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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06-08-05 오후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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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회 일반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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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3회 일반과정 소감문>
1. 솔나무 장남석님
가족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에 동사섭에 참여하여 감수성 훈련을 꼭 받으라는 권유를 작년 여름에 받았으나, 시기 선택의 부적절, 참여 의지의 미비로 이제야 참여하게 되었는데, 작년 불참이 후회스러우나 이제라도 훈련을 하게 되어 감사의 마음뿐이다.
가족, 직장 모두에게 일(과업) 중심의 성취에 목표를 두고 그것에 매달리니 나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나 하는 것을 모르고 지내 온 나날이었다. 특히 아내, 아들, 딸들과의 생활에서 따뜻하고 포근함은 찾을 수 없었으니 가족 관계는 날로 황폐화되고 있었다. 이에 이론이 아닌 체험을 통한 훈련을 받았으니, 따뜻한 사람 냄새가 이리 좋으니, 후회의 눈물을 그리도 흘렸으니, 곧 바로 실행할 수 있다고 다짐한다.
메마른 내 가슴에 와서 꽂히는 기적의 미세 감정 16가지는 <주기>를 주저하고 <받기>만을 갈구하는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이웃은 물론 가족에게도 마음의 주고받음을 느끼기는 하였으나 많은 부분을 일부러 생략한 채 생활한 나의 삶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들, 딸이 미치지 않는 것만도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교류사덕을 하나하나 기록하여 보니 이 또한 셋째 날 오전이 즐거움으로 가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자자청은 실제에서 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식구 4명에게 전화로 실습하였더니 아내가 울먹이며 고맙다고 한다. 한결 가벼운 마음인데 이런 것들을 억누르고 애써 외면하였으니 나 스스로가 측은하게 생각된다. 왜 내 마음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데 이르니 오로지 내 탓, 내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된다. 명쾌하게 와서 닿는 feel이 정말 놀랍다. 즐겁다. 기쁘다.
수심의 원리를 들으며, 일 중심의 내 생활이었으니 욕구 지향과 욕구 집착을 동일시하고 있었음을 자인한다. 이를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실행하도록 강요하였으니 엄청나게 오염시켰음을 후회해 본다. 그 정화 원리는 내 복잡한 두뇌를 가볍게 해주었다. 내 filter는 먼지로 범벅됨도 모른 채 지내고 있었으니 참 슬프다. 이를 닦아준, 그리고 스스로 닦도록 안내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한다.
나의 밝은 내일을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하고 한 달 후에는 이렇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 산 김동희님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동사섭 수련회를 통해 얻은바 많습니다. 이 배움들로 인해 앞으로 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꾸려갈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을 일체 소멸시키고, 이 몸도, 그 무엇도 모두 소멸시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제 관념적(!) 목표입니다.
온 힘을 바쳐 이를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목표를 위해 아웅다웅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 깨달음, 얼치기 깨달음으로 현실을 살아가자니 힘들었습니다. 삶이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답답함이 가중되었습니다.
“행복하면 웃게 되지만, 웃으면 행복해진다.”
“자신감 있으면 목소리가 커지지만, 목소리를 크게 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초월하면 현실 화합도 자연히 잘 하며 살 것이라 생각하며, 현실은 무시하고 소홀히 하며 초월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소홀히 취급한 현실로 인해 스트레스, 무력감, 자괴감은 커져 나갔고, 그 결과 맑은 영성을 찾을 여유조차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홀히 취급한 현실에, 그리고 제가 무시한 사람들에 더욱 정성을 다해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제 발목 잡았던 것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현실에 정성을 다하면(현실 속에 든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 마음을 잘 받고, 교류사덕 실천하면), 그것이 곧 영성추구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좀 더 열심히 현실을 살 것 같습니다. 단, 그렇게 살면서도 일상의 행복감에 젖어 정체되지 않기를 유의하겠습니다.
아울러 초월명상 시간이 좋았습니다. 내 안에 깃든 순수의식이 ‘나’가 아니라, 그래서 내가 우주인 게 아니라, 나는 없고 우주 자체가 존재한다는 생각 전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를 없애고 난 뒤에 남는 순수의식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그 순수의식을 확장시켜 나를 우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아상을 키우고 그것에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순수의식마저 부정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 꽃을 보고 풀을 보고 시냇물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와 주변 존재들과의 경계가 없어지고 그 자체가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를 없애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그 느낌을 애써 찾으려하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 충실하겠습니다.
