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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05-03-17 오후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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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회 소감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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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박찬욱님
가슴이 후련하다. 머리가 시원하다. 먼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듯 편안하다. 지향점이 분명하다. 무엇을 하면서 한 세상 살아가야할 지 선명하다. 동사섭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나의 의문들이 개운하게 풀릴 수 있을까 늘 답답하고 조급한 심정이었다.
한 마당, 한 마당 장이 펼쳐질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지식이 선명해졌고, 머리가 맑고 가벼워졌다. 깨달음의 기쁨이 온 몸으로 잔잔하게 퍼졌다. 완벽한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오신 스님의 노고와 뭇 생명들을 향한 자비심에 머리 숙여 감사와 존경의 예를 올린다. 그리고 과거 인연들의 의미가 새겨진다. 고맙다. 그동안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안목을 넓혀주셨던 모든 선지식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제 내 가족을 짐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나 자신의 현 수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나에게 주어지는 도전을 즐거이 맞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감사하다.
이제 실천이다. 0P를 확인하고 P100을 지향하며, 관심과 사랑으로 정진할 뿐이다. 삶은 과정이다. 결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here & now에 충실할 뿐이다. 나 자신, 가족, 주변 사람 등, 나의 삶의 현장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 모색과 탐색은 끝났다. 이젠 행과 나눔에 관심을 집중하며, 노력하며 살겠다.

2. 노루 윤순영님
동사섭에 온 첫날, 내 마음은 ‘동사섭을 분석해 보자’였다. 집단 광기에서 오는 최면정도일거야! 하는 의심을 하면서 마음을 꼭꼭 닫은 채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홈페이지에 가득했던 참가자들의 수련느낌들이 있었다. 피상적으로 몇 줄 적은 것이 아니고 여러 마당에서 느꼈던 것들이 꼼꼼하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실은 홈페이지의 소감들을 읽고 신청할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첫날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는 거울님의 이야기가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졌다.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이고, ‘인생은 그냥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미워하고, 화내고, 가끔 즐거워하는 거지!’라며 차가운 반문을 던지고 있었다. 행복 창출 3박자를 외칠 때는 드디어 ‘주술을 거는구나, 그럼 그렇지!’하는 마음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표현하지 않았으나 어색함에 경직되었고, 헛웃음을 웃었고, ‘나 없다’는 유치한 장난으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학교의 아이들은 내가 하던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내 마음은 제쳐두고 저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며.
둘째 날 저녁 마당에서 ‘기적의 미세정서’에서는 눈이 반짝 뜨였다. 그동안 난 미세정서를 잘 감지하는 내 모습을 죽이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세정서 때문에 상처도 잘 받고, 오히려 나를 나약하고 열등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여 어떤 대상에 대한 미세정서가 느껴지면 수없이 가지치기를 했다. ‘이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강해져야지. 쉽게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성격은 언제나 치이고 힘들뿐이다. 난 강한 정신의 소유자가 될 거야.’ 라는 것이 그 간의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적의 미세정서라니!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부정적 안경을 끼고 미세정서를 바라봤음을 알게 되었다. 밝음이 커지고 기쁨이 커지고 오히려 부정적인 면을 줄이고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구나! 이럴 수도 있구나!
“아하점을 잡으라.”는 미세정서와의 연결이었다. 미세정서를 살려야 아하점이 낮춰지고 아하점을 낮추면 미세정서는 더 발달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아하점을 낮추어도 미세정서가 없으면 ‘그게 뭐가 감사해, 그게 뭐가 기뻐?’라는 강한 반문이 일고, 아니 아하점이 낮춰지질 않았다. 상관 관계였다.
인생 3박자 ‘저질러라, 제쳐라, 누려라’는 배에 큰 힘을 주었다. ‘저질러라’는 노력을 해서 많이 깼지만, ‘제쳐라’와 ‘누려라’는 나의 걸림돌이었었다. 제치지 못하니 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의식이 제치지 못한 것에 매어있으면 진정한 누림은 어렵다는 것.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서 과감하게 제치고 마음껏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기뻤다. 이것은 뒤에 불행의 원리를 들을 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P100을 제치고 0P를 누리자. 0P를 충분히 누린 후 그 에너지로 P100을 지향하자.
주전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지족명상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이동이었다. 머리에서의 지족은 쉽게 돌아서고 잊혀지지만 가슴으로의 지족은 기쁨을 일게 했고, 여운이 일었다. 지족명상을 마친 후의 내 마음은 잔잔한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고,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었고,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람지족명상을 할 때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천 배를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사와 벅참, 슬픔이 삼배에 일었습니다. 사람을 향해서 하는 절이 이토록 감정을 흔드는 줄 몰랐습니다. 따뜻함과 감사와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절을 드리며 감사했고, 절을 받으며 더욱 더 감사 감사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나지사명상을 하면서 나의 아킬레스건 ‘화’가 떠올랐습니다. 화를 억제하려고 노력했고, 화를 풀려고 몸 부서지도록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순간이었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의 모습을 보고 뿌리째 뽑지 못했음을 늘 한계로 생각했습니다. 나지사명상은 화를 제거하는 헛된 노력이 아니라 녹여서 증발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라져버리는 화! 명상으로 힘을 키우면 포용력이 넓어지겠구나. 속으로는 화가 나면서 얼굴만 웃는 그래서 두 개의 나로 분리되지 않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나를 잊을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기쁨입니다.
옴나명상은 ‘나 없다’가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유치한 장난이 아니라 체감되는 느낌이 묘했습니다. ‘이 뭣꼬’를 화두로 명상할 때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망상과 싸우다 지쳐서 깨달음도 허상이고 착각이며,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거운 것을 한꺼번에 날리지 못하니 의식적으로 조각을 내어 가루로 만들어 날리니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점점 가벼워지고,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고, 공백이 되고..... 담담했다. 기쁘지도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냥 고요했다.
