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가뭄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시작된 장마. 하늘에서 내리시는 감로수를 맞으며 전국에서 학당 공부인들이 모였다. 직장인들에겐 귀한 휴일이고 스님들께서는 더 바빠지는 주말이지만 또 다시 모인 것은 하늘의 감로수뿐 아니라 마음의 감로수까지 마시기 위해서다.
저녁 7시 반,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모습의 고향님(보문스님), 꾸준함의 여왕이신 중조님, 조용한 알짜 공부인 보리향님, 그리고 사무처의 바쁘고 바쁜 보광님, 일우 원장님, 선혜 그리고 다람님이 함께 하였다.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될 능조님, 예님, 한뜻님, 지훈님, 태법님 등등을 기다리며 우선 이렇게 조촐한 인원이 공부마당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도자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다람님이 함께 하셔서 어딘지 흐믓하다. 젊은 직장인이며 주부이며 아내인 다람님이 행복마을에서의 짧은 만남을 위해 그 좋은 ‘불금’을 ‘포기’하고 오신 것이다. (다람님, 쨩이야!)
모두 둘러 앉아 본격적인 공부장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 인쇄한 무위무한보 꼬마노트를 나누며 앞으로의 추가 인쇄를 의논하고 있을 때. 문간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낯익은 얼굴인데 그 이름이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지금 여기에 나타날 리가 없다. 잠시 멍하다. 그런데!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사람은 정말 가은님이었다. 지금, 태평양 너머, 저기 저 아메리카, 씨애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순간이동이나 한 듯 지금 행복마을 돈망학당 문간에 나타난 것이다. 다들 일어나 가은님을 뜨거운 포옹으로 환영한다. 그리고 가은님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이 그리움은 무엇인가. 이 외로움은 무엇인가. 이 눈물은 가은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눈물이다. 언제였는지도 모르는 아득한 시절, 고향을 떠나 타방을 헤매면서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이 그리움. 그리고 길동무도 없이 헤매는 외로움. 그 그리움과 외로움이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모두 빙둘러 앉아 한 달 간의 소식을 전한다.
좌골신경통으로 잦아진 병원 나들이를 돈망살림으로 여여히 치르시고 계시다는 고향님. 인생사 누구나 겪게 되어 있는 병치레 과정에서 돈망의 힘을 절절하게 느끼신다면서 “돈망의 있고 없음은 죽음과 삶의 차이와 같다”고 토로하신다.
중조님의 농장에서는 외국인 종업원들 사이에 제법 커다란 불상사가 생겼단다.그런데 오늘 학당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은 돈망 3관의 현실수용으로 평온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중조님은 제 3 관이 느낌 수용에서 현실 수용으로 바뀌어서 돈망관행이 훨씬 더 친근해졌다고 한다. ‘현실수용’이라 하니 자신이 처해있는 모든 상황이 그대로 여여하게 느껴진다는 것. 또 누구보다 끈질긴 공부꾼인 중조님은 자투리 시간에 큰스님 법문 녹음을 듣고 듣고 또 들으면서 “어딜 가나 그 자리에 그냥 있게 된다. 말씀을 듣고 읽는 것만으로도 젖어든다” 고 하신다.
보리향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트라우마’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염체임에 새삼 아하가 되면서 자신의 기질과 맞지 않는 일들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밝힌다. 그리곤 아예 “그 일들이 내가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단다.
가은님이 들려주신 그 동안의 수행담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인터넷을 통하여 동사섭을 알게 되고 돈망 3관을 알게 된 가은님은 대학 노트 두께의 A4 용지에 돈망 3 권을 죽어라고 쓰는 일로 돈망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20 권을 썼단다! 그러고 나니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자신의 손은 돈망 3 관을 쓰고 있었고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비로소 사람 된 것 같았다”고. 그리하여 준파자가 되어 돈망선방에 출입하게 되었고 선방의 도반님들 그리워 태평양 도항을 결행하였다는 것.
가은님의 수행담을 듣고 있던 다람님. “가은님이 너무도 존경스럽고 나의 게으름이 부끄럽다. 지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돈망을 머리로만 아는 것 같아 답답했다.”고 말문을 연다. “나의 돈망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올 수 있는 통로를 다시 뚫고 싶습니다.” 어려운 걸음을 한 다람님의 간절함이 전해온다.