이 모든 가르침 주신 거울님, 인산님... 그리고 따뜻하게, 예리하게, 지극 정성으로 도와주신 열매님 감사드립니다. 수련회를 도와주신 많은 도우미님 또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3. 미르 이호영님
1. 나의 아하점이 높다는 것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니 좋다. 점점 나아지고 있음을, 그리고 변화를 즐기고 만족하자.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고 기쁘다.
2.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 주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서 기쁘다. 또 즐길 거리가 늘어나서 즐겁다.
3. 나를 인정, 수용, 받아들임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이미 변했고, 변한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나를 인정하고, 나를 보듬어 주자. 세상에서 존귀하고, 신비스러운 나를 사랑한다. 너무 행복하다.
4. ‘당신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던 중 무언가에 자꾸 머무르려고 하는 나를 보았다. 긍정이기에 가꾸고 키워주어야겠다. 한 업에 머무르지 말고 더 좋은 것으로 발전해 가자. 군침을 흘리자!
5. 어느 순간 마냥 재미있어 하고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 재미있다. 그 동안 거울을 안 보다가 수련 4일째에 거울을 보았는데 얼굴이 낯설어서 깜짝 놀랐다. 얼굴이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마냥 좋다.
6. 반복하자.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인지했다. 기쁘다. 여태 해 온 것이 대견스러워서 좋다.
7. 화합, 교류. 마음으로 느껴져서 따뜻했다.
8. 저지르고 나니 너무 좋았다. 즐거웠다. 마냥 좋다.
9. 나에 대한 자각, 나를 보는 힘이 키워져서 좋다. 불꽃을 살리고 내놓으면 또 다른 불꽃과 만나게 된다. 신기하다.
10. 이해하지 못하는 것, 제쳐라. 그냥 제쳐 나가다보니 자연스레 체득되기도 하고 저지르다보니 정교하게 다듬어지기도 한다.
11. 사고의 틀이 깨지는 것과 확장되는 느낌이 너무 좋고 재미있다. 뇌 작용, 뇌의 한계가 신비롭다.
12. 노래가 배속에서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음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희망차다. 또 노력할 거리가 생겨 즐겁다.
13. 싸우는 것을 즐긴다. 스트레스 받는 일을 제대로 보고 즐기며 살자. 푸~ 쓰다 보니 마냥 좋고 마냥 즐겁기만 해서 조금은 웃긴다.
4. 동그라미 전영숙님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동사섭 훈련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터였다. 스님께서 시종일관 인자하신 얼굴로 유머와 함께 불교의 어려운 개념들을 누구라도 알기 쉽게 강의해 주시고 친절하고 세심하게 실천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참 고맙고 좋았다.
평소 불교 공부를 하고 있고 내가 이끄는 집단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 이 훈련이 더욱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편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가르침대로 살아가려 했던 그 동안의 나의 삶의 태도가 자랑스러웠고 다시 한번 견고한 확신을 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였다.
5박 6일 동안의 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긍정적 정체감으로 큰 원을 가지고 수심하고 화합하며 작선하고자 하는 염원 그 자체였다. 이상 공동체 5대 원리는 나 자신과 내 가정과 직장에 매어있던 마음을 온 우주로 확장시켜 나가는 광대한 우주관을 갖게 해 주었다. 행복창출 3박자를 외치고 있노라면 나는 더 이상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데 ‘군침이 돈다.’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갖도록 해 주었다.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에서도 마음 나누기를 통해 금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 같은 화합의 분위기를 이룰 수 있었다. 겉마음과 속마음을 촛대와 촛불로 선명히 그려내니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스러지는 미세한 감정까지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관심의 지평 위에 감지하고 표현하며 공감하고 반응하라는 나눔 공식을 실습하면서 평소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하지 못하고 표현을 적절하게 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미세정서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은 다시 한번 작은 것에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도록 해 주었다.
교류사덕은 참으로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압축해서 말해 주었다. 앞으로도 보시하고 감사하고 사과하고 관용하는 마음으로 생활해야겠다. 그 중에서도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잘못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모르고 있는 것까지도 먼저 상대에게 잘못을 지적해 줄 것을 청하는 태도는 정말 아름다운 자세일 것이다.
언어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불교에서 십불선업의 4가지나 차지하는 것이 말에 관한 것이다. 좋지 못한 말로 짓는 구업은 자신과 남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존재에 대한 찬탄을 하면 자신이나 남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빛나고 소중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도 한다.
