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회 겪는 엔카운터 4박5일. 이번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아도 얻어가는 게 많았던 자리라 그 믿는 맘으로 사회에서 떨어져 쉬어야지 하는 맘으로 함양으로 향했다.
몇 가지 다짐은 1. 너무 부정적인 것만을 짚지 않고 긍정적인 부분도 짚어주자. 2. 빈도수가 많았으니 이번 장에선 전보다 남의 이야기 들어주는 시간을 좀 더 가지자.
첫날 첫 시간에 장이 진행되어 참여하니 그동안 공부하여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것이 효과가 있긴 했는지 생강 말에 기름칠 한 것 같다. 전보다 말하는(앞뒤 맥락 없이 뚝 끊어 부정감정 나올 때 툭 튀어 나오는 것보다)양이 많아지고 말도 상대방 배려하여 우회적으로 하는 게 보인다며 주변에서 이야기해 주셨다.
8월 엔카운터에서 아비규환의 장에서 두들겨 맞아가며 배우고 사유하여 행으로 실천해 보려 노력한 게 그래도 진행이 되나 보다 싶어 기뻤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장활력(역동)은 떨어진다며 예전의 생강 맞냐며 질문이 들어오고, 나 역시 장역동은 떨어지나 편하게 풀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자연스럽고 풀어진 분위기가 되다보니 몇 분은 살아온 이야기 실타래가 자연스레 풀려나왔고,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의 상황에 대입해 근래 없이 꺼이꺼이 울음을 뱉어내 나름은 정화도 된듯하다.
사람은 본인이 경험했던 경험치에 의해 공감의 강도가 세어지고 약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생육사 경험의 시간이었다.
예상 못한 파격선도. 이틀이 지난 15일 금요일 저녁 행동명상은 노래방을 가자고 하신다. “난 노래 안부르는데.... 노래방도 안가는데....” 쭈빗쭈빗 주저되는 맘. 노래방 가서는 일찍 흥을 즐기시는 도반님들과 함께 “내가 노래를 잘 부르던 춤을 잘 추던 상관없다. 이 자리는 안해보던 일을 해보는 자리이고 남 눈치 볼 것 없다.”라는 마음이 들게 되는 자연스런 분위기에 힘입어 그동안 주저하던 행동을 마음껏 발산했고, 그 결과는 자유로움과 상쾌함 그리고 도반님들과의 강화된 유대감이 함께 왔다.
전의 엔카운터 장들과 비교되던 이번 8회 엔카운터-부드럽다. 조용조용하다. 별 긴장됨 없이 장에 나섰고 이렇게 얻어 가는가보다 했지만, 마지막 날 아침 표현님의 마음이 해소 안 됐음을 다시 장에 내 놓았고 이를 나누다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던 가르침. 모든 것은 양가적이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을 알고, 질투 미움이 있어야 사랑 애정의 귀함을 깨닿는다.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다.” 양가적인 성질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짝이다. 내게만 부정적인 것들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들도 따라오게 되며 이는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차리는 시간이 되어 소중했고 아하!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장)까지 모두 챙겨야 하는 엔카운터. 남은 나을 비추는 거울임을 다시 생각하며 이 마음 사회와 일상에서도 적용하여 나와 주변사람들을 살피고 챙기며 생활하겠습니다.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반달 임승택
삼시세판!
그렇다. 이번 엔카운터 참석 이유는 삼시세판을 채워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컸다. 그다지 절실하지는 않았다. 듣기공부, 말하기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잠시 긴장된 생활에서 벗어나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세 번째 엔카운터에 오게 된 이유는 이처럼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도 소득은 많았다. 오게 된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던 만큼 더 유연한 태도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에 그간의 직장생활로 인한 긴장과 경직이 적지 않았다는 자각이 일었다. 누군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혹은 알아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혹은 경우에 맞지 않은 말을 내뱉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등이 긴장과 경직의 상태를 키웠던 것 같다. 그냥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인데, 거기에 너무 과민한 상태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문제라면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는 자각이 일었다.