독배명상은 내 속에 집착과 애착을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걸 끊으려니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고, 호흡조차 힘들어졌다. 애착은 굵고 질겼다. 울어도, 울어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편해지라는 말’과 함께 무언가 끊기며 구름이 되는 느낌! 자유로웠다. 호흡이 정리되고 눈물이 잦아들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나 없다!
어제의 저녁마당은 동사섭의 결정체였고, 새로운 탄생이었다. 말로, 행동으로, 생각으로, 멍들게 했고, 상처를 주고받았던 영혼들이 맑은 물로 다시 태어난다. 내가 상처 주었던 사람들, 세상의 여러 가지 애환으로 상처받고 독기 품은 사람들에게 맑은 물로 정화하는 길을 안내할 수 있음에 기뻤다. 내 안의 그을음,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탁한 기억, 탁한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음에 기뻤고 감사했다. 촛불 앞에서 가슴에 품었던 크고 작은 상처와 미움을 맑은 물로 정화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여러 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고, 아름답게 느끼면서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감사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렀던 기억을 꺼내서 똑바로 바라보고 맑은 물을 붓는다.
이러한 기쁨을 찾게 해 주신 거울님, 학님께 감사드리며, 이 기쁨 찾기에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에게 힘을 주고 지켜봐 주는 따뜻함을 주신 여러 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껍질 안에 웅크린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다가 몇 마디의 말로 마음을 겉껍질을 깨트려서 기지개켜고 일어나 껍질을 느끼게 하고 스스로 깨트리도록 도움주신 성촌님, 연기님, 감사합니다. 이 마음을 잘 갈무리해서 생활 속에 씨앗으로 뿌려서 잘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3. 산처럼 안순억님
항상 무엇인가가 나를 짓누르거나, 고집스럽게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에서 한동안 벗어나기 어려웠었다. 수시로 우울했고, 틈만 나면 심연의 무력감 속에서 어정대는 자아를 보는 또 다른 나는 그렇게 안타까웠다. 나는 지금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고, 내 살아온 날들에 그리 깊은 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며, 돈 명예와 같은 현실의 욕망에 바둥거리지도 않는데 무엇이 나를 이토록 ‘공복감’에 시달리게 하는 것일까? 어느 날 잡지 표지에 실린 내 뒷모습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중년의 초라하고도 쓸쓸함이 마구 흩뿌려지는 낯설고 외로운 어떤 사내가 그 속에서 그렇게 의자에 외롭게 앉아있었다.
동사섭에 와서 나흘째 되던 어제, 나는 그 사내의 눈물을 고요히 닦아주었다. 그 쓸쓸한 그림자를 가만히 거두어 주며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사진 속 주름진 사내와 오래된 속울음을 거두며 빙긋이 웃는 게 보였다.
나는 오래된 습성으로 ‘도그마’라 느껴지는 세계에 늘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인간의 이성은 나름대로 신뢰할 만한 것이며, 영적인 세계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도그마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란 믿음은 까닭 모르게 굳건했다. 동사섭은 인간 이성의 정점으로 평화로운 영혼의 세계와 따뜻하고 아름다운 존재감으로 안내하는 깨끗한 길이었다고 정리한다.
거울님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웅변가이며 높은 법력으로 세상을 정화시키는 아름다운 ‘성자’의 모습으로 읽혔다. 그만큼 그의 ‘寸鐵’은 내 뇌리에 비수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모래 한 알속의 소립자와 우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행복을 위한, 깨달음을 위한 촌철을 엮어나간다.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바로 행복을 누려버려라. 그 행복 속에 이상공동체의 大願을 담아 그 행복을 더욱 고귀하게 하라.’
입자는 곧 파동이며 따라서 우주는 온통 텅 비어 있는데 그 속에서 존재조차 가물거리는 ‘자아’를 아등바등 끌어안고 탐진치에 허덕이는 일은 얼마나 ‘대박’의 코미디인가?
나는 지금 5일 동안의 마음공부 모든 과정이 단 하나의 저항감도 없이 저장되어 있다고 느낀다. ‘교육은 이런 것이다.’ 싶다. 영혼을 울리지 못하는 교육을 어찌 교육이라 이름 하겠는가? 자신과 자신의 삶, 자신을 둘러싼 그 귀한 존재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
내 아내의 웃음 한 자락, 아들 녀석들의 과자 먹는 모습, 뒤뜰에 피어있는 개망초 흰 꽃잎까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과 내 마음까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란 절절한 느낌들에 나는 거의 전율하였다.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하고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에 목이 마르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는다.’ 라는 류시화님의 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없는 것만 찾으며, 끝끝내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것이 더러운 인생의 숙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비밀스런 길 하나는 남겨두었고, 이제 나는 그 길을 찾은 느낌이다.
지족명상을 할 때, 존재에 대한 지극한 찬탄을 나누는 절을 주고받으며 받은 감동을 내 가난한 필설로 어찌 전하랴, 장에 터져 나오는 오열 속에 나도 거침없이 끼어들며 눈물을 섞었다. 그 장에서 내가 알고 있는 심리학적 상식 나부랭이는 말 그대로 나부랭이에 불과하였다.
모든 존재는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가하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 엄숙하고 경건한 것이다. 내 몸을 물리적으로 몇 도 낮추는 것만으로 내 영혼은 이리도 평화롭고 대상 또한 이리도 경이로운데, 나는 사십 몇 년을 살면서 내 한 몸 낮추며 사는 일에 뭐 그리 어렵고 힘들었을까? 세상에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소하고 하찮은 미성숙한 자아가 있을 뿐이며, 그것이 무간 지옥을 자가 동력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란 깨달음이 파도를 이루며 달려들었다.
