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한 ok인데 내가 스스로 세상을 흔들어 부정적인 염체로 지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슴에서 울컥하고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지족의 극점에 돈망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족을 유위법이요 유한하고, 돈망은 무위법이요 무한함입이다.
*이것이 물과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는 외부의 힘에 (바람, 달, 지구)에 의해 파도를 일으키지만 물은 항상 여여합니다. 파도는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물은 파도가 일어나나 사라지나 항상 물로써 남아있음으로 여여합니다.
*파도는 바람이 있고 함이 있고 얻음이 있고 유위의 세계요 곧 업장입니다.
*물은 바람이 없고 함이 없고 얻음이 없는 무위의 세계입니다. 즉 니르바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곧 업이 마의 파도인 생멸의 현상을 일으킵니다.
*다시 섬세하게 돈망3관에 따라 돈망명상을 해봅니다.
*1관 그냥 있는다. 모든 감각 인지관에 상응하는 느낌이 따라온다.
*2관 기초수를 그대로 수용한다.
*3관 아공법공이니 걸림 없이 그냥 깨어있는 것이 할 일 전부이다.
*또 다시 확 트인 시원함을 경험합니다. 저항 없이 연기를 사유하며 그대로 느껴줍니다. 아도치우고 법도치웁니다. 오로지 깨어있는 의식뿐입니다. “아, 이것이 거울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던 개념이전 니르바나 돈망 순수의식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때 환희가 올라오며 시원함과 아프던 어깨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며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입가가 방그레 올라감을 느꼈습니다.
*이제 계속하여 반복 관행만 하면 되겠구나 그러면 어떤 지옥이 와도 깨어서 자성의 동네에서 살 수 있겠구나하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돈망을 체험하고 맛보고 나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왜 돈망 3관을 해야 할까라고 했을 때 안하면 탐진치의 웅덩이에 빠져 스스로 지옥에 가두고 밖으로는 갈등으로 업노름을 하고 실기 때문입니다.
*또한 색즉시공이, 없음이 무가 아니고 변할 뿐, 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벼 이상에서 껍질을 벗겨 쌀이됨을 알았습니다. 물자체, 불가지가 세세하게 알아짐을 느낍니다.
*식주체가 대상을 절대긍정으로 볼 수 있는 개념이전 순수의식 돈망, 본래청정 여여 실상 아미타불 공성상일여임을 세세하게 알아지니 시원합니다.
*끝으로 열정적으로 같이 고급과정에 참여한 도반님들, 스님들 돕는이 분들, 그리고 이렇게 저희들이 지옥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아낌없이 다 내어주시는 큰 고목님, 늘 건강하시고 해탈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표현.
무등선
지금 이순간 나는 행복하다.
시원하고 또 후련하다.
모든 것은 그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물자체요. 여여실상인데 내가 그렇게 규정짓고 보고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라고 할 만한 것 없고 굳이 있다면 온 법계가 나 일 뿐이다.
돈망산책을 하면서 흐르는 물을 무심히 보고 있었다.
순간
물이 흐르는 게 아니었다.
물은 그냥 있을 뿐이었다.
흐르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보고 듣는 모든 것 내 주관적인 염체일 뿐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물은 힘이 없이 그대로인데 이 마음은 왜 그다지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쉼 없이 움직이고만 있었던가?
이제는 쉴 수 있는 휴식처를 찾아서 기쁘다.
돈망 지족명상.
놀랍다.
의지적으로 돈망모드, 지족모드를 선택하면서 명상을 한다는 것.
돈망의 바탕 위에서 지족명상을 한다.
명상을 하는 나와 의지적으로 생성한 염체만 존재하고 온몸이 감사, 축원 자체가 된다.
30분의 산책이지만 내 의식을 내 마음대로 운용하는 것을 알고서 행하는 환희로움이 햇살처럼 온몸으로 펴져나간다.
이번 고급관정 중 또 다른 수확물은 돈망삼관이 한 꼬챙이에 꿰어진 것이다.
그냥 있음의 바탕위에서 기초수를 수용하고 이공법공으로 확장되어 의식공간이 넉넉해진 해방감, 여유로움….
공(空)은 무한부정이요.
돈망(頓忘)은 무한긍정이다.
이 일물은 무한긍정의 무한휴식공간을 가진 무한부자다.
주관적인 필터가 사라진 눈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은 그저 물자체요, 여여실상이다.