물론 아직도 잘 못 듣거나 잘 못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일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결과만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요구되는 그대로의 행위에 충실하다보면 긴장하는 일도 줄 터이고 자연스레 실수도 줄어들 것이다. 이번 엔카운터에서는 목적 지향적 사고가 현재의 소통과 깨어있음에 방해된다는 사실을 더욱 확연히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 소득은 내게도 공감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연당님의 말씀을 듣던 중 너무나 힘들게 살아오셨을 과거가 짐작이 되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연당님에 대한 순수한 공감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연당님께서는 나의 눈물에 고마워하시고 위안이 된다고 하셨다. 그저 공감해 드렸을 뿐인데 그것에 감사해 하시고 얼굴표정마저 환해지시는 모습이 감격적이었다. 또한 그것이 나의 가슴을 더욱 짠하게 만들었다.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 이처럼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비로소 전체 구성원의 면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는 점이다. 이전까지는 항상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는 다른 분들의 상태에 더 많은 관심과 귀 기울임이 있었던 듯하다. 먼지님, 도안님, 보광님과 같이 훌륭한 역할을 하는 분들도, 해탈님이나 연당님과 같이 낯설어하는 분들도 하나같이 소중한 분들이고 엔카운터를 구현해 내는 소중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힘든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그 분들이야말로 엔카운터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된다.
삼시세판이라고 했다. 이제 와서 엔카운터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안 것 같다. 비로소 나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로 마음을 문을 열게 되지 않았나 하는 싶다. 그러나 이 점에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삼시세판만에 계속해서 엔카운터에 참여해야할 분명한 이유를 깨닫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자각이 있도록 유도해주신 모든 구성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반달 임승택 합장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해탈
깨달은 점 : 생강님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감사하다 고맙다 하는 얘기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감사하다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나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감사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어떤 점이 감사하다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를 하다가 가르친다고 말하면서 기분 나쁘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보니 처음에는 넘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분하기까지 했다. 나는 도움을 주고자 한 얘기가 이렇게 나쁜 일이였나. 내가 잘못 한걸까? 그 충격에 한동안 멍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내가 얼마나 나를 다른 모든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애썼는지가 그동안 나의 수행에서 무아라는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어느 정도 익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부정 염체를 보냈을 때 내가 얼마나 나를 보호하고 있었는지 그 보호막이 찢어지면서 처음에는 발가벗어진 듯한 당황함과 부끄러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 넓은 세상이 보인다.
자아가 강하면 강할수록 주체적인 주인으로 살아 갈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나 기질이란 것도 어쩌면 그것이 있다는(오랜 습관 된) 나 나 기질이란 옷의 집착에서 그것을 놓지 않고 지키려고 하다 보니 그 밖의 세상을 만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느낌. 아이가 불의 뜨거운 맛을 조금 보면 그 불을 만져볼까 말까하는 두려운 떨림의 설레임이랄까.
지금느낌 지난 동사섭 공부는 나에게 그냥 어떤 힘이 생기게 하는 것 같다는 정도라면 이번 교육은 좀 더 선명한 깨달음이 있었다.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산타클로스 할머니로 다시 태어나는 엔카운터
푸른산 박영숙
작년 유월부터 집짓기를 위한 설계에 들어갔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 설계와 시공을 함께 맡기기로 한 계획이 바뀌어
시공사를 다시 정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천만원이 날아간 셈이 되었다.
어릴 때 돈 때문에 힘든 세월이 많았음에도
돈에 대한 집착이 크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짓기 과정에서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무수히 발견했다.
울그락붉그락 천당과 지옥을 수백 번 오르내렸고,
돈을 아끼기 위해 나의 고군분투는 몸을 기진맥진케 했으며,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어 보이는 남편을 끊임없이 갈구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모두를 들이는 집으로 짓고픈 서원도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나의 건강을 위한 집짓기가 출발이었다.
시공 마무리와 관리에 대해 아직 부담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내가 마음을 열어놓은만큼
공유와 교류가 그러한 부담을 경감시킬 것이란 걸 믿는다.