나와 세계는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의미이다. 풀 한 포기, 돌 한 조각, 외롭고 고단한 다른 삶들, 그것들이 모여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답지 못한 인간, 풀 같지 않는 풀, 개미 같지 않은 개미란 애시당초 없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어우러질 때 서로 완벽해지고 그것이 곧 우주를 구성한다.
내 가족과 내가 만나며 살아가는 어린 영혼들에게 매일 절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눈물과 그늘을 거두어주는 맑은 영혼으로 살기를 염원하고 싶었다. 내 순한 눈물도 아련하게 소중하였고, 나도 세상도 그렇게 ‘문득’ 아름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엊그제부터 나는 이 ‘삼동원’ 공간이 천국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비현실적인 세계에 불쑥 진입해버린 느낌이다. 내 마음이 그리한 것도 있지만, 이 속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 나누는 눈인사, 오고가는 언어들이 제각기 별들처럼 반짝거리는 느낌, 천국의 형상이 이와 뭐 크게 다르겠나 싶었다. 무엇이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내가 사는 현실의 공동체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거친 밑그림 정도는 그려낸 기쁨 또한 크다. 하동님, 여유공간님, 화성님, 그리고 소립자와 나노의 세계를 거침없이 풀어준 한일님이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매일 밤 사귀는 사람처럼 긴 산책을 같이하며 하루공부를 정리하면서 벅찬 느낌을 두 배로 만들게 해 준 같은 삶터에서 일하는 선농님의 존재가 수련을 더욱 깊게 해 주었다.
거울님, 학님, 길님에게 스승의 이름을 드린다.
지금 내 기쁨의 에너지가 내 삶에 얼마나 지속성을 갖고 밀어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귀한 인연과 가르침만으로도 넉넉히 행복해버릴 것이다. 내 일상의 작은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명상하며 내내 행복해 버릴 것이다. 지금 나는 이미 충분하다. 아니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있으니 내내 버리면서 살 일이다. 살아있음에, 숨쉬고 있음에, 거듭거듭 경외할 일이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옆에 누운 한일님을 깨워 한마디 뱉었다. ‘아! 한 생 참 잘 살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4. 자두 이재두님
내가 여기에 온 계기는 수심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여기 와서 깨달은 것이 정말 많습니다. 가장 큰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며 칭찬을 하기는 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항상 비판과 열등감을 느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2년까지 내가 왜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내 앞가림 잘 하자!’였습니다 ‘나도 못하면서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해’ 하며 채찍질을 가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유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나지사명상’을 하며 그 해결책을 알게 됨으로써 이제 더 여유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나에게도,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사람 모두들에게도.
‘5요 춤’과 ‘행복창출 3박자’는 마음을 기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의 행복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같이 바라면 되는데 왜 이때까지 옹졸했었는지, 그리고 힘들 때 웃으면 되는데 즐거운 일이 왜 없냐며 찾아다녔다는 게 이제 보니 모두 헛일이었다는 게 왜 이리도 멍청했는지, 그리고 정말 제가 배워서 좋다는 것은 마음 나누기입니다.
항상 내 말만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말만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끊어서 내 이야기만 했는지........마음 나누기는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며, 저에게 큰 수확이라는 것에 기쁩니다. 화3요에서의 5대 악성 받기, 어떻게 콕 집어서 냈는지, 내가 한 말만 화이트보드에 적어서 얼마나 찔리던지, 정말 너무너무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인생3박자’는 꼭 하고 싶은 것인데 왜 그렇게 힘든지, 나도 나를 알 수 없게 만들어서 당황하게 만들뿐입니다.
교류4덕은 외할머니께서 어릴 때 동생과 나에게 가르쳐주신 것인데 그때에는 어려서인지, 동생 때문인지, 왜 그렇게 ‘감사’가 좋았는지......................................................
(하지만 이때까지의 생활은 보시였습니다. 그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행동명상은 나 자신에게 아니 나를 위해서 특별히 설명해 준 것이라고 하며 수첩에 적어두고 매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 아니 지금 현재도 글 쓰는 시간이면 글을 쓰면 되는데 왜 이렇게 귀찮은지, 배운 것을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실천하지 않으려고 하는지 정말 화가 납니다.
수심의 원리에서, 난 정말 불행의 원리를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칭찬해야할지 화가 나야할지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사물의 중요성을 일깨워줘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모든 만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물 컵 강의!’, 정말 실습으로 보여주니 눈에 쏙, 귀에 쏙 들어와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모든 게 정리되면서 정말 ‘명 강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온 이후에 항상 느꼈지만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동사섭’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언제까지 실천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동사섭’ 오는 그 날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5. 야신 장경숙님
여태까지의 내 삶은 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첫 날, 둘째 날 내내 공동체의 화합을 강조하는 원리와 실습들은 정말이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나를 닦으며 내 마음을 닦으면 내 주위가, 주변 모두가 다 이로워진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가장 먼저 강조한 ‘이상 공동체’라는 개념은 나의 여태까지의 삶에 커다란 파문을 일게 했다.
거울님의 강의를 하나하나 들어가며, 또 실습해보며 참으로 정교한 원리이고 강의와 연습에 몰입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수도를 통한 습득이라는 것을 이제 너무 알아챌 수 있었다. 특히 미세정서는 늘 내가 무감각하게 지나쳤던 느낌들이었고, 이런 작은 느낌이 수행의 방편이 된다는 것이 놀라웠고, 집에 가서도 꼭 이 방법으로 일상에서 수행하리라 다짐한다. 진심을 다스리는 ‘나지사명상’은 정말이지 현대인에게 가장 유용한 실용적인 명상법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자잘한 부딪힘에서부터 내 자신에 대한 분심까지 다스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지금부터 백 번의 연습을 해야지.
