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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소감문

NO1작성일 : 2010-02-04 오후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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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회 동사섭 일반과정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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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 김혜경님
 
학년 말 해야 할 일은 잔뜩 밀려있고, 내년에 학교를 옮길지 어떨지 마음이 어수선하다. 이 와중에 동사섭 연수까지 가라니 솔직히 올 때는 내키지 않았다. 일 속에, 일상에 찌들려 마음을 들여다 볼 생각조차 못했는데, 어쨌든 함양 행복마을에 도착했다. 등록 할 때 별칭을 쓰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나를 표현해 줄 멋진 별칭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깔깔이라고 지었다. 나중에 5박 6일 동안 모두에게 불릴 이름이라 그 이름에 걸리는 무게를 알았다면 그렇게 짓지 않았을텐데. 다음에 멋진 별칭을 준비해 오리라.
강의는 즐거웠다. 수업 준비의 부담에서 벗어나 피교육자로 깊이 있고 재미난 강의를 들어 더욱 좋았다. 그런데 지행득이라 항상 강의 후 소그룹으로 실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수업의 주체에서 객체로의 변신은 어려웠다. 내가 여태 쓰고 살았던 교사라는 권위의 탈이 얼마나 무거웠는지(아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 해 왔던 수업의 정체도 그만 드러나 버렸다. 지행득의 오로지 지, 지식 뿐인 수업, 수업하는 나도 힘겹고, 받는 학생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업이었다.
동사섭 연수를 주관하는 용타스님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을 꿰뚫는 철학과 함께 지도하신 도안님의 요소요소 맥을 짚어주시는 멘트에 존경과 찬탄을 아낌없이 보낸다. 강의 후 스님과 모든 돕는이가 함께 실습 내용을 쓰고 발표하고 내용을 바르게 정리하고 끌어가는 모습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갑자기 피 교육생이 된 나는 특히 실습 내용을 기록하고 발표할 때 가장 힘들었다. 강의 내용은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생활 속 구체적 실천 덕목에서 그만 콱 막혀버린 것이다. 평소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매사를 처리해 온 관성 때문이었으리라. 더구나 마음공부엔 관심조차 없었으니. 하루하루 날이 지날수록 강의 내용은 깊어졌고, 어떤 한 자락의 빛을 발견했다. 살면서 느꼈던 구체적으로 실체를 잡을 수 없었던 그 무엇이 분명해지면서, 이 연수는 나의 삶에서 큰 분수령이 될 거라 믿는다. 이제 머리로만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주변 모두가 행복하고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세상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후에 산책을 하면서 무심의 경지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게 완전히 편한 마음은 처음이었다. 걷기 운동은 자주 했지만 매일 걸을 땐 오로지 목표 달성을 위해, 급급해서, 자신을 비울 생각도, 지족의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막연히 마음보다 몸을 위해, 욕심을 위해 살았다는 자각. 결국 마음이 몸을 만든다는 깨달음이 이번 동사섭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앞으로 2년 마다 신체 건강검진을 받듯이 마음 건강검진을 매일 하면서 살리라 다짐해 본다.
 
 
푸른바다 김태연님
 
이것을 놓치면 인생을 놓친다. 라는 큰스님의 말씀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장이 일어나듯 내 마음에도 보여지는 그 이상의 전율과 파장이 5박 6일 내내 가슴에서 뜨거운 감동으로 전해졌다.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이다. 5요 명상 중 화합의 장에선 화3요를 통해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실습하며 타인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서 좋았다. 푸른 바다와 같이 넓은 포용력으로 하루 3번 타인의 속마음을 알아줄 수 있도록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마음만 먹으면 나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행동 명상을 통해 제치고, 저지르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나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해야 하는 순간 일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의 악사색에서 제치고, 저지르기를 일상에서 실천할 것이다. 또 하나의 기막힌 체험은 사물 명상 시간이었다. 명상 시간 내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끼게 했던 주전자. 그 존재 가치에 대해 감탄했다. 사물 명상의 소중한 체험은 현재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춰 그 이상의 행복을 느끼게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이렇게 동사섭에 매료된 나는 롤러 코스터 보다도 더 짜릿하고 아찔함을 느낄 만큼 매 시간을 즐겼다.
지족명상 시간은 나 자신이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었던가? 하는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함께 참여 한 도안 식구들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65세의 점잖으신 법정님이 내게 다가와 고개 숙이며 두 손 모아 온 마음 다하여 절하시는 모습을 볼 때 산고의 고통이 축복으로 느껴졌던 그 순간만큼 벅찬 감동스러웠다.
지족 명상은 내가 동사섭에서 퇴소하며 집에 도착할 때 소중한 가족에게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하는 교류 4덕 중 하나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 지금까지 체험했던 인생의 목적인 우리 모두의 행복은 물컵 강의를 통해 마음 속까지 정화시킬 수 있었다. 지금까지 오염되었던 내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미쳐 표현하지 못하고 묻어두었던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솔직한 감정으로 표현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용타스님과 열매님 휴정님 이하 돕는이 분들의 이끌어 주심으로 이러한 모든 체험이 제일 어려웠던 파격선도,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진정한 행복은 지금 현재임을 깨닫게 했고, 매일 매일 희망차게 보낼 수 있도록 동사섭의 정신은 이제 나의 보금자리에서 한껏 만끽하고 싶다.
 