새를 보고, 나무를 보고, 물을 본다한들 걸리지 않으니 행복하다.
새도, 나무도, 물도 나 일 뿐이다.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지어서 보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고 온통 ‘나’랑 다투면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무엇보다 9살의 문제의식을 40년 만에 해결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가르침 주신 큰스님,
함께 수련한 노든 님 들 감사합니다.
일우
이번 특설 32회 고급과정에는 하루 늦게 참여하게 되어 살펴지는 마음과 망설임이 없지 않았지만 역시 참여하고 보면 늘 축복을 받게 되는 게 사실이다. 기쁘다.
기쁨을 맛보게 했던 말씀 몇 가지 더듬어 본다.
1. “우리가 ‘고’를 겪게 되는 원인은 저항에 있다.”
“저항이란 식주체 기능이 객체인 대상을 수용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다.”
“방법은 지족명성 등을 통해 범사에 절대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 “온 세상은 본래청정이요, 여여실상이요, 본래본각이며, 부처 아님이 없다, 라는 사실을 성자가 깨닫고 보니 그러하더라고 하니 그냥 믿어 버려도 좋다.”
“이러한 자세가 인격화가 되도록 ‘아미타불’ 부처님 명호를 빌리거나 ‘할렐루야’ 등으로 각인하도록 하자” 이처럼 “일심법계가 OK라는 것을 바닥부터 확인하고 해결하는 길로 돈망명상을 권장한다” 라고 돈망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정리 말씀으로 시원함을 갖게 되어 좋았다.
2. 공에 대한 개념 : “공이란 공도 공하다, 그러므로 공은 무한 부정의 논리요, 초월논리다.” 또한 공에 대해서는 존재론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라는 말씀이세 공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어 개운함을 느껴서 기뻤다.
3. 또 “공이 초월로 가는 뗏목이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식주체가 객체에 대하여 분별시비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말씀에서 도구에 시비하기보다는 목적에 뜻을 둬야 한다는 점을 확연히 할 수 있어 좋았다.
4. “세상은 빅뱅 이후 진행된 자연 일 뿐이며, 일체가 그러한데 인ㅇ간 스스로의 사고활동과 주관성으로 자신과 대상에 걸리면서 독소를 발생시키고 지옥을 만든다. 석가모니는 행법으로 무아를 제시했는데, 무아란 ‘무실아’를 의미한다.” 즉, 있는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체로서 ‘나’다. 라고 말만 할 것은 없다. 라는 말씀으로 무아개념을 한층 깊게 이해하게 된 기쁨이 있었다.
5. “진리에 속지 말라. 이 순간이 극락 되게 하는 것이 진리 아니겠느냐?” 말씀에서도 도그마로 갇혀 궁극으로 얻어야 할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깨어 있는 시각을 배우게 되어 기뻤다.
6. 난 돈망명상을 이렇게 하고 있다. 라는 주제로 스피치를 하면서나 동영상을 찍으면서 당황스러워하고 버벅대는 자신을 보면서 나태하게 공부한 것이 들통이 나서 부끄러웠으나, 타인에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동안 밀도 있는 명상생활을 하야 겠다. 라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고 심월님에게 설명하면서 스스로 정리되는 공덕이 있어 안내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7. 돈망3관 중에 1관인 ‘그냥 있는다’라는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르고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선혜님의 ‘자연은 그냥 있더라’ 라는 표현은 인상적이어서 좋았다. 그렇다! ‘생각은 의식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지만, 의식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라는 톨레의 말을 다시금 ‘아하!’ 하게 되는 기쁨이 있어 좋았다.
***동사섭을 만나서, 만큼 똥이 작아져 걸림 없는 만큼 행복한데, 대신에 나의 자유로운 언행이 여러분께 불편함을 끼치지 않았는지 살펴지고, 불쾌하셨다면 진정 사과드린다.
추신 : 촌철 - 삶의 뿌리를 무명의 지하수에 내린 채 살면 지옥살이요.
삶의 뿌리를 돈망의 지하수에 뻗으면 해탈의 삶이 된다. -원경헌철
법웅 나양하
이번 32회 고급과정에 참가하도록 배려해주신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이번 과정에서 아하점 메모해둔 것만 서른다섯 가지나 되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무한 자유를 보장 또는 확인시켜주었습니다.