행동명상은 재미있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였다. 체면 때문에 가면을 쓰고 눈치 때문에 위장하면서 살아왔던 거짓 모습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장이었다. 수심의 장에서는 어떤 상황을 인지하는 촛대가 정서의 불꽃을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하기 위해서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교정해야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불행한 사람은 P100에 집착하고 0P를 무시하는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은 P100을 지향하지만 0P를 확인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가 겪고 있는 복잡한 갈등과 문제를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밝혀주는 대목이었다. 이제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늘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지족명상에서 주전자 명상은 참 재미있었다.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은 경이롭기까지 하였고 차이의 아름다움과 자신의 사고의 편협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사람명상에서 절을 주고받을 땐 진정으로 존재 자체의 신성함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心卽是佛’이라 하였는데 모든 사람들을 한분 한분 부처님을 뵙는 듯한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절을 하였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하였다. 자기(지족) 명상에서 자기 자랑을 한껏 하고 나니 내 자신이 더욱 자랑스럽다. 나와, 나와 인연된 모든 사람과, 사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온다.
초월명상에서는 밝은 정서를 가로막는 탐진치 삼독을 없애는 무심공부를 하였다. 밖으로 치닫는 감각기관의 방향을 돌려 고요히 내 마음을 바라보고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어느새 호흡과 호흡 사이를 비집고 잡념이 끼어든다. 돌아보니 실체사고, 가치사고, 불만사고의 어리석음이 찰나의 틈을 가르고 내 맘 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얼마나 헛된 망상을 쫓아다니며 또 그것에 시달리며 살았던가. 다시 무심으로 마음을 텅 비워본다. 나지사 명상으로 분노를 다스리는 연습을 하고 나니 화날 일도 없고 용서 못할 일도 없다고 생각되면서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또 독배명상으로 탐심을 없애는 연습을 하니 정작 삶에 대한 미련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참회의 마음이 앞서 눈물이 흘렀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오히려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었고 매일 매 순간을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앞섰다.
자아명상은 자신의 정체를 뼈저리게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화엄경 법행품의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에 대한 수없는 물음의 경 구절이 떠올랐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무아명상은 나 자신을 좀더 순수한 의식으로 이끌어주었다. 일체법이 무자성이고 그러므로 제법이 무아인데 무엇에 그리도 집착하고 화내며 살아왔는지 어리석은 모습을 다시 부정해 본다.
옴나명상은 나를 좀더 자유롭게 해 주는 기회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발걸음을 옮기니 마음마저 가벼웠다. 있지도 않는 것에 매달려 있었던 나를 생각하니 허허로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시간의 물컵 명상에서는 맑은 물 붓기 과정을 통해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과 남을, 그리고 영혼도, 우주도 깨끗이 할 수 있음을 자각하였다. 인내와 희생으로 아름답게 살다 가신 관음보살 같으신 어머니의 영혼이 더욱 맑고 맑아져서 저승에서나마 기도를 계속하여 성불하시기를 기원하였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후 늘 속으로만 되뇌이던 그 말을 직접 드리고 나니 가슴 한켠 죄송했던 마음이 온통 감사와 사랑으로 변하는 듯 하였다.
스님께서는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를 말씀하시며 아하선을 낮추어 욕심 없이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다. 한편 ‘일체유심조’를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항목과 단계를 나누어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쉽도록 가르쳐 주시니 어려운 불교이론을 그저 개념으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
5박 6일의 과정은 나의 행복이 우주의 행복이고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님을 느끼게 해 주었다. 며칠동안 긍정적 정체성이 더욱 높아진 자신을 돌아보며 흐뭇하고 한편 아쉽다. 여기서 만난 모든 사람들, 짧은 시간이지만 참 정이 많이 든 것 같다. 진솔한 모습으로 웃음과 눈물을 나눈 사람들의 마음이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도해 주신 스님과 그룹 리더이신 돕는이들 그리고 맛있는 밥을 해 주고 화장실 관리를 해주신 삼동원 식구들께 감사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빛이 되어 이웃을 밝히고 더 나아가 세상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기원해 본다.
감사합니다.
5. 마성 정상원님
* 주제 강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삶을 바람직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하기 위하여, 용타스님과 그 외 가르침을 주시는 모든 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던져지는 주제에 깊이 빠져, 이 수련 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변화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해 보는 기쁨을 누리자.