순간순간 집짓기 과정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알아차리기도 했지만
에너지가 소진되어 채 정리되지 않은 채
특히 남편에게 마귀 할머니의 손갈퀴로 박박 긁어댄 것이 많이 마음에 남는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내 마음과 기분을 표현하고 방법을
다시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어 참가하게 되었다.
지난여름과는 사뭇 다른 밋밋한 분위기여서
‘이렇게 해서 엔카운터가 잘 되겠나?’라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를 떠올릴 때 자주 연상되는 모습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푸스’다.
무거운 바위덩이를 밀어서 산꼭대기까지 가져가면
다시 아래로 떨어져서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그 짓을 하고 있는 모습......
‘이카루스’가 떠오를 때도 있다.
날개가 녹을 줄 모르고 태양 가까이 가다가
결국 날개가 녹아서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
‘실체화’의 비율이 다른 사람보다 높았다.
그러니만큼 고통도 심한 인생살이였다.
지금도 늘 고달픈 일상을 살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실체시’의 퍼센티지가 낮아져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붙잡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이번 엔카운터가 짐 하나를 내려놓은 계기가 된 것 같다.
그 효과야 현실 속에서 다시 검증되겠지만
일단은 홀가분한 감이 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실체시하여
내 여린 어깨에 올려놓고 살았다.
어렸을 땐 내 동생, 그리고 가족
결혼해서는 남편, 두 아들, 어머니, 아버님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
그리고 여전히 친정 동생과 친정 부모님들까지......
늘 내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의 역사의 무게까지 메고 살았다.
어찌 어깨가 내려앉지 않겠는가!
그것이 사랑의 마음에서라기보다
내 손아귀에 그들 모두를 쥐고 싶은 ‘힘에 대한 욕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믿음이 약했기 때문에 아닐까?
나의 관심과 나의 염려와 나의 보살핌으로 인해
그들이 더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졌다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은 양쪽 부모님 모두 노쇠하여
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느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다손 치더라도
나의 해탈이
부모님들과 가족들의 동반 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좀 더 과감하게 내려놓아야겠다.
남동생에 대해 사무치는 마음 한자락을
도반들과 함께 해서 큰 위로가 되었다.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한 죄책감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었다.
내 불행의 크기에 대한 오만함으로 인해
남의 힘듦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러한 나의 모습을 또 보게 되면서 많이 뉘우쳤다.
‘불행의 크기, 슬픔의 깊이’는 서로 비교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우쳤다.
아직도 현상의 이면을 보는 깊이가 약하다.
그러나 엔카운터를 하면서 현상의 이면을 보는 연습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
그 점이 내가 엔카운터에 집착을 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다.
나의 이면,
다른 사람 표현의 이면을 차츰차츰 보게 된다.
그리고 내 감정의 진실을 알아차리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진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나의 감정도 왜곡 없이 전달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진심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나의 연습과 도반님들의 표현 방법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그 점이 나를 엔카운터 장으로 인도한다.
이젠 나에 대해 연상되는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
바위덩이를 밀고 올라가는 시지푸스가 아니라
선물 보따리를 메고 돌아다니는 산타클로스 할머니로...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2017.12.17. 먼지 강희영
이번 엔카운터에 참가하신 분들의 숫자가 적정하게 짜여서 충분한 나눔을 가질 수 있어서 편안했습니다. 늘 참가 동기는 내 속의 생각과 느낌, 경험과 기억들의 조합과 왜곡들을 바라보는 것과 상대방과의 교류 속에서 새로 반응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는 것, 그리고 늘 부족한 감정 영역의 받기 능력을 확대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장기 과제로 있어 왔지만 이번에도 여실히 상대방이 원하는 공감을 표현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내 속에 일어난 공감 이해는 내 방식의 공감이어도 공감이니 그것이 잘못이다 라는 생각은 없으나 그 순간에 상대방이 안도하고 시원해지는, 원하는 공감을 하여 최대한 배려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각성을 새롭게 하고 기억하겠습니다.