옥담 조규창님
 
불교에서 보살이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설법의 하나로만 알고 있었던 동사섭. 종교를 달리하는 내가 종교적 색채가 강한 동사섭 교육 입소 전 다소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왕이면 5박 6일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는 다짐과, 이 기회에 그 동안 살아온 삶을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고 반성, 정진할 수 있는 열정을 갖고 교육에 임하자고 다짐을 하였다.
첫 날, 삶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key는 가치관이고 그 인생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라는 거울님의 말씀과 나는 이 장의 주인이라는 임장기초신념과 함께 삶에서 가장 중요한 5요 명상의 원리를 깨우쳐 주신 거울님께 감사를 드리고 더불어 ‘내 인생 복습만으로 충분하다.’는 촌철도 덤으로 얻고 가슴에 묻었다.
둘째 날부터 계속되는 화합과 수심의 설법과 계속되는 실행연습이 시작되고 평소에 잘 해보지 못한 자기 표현을 나눔 공식에 따라 아내와 아들에게 실천했다. 격려, 칭찬,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곧 바로 회신해 준 아내와 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평소 과묵함의 미덕을 실천하던 나를 온전히 바꾸어보자는 다짐도 해 본다.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이다.’라는 거울님의 설법이 마음 한 구석에 촌철이 되어 박혀버렸고, 촛대 불꽃처럼 생각과 느낌을 자주 표현하여 비대해진 머리를 작게 하고 가슴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감성적으로 중요하게 작용되는지를 느꼈다.
행복창출 3박자, 교류4덕, 0P100의 원리, 주전자 명상, 나지사 명상, 너무나 좋은 내용과 실습에 따라 퇴소 후에도 자아와 또한 관계한 모든 사람/ 사물들에게 감사하고 지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도 맹세도 해 본다.
행동명상, 절 명상, 맑은 물 붓기 시간에 무엇이 참가하는 모든 분들에게 감동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지, 나는 또 무엇에 갇히어 마음을 거스리는 저항감이 생겨나는 것인지, 모든 것을 수용하기에는 아직도 참 수행이 되지 못한 것인지도 반성해본다.
죽음 명상 시간에는 생명애와 가족들의 모습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내려놓음도 배워본다.
5박 6일의 교육 내용은 한 마디로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섭리와 감동의 물결이 다가오는 것 같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양장력의 공간을 마련해 주신 거울님과 도안님, 열매님, 현공님, 휴정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해 준 217기 동사섭 동문 모든 분들게 진심으로 다시 한 번 더 감사를 드리며,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가족과 이해 관계자들과 넓게는 우주와 같이 화합, 작선하고 지족, 구현을 지행득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송곡 이은교님
 
동사섭 참가가 결정되면서 한 편으로는 호기심, 한 편으로는 고된 회사 업무에서 벗어나 며칠 간 푹 쉴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5박 6일 간의 동사섭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강의 내용이 경청, 몰입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고 강의장의 좌석도 의자가 아닌 마루 바닥에 앉도록 되어있어 강의가 종료되는 시점에는 정신적, 육체적 피곤함이 엄습하고 있다. 그러나 강의 진행 방법이 강의+실습으로 이어지면서 거울님의 강의를 도림, 현공님의 도움으로 실습해 나가면서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수련 3박자의 허심, 경청, 주제몰입의 촌철로 시작된 첫 날 강의는 연속되는 질문과 대답들
-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있는 것? 삶!
- 나의 삶을 결정하는 본질? 가치관!
- 인생의 목적은? 우리 모두의 행복!
마침내 이상 공동체 5요(정체, 대원, 수심, 화합, 작선)를 정리하면서 첫날 강의가 끝났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느꼈으나 가슴 답답함을 느끼는 하루였다.
이상 공동체 5요에 대한 이해를 화합으로부터 강의가 시작되었고, 화합을 위한 방법(관심, 마음표현, 나눔공식)에 대하여 이해 및 훈련하였으며 특별히 “표현”과 관련된 3가지 멘트(인생은 표현이다, 표현이 활로이다, 표현의 부재는 실체의 부재이다.)는 그 동안 표현 없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나의 편견을 일거에 소멸시켜버렸다. 또한 받아주기 3박자를 통하여 경청, 공감방법을 터득하고 속을 알아주는 것이 받아주기의 핵심임을 터득하였다.
기적의 미세정서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무시하고 지나가기 쉬운 일상의 행동들에서 미세 정서를 늘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겠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저질러라.” 라는 촌철로 지인 3박자(나는 행복하다, 가가대소, 내가 사라진다.)의 실습이 재미있었다. 교류4덕(보시/감사/사과/관용)에 대하여 이해가 쉽도록 정리가 잘 되었으며 머리로는 이해되나 실행에 소홀했던 부분을 이번 기회를 기점으로 실행에 중점을 두고 생활할 예정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자자청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여 사과 할 기회를 마련하려고 한다.
행동 명상과 관련된 여러 실습들(가가대소, 춤추고 노래하기, 물건 팔기, 안 되는 말하기, 개싸움, 대성통곡, 분노폭발 등)을 통하여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며 마음속에 남아있는 위신, 체면, 부끄러움 등을 없앨 수 있었고 이러한 것들을 물리쳐야만 사회생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원만히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부끄러움, 체면 등을 느낄 때마다 행동명상을 기억하도록 하겠다.
지족명상을 통하여 나에게 지족(0P)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구현(P100)목표를 잘 구현토록 하겠다. 사람 명상을 통하여 사람 존중에 대한 훈련을 삼배의 절을 통하여 연습하였다. 절을 하면서 ‘너’의 귀한 것을 느꼈고, 절을 받으면서 내가 과연 절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부끄러움. 절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행복의 시작’을 느꼈다. 죽음 명상을 통하여 나를 정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고 무아 명상을 이해하려(체험하려)했으나 내게는 아직 쉽지 않은 명상임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물컵 강의를 통하여 적극적/긍정적 사고, 지족, 교류4덕 등이 세상을 맑은 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막 이상 공동체 5요의 이해에 한 발자국을 디뎠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공부와 실행에 정진해야겠다.
 