* 정체의 원리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나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삶이라는 공간의 주인인 ‘나’는 이 공간을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기초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복습하며,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배우고 느낀 점을 행동으로 옮겨 ‘나’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켜 보자.
* 화합의 원리
- 마음 나누기(교류)를 체험하면서 모든 不和의 요인은 나의 미성숙한 표현방식에서 비롯됨을 알고, 마음속에 넣어두고 표현하는 것을 어색하다고 여겨온 지난 세월이 부끄러웠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너무나 실감나게 내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 기적의 미세정서 체험을 통하여 모든 문제가 큰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그 해결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버지께 조석 문안이나마 제대로 드리고 단 몇 분이라도 말씀 들어드리기를 생활화 해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 행복창출 3박자
모든 희로애락의 근원은 생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긍정적 사고를 통하여 보다 나은 여건을 창출할 수 있다는 신념 체계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변화된다는 신념을 가지자.
* 마음 나누기 체험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관심’갖기를 지성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철저하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다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옛말처럼 서로 따뜻하고 훈훈한 삶을 사는 첩경이 되리라.
* 작선의 원리
- 교류4덕 체험을 통하여 세상사가 참으로 묘한 인연으로 얽혀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감사’와 ‘사과’와 ‘관용’과 ‘보시’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인과응보’란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 행동 명상을 통하여 나 자신을 얽어매고 있었던 또 다른 ‘거추장스런 나’를 걷어치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참 기쁜 순간이었다.
* 수심의 원리
생각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근원임을 확인하는 기쁨을 얻었다. 원효스님의 고사를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 분이 깨달은 순간의 희열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전율마저 느꼈다. 나를 고통 속에 묶어둔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더욱 더 큰 기쁨의 순간이었다. 또한 ‘0P100의 원리’를 통하여 ‘욕심’의 덩어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내 고통의 치료제임을 깨닫고 눈높이, 마음 높이의 조절 가능성을 더욱 더 높이는 수행이 시급함을 느꼈다.
* 지족명상
우주 만물이 모두 나의 스승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사람명상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그렇게 존귀한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모든 이들의 존귀하고 신비로움을 더욱 더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인연 닿은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겠다.
* 초월명상
모든 갈등, 분노, 증오는 결국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며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 독배명상
여생을 후회 없도록 살아야겠다. 그리고 탐욕을 버리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죽음을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 정체명상(무아명상)
念体 투성이인 자신을 벗어 던져 버릴 수 있다는 시원함을 느끼는 체험이었다. 이번 수련회의 참석 의미가 더욱 희열로 다가온다.
* 맑은 물 붓기 체험
생명4덕이 ‘생명의 첫 소리’와 ‘교류 4덕’을 합친 것이란 의미를 조금은 깨닫는 순간이었다. 세상은 역시 맑디 맑다. 오염되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맑음의 본래 세상으로 가기 위해 나 자신부터 변화하리라.
* 감사의 말씀
5박 6일간의 수련 활동은 반 백년 넘도록 헛 살아온 저의 삶을 뒤돌아보며 남은 생을 새롭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한 생명의 은인을 만난 시간이었습니다.
용타스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리며, 앞날의 삶이 보다 행복한 삶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엎드려 삼배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6. 그랜드캐년 조우현님
눈앞은 훤한데 가슴은 머엉(~)하다.
나이 사십에 여러 구비 돌아서 찾아 온 ‘동사섭’ 마당에서 나는 기뻤고, 놀랐고, 그리고 편안하다. ‘동사섭’은 지금까지 내 구도행의 압축파일이다. 원래 압축파일은 마지막에 간단한 묶음으로 전해 받는 것이 아니던가? 천하의 명 파일을 만들어 주신 용타스님께 깊은 감사를 올린다. ‘이론+실습’의 구조로 이루어진 ‘삶의 5대 원리’ 모든 마당이 하나같이 과학적인 체계와 현대적인 알맹이로 가득하다. 그리하여 ‘동사섭’ 일반과정 하나만 잘 소화하면 누구나 원만한 깨달음을 얻고 성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이만하다면 누가 “진리 따로 방편 따로” 운운할 수 있을까?