삶의 그림자 한 켠을 내어 놓는 귀한 시간도 배려 받아 감사했고 스멀스멀 남아 있는 자기 연민도 많이 가벼워 진 것 같아 시원합니다. 상대방 탓을 하는 습기를 바라보며, 어떤 것이든 더 허용하며 나눌 수 있는 장이 되도록 엔카운터가 지향하고자 하는 형식들을 통제 에너지가 아닌 따뜻한 요청 에너지로 열고 닫는데 깨어 있도록 욕구를 관리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책감과 화의 근원을 좀 더 분명하게 요약할 수 있게 되어 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고민 나눠주신 분들께 상당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 생을 함께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해주셔서 도반님들께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모두 건강히 다시 뵙기를 희망해봅니다. 고맙습니다.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도안 최동춘
10명의 도반들이 함께 나눈 한 생을 마무리한다. 즐겁고 유익했다.
장의 힘, 도반들의 지혜가 함께하니 어떠한 복잡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마무리된다. 기쁘다.
알고 보면 좋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만나지 않았을 뿐, 나누지 않았을 뿐. 각 사람의 마음속의 불성을 만난다. 기쁘다
반달님과 푸른산님, 표현님, 생강님이 엔카운터 장을 믿고 다시 참여해주시어 기쁘다.
감정은 무상하고, 본능이 아니어서 표현하고, 공감하면 사라진다. 기쁘다.
여러 도반들의 삶의 얘기를 나누며 간접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삶들을 공유하여 기쁘다.
본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 따라 해석 따라 옳고 그름이 나뉜다. 기쁘다.
함께한 도반들의 삶의 무게, 마음의 무게가 나눔을 통해 만큼 가벼워져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기쁘다.
엔카운터 매 과정마다 새로운 역동으로 새로운 학습의 장이 되어 기쁘다.
여러 도반들의 지혜 나눔으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힘을 얻고 가는 듯해서 기쁘다.
2017년 12월 16일
행복마을에서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연당 이영숙
여름휴가를 가지 않았기 5일간의 여유로운 휴가가 남아있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엔카운터장을 염두에 두어 쉬는 일정을 미리 알려 놓고도 망설이며 여러 곳을 검색하다가 결국엔 엔카운터과정에 참여하였다. 언젠가 엔카운터장에서 크게 부딪친 생각이 망설임을 주면서도 한번은 꼭 참여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이번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었다. 참여하는 그 시간까지 망설였으나, 별 마음 없이 무심한 상태로 참여하게 되었다.
첫날 첫 마당에서 꺼내게 된 포기와 수용에 있어서 수용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장에서 포기로 돌아온 부정감에 부딪쳤다. 살아오면서 반대되는 표현에 부딪쳐 올라오던 화의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진행되어 올라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화를 내고 난 후 화 가운데 서있는 나였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바로 부정감을 심어줬던 상황이 접목되어 경계에 사정없이 부딪친 것이고 나의 의견을 꺾지 않고 고집하면서 계속 부딪치는 상황으로 치달았는데 다행히 첫 마당의 종료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뒷마당. 몇 분과의 나눔을 하게 되었다. 과거의 습득된 상황은 오롯이 혼자서 그 화를 감당하며 포기와 수용을 되풀이한 과정이었으나 지금은 수용 쪽이 더 크다는 상황을 이야기 하려 던 것이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기 장은 포기 쪽을 선택하게 한 것으로 포기와 수용을 돌아보며 포기를 수긍하는 의식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공감하며 같이 운 결과는 나에게 아주 크게 작용 되었다. 그 동안의 화가 녹아나는 듯 본 과정이 끝날 때까지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다. 공감의 눈물은 상대방의 공감작용보다 더 크게 나를 정화하는 눈물이 되어준 것 같다.
이번과정을 통하여 횡설수설하며 끝마무리 하지 못하는 모습. 정확하게 의사 전달을 하지 못하던 모습. 내 중심적으로 사고하며 고집하는 모습. 사람을 경계하고 다가가지 못하던 모습이 한꺼풀 벗겨지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어 감사하고 감사하다.