 
종달새 손종혁님
 
부산에서 출발하여 맑은 하늘을 따라 함양으로 오는 길에 나는 이미 무엇인가 모르는 막연한 어떤 것을 갈구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첫째 날, ‘아. 여기는 내가 배우러 가는 곳이야. 상담자가 아니라 집단원이 되어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반 별 모임에서 활동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습관대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록 앞에서 무너졌다. 나의 행복은 어디의 교수가 되고 나면 여유가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말 속에서 나는 미래의 목표만 있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둘째 날, 점차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논리를 따라가다 의문이 생기고, 막히고 있었다. 왜 화합부터 배울까? 수심부터 하고 화합하는 게 나의 순리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가 인정하는 인간이 되고 난 다음 그 때 쯤 누구와도 소통하는 데 자연스럽고 다 이해될 줄 알았다. 이 생각 역시 미래지향적이었으며 동시에 수심과 화합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는 그럴 힘도 없고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하루, 이틀 지나면서 관계천국이 곧 나의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중요하지만 '우리‘였다.
삼일 째 되던 날, 나는 행동명상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개싸움을 하는 와중에 내가 내 인생을 위해 이렇게 힘들게 투쟁하는구나. 불쌍하다 종혁아! 보듬어주고 싶다. 사랑받고 싶었니? 응. 내가 사랑해줄게. 그리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사흘 째, 절 명상에서는 연약한 존재인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무한한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에게 용서받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인가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아이였다.’
오일 째, 초월 명상의 시간! 나는 존재인 대상을 두고 수 없이 많은 비빔밥을 만들었다. 구나, 겠지, 감사가 내 인생에서 인이 박히려면 얼마나 걸릴까? 별 다섯 개 짜리에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추구해야 할 목표는 확실해졌다. 그리고 그날의 오후는 힘들었다. 비아명상과 돈망의 경지를 경험하기란 쉽지도 않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물을 가지고 명상을 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 이제 행하고 득하는 일만 남았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하기보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몸소 실천하면서 세상 속에서 지족하며 살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런된장 김준철님
 