마지막에 했던 옴나명상은 동사섭에 와서 가장 크게 얻어 가진 것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쉽고, 빠른 방법이 있었다니...................
별 생각 없이 몸과 마음을 쉬려고 왔던 내게 뜻밖의 큰 선물을 안겨준 동사섭 수련회에 감사드린다.

6. 여래심 황이순님
화려한 외출이라 하고 14년 만에 집을 떠나 삼동원 동사섭을 방문하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 반! 설렘 반!
이상 공동체의 행복의 중요성, 필요성을 배우며, 지금도 행복하지만 더 나은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보여서 행복하다.
첫날 .5요 춤이 어색했다. ‘행복창출 3박자’도 어색했다. 횟수를 거듭하고 반복, 반복을 하며 그 어떤 힘에 자연스레 끌리듯 흡수되어 있는 나를 느낀다. 자연스럽게 그 말과 행동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간다.
둘째 날을 맞이하니 어쩜 이리도 내가 찾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만 말씀 하실까? 족집게 도사 같다.
마음나누기 공부를 하며 주기 중 내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받기 중 잘 듣고, 가슴으로 공감하고 미세정서를 감지해서 솔직한 마음 나누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습관 때문에 쉽진 않으리라,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련다.
이제부터라도 알았으니 실행해서 소중한 모두를 위해 엔돌핀 팍팍 도는 행복을 전달해야지 라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기쁨이다.
과감히 저질러야겠다?
너무 자연스럽고, 평범한 말씀 속에 진리가 있었다.
“지금 알고 있을 것만 복습하고 살아도 충분한데 우린 너무 복습을 안 하고 산다.” 하시는 말씀! 명쾌한 답이다.
많아서가 아니라 진정한 베풂을 베풀 줄 아는 멋진 내가 있었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아는 멋진 내가 있었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과감한 내가 있었다.
죽도록 밉고, 증오스러워도 서슴없이 용서할 줄 아는 멋진 여래심 내가 되고 있다. 성격 좋아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웃음과 즐거움을 보시할 줄 아는 내가 좋고,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감사한 신랑이, 또 나를 너무 사랑해줘서 감사하고, 태어나서 이렇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우리 귀염둥이 아들 수옥, 수영, 수한이가 있어 감사하고,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지녔으면서도 투정하고 만족 못하고 나에게 강요당했던 모든 분들께 사과하고, 나에게 서운하게 하고 가슴 아프게 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용서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털어 버리도록 노력하련다.
보시록, 감사록, 사과록을 일기처럼 생활 속에 같이해야겠다. 가능하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식구들과 같이 공유하기를 시도해봐야겠다.
수심을 하면 내가 행복하고, 평화가 온다. 0P는 확인하고, P100을 지향하는 현명하고 똑똑한 삶을 살아야겠다. ‘이것이다!’ 싶다.
지족명상을 해 보면서, 저런 주전자 미물에도 이렇듯 많은 것을 감사할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 사람에겐 얼마나 많겠는가 싶으니 “아하!”로다.
정말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큰 재산이다.
소중하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의 기원을 담아 머리를 낮추어 절을 하니 나도 소중하지만 너 또한 소중하였음을 알게 되니 이것 또한 기쁨이다!
이 동네 긍정점 시간?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있었나 싶다. 이렇게 소중한 내가 있었고, 이렇게 행복하니 이 행복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회향해야지 하니 이 또한 ‘아하’로구나!
나지사명상을 배우고 실천해보면서, 아! 이렇게 지혜로운 것이 있었나? 거울님께서의 초펜티엄급 지적 감수성 프로그램, 노벨 평화상감이라고 하실 만 하구나 싶다.
나지사명상을 통해 가슴속에 미움이 차츰 엷어지는 것을 체험하며 꼭 실천하며 살아보련다. 화가 감사로 바뀌는 이 오묘함, 이 또한 ‘아하’로다!
나! 욕심 없다.
우리의 마음은 빈 공간이 훨씬 넓다는 것은 무엇이든 포용하고 담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던가! 이 또한 감동이 넘치는 ‘아하’로다!
독배명상은 무념 상태?
어떤 아픔도, 설움도, 안타까움도 없이 그저 고요한 내 마음이 제대로 하지 못함인지 너무 잘된 명상인지 모르겠다. 길님께서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시니 기뻤다.
옴나명상! 열심히 반복, 반복해서 그냥 있음으로 행복함을 느껴봐야지!
화려한 외출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너무 행복하고 이제 제대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가는 여래심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기분 좋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 같은 이런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 동사섭을 접하게 함이 회향이 아니겠는가?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동사섭 법보시를 꿈꾸며, 정말 실천하고 노력해서 많은 행복을 창출해 내어, 기쁜 마음으로 거울님, 학님, 성촌님, 연기님 그리고 우리 모두 식구들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띄울 수 있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지혜롭고, 행복한 여래심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물컵 강의로 전 과정을 머리에 쏘-옥 들어오게 마무리해주셔서 잘 정리하고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알게 하시고,
많은 행복을 갖추고 있음에 눈뜨게 해 주시고,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소중한 나를 찾게 해 주시고,
좋은 엄마, 아내가 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가르쳐주시고,
용서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고,
등등을 알고, 느끼고, 깨우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세상엔 감사하고 살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생각하니 고맙고, 행복합니다.
이런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내가 있어 너무 좋습니다.