바쁘고 바쁜 우리 일우 원장님. 어떻게 하면 학당에 한 사람이라도 더 오게 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욕심이더라” 고 고백하신다. 원장으로서, 또 돈파자의 한 사람으로 묵직한 책임감을 안고 계심이 전해오면서 마음 한 쪽이 뭉클한다.
일우님이나 진배 없이 바쁜 보광님. 어쨌거나 돈망명상록을 올리고 있는 그 시간만은 백 퍼센트 해탈을 누린단다. 한동안 일에 쫓겨 돈망선방 출입을 못하고 있었는데 선방에 명상록을 올리니 “확실히 다르더라”는 말씀이다.
선혜는 아침에 우선 명상록 올리고 나서 염주를 돌린다. 돈망 3 관이 점점 만트라화 해서 돈망 3 관 12자만 떠올려도 마음이 무한으로 열린다. 행복하다.
그리고 학교 수업 끝내고 9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능조님. 모두가 깜짝 놀래서 기절할 수행담을 내놓는다. 한 달 사이에 염주 돌리기로 돈망 관행 25만 번(!!!)을 돌파하였단다. 과연 능조님! 능조님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겠는다. 맨소리가 참소리 된다는 신념으로 자투리 시간에,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출근 시간이건, 어디서건 염주를 돌렸단다. 맨소리로 돌리다가 느낌 유념하며 돌리다가, 매너리즘에 빠지다가, 정신 차리고 하다가, 좌우당간 돌리고 또 돌렸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무엇이 흑이고 무엇이 백이겠는가. 그냥 돈망 에너지 자체가 될 것 같다. 과연 그렇단다. 그래서 요즈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생활 안팎이 한없이 평화롭단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 함께 하고 있으면 절로 진짜 공부인, 골수 수행인이 된다.
도반님들이 진정 고맙다. 숙세에 길러온 게으름의 힘을 벗어나게 하는 도반님들의 에너지.
다음날 아침, 태범님과, 지훈님, 예님이 합류하셨다. 그 동안 감기와 팔 부상으로 오래 학당에 오지 못했던 태범님 말씀이 인상적이다. “공부는 배신하지 않는다.”
공부는 그대로 티가 나는 법이라는 것. “지훈님의 꼬박꼬박 스타일에 자극받았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지금도 내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느냐는 지훈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도반이 전부다,“ 하신 부처님 말씀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실감한다.
아침 목탁이 울리고 둥그렇게 둘러 앉아 내리는 빗 속에서 각자 염주 돌리기에 깊이 몰입하면서 정자표를 쳐 나간다. 문득, 이 무한 우주, 그 변방의 변방, 지구라는 궁벽한 곳, 그 곳에서도 티끌조차 아닌, 구석의 구석의 구석에 우리들 이렇게 모여 무한 의식으로 열리고 열리어 하나 되고 있는 이 순간이 더 없는 축복으로 밀려온다. 양장력이 퍼지고 퍼져 무한 우주에 있는 유형무형 유정무정 모든 존재들의 행복해탈을 고양시키는 있는 지금 여기 이 자리!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돈망 아티클을 쓰고 고급단상을 함께 연찬해 나간다. 맑은 복이 장(場)에 가득하다.
늘 아쉽고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하면서 얻은 소득은 알차고 쫀쫀하다. 그렇다. <공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 법!!!> 준파자가 되던 때 마음에 가득했던 기운들이 쇠잔해가는 것 같아 함양으로 달려온 다람님 얼굴이 화안하다. 자신이 그 때의 환희롭던 체험에 매달려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 큰 소득의 하나란다. 그리고 ‘돈망’ 이라는 ‘부자 아빠’에게 기대어 그 ‘빽’만 믿고 게으름 피고 있었음도 돌아보게 되었단다. 가은님은 7월 일반과정을 시작으로 8월 말 고급과정 수련까지 하기로 벌써 마음 먹었다고 한다.
학당을 마무리하면서 둥그렇게 둘러서서 서로에게 삼배를 올린다. 우리들은 이미 부처이다. 그리고 이렇게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 일물은 응무소주 이생기심하는 보살행의 도구요 밑거름이다. 7월은 일반과정 수련으로 학당이 쉬게 된다. 그 동안 정자표 마구마구 치자고 약속하며 무위무한보 노트들을 나누어 갖는다. 다음번에 모두들 능조님처럼 보고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