왜 이리도 달려만 왔는지. 도대체 무엇을 향한 노력이었고, 무엇을 위한 발버둥이었던가. 내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돌팔매질 계기를 마련해 준 동사섭에 그리고 그 모든 구성원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마흔 해를 살면서 정작 중요한 물음을 던지지 못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제 인생 반전의 노력을 기울이는 화두를 간직해 갑니다.
나의 가치관은 확고합니까? 나는 항상 정확한 잣대로 제 인생을 일구고 평가하고 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요.’, ‘그럴 것 같군요.’라 답할 수 있을 듯합니다. 오히려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유도리 있는 기준을 가진다고 어리석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동사섭에 제게 던진 또한 제가 혼란에 빠진 첫 번째 화두는 삶이 가치관이고, 아울러 가치관은 행복을 향해 흐르고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5일이 지난 오늘 마지막 밤도, 여전히 제 삶의 잣대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이, 내게 행복이 어떤 구체적 느낌을 주는 것인지조차 마찬가지입니다.
동사섭을 떠나는 내일, 저는 제 삶의 잣대가 되어 줄 기분 좋은 잣대인 가치관과 행복이라는 선물을 화두로 즐겁게 사회로 복귀하려 합니다. 내 생각의 방향과 삶의 지침을 새로이 만드는 일이라 그 자체만으로 삶의 신선함을 예상합니다.
나는 알고, 아는 것을 행하며 이를 완전히 내 것으로 하였습니까? 동사섭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설명되듯, 동사섭의 가르침은 모두 사람의 섭리에 대한 것이므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들이고, 알게 모르게 실천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동사섭을 통하여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것인데, 제 앎에 대해 스스로 자신할 만큼 떳떳하지 못하며, 제가 행한 것들은 제 본질에서 몸에 벤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용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앎이란 것에 떳떳할 수 있는가. 이런 앎을 실행할 수 있는가. 이러한 앎에 따른 행동은 과연 철저하게 내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모아 두 번째 화두로 짊어지려 합니다.
나는 내 마음을 온전히 움직일 수 있습니까? 동사섭이 제시한 지족명상과 나지사명상은 그야말로 나약한 제 사고의 기준을 바닥까지 처박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하다못해 주전자 하나에도 부여할 의미가 그리 많고 감사할 일이 그리도 많았는데 어찌 그리도 무심하게 살았던지 후회가 됩니다. 무심한 것뿐인가요. 무엇을 정확히 원하는지도 모르는데 무한정 쌓이는 욕심과 그를 좆는 사방의 불만이 왜 이리도 많았던지요. 사소한 많은 일들에 왜 죽기 살기로 흥분하고 미친 듯 증오하였던가요. 만사의 느낌은 모두 내 마음에 있음을 각인하고, 내 마음을 적절히 조절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이해해야겠다는 다짐을 세 번째 화두로 들고 가렵니다.
나는 사회적인 동물입니까? 나는 그저 게으르고 거만한 미천한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반성합니다. 진정 남들을 이해하려고 했던 거, 무언가를 나누고, 나눔에 있게 제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지요? 저는 오히려 가까운 것은 경시하고 진심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문제 해결에만 집착해 왔습니다. 필요한 관계는 철저하게 형식을 갖추었고, 필요 이상의 관계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좁고 깊은 관계에 집착하였고 그나마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란 오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화 3요나 교류4덕과 같은 동사섭의 가르침은 저 스스로를 바로잡는 것과 아울러 저와 관계를 형성하는 만물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의 기반을 제시하였습니다. 남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고, 그 존중의 느낌을 표현해야 하며, 이러한 표현들은 정말 세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제 제 마음과 아울러 제 주위의 모든 관계들을 다시 고려해 보려하며, 표현, 보시, 감사, 사과라는 화두를 주워갑니다.
동사섭은 제 감성과 실체를 뒤돌아보게 하는 기준들과 그 기준들을 연습할 다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시시각각 흔들리는 제 마음과 감흥들은 차마 몇 마디 표현으로 적기에 한계가 있네요. 그저 흥분되고 신선하고 상쾌한 느낌이랄까요? 특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와 행하는 것, 체득하는 것에 대한 제 배움은 뼈저릴 정도이고, 이를 체계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준 동사섭 프로그램에 다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몇 가지의 화두를 짊어진 제 숙제를 풀어나가 보려 합니다. 많은 동사섭 수련 동기 분들의 용기와 감흥에 힘입어 좋은 결실을 맺을 듯하군요. 그 간 많은 도움 주신 동사섭 거울님과 돕는이 여러분, 그리고 우리 동기들게 감사를 전하고 길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물방울 김민정님
 