여러분! 모두 모두 행복하시고, 소원 성취하시고, 사랑합니다.
가만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가 보니, 이런 상황이 생각이 나더군요. 저희 둘째딸이 하는 말, 우리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하고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할 수 있냐하면서 가르쳐 달라했던 그런 표현들이 교류의 실천을 우리 아이들이 보여주는 것이었던 겁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현과 생각과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임이 스승이고, 자꾸 표현이 쑥스럽고, 안 되는 우리가 많이 순수한 모습을 잃어 가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이제는 제 스스로 살맛나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과 할 수 있는 내가 있어서 좋고요. 아울러,
1. 당신하고 사니 정말 살 맛 나고 행복하다하는 아내가 되려합니다.
2. 당신이 우리 엄마여서 행복합니다하는 멋진 엄마가 되겠습니다.
3. 네가 우리 며느리가 되어서 정말 고맙다하는 듬직한 며느리가 되겠습니다.
4. 당신을 만나면 왠지 행복해서 또 기다려지는 그런 멋진 이웃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오기 전 부처님 교리공부를 인터넷 카페에서 하다 동사섭이란 글귀를 거기에서 또 보았습니다.
그 뜻이 저의 마음과 제가 찾고 있고, 갈망하는 것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 중생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보시 하나가 동사섭이라 하였습니다.
몸소 마음 힘든 사람들이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고 행복한 우리를 만들고, 더불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더불어 이런 행복들이 자꾸 퍼져가다 보면 정말 살맛이 나고 행복한 세상이 오겠구나 싶고, 그래서 우리 거울님, 학님 및 돕는 이들께서 때론 뜨거운 열정으로 때론 안타까움으로 마음공부 강의하심에 깊은 사랑 느껴갑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이렇게 좋은 동사섭 법회를 많이많이 널리 펼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7. 보라 신정은님
here & now.
역시 마음사랑병원의 인간을 존중하는 정신에 감사를 표한다. 행복창출 3박자로 시작되었던 5박 6일의 행보가, 나를 찾게 도와주었다. 정신과 공부를 통해서 정신을 나름대로 이해한다고 노력했지만, 이렇게 선명하고 맑은 모습으로 진리의 모습을 터득하긴 어려웠다. 복잡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term을 사용하여 파헤치기보다는 쉬운 말로 하나씩 알려주시는 용타스님, 학님, 길님의 방향에서 내가 존재함, 그 고귀하고 경이로움, 너의 존재, 우리의 존재, 이 우주의 존재까지도 느껴보는 소중한 명상체험이었다.
지족명상을 통해 행복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서 충분하고 지향해야할 삶을 여유롭게 나아가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이런 행복감을 가족과 나누고 싶고, 매일 행하고 싶다. 이곳에서 배운 행복5요, 마음나누기, 미세정서 표현하기, 교류4덕, 지족명상, 인간에 대한 경외감을 매일 실천하면 인격의 재 탄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나누기 과정(경청, 공감, ∝)도 매일 연속되어지는 일이지만 공감에 인색하지 않았었나 생각되고 잘 실천해 볼 것을 다짐한다.
교류4덕(보시, 감사, 사과, 용서)을 배우고, 과연 내가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놀랍게도 용서를 하지 못한다면 마음의 장애자인 것이고, 미개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알고도 배우고도 모르는 것이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보시록을 적어보고 행동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표정에는 미소가 번졌고, 내가 착한 사람처럼, 더욱 성숙한 인격으로 느껴져 즐거웠다.
또한 감사할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주전자라는 물건에 그렇게 감사할 것이 많았는지 놀라웠고, 파동처럼 번지는 감사의 에너지가 퍼져감을 느꼈다.
자자청하기 과정을 연습해 보면서 용기가 필요함을 느끼고, 진지하게 표현된 자자는 감정의 전이반응으로 상대에게 진실이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이 되었다.
양장력을 공부하는 순간, 내가 같이하는 직장 내에서 그들의 욕구를 이해하고 언어로 또는 행복으로 plus 양장력을 형성한다면 성과가 얼마나 향상될 것인지 호기심이 일어났다.
행동명상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고 매어 사는 내가 관찰되었고, 행동주의 기법이 바로 CS교육이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수심의 단계 중 지족명상 특히 자신의 긍정점 찾기를 통해 유쾌한 시간을 함께 했고, 나와 여러분이 얼마나 우수한지 깨닫게 되었다. 자존감이 낮은 우리 환우분들, program 진행 시 꼭 한번 적용해보고 싶었다. 또한 진심을 해결하는 일 또한 유념하고 실천하는 것이 인격성숙을 의미하는 것을 알았다.
죽음명상은 극단적 상황을 통해 나의 존재의 사라짐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나의 존재, 존재하지 아니함, 우주공간 자체의 존재 또는 존재하지 아니함을 떠올려보니 무아를 조금이나마 알 듯도 하였다.
현재 ‘나’의 존재가치가 분명 아무렇게나 삶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존재의 의미에 경외스런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하고 나의 mission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신장애로 사회의 편견과 낙인을 받고 외롭게 투병하는 그들, 이전에도 같이했었지만 새로 태어난 성숙한 인격으로 마음나누기를 실천하고 건강한 부분은 더욱 강화하고, 불건강한 부분은 모두의 노력으로 치유할 것이며 각자 나름대로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삶을 다짐한다. 나를 위해,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나의 마음과 인격을 훈련해가며 함께 하는 이들과 기꺼이 화합하고, 좋은 언어의 사용과 행복을 저질러가며 동사섭 메시지를 전하며 살 것이다.
이 마음의 즐거움을 돌아가면 인터넷의 자유게시판에 띄워 여러분들에게 또렷하게 공개적으로 다짐하고 싶다.