큰스님의 융통성 있는 프로그램 운영에 감탄했습니다. 주간에 듣는 분, 수련 중 일보러 다닌 분, 돈망 3관중에서 제1번 또는 2번까지만 해도 된다는 말씀, 소그룹에 맡기는 방법 등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로운 고급과장 운영이었습니다.
말씀마다 저에게는 줄탁동시 같은 도역을 일으켜서 감사합니다.
1. 말 이전 생각 이전 그 상태를 가지고 놀아라! 이 법문을 듣자마자 말 이전의 마음자리가 곧 나로서 자각되어 무한 해탈로 도약하는 것이었습니다.
2. 기초수를 그래도 수용한다. 이 말씀 한 마디에 기초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그럴 뿐으로 자각되며 청청해졌습니다.
3. 내 마음을 30분 이내로 천국으로 만들 것, 이 말씀 한마디에 내 마음은 본래 천국 아니었던 적이 없었음이 그대로 인식되었습니다. 분명 경사스러운 일이겠지요?
4. 30분 이내로 그 상태를 만들라! 이 말씀에 내 마음을 그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상태임을 확인시켜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5. 낙수에 중복되어 있고 고수에 저항하는 업장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이 업장이 보입니다. 업장을 알아차리는 즉시즉시 해탈임을 확인할 일만 하면 되겠습니다.
6. 벡터에너지와 스칼라에너지 법문 말씀에는 그 어떤 것도 그 모두가 스칼라에너지에서 일어나는 것임이, 즉 ‘부처님 손바닥’ 위의 벡터일 뿐임이 확연합니다.
7. 벡터에너지를 쉬고 스칼라에너지로 있어보라는 말씀에 벡터에너지가 동시적으로 스칼라에너지로 녹아드는 흐름이 확연했습니다.
8. 컵 법문에서는 궁정 느낌이든 부정 느낌이든 컵은 그대로였습니다. 생각과 느낌으로 엮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9. 벡터놀음을 차단하는 방법은 본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차단하려는 의지조차도 없이 바로 본원임이 자각되었습니다.
10. 의식전개과정의 법문에서 전 과정 일체가 그래도 옴나임이 확연했습니다.
11. 돈망3관의 목적지에서 보니 <수요>이라는 단어와 <걸림없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을 넘어서서 한 발작 건너뛰어야 할 사다리였을 뿐이었음을 알았습니다.
12. ‘우주에서 보면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찰나생명일 뿐’이라는 말씀에서는 영원한 지금이 생생하였습니다.
이상 저의 아하점 서른다섯 가지 중에서 간추린 것입니다. 큰스님,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행복 해탈하십시오.
동행 무영
여러 수행프로그램을 전전해본 사람으로서, 동사섭 수련의 정점인 고급과정을 마치고서야 비로소 이 수행프로그램의 차원과 그 원만하고 높은 격을 실감한다. 수행론의 가치는 이론이 아니라 그것이 육근과 육경을 흔들어 깨우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데, 처음 접하고서도 이리 강렬하고 밀밀한 울림이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인간과 우주를 관통하고 빚어낸 실증적 논리와 수련에 바탕한 것이리라.
홍로점설! 돈망삼관을 수련한 후에 내 의식에 머물렀던 불편한 경계는 화롯불에 한줌의 논을 던질 때 흔적 없이 녹아 내리 듯이, 해묵고 도저히 이생에 해결될 것 같지 않게 불편하고 묵직하게 의식의 공간에 숨었던 하나의 염체마저 용광로에 던지 한줌의 눈처럼 아무런 찌꺼기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듯 사바에 존재하는 중생들의 당연한 짐처럼 여기는 것들이 용해되고 나니, 연화장 화엄세계가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과거에도 짤막하게 경험했던 종교적 체험들이 어떠한 상태에서 그러했는지 이치가 확연해지면서, 이제 코끼리의 걸음처럼 안정적으로 그 물결을 도도히 타고 남은 생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돈망삼관의 모든 수행은 옴의 각성된 의식을 깨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과거의 업의 여파로 끊임없이 내달리는 의식ㅇ근 옴의 스위치를 켜는 순간 오롯하게 살아나고, 그 오롯한 의식이 몸과 사념으로 사정없이 흔들고 잇는 벡터의 에너지의 격랑을 여실하게 투사해낸다. 기초수의 반영이고, 투사이다. 투사는 바로 심산의 쭉정이를 저항 없이 수용하면서 용해시킬 수 있는 시점이다. 어머니의 눈길처럼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지긋이 바로보기만 하면 용해되는 그 지극한 평정 안온, 이러한 옴나의 상태에서 우주법계는 근경식 18계의 장에서 색성향미촉의 경계가 개념이전의 활구로 살아난다. 두두물물이 각각이 미세하고 생경하게 살아나면서 또한 우주와 하나가 된다. 화엄법계이다.