특히 내가 두 손, 두 발 바짝 들고 완전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시간은 ‘사람명상’으로 동사섭에서 이름붙인 절하는 시간과, ‘돈망산책’이었다. 연화님에게 너무나 정성스럽게 절과 축원을 주시는 용타스님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한 순간에 모습으로 확연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자비심이 부족했던 나 자신이 아프게 느껴져 정말 온 몸으로 울었다. ‘돈망산책’을 하고 났을 때는, ‘그래도 [법성게]는 좋지 않은가?’하는 한 생각을 가끔씩 무의식적으로 잡고 있었다는 자각이 왔다. 물론 앞으로도 [법성게]를 부르고 싶을 때는 부르겠지만, [법성게] 없이 그냥 산책해도 충분히 가볍고 좋으리라. 태양은 더 밝게 빛나고 바람은 더욱 보드라울 것이다.
마지막 ‘맑은 물 붓기’는 에미써리 공동체에 살 때 여러 번 이 시간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절절하게 삶 속에서 와 닿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정말 세상은 언제 어디나 다채롭게 어우러진 화엄의 꽃밭이다. 이제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 이 우주의 중심인 내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수심하고 화합하며 작선하는 새 삶을 시작합니다.
7. 자연에 김홍미님
1. ‘임장 기초 신념’ 덕에 어딜 가든 걸림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깁니다.
2. 촛대와 촛불, 그 간결한 메시지로 ‘표현’을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명쾌함이 제 삶을 더욱 단순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3. 내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미세정서를 감지하는 순간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4. 또한 아빠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 하고 미안해하고 있음을 미세정서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5. 자자청 예상 답안을 쓰면서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고, 생활 속에서 자자청이 익숙해지면 더욱 성숙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 군침이 돕니다.
6. 머리로만 이해하던 ‘무엇 무엇으로서의 나 버리기’를 행동주의 명상으로 몸소 체험하였습니다. ‘이 몸이 내가 아님’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7.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행복함을 이미 느꼈던 제 자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지족명상!)
8. 베풀면 다른 갈등이 해결됩니다. (내가 건진 거울님의 명언 중 하나!)
9. 5대 악성 받기인 ‘불경청, 한풀이, 충고, 일반화, 비교’, 이것을 책상 앞에 적어놓고 매일 매일 점검하겠습니다. 몸에 배일 때까지 계속 명상하겠습니다.
10. 교류사덕 ‘보시, 감사, 사과, 관용’이 관계의 열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안다고 진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했느냐’를 따져봐야 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11. 내 눈물이 행동하지 않고 참아버려서 생긴 미성숙한 정서임을 알았습니다.
12.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앎과 동시에 그것이 아상임이 뚜렷해졌습니다.
13. 이 세상의 가장 큰 원수이자 축복은 ‘생각’임을 절절히 공감합니다. 생각으로 인해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14. 범사에 감사하면 P100이 확실합니다. 더불어 ‘무조건 감사합니다.’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5. 존재 자체의 신비로 인해 우주 전체로, 더 큰 우주 전체로, 나의 의식이 확장됨을 느꼈습니다.
16. 새로운 존재의 신비가 내 몸에서도 느껴지면 꼭 동사섭에 오시라는 덕운님의 덕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17. 차가운 벽이 아닌 따뜻한 관계 속에서 더불어 배워가니 행복합니다. 동사섭을 스스로 찾을 줄 아는 지혜를 주신 부모님과 무조건 우리를 믿어주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장소를 이동해서도(소낙비님께서 보시하신 표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행복하게 존재하겠습니다.
8. 하늘자전거 지송자님
‘유일 무일한 진리인 삶을 결정하는 요인은 내 안의 신념체계이다.’ 내 신념체계를 바꿔야겠습니다. 임장기초신념에 따라 내가 사는 장을 천국으로 만들고,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주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겠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한 삶이고, 행복은 좋은 느낌이고, 주체는 우리가 되어야 하고, 인생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행복의 추구이고, 한계는 무한 우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압축한 ‘행복 창출 3박자’대로 행복하다 선언하고 가려지는 것이 있으면 치우고 웃어버리겠습니다. 나란 실체는 없으니까요.
마음 나누기를 위해 필요한 1) 나눔공식과 2) 정서를 표현하는 것 3) 받기 3박자 4) 5대 악성 받기 5) 지지되지 않는 촛대 잘 받기 6) 기적의 미세정서를 배웠습니다.