동사섭의 5박 6일. 5번 나를 자유롭게 하고 6번 나를 울게 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받아 다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한 마당 한 마당 쫓아가다보니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절 명상, 죽음 명상.
여러 마음 명상에서 이름은 다르지만 받아주기, 감사, 0P100 원리 등 공부해 보아 나 자신 스스로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지만 절 명상과 죽음 명상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절 명상을 시작하니 도림님과 현공님이 다른 분들께 절을 한다. 아주아주 귀히. 그 장면을 바라보니 그냥 눈물이 난다. 누군가가 나에게 절을 해 준다. 갑자기 울컥한 기분이 든다. 절을 받고 있자니 내가 만물의 귀한 존재인 듯하여 내 자신이 존귀하고 나를 더 아껴야지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내가 또 절을 하니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귀한 존재가 되고 절 행동 하나하나에 정성이 간다. 왜 진작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더 소중한 이들인데. 또, 내가 만든 이미지로 사람을 미워했을까? 다 존귀한 존재들인데. 사람이 귀함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죽음 명상을 시작한다. 모두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느냐 묻는다. 눈을 감고 생각하니 먼저 떠오른 건 가족이다. 평소 “내가 죽거든” 하며 주저리 주저리 남편과 이야기 나누었지만 정말 죽는다 생각하니 미련과 변명거리가 떠오른다. 거울님 말씀을 떠올리며 미련을 끊어냈다. 그래, 우리 가족은 늘 이야기 한 대로 내 추억을 가지고 날 행복히 보내줄 거야. 날 타이른다. 맞아. 장례식도 우린 축제로 하기로 했잖아. 우리 딸이 마음에 걸리지만 단단한 아이니 엄마의 추억으로도 아빠와 즐거이 나누며 살 거야 하며 미련을 끊어낸다. 그러나 끝끝내 끊어지지 않는 뱃속의 아이. 세상의 빛도 보지 않는 아이가 무슨 죄라고. 미련이 남는다. 도저히 죽을 수 없다. 당장은. 이 아이를 살려놓지 않고는. 명상이 길어지고 고민할수록 점점 생각이 바뀐다. 그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어느 누가 선택할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아이의 운명이다. 7개월이니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살 것이고 살아날 의지가 있다면 끝내 살아나 따뜻한 가족의 보살핌으로 건강히 강하게 자랄 것이다. 밝고 명랑하게. 아이의 아빠를 믿기에. 그 아이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정리된다. 웃으며 ‘안녕! 모두 즐거웠어. 행복했어.’ 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모습으로. 그렇게 정리하니 언제 죽을지 모를 목숨. 현실에 충실하자. 지금 사랑하자. 당장에 실천하자 여러 마음이 든다. 하루하루 내 행복한 삶에 충실해야지.
전체 일정을 끝내고 나니 동사섭에서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 자신과 약속한 교류사덕 꼭 지키고,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고 내 주위 사람들에게 늘 표현하여 행복할 것이다. 또 지내는 기간 내내 함께 한 동사섭 217기 모두가 태아에게 축복을 주셔서 정말 귀하고 귀한 아이가 태어날 것 같다. 좋은 태교 하게 되어 감사하고, 축복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늘 행복하시길 감사드린다. 덧붙여 함께 한 모둠에 있던 도림님, 현공님. 이끌어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함께 한 도반님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의 선배님들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들 항상 건강하세요.
 
 
희 윤지희님
 
<나의 행복을 위해 떠나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돌아온 희야의 그곳 이야기>
나는 나를 위해 웃어줄 수 없었던 나의 행복을 위해 동사섭으로 출발했다. 처음 혼자 어디론가 떠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렜다. 하지만 이도 잠시 곧 낯선 곳에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두려움을 느꼈다. 복잡한 심정으로 동사섭에 도착해 처음 한 일은 별칭을 짓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의 이름은 ‘희’. 내 이름 뒷글자인 빛날 희를 가져다 쓴 것이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마음에 들고 뿌듯하다. 이곳에서 나는 그 이름 그대로 살도록 노력했다. 내가 있는 자리를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엄청난 떨림과 울렁증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첫걸음을 떼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너무 적극적이라 설치고 다니지 말라는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3일째 행동 명상을 했다. 여기서 나는 나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아!! 내가 나의 존재에 대한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있었구나.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똥이 가득 차 있었구나. 느껴야 할 순간에, 행동해야 할 순간에 생각하지 말고, 행동을 단행해야 할 순간에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제치고 저질러라!! 정말 이것은 얼마나 간단한 원리인가! 이 간단한 원리를 깨우치지 못해 그 동안 내 마음속과 다른 행동을 하며 괴로워했었다. 자유로울 때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행동을 해서 자유롭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남 앞에서도 당당히 노래하고 말 할 수 있는 뚝심이 생겼다. 앞으로도 저지르기로 나의 삶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겠다.
이곳에서 가장 잘 배워가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감사록, 보시록, 사과록을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난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보시록과 사과록은 줄줄 써지는데 감사록은 가족을 제외하니 딱 막혀버렸다. 얼마나 세상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는가. 4일 날 지족 명상을 하고 나니. 아~ 주전자도 저렇게 감사한 존재인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 생각과 함께 이 세상 만물이 감사할 대상으로 느껴졌다. 비호감인 사람이 10명 이상이면 벽에 머리 박아 피 흘리며 참회하라는 거울님 말씀에 나의 미성숙에 얼마나 통탄했던지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내가 가장 빨리 실천하고 싶은 일은 내가 밉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아침, 점심, 저녁 감사하다고 말하는 100일 기도를 하고 싶다. 그것을 하고 나면 내가 꼭 사과하고 싶은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셋째 날 받았던 칭찬 샤워는 내 마음을 씻겨 버리는 것 같았다. 묵은 때를 벗기고 새로운 에너지를 발생시키게 하는 힘을 주었다. 칭찬을 받으니 몸둘바를 모르는 기쁨에 정신이 몽롱했다. 또한 나의 말 한마디에 다른 이도 기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 웃음이 이렇게까지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미처 몰랐는데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고 간다.
나눔의 주고받기. 둘째 날 교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 주는 것만큼 받는 것이 중요하구나!! 나는 대화를 하면 솔직히 끊고 내 말하기 바빴다. 아니면 한풀이 받기 혹은 충고 받기가 많았다. 이것 하나 즉, 받기 하나가 나의 화합에 이토록 큰 장벽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몰랐었다. 그 후 조금은 듣는 힘이 커진 것 같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말은 끊지 않도록 그리고 공감할 수 있도록 된 것 같아 뿌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더 부드러운 천국을 이루기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하니 열심히 경청하고 공감하며 상대의 속을 알아주기를 유념하며 살겠다.
5일 째 물컵 강의로 난 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난 정말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신 스스로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다 오염되지 않고 잘 정화시키며 살았었다. 이렇게 잘 키워주셨는데 깨닫지 못했던 나를 보며 가슴 아파 하셨을 부모님 생각에 눈물 흘리며 참회했다. 모든 이에게 감사하고 미안하고 찬탄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 내가 있는 이곳은 천국이 아니겠는가. 행복의 길은 정말 별 거 아니다. 이 모든 곳의 주인인 내가 수심하여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우리의 평화를 이루고, 맡은 바 임무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최선 다하면 그곳이 곧 천국이요. 그것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 아니겠는가.
이것을 끝으로 나의 그 곳 여행은 끝이 났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배운 것들은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나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정진하도록 하겠다.
 