Vetar의 격랑이 멈추나, 스칼라의 해인삼매이다. 옴나의 주하면 Vetar의 파고가 화엄법계이니 스칼라와 벡타가 둘이 아닙니다.
옴나의 상태에서 소나무 밑을 걷고 있었다. 소나무 향도 아니고 피톤치드도 아닌 향 그것, 온 기감이 열리면서 미묘한 향이 우주의 부분에서 도도히 그것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극한 평정, 이후에 따라오는 지극한 지족, 감사, 소나무 할아버지께 가장 정성스런 절을 올리고 싶은 그 마음, 왜 소나무뿐이겠는가? 육근과 육경에서 개념이전 살아나는 모든 물물이 경건한 경의를 표하고픈 마음! 그러한 옴나의 상태에서는 전우주가 각성된 의식으로 들어온다. 가장 미세하고 밀밀한 걸음으로 만들이 육근의 경계에서 춤을 춘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나니, 나는 소크라테스의 비밀도, 베토벤의 의식도 어떤 위대한 철학자의 논리도 그 의식의 깊이를 엿본 듯합니다.
우린 흔히 별일 없이, 건강하게 일상을 사시라는 의미로 또한 더하여 진리의 길을 걸아가시라는 의미로 여여하십시오, 인사한다. 옴나의 상태를 경험하고 나니 여여가 담고 있는 우주의 무한 공덕의 질량을 담아 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지극한 경의와 감사와 기원으로 여여하십시오. 합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울님, 그리고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여여하십시오.
선혜 유소림
1. 저는 2011년 동사섭을 만나 아주 특별한 공부를 하였습니다. 동사섭에서는 제가 한 평생 살아온 것을 유위법이라고 하면서 무위법 공부라는 걸 한 번 해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있는다를 열심히 했습니다. 평생을 그냥 있지 않고 무언가를 숨차게 도모하며 살던 나에게 그것은 정말 특별한 공부이고 훈련이었습니다. 그리곤 놀랐습니다. 저를 그렇게 휘몰아치던 좋고 나쁨의 가치가, 옳고 그름의 기준의 1000.00% 인공물이고 주관적인 것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제가 만났다고 생각되던 모든 문제들은 자승자박, 그것뿐이었습니다. 눈뜨고 보니 제 밑뿌리는 무엇 하나 덧붙일 것이 없는 본래 무한 OK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32회 고급과자에서 그것보다 더더욱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는 기를 쓰며 그냥 있는데 이 우주는 알 수 없는 옛적부터, 근본부터 그저 여여히, 무심히, 그냥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우주야말로 그냥 있음이었습니다! 우주는 그냥 있으면서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하며 140역년을 흐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이 바로 우주의 라이프 스타일이고 근본 원리였습니다! 그냥 있다는 것은, 무위법으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특별하다면 제가 한 평생 살아온 그 유위법이야 말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중중 연기의 그물에서 제 마음대로 한 조각을 정해 이름 붙이고 그것을 가치 평가하고 그것을 쫓느라 허덕이던 그 존재 방식이야말로 비자연적이고 비상식적이고 이 우주에서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야릇한 왜곡 현상이었던 것입니다. 무위법. 그것은 참으로 제 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존재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상식을 이해하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던 것일까요. 배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한 뱃사람들은 육지에 오르면 오히려 육지가 흔들려 육지 멀리를 한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무수한 생애를 바늘구명보다 작은 ‘나’라는 틀 속에서 흔들리던 자는 이 무한 우주를 향해서 우주 멀미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울님께서는 그냥 있음이야말로 평상(平常)이고 당연이니 그것을 상식으로 하여 살아가라 하십니다. 그리고 공성상 일여(空性相 一如)와 아미타불을 말씀하십니다. 무언가 알 수 없던 부조화, 세상과 저 사이에 저 사이에 있는 알 수 없이 껄끄럽던 그 무엇이 이제야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비로소 우주와 화해하고 그 흐름 속에, 무위 속에 아무 두려움 없이 몸을 담급니다.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스승님, 무어라 감산의 말씀을 올려야 될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