화합을 위해 서로 사이의 느낌을 중시해야 함을 알았고, 그리고 보는 눈과 보이는 내 모습을 알고 나눠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고, 마음을 교류하려면 신념을 세우고 좋은 느낌부터 표현해야 하는 것도 알았습니다.
마음을 나눌 땐 관심의 지평 위에서 표현하고 나누고, 받아들이고, 나눌 땐 ‘~해서 ~하다.’ 간단, 명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고, 받을 때는 5대 악성받기를 유념하고 경청하고 기쁨을 알아주고, ∝될 것이 있으면 더 해 주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5대 악성받기 한 것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까지는 아하선을 높이 잡아놓고 집착하며 살면서 늘 불평만을 해 왔던 제 자신이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아하선을 낮추고 자각하고 실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 교류사덕에 따라, 보시, 감사, 사과하고 관용하면서 살겠습니다. 지금까진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 못하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표현 못하고 살았거든요. 자자청도 살아가며 실천하겠습니다.
‘의식공간에 부정 염체를 치우라’는 말씀, ‘장은 우리를 위해 있다’,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를 활용하라’는 말씀도 담겠습니다. 그래서 정서관리도 잘 하고 많이 웃어서 근육자체가 웃는 상이 되도록 할 것이고,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랑과 인정욕구가 충족되도록 상황에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겠습니다. 그것이 힘들 땐 행동명상에서 배운 것처럼 저질러서 편안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물론, 표현 못하고 억압해 둔 슬픔, 분노는 차문을 꼭 닫고라도 실컷 표현해서 찌꺼기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행동명상을 하며 제 안에 있던 슬픔, 분노 덩어리를 확 꺼내서 던져버렸습니다. 너무 시원했습니다. (웃음명상, 강아지 약 먹은 상태, 장사, 춤 명상, 무개념 스피치, 개싸움, 울음과 분노 표현, 모두 너무 좋았습니다.)
‘수심-모습에 책임을 져라’ 악마설법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상대가 싫으면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려 했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불행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는 말씀, 불행원리는 무시하고 행복원리인 P100을 지향하며 OP를 누리는 건강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제 필터(태도)를 교정하겠습니다.
지족명상을 하며 사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 가족 귀한 줄만 알았었는데 사물의 귀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사람명상을 할 땐 절을 하면서 상대의 존귀함이 절절히 느껴졌고 제 자신이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 줄 처음 깨달았습니다. 상대에게 절할 땐 정말 존귀하다는 마음을 드리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빌어주어서 마음이 푸근했습니다. 앞으로 사람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고 우호감을 높이며 살겠습니다.
초월명상을 할 때 영적인 삶은 유와 무를 즐기는 것임을 온 몸으로 느꼈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이 집착임을 깨달았지만, 독배명상을 할 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내가 죽음을 맞이했다.’ 죽지 않으려 하는 내 모습과 죽어서도 어느 것인가에 있고 싶어 집착하는 내 모습, 그것 자체로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도 없다는 무임을 알았습니다. 허무함과 함께 이것이 나라는 것을 또 깨달았습니다.
무아명상을 할 땐 나의 몸과 마음을 떼어놓고 편안함, 붕 뜨고 솜털처럼 가벼움을 느껴봤습니다. 너무 편안했습니다.
옴나명상, 걷기 명상을 할 땐, 생각을 없애는 것이 어려움을 알았습니다.
Emissary 공동체에서 개발한 맑은 물 명상을 통해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나간 일은 용서를 빌고, 앞으로 내 맑은 물로 가족과 주위를 채우겠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드립니다.
9. 봉대산 조용길님
환경이 바뀐 탓인지 새벽마다 눈을 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빼꼼히 열려 있는 법당 문을 살짝 들여다보니 분명, 사람의 형체는 보이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적막과 고요뿐이다.
거울님이 말씀하셨다.
명상의 과정에서 살아 숨쉬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워 잠시 호흡을 멈추면 평화와 고요의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져 시기하고 질투하고 주위를 까뭉개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갈 수 없는 살벌한 삶의 현장에서 나는 언제쯤 저런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체험할 수 있을까
아침 체조시간, 언뜻 보기에 나와 체격이 비슷해 보이는 도안님은 양다리를 180도로 벌리고도 이마가 자유자재로 마루 바닥에 닿고 있는데, 나는 겨우 45도쯤 벌리고도 닿기는 커녕 이마와 마루바닥 사이가 너무나 멀기만 하구나. “쯧쯧, 몸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니!” 나태했던 지난 일상들이 한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언젠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을 음미해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그 꽃을 피우는 사람의 손길이 더 아름답다는 말일 것이다. 그 동안 소문으로 알고 있던 동사섭 수련회를 계기로, 늦게나마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고, 관심의 지평위에 촛대를 세워 불꽃을 올리는 아름다운 사람의 손길을 닮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란 소릴 듣고 싶다.