 
솔바람 김남주님
 
늘 찔끔찔끔 조금씩 고민하고 행동, 발전하지 못했던 마음공부가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선명하게 와 닿았다.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었고 행하고 득할 일이 분명해지고 힘을 얻은 듯하다. 느낌, 그 미세정서가 삶의 전부라는 것, 그 느낌을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와 닿고, 느낌록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행복의 느낌으로 살기 위해 걸림 없이 저지르는 일, 미련 없이 제치는 일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을 여러 실습을 통해 얻었다. 그렇게 저지르기를 가능하게 해 주었던 행동명상에서는 나의 가면을 벗고 그것 자체가 되어 보니 경계가 허물어지고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난 정말 저지르기를 잘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 쌓아두지 않고 표현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데, 난 갈등의 장에서 항상 말문이 닫히곤 했다. 그래서 쌓아두고 쌓아둔 일이 많았는데 그 이면에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 역시 내가 만든 내 식이라 여겨지니 걸림이 없어지고 내 덕 부족의 마음으로 촛불 표현을 하여 염체가 서로에게 남지 않도록 다 녹이고 싶다. 또한 내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 경청에 그쳤다는 생각이 들어, 경청을 넘어 공감과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들어주고 싶다.
장의 주인으로서 내가 상처받을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 장의 행복, 특히 가정의 행복을 책임져 보겠다는 마음이 솟는다. 많이 웃어주지 못했던 내 가정에서 많이 웃으리라. 마음을 다해 절을 드리던 그 마음으로 장의 모든 이들을 찬탄, 감사, 축복하고 싶다. 절 명상을 하면서 나를 낮추고, 또 내가 없어지는 느낌에 이른다면 얼마나 그 안에 충만함으로 가득찰까 생각하니 희열감이 느껴진다. 절을 주고 받고 나와 모든 이들이 이토록 경건하고 성스러우니 신성한 기운이 전해진다. 내가 할 일의 전부는 보시, 즉 사랑을 베푸는 일. 본디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니 상 벗이 해야 한다는 말이 시원하다. 태도를 고치지 않고, 현실을 고쳐서 행복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선명하게 느끼니 탐진치를 해소하여 소멸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나지사 명상을 생활화해보리라.
산책을 하면서 실체 없는 나를 지워가며, 개념 없이 소리와 감촉을 그대로 느껴보니 편안하고 평화롭다. 적극적인 의식의 잠자기처럼 해 보라는 도안님의 말씀이 와 닿고 걷기 명상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다. 죽음 명상을 하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걸렸던 것이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정말 그것 하나 온전히 해 버리는 삶이고 싶다. 또 ‘지금 여기’의 소중함도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무아 명상에서는 환경-몸-마음-식 주체 순으로 지워나가면서 텅 빈 느낌, 떠오르는 순수 의식, 묘유의 미세한 맛을 본 것이 신선하고 뿌듯하다. 오염의 역사, 잉크 물 붓기의 역사를 반복, 반복하며 맑은 영혼에 상처를 준 내 아이와 모든 이들, 모든 존재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기도한다.  맑은 물 붓는 일. 내 가족 뿐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감사와 자비의 맑은 물을 드리우고 싶다. 행복을 살자. 평화를 살자. 그리고 해탈하고 싶다. 그거 맛보고 죽고 싶다.
 