8. 호수 김경은님
엄마하고 울며 뒤쫓아오는 막내를 뒤로 안쳐다보고 차에 올랐다. 지도 하나 옆에 두고 절박한 마음으로 삼동원으로 오는데 유수스님께서 ‘동사섭 가서 수련 집중해서 잘 하고 마음 공부 많이 하고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 꼭 많이 얻어가야지 하고 결심을 했다.
- 행복5요 -
나는 행복하다고 외치면서 정말 내가 행복한지? 아닌데! 하는 생각에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학님이 부러웠다.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비우려 무던히도 발버둥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 마음 나누기 시간 -
내가 괴롭다고 여겼던 일들을 부끄럽지 않게 내어놓을 수 있었다.
빨리 내 마음을 내놓고 싶고, 내려놓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왔다.
내가 보는 눈에 의한 에너지로 그 상대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거울님의 말씀에 큰 아이가 생각나며 겁이 나면서 두려워졌다. 그 애는 내가 항상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저게 커서 뭐가 될까하는 답답한 눈으로 쳐다봤는데........... 내가 그 아이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을까, 난 지금까지 아이가 말할 때 경청을 하지도 않고 내 주관대로 생각했고, 공감하기보다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한심하게 생각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5대 악성 받기 중의 5개 모두를 다 써가며 교육이란 명분아래 충고하고 비교하며 엄마란 허울로 아이를 죽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미안했다. 받기 3박자를 아무리 연습해도 눈물만 나왔지 도무지 +∝는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연습과 연습으로 +∝를 제대로 해서 받기 3박자로 인해 아이가 상처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 저질러라 -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말이었다.
100일 동안 천 배의 절을 하며 미세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난 행동에 옮겼어야 했지만 아직도 자존심인지 오만덩어리인지 찌꺼기가 가득 차서 움직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 백일기도 끝나면 남편과 잘 해보자 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저질러라는 이 말씀에 이 수련 끝나면 해볼까 하곤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질러보고 남편이 받아주면 누리고, 안 받아주면.......................
- 교류4덕 -
보시록을 남편에게 쓰는데 내가 맺은 인연 중 참 질기디 질긴 인연이라 그런지 ‘남편에게’란 글을 써놓고도 난 한참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인사하기, 남편보고 한번 씩 웃어주기, 힘들지 수고했네 이런 표현 해보기, 정성으로 식사준비하기, 그래 이거부터 시작해보자. 일단 저질러 보고 그 기쁨을 한번 누려보자. 그것까지 만도 마음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 행동명상 시간 -
개싸움을 하며 난 상대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봤다. 지난해 남편과의 싸움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친 듯 짖어댔다. 네가 뭔데 내 몸에 손을 대, 네가 뭔데 내 목을 조르는 건데, 내가 당한 만큼 내 온 몸으로 남편을 공격했다. 컹, 컹, 컹.
속이 후련했다. 이제야 상대의 얼굴이 보이며 내가 화를 뿜어낼 수 있게 열심히 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 통곡의 시간 -
벼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더 많이 크게 울 자신이 있었다. 한참을 울다보니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가슴이 밑으로 내려가 있음을 느꼈다. 편안했다.
주전자 명상을 통해 한 생각 돌이켜 이건 이거다라는 고정관념의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서 참으로 많은 것에 감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게 감사했고, 내가 갖고 있지 않아도 보고 듣고 느끼고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감사했다.
지족명상 중, 절을 하고 절을 받으며 느꼈던 뜨거운 가슴.
진정으로 남을 위해 감사하고, 그 감사에 기원을 하며 절을 받으며, 나의 귀한 존재 가치를 느껴 정말 감사했고, 이 인연에 감사했다. 그리고 절을 하고 나서 소감문을 발표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신 학님께 감사를 드리며 느낌을 항상 이대로 간직하며 잘 쓰이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 정진할 것을 기도했다.
나의 긍정점을 찾는 데는 좀 어색했지만 그래도 난 역시 가진 게 너무 많아 행복하고, 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 너무나 좋다.
나지사명상을 하는데 이 좋던 마음이 무거워졌다. 막상 현실로 돌아와 ‘~겠지’하며 감사를 하려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는데 학님의 한 마디가 나의 가슴을 뻥 뚫어주셨다. “그래 그 사람의 한계이겠지.” 라고 받아들여 보아라.
학님 감사합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며 아하~ 그렇구나!
죽음 명상을 통해 내가 없어도 아무런 걱정 없이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길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어디서 오는 믿음이었을까? 그래 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만 해 온 것이 아니었다.
옴나명상을 통해 깨어있음을 느끼고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이 느낌을 표현하기엔 무한이라는 말도 왠지 작아 보였다.
맑은 물을 보며 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들이 너무 많이 가슴이 저렸지만 이제부터 내가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슬프지 않았고, 엄마 아빠를 생각하니 살아 계심이 너무나 감사했고, 지금부터 내가 더, 더 잘 살아서 진정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그동안 끼친 아픔들을 다 정화시켜야지 하는 생각에 힘이 솟았고, 남편을 생각하니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이제 나의 마음을 닦아 내 가족 내 이웃을 편안하게 하고, 우주 공동체를 위한 마음을 내어 항상 감사하며 나누고 잘 쓰여지는 사람이 되도록 수행 정진해야겠다. 이제 이 모든 것을 확연히 알았으니 진정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다.
거울님, 학님, 모든 도반님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사섭과 인연을 맺게 해 주신 유수스님, 스님께도 무한한 감사의 삼배를 올립니다.