4박 5일. 만큼 올인한 덕분에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고갈 된 에너지로 제대로 된 감기 몸살 속에 있다. 여운에 아직도 남아 빠져 나가는 에너지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채워질 밝은 에너지를 꿈꾸며 건조하지만 편안하다. 바람 빠진 쪼글쪼글한 풍선이 넘치는 듯 넘치지 않고, 부족한 듯 부족하지 않는 풍선이 되길 기전향하며
같이해주신 도안님, 먼지님, 보광님, 모든 도반님들께 감사드리며,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기전향하면서
지금 여기 안주^^*
제8회 엔카운터 소감문
2017.12.17. 보광 조혜윤
이번 엔카운터의 목표는 역경계 상황에서도 깨어서 구나하고 알아차리고 I message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장에 내 놓는 이야기를 내 것으로 간주하여 불쾌와 유쾌로 즉각 반응하여 에너지를 실어서 또 다른 차원의 무엇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두세 차례 정도 즉각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불쾌함의 에너지가 본능적으로 올라왔고 그에 따른 해명으로 억울함을 벗고 싶었고, 나의 감정을 어서 빨리 털어내어 자유롭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리 했고, 그로 인해서 순간의 시원함과 이후의 찜찜한 시간들이 있었다.
그럼, 그 상황에서 나의 베스트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놓기 전 3초로 그 상황에 올라오는 감정을 일단 바라보고 음미하는 것이다.
이후 에너지가 완화된 상태로 오해를 사지 않도록 I message로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 진솔한 느낌을 공유할 때는 그런 식으로 하되,
수심 차원에서 나의 필터를 점검해 가면서 관계상의 불쾌함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도록 베스트의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표현 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 하고 보니, 엔카운터 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나의 습관도 개선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장에서 내가 보였던 모습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긴장이 풀어져 그저 되는대로 평퍼짐하고 모호한 표현을 습관대로 했다. 정리되지 않은 내용들이 나오다 보니 말하는 나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 길을 잃어버리는 부끄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듣는 분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애매모호함에 따른 답답함이 전해지며 미안했다.
받기를 하다가 어물쩍 주기를 해버려서 한풀이가 되는 국면.
어찌 보면 공감을 가장한 내 직성 풀자는 것이었고, 나올만하니까 나오는 것이겠다. 그것이 내 스스로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듣는 이에게는 받기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기가 나오니 당황스러울 수 있다. 청자의 편의를 위하여 칸막이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번에 분명히 알아차린 부분이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되어 아쉽다. 청자 중심의 주기 표현을 염두하자고 다짐해본다.
한편, 화자의 내용을 공감하는 부분에서 객관적으로 큰 내용이더라도 역시 스스로가 경험한 것에서 깊이 있는 공감이 가능함을 알게 되어서 시원하다. 그러나 모든 경험을 할 수는 없는 법, 최대한 그 상황에 대한 화자의 경청을 통해 연기적 사유를 깊게 하게 되는 그만큼의 공감이 깊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경험치 못한 부분의 깊은 공감을 위해서는 경청과 함께 깊이 있는 사유가 상대방의 속마음을 자맥질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고형의 한계점을 사고로 극복해 나가는 기법을 되새기게 되어 기쁘다.
결론적으로 이번 엔카운터의 아하점은
1. [놓기 전 3초]를 통한 음미 감상 후 상황에 따른 베스트를 선택적으로 표현한다.
2. [청자 중심 주기 표현]으로 받기와 주기의 칸막이를 분류하여 간단·명료·적절하게 표현한다.
3. [화자 중심 경청 공감]으로 미경험의 내용은 경청과 사유를 통해 깊이 자맥질해간다.
이번에는 반찬이 많은 풍성한 엔카운터였다. 칭찬샤워. 행동명상. 시작 전 향공 및 끝날시 운동까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해주신 도안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제약이 거의 없는 수준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적당한 긴장과 역동을 선물해주신 먼지님의 역할에 감사드린다. 4박 5일 동안 함께한 도반님들에게도 더 깊어지는 신뢰와 애정을 느끼며 마음공부 길에 함께하여 소중함과 든든함을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