영롱한 아침 이슬이 아름다운 것은 그 존재의 유한성 때문일 것이다. 아침 햇살에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그 시간의 유한성 때문에 아쉬움이 있고 아름다운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하! 그렇다. 사라지는 것이 어디 이슬뿐이겠는가. 기껏 백년도 못 살 인생, 거기다 내가 받은 하얀 인생 도화지는 이미 어설픈 그림으로 가득 차 있고, 이제 남은 귀퉁이 여백은 쥐꼬리만한데 그것마저 서툰 그림만 그려놓고 이슬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집착과 미련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린다.
가까이 은은한 범종소리의 여운이 끝나고 쩡쩡한 용타스님의 주옥같은 지혜가 귀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전신을 타고 짜릿하게 녹아내린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부정 염체를 버려라!”
“P100을 지향하되, 0P를 확인하라.”
“행복하려거든 최대한 내 의식의 공간을 넓혀라.” 그리고 “저질러라 제쳐라!”
“손톱 발톱까지 웃어라!”
잠시 후면 행복의 작은 씨앗 하나를 가슴에 묻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 작은 씨앗이 먼 훗날 무성한 잎이 되고, 예쁜 꽃으로 되고 말고는 오로지 나의 몫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 씨앗이 행여 바쁜 세상살이에 묻혀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간간히 촌철 12대 덕목을 되 뇌이며 지내다보면 예쁜 꽃은 아니더라도 그 꽃을 받쳐줄 꽃대 하나쯤은 세울 것 같다.
지난 월요일 아침, “동사섭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내가 마중을 나갈 텐데, 그때 당신이 너무 변해 몰라보면 어떡하지?” 하던 아내의 농담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농담이 정말 현실이 되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미리 전화라도 하고 가야 나를 알아볼 것 같다. 비록 짧은 5박 6일간의 마음 수련 기간이었지만 그간, 내 안의 곳간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보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저 은혜롭고 감사할 뿐이다.
“이 우주 만상 중에서 가장 소중한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마음을 닦고, 화합하며 작선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디 행복마을에 또 다른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10. 민들레 김민정님
- 저는 오늘 처음으로 저의 정체가 우주임을 고백하였습니다.
- 저는 저의 본질이, 일부가 아닌 전체가 신성임을 깨달았습니다.
- 저는 오늘 처음으로 오랜 삶의 화두였던 가난의 계명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나’란 존재를 버릴 때 모든 해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무한성과 영원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창조 때부터 준비된 가장 큰 은총이며 사랑의 선물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숨결로 창조된 신성 그 자체가 나의 존재의 본질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셨던 성령임을 깨달았습니다.
- 저는 오늘 처음으로 오랜 시간 동일시해왔던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나라고 믿어왔던 나의 허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용기를 믿었습니다.
- 저는 오늘 처음으로 타인이라 믿었던 사람들 안에 깃든 우주와 신성을 보았으며, 그분들이 나와 경계가 없는 나의 일부이며 전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일부로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삶에 대한 오랜 열망의 실체를, 그리고 이를 방해하고 가로막는 실체를 맞닥뜨리고자 하는 원을 가지고 다시 동사섭을 찾았습니다.
첫 동사섭에서 다 같이 행복하고자 하는, 내 안에 뜨겁게 뜨겁게 불타오르던 대원을 확인하였고, 그 대원을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처음으로 그 대원이 실현되고 있음을 느끼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극한 행복감을 맛보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나 열망했지만 확신하지 못했던 이 행복에 대해 크게 안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은 동사섭...