 
배지 배지영님
 
<시원섭섭한 마지막 밤 동사섭을 마치고>
머리가 띵하다. 너무 울어서 그런지 저런지. 마지막 수업 물컵 강의까지 마치니 가슴이 채워지기보다 텅 빈 것 같다. 시원하다! 왠지 모든 걸 담아둘 수 있는 가슴이 생긴 것 같다. 또 며칠 내 잉크가 나를 오염시키겠지만.
난 이제 약간은 조금 알 것 같다. 그 오염 된 물처럼 내 마음에도 맑은 물을 부어 더러움을 흘러내리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달렸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내가 세상의, 가족의 주인이 되어 감싸 안아보겠다. 그리고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준 상처 기억 안 날 만큼 수없이 많겠지? 생각해 보니 또 머리가 띵하다. 기억도 안 나는 잘못을 어떻게 사과하고 용서 받아야 할지 몰라 우울하다. 그 만큼 상처를 너무 쉽게 주는 습관이 생겨버린 것 같아 한숨이 나온다. 습관은 무서운 것인데. 우선 이것들은 시원하게 비워버리도록 하자!! 앞으로는 내가 습관처럼 쉽게 상처 줬던 말이나 행동들은 동사섭에서 배운 대로 실천해 보겠다.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생겨 참 기쁘다.
동사섭 수업 중에 제일 감동 깊었던 사람 지족 명상!! 누구에게 이렇게 절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한꺼번에 그것도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절을 받아보긴 처음이다. 그 절이 무엇이길래? 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절하고 받는다고 남의 존재나 내 존재가 존경스러워지거나, 고귀하게 보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절을 받는 동안 가슴 속에 뜨거움, 진실된 마음과 축복, 눈에선 눈물이 쏟아 내렸다. 이렇게 소중한 나인데 왜 그동안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보듬어주지 못했을까? 사람이란 정말 소중하고 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서로 깎아내리고 싸우고 죽이고 살고 있다니.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고귀한 존재인데 말이다. 나 스스로 우선 아끼고 사랑하고 그 다음 가족, 지인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까지도 아끼고 사랑해보리라. 굳은 결심을 한 번 해본다. 이것은 정말 동사섭 배움대로 지행득 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께 감사드리고 이곳 수련 오신 많은 마음이 예쁜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거라 믿게 해 주신 용타스님과 돕는이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회복 김화신님
 
우리는 처음 보여지는 것, 처음 느낌만 중요시하고 전부라고 생각한다. 가보지 않고도 다 가본 것처럼 여겨버리는 오류에 빠진다. 이틀을 보내며 이게 뭐야 하는 속상함이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우리로 하여금 느껴 갈 수 있도록 짜여 진 과정들이 동사섭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주기, 받기를 하는 과정은 촛대와 불꽃으로 표현하면서 내 느낌이 어떤지 들여다 볼 수 있었고, 특히 받기에서는 상대방의 느낌을 공감해주고 하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졌다. “왜 이런 걸 하는 거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이 의문은 바로 뒷날 기적의 미세정서를 듣고 아하!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더 잘 알려면 남의 정서를 공감해 주므로 더욱 잘 알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 과정별로 연결되어지는 충분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간 시간마다 듣게 되는 강의에서 거울님의 숭고함과, 진정으로 우리를 이웃이 아닌 나로 여겨주는 참뜻이 느껴져 감격했다.
칭찬 샤워의 맛은 나를 응원해주는 든든한 응원군이 이 세상에 너무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동 명상에서는 그저 내가 개가 되어버리니 모두 똑같구나,  다를 바 없어 하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 분노, 폭발, 대성통곡 시간에는 용서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다. “용서하지 않겠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했던 마음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거의 나를 구해내는 현재의 나를 보면서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죽었으면 했던 며느리 이야기와 주전자 명상을 통해 나는 기도로 스스로 되기를 원했는데 행위(감사하다, 감사하다는 표현)가 있으므로 결과(하물며 인간이랴)가 따름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기도로만 일관했던 것에서 행위를 만들고 결과를 얻어야겠다. 사람 명상 중 내가 다른 이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한 생명의 지고지순함과 고귀함을 위해 빌었을 때, 또 다른 이가 나에게 3배 했을 때, 내가 빌었던 간절함의 농도만큼 전달되어 되돌아옴을 알고 울컥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더욱 간절함으로 다른 이에게 3배 할 수 있었다.
겠지 부분이 참 어렵구나 느끼게 되었다. 나의 부덕이요가 안 되어서 그런지 자꾸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깔고 겠지 하게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겠지를 여러 번 해 보아 남아있는 감정을 털어내야겠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던 창조 모습 그대로의 맑은 물을 더럽혔다. 다행이다. 방법이 있어서, 더럽혀진 잉크는 맑은 물을 넘치게 하면 되는 것이니까. 맑은 물은 더럽혀진 마음의 99.99%라니 그것도 다행이다. 오늘 나는 또 행위를 함으로 아름다운 결과를 낳았다. 아들의 과거에 잉크로 오염시켰던 마음을 맑은 물을 넘치게 부음으로 깨끗하게 했다.
동사섭은 크리스천으로서의 나에게 동반자가 되어 신앙의 도를 훤하게 밝혀 줄 것이다. 기적의 미세정서로 기도의 길을 찾고 행위나 말도 그렇게 하고자 함에서 출발함으로 그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위와 말을 주저 없이 할 것이다. 함께 했던 우리 모두는 분명 5박 6일의 동사섭으로 행복으로 가는 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비하고 소중하고 무한 가능성을 가진 나로 회복되고자 별칭을 회복이라 했는데 이젠 행복으로 바꿔야겠다. 참 행복하다.
 