9. 빈배 박순환님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처음 들어올 때는 상담에 적용할 수 있는 기법들에 대해 배우고, 나 자신에 대한 깨달음과 경험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의 그동안의 상담과 집단경험을 그런 대로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선 거울님께 감사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행복을 주기 위해 정성을 쏟고 실제행동 즉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하고, 삼배명상에서 소풍님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깊이 삼배하는 모습 등에서 스님께 눈물이 났고, 감사했다. 소중한 인간애가 느껴졌다. 또 전체과정을 꿰뚫는 명쾌한 이론과 원리 정립에 정말 감사한다.
기법 상으로 얻은 것은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원리를 앎으로써 이를 환자와 집단에 더 잘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흐뭇하다. 또 나와 주변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를 맘껏 경험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더 명료하게 느낄 수 있었다.
행복 창출 3박자로 마음껏 소리치고 웃을 수 있다는 것, 행동명상에서 마음껏 울고 웃으면서 놀 수 있다는 것. 또 내 스스로 저지르면서 가장 먼저 나가서 용기 있게 소감을 발표했던 것, 모두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는데 맘껏 할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유쾌하고 자신감이 느껴졌다. 또 행동명상 시에 울면서 나에게 이처럼 커다란 슬픔(안에서 짠 듯한 슬픔)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아픔에 정말 마음으로 온전히 동참하지 못했던 나, 맘껏 살지 못하였던 자신에 대한 슬픔이 몰려 들어왔다. 또 남동생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둘째 남동생의 잘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크고 그것이 다인 줄 알았다. 이렇게 맘껏 발산한 후에 미세 +정서가 잔잔하게 나타남을 느꼈다.
지족명상에서는 주전자와 같은 사소한 사물과 관련해서도 감사할 것이 많은데 나한테는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지고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집안의 물건을 둘러보면서 감사 명상할 때는 아내에게 도움 주는 물품(침대, 운동기구)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에게 아내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그렇게 깊이 있음을 느끼면서, 자신에 대한 사랑 부족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자랑 명상 시에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느꼈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소중함과 훈훈함이 느껴졌다.
나지사명상을 통해서는 화가 난 것은 내 마음의 필터 때문임을 자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난 것에 대해 그 사정(이유)과 감사의 마음을 적으니 후련해지고 긍정적인 기분이 생긴다. 또 이 과정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내 속에 갇혀서 투사하고 미워하는지! 투사한 후에 그 얼마나 불편해하는지 새삼 다시 느꼈다. 감사하다.
맑은 물 붓기 명상에서는 내가 하는 오류, 우리가 하는 오류를 느끼고 진정 자각할 수 있었다. 탁한 물을 없애면서 물을 정화시키고자 하면 모든 물을 없애야지만 가능할 것이다. 인간전체를 없애야할 것이다. 난 그런 식으로 애들을 야단을 쳤다. 그러다가 너무 야단치는 것 같으면 맑은 물 붓기(칭찬)를 하고........ 이런 것을 반복하였지만, 애들의 행동은 고쳐지지 않고, 마음의 멍은 커져만 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야단과 칭찬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하고 합리화하고 위로하기만 하였다. 이대로 키워도 그냥 그런 대로 커 갈 거야라고 하면서 자위를 하곤 했다. 이제 긍정적인 칭찬을 부어줘야지. 나의 눈높이를, 아하점을 낮춰야지, 애들에게도 스스로의 지혜가 있음을, 아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지혜가 칭찬과 존중을 통하여 스스로 흘러나온 것을 알았다. 난 또 주변사람들에게 참으로 교만했음을 알았다. 동생의 잘못을 고치라고만 했지 이해는 하지 못했다. 심지어 동생이 어머니 시신을 대할 때 대성통곡한 것에 대해서, 단지 쇼를 하는 것이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슬퍼한다는 것을,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가를, 빚을 갚지 못해 어머니께 오지 못했던 죄송함을 시위하듯이, 보여주기 위하여 대성통곡한다고 생각하고 미워하고 비판했던 나였다. 정말로, 그 깊이 있는 동생의 슬픔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사과해야겠다.
5일 간의 과정을 통하여 나의 뿌리 깊은 열등의식과 비교의식, 너무나도 쉽게 나 자신에 대해 비판하면서 괴로워하기만 하던 나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비판하더라도 덜 괴로워할 수 있을 것 같아 감사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록새록 깊게 느낀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10. 노랑 송명재님
나는 이번에 동사섭 법회에 참석하면서 별로 기대는 하지 않고, 그러나 풀어야할 숙제는 많이 가지고 참석했다.
처음에 병원에서 동사섭에 참여해보라고 했을 때 동사섭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몰랐다. 그래서 여기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해준 병원에 크게 고마움을 못 느꼈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여기에 참 잘 왔다는 생각과 나를 여기에 보내준 병원과 부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준 거울님과 학님께, 그리고 돕는이 분들께 감사합니다.
처음에 이 법회에 참여했을 때, 불꽃, 촛대, 느낌노트, 5요춤 등의 말을 하여서 이 동사섭이 무엇인가하고 마음으로 와 닿지 않았다. 그 동안에는 생활하는데 바빠서 미세정서에 대한 느낌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둘째 날, 셋째 날 화합 중 교류에 대해 강의를 들으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나눔의 공식인 관심의 지평 위에 감지표현하고 공감반응한다는 말에, 그래 난 주변사람과 주변의 일에 대해 관심 갖지 않고, 감지표현도 하지 않고, 공감하지도 않는 아주 메마르고 나만 아는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제부터는 느낌노트를 작성하여 나의 미세정서를 많이 살려 나의 인생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류4덕, 화합의 3요소, 자자청 등을 하면서 나의 그동안 살아온 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내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지게 살아왔나! 내가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며 나 자신의 삶의 숙제 한가지의 방향이 보였다.