나는 신성으로서의 존재, 우주이며 무한한 나의 본질을 고백합니다.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진공묘유의 존재로서 세상과 여러분들의 일부이자 전체와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존재에 걸맞게, 늘 무한함이며 자유이며 온전함이며 신성한 존재로서의 저의 정체를 늘 확인하면서, 나의 일부이며 전체인 우주를 통해 연결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탐진치를 초월한 신성한 필터를 갈고 닦겠습니다. 또 오랜 동안 동일시해왔던 유한한 존재를 벗어버림으로써 나를 가로막았던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해탈하며, ‘나’란 허상의 있지도 않은 경계를 초월하며, 나의 일부이며 전체인 우리 모두를 지극한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고 건강하게 교류하며,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고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의 스승이 되어주신 거울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나’라는 허상에 매달려 두려워하고 경계했던 모든 존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천재예술가 1000만 명이 빚어도 만들 수 없는 대 예술품, 이 몸을 사랑합니다.
11. 바람 한공순님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체성부터 걸렸습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를 부정적인 자아관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행복선언이 가소롭게 여겨지고, 선언이 불러들일 행복을 의심했습니다.
나의 행복관은 소박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고 우겨봤지만, 사실은 욕심을 꾹꾹 눌러 채우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잡다한 염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늘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생활했던 저였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위하여 대화법을 익힐 때, 평소 경청이 약한 저로서는 상대의 말을 정확히 받아주기보다는 내게 닿는 말만 이해를 하고 주관적 충고에 급급했습니다.
‘촐랑대기’에 아직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저지르기’에 주저하는 나는 아상의 벽이 너무 두꺼움이 정말 싫었습니다. 나아지지 않는, 염체 제치기도 큰 방해 요소였습니다.
그 동안 나의 습관의 관성이 멈추질 않고 계속되어 괴로웠습니다. 특히 아는 체, 충고하기, 끼어들기가 그랬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점은 미세정서 표현이었습니다. 장점을 처음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시록을 쓸 때는 인색함을, 감사록을 쓸 때에는 게으름을, 사과록을 쓸 때에는 아직도 분노의 노예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나의 딸, 아들, 어린 제자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괴로웠습니다.
場을 인지하는 과정에, 공명심에 들떠 생활했던, 부정적인 요소로서의 내가 있었습니다. 나의 향기 찾기에 마음 쓰이는 시간이었습니다.
행동명상을 하며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서로 다르게 행동했던 모순점을 발견했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튀어 나가는 말과 행동으로 많은 인연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가족과 제자, 직장 상사에 대한 지족명상에서 자신감이 더욱 위축되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었던 가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덕목이 모든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있었고, 여러 님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빛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의 수련 덕에 그나마 님들의 행복스러운 자족의 모습이 공감되며 저 역시 행복했습니다. 평소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비하했던 저로서는 큰 발견이었습니다.
0P100원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모든 괴로움이 과한 지향목표와 집착, 비교가 빚어낸 불행감에서 왔던 것입니다.
큰 느낌은 절명상으로 열렸습니다.
상대에게 존중감을 극진한 마음과 행위로 표현하면서 진정으로 상대의 존재와 나 자신의 귀함이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좀 너그러워졌습니다. 예전의 나를 높여야, 자괴감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나지사 명상 때 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저에 대한 이해도 풀어 보았습니다.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나는 틀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창문을 열고 밖으로 자유로이 떠날 꿈이 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하였던 조원님들의 격려가 제게 잃었던 꿈을 회복할  용기도 주었습니다. 작은 기쁨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중에 그조차 덧없음을 느끼게 하는 무아명상을 맛보며 막연히 짐작만 했던 명상의 기쁨과 초월의 동경까지 원이 일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수련이었습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헤집으며 가슴 아파해야했고, 자신의 부족함과 죄책감을 재차 확인해야 했고, 습관의 관성 때문에 계속 실수가 이어졌었습니다.
그렇지만 귀한 만남이 있었고, 그 귀한 만남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보고, 님들을 인정하고 일체감을 느끼고 귀감되는 것을 마음에 담고, 내 염원을 의탁하고 진심으로 님들의 행복을 순수하게 기원하였습니다.
현명한 도우미(돕는이)의 이끌어주심에 편안했고, 그 분의 모습에 자신이 다시 곧추 세워지는 경각심도 일었습니다. 28일 마지막 조원들의 만남에서 아쉬움을 나눌 때 그들의 변화된 모습에, 제 자신의 변화에 감사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열려져 있지 않은 가슴이지만 저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6일이었습니다. 마지막 물컵 명상에서 내 가슴을 쥐어틀고 있던 죄책감을 염치없이 털며 진심으로 용타스님과 열매님, 조원님들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너그러운 나의 가족에게도....
오직 바람이 있다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기를, 그리고 추구하는 자유로움이 성취되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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