화합의 강의가 끝나고 수심의 강의를 들으며 여기 오면서 가져온 숙제의 실마리를 보았으며 처음 해보는 명상에 대해 좋은 체험을 했다. ‘수심’하면 일반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로만 생각은 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 숙제로 항상 생각해 왔는데, 마음의 다스림은 마음의 필터를 잘 교정하는 것이라는 거울님의 강의를 듣고 그래 그것이야 하는 깨달음을 알았다. 평소에 화를 다스리고 싶은데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아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 왔는데, 화를 다스리는 법으로 마음의 필터와 나와 그것의 이원화라는 말씀을 듣고 그래 그것이야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내가 여기 와서 나의 감정을 정화하는데 많은 효과를 본 명상이 절 명상이다. 평소에 내가 절을 받아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않고 ‘절’이라 하면 웃어른에게, 공경의 표시로 하는 행위로만 인식해 왔다. 그러나 절명상을 하면서 실제로 내가 남에게 절을 받고 절을 하니 절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절 받음은 “나를 존중해준다, 나를 존경하고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는 것을 느끼고,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자 잘 되기를 기원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이 드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절명상을 하면서 계속 흐르는 나의 눈물의 의미가 아마도 나 자신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껴서가 아닐까? 그러나 아직도 그 날의 주체할 수 없는 나도 모르는 눈물의 깊은 의미를 모르겠다.
자기명상, 독배명상, 무아명상을 하며 그동안 내 안에 미워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새로워진 나를 만나서 참 기쁘고 몸이 홀가분해진다. 이 법회를 마치면서 가장 머릿속에 남는 글이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변화의 1번지는 바로 나이다’라는 글이다.
그렇다! 내가 변해야 주변이 변하고 주변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1번지는 바로 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행복하면 나의 가족이 행복하고, 나의 가족이 행복하면 내 주변이 행복하고, 내 주변이 행복하면 세상은 행복 그 자체이다. 난 행복하다!

11. 뭐든 황정희님
작년 179회 동사섭을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치 정든 고향을 떠나는 사람 마냥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따라붙고, 그 이후도 내내 두고 온 고향처럼 그리움이 생겼다. 이는 내가 동사섭에서 경험해야 될 것이 아직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걸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182회 동사섭에 다시 참가하게 되었다. 첫날부터 참 편안하고 좋았다. 그래서 그 기쁜 마음으로 표현하려 입만 열려고 하면 눈물이 쏟아지니, 도대체 내 속에 쌓여서 표현되길 바라는 억압된 감정들이 얼마나 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나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거울님의 강의를 들으며 학님과 더불어 소그룹 활동을 하며 그것들이 뭘까 살펴보기로 했다.
화합장을 공부하면서 ‘침묵이 지옥문의 열쇠’라는 거울님의 말씀에 마음이 있으면서 표현하지 않아 서로들 춥게 살아 온 우리 가족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고, 먼저 배운 내가 그 언 마음들을 녹이는 불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심장은 이 세상 모든 행복의 시작이 나에게서 비롯됨을 또 다시 깨우치는 공부여서 참 귀하고 귀하다. 하지만 이제껏 그 중요함을 알면서도 용맹 정진하지 못함이 반성이 된다. ‘반복이 천재를 낳는다.’는 촌철 말씀을 마음에 새겨 ‘앞으로 100일 동안 지족명상 노트를 쓸 것’을 다짐한다.
나지사명상, 죽음명상, 옴나명상을 하며 그 편안함이 참 좋았다. 깊이는 비록 얕았을지 모르나 나도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나지사명상에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녹아 나서 가슴이 뻐근했고, 죽음명상에서는 작년에는 도대체 살고 싶지가 않아 얼른 독배를 마시는 바람에 도대체 내가 왜 이리 살고 싶지 않나 스스로 연민이 느껴져 죽을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그’ 하고 싶은 것들도 지족명상을 하니 이내 끊어져 좋아라했는데 복종명상으로 이어지니 용광로에 뛰어 들어가고 사지를 뜯어내는 고통스런 죽음의 명령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이 무지 들었다. 그러나 ‘나 없음’의 신념으로 전환하니 그제야 독배가 마셔지며 너무나 개운해졌다.
이어진 옴나명상에서 이제껏 내가 바라고 이르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싶어 참으로 감격스럽고 찾아 헤맸던 것이 ‘바로 이거였네’라는 아하가 생긴다. 이 옴나를 이전에도 경험해 봤는데 그때는 이렇게 귀한 것임을 몰랐다. 이미 누려왔던 귀한 0P의 영역이 확대됨을 느끼니 부자가 된 기분이고, 잃었던 재산을 도로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맑은 물 붓기를 통해서 대중 앞에 나설 때 느끼는 두려움의 사슬과 부모님에 대한 질긴 원망의 사슬을 동시에 끊을 수 있어 너무 후련하고 이런 힘이 있는 내가 너무 좋다. 과거 뚝, 지금부터 누리기를 생각하니 신이 난다. 이번 동사섭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다짐하고 깨달은 것들을 잊지 않고 생활 속에서 개어있을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 스승이고 귀한 존재임을 새삼 느끼고, 사람들 뒷꼭지마저 이쁘게 느껴지는 이 기쁨을 이번 동사섭 장에서 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길이 깊게 느끼며 깨어 살아가는 것이, 고마우신 거울님과 학님에 대한 보답이라 느낀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나의 눈물이 분함의 탁한 눈물만이 아니라 참회와 감사와 기쁨의 맑은 눈물이 되어감이 기쁘고, 이제는 남을 위해서도 기꺼이 울어줄 수 있음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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