 
 
두레 정창화님
 
지난 십수년간 뒤도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쁘게만 지내왔던 내 자신의 재충전 정도로 생각했던 5박 6일 동안의 동사섭 과정은 거울님과 돕는 분들의 강의나 실습을 통해, 내가 살아온 지난 삶과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삶의 가치관을 재점검하고 계획하는 가슴 벅찬 과정으로 다가왔다고 느낀다.
이제껏 행복이란 실체가 어렵고 잡을 수 없는, 멀리 있는 무지개로만 느끼던 존재였지만 동사섭 과정을 통해 그것은 결코 내게 멀리 존재하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오요명상은 나의 내면에 벅찬 감동과 깨우침으로 다가왔고, 같이 체험하신 우리 반 가족의 체온은 더 따스해 질 수 있고 심장은 더 뜨거워질 수 있음을 느꼈다. 이제까지 겪어왔던 기분 상했던 일들, 불행, 다툼 등의 근본적인 이유가 내 자신의 ‘마음 비우기’가 소홀했기 때문임을 깨달았고, 자신이 어떻게 화합하느냐에 따라 주변 모든 이들과 행복을 나누며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촛대와 촛불”, “받기 3박자”를 통한 속마음 알아주기, “5대 악성 받기”를 통해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 자신도 모르게 나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무생물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죄송함을 느끼며 사과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되었다. 나눔공식을 통한 깨달음과 미세 정서까지 감지하고 표현하며 같이 나누고 반응하는 것이 나와 가정/회사, 내가 속한 사회에서 행복 나눔의 출발이며, 이를 실천하여 나의 인품의 격을 높이겠다는 각오가 들었다.
누님같이 대해주신 열매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너그러움으로 받아주시는 휴정님, 그리고 같은 반 아주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모든 구성원이 한 가족 공동체가 되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조차 같이 나누며 격려하고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시며 하시던 모든 말씀들에서 인간의 따스함 뿐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주전자 명상을 통해서는 이제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미물들에게조차 감사할 가치가 많은데, 하물며 나를 둘러싸고 지탱해 주고 있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절 받기/절하기 실습은 내가 받은 무한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지행득을 통한 실천으로 내 자신의 소명과 가치관으로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지사 명상은 내 자신을 감정적인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을 통해 내 삶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무엇을 깨닫게 해 주었다.
죽음명상 과정 중에는 처음 죽으려는 순간 나의 소중한 가족, 부모가 내 머리에 걸렸지만, 거울님의 “우리는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통해 내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상처나 아픔을 남기지 말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마지막 날 밤의 물 컵 강의는 지난 5일 간의 모든 과정의 의미가 집합하여 정리되고 이해되어 감동과 기쁨으로 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심한 떨림을 가져다주었고, 여러 가족들의 진솔한 물 붓기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가슴 벅찬 장이었고 나의 가슴이 뻥 뚫어지며 따스함을 느끼게 했다.
지난 5일 간의 과정에서 귀하게 체험한 감동과, 동사섭이 일깨워 준 “행복 만들기”를 작선의 지행득을 통해 내 자신 뿐 아니라 가족/회사/국가에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각오했다. 거울님, 열매님, 휴정님 그리고 5박 6일 간 가족보다 더 따스하게 대해주신 우리 동사섭 가족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현공 박기주
 
받기 3박자 실습에서 수련생들이 2박자 공감(자맥질) 부분을 어려워하는 것을 보며, ‘화자 중심’이라고 하는 key word를 실감 있게 살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수련생들이 자기를 드러내기에 바쁜 에너지 때문에 쉽게 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연히 보였다. 거울님께서 ‘속을 알아주는 마음이 있었느냐’,  ‘속을 알아주는 표현을 했느냐’가 공감의 핵심이라는 지적을 들으며 공감의 순도를 높이는 비결이 더욱 뚜렷해지는 맛이 있었다. 5대 악성받기도 결국은 상대를 진정으로 공감해 주지 못하고 나를 자랑하거나, 이기적인 주체가 드러나는 표현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깨달을 수 있었다.
 
행동명상에서 ‘그냥 존재로만 있어라’ 하고 강조하는 것이 아상(我相)을 벗어 던지는 핵심어구로 느껴져서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조금씩 남은 검불은 반복 관행을 거치면 마침내 소멸되리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의식 공간 한 복판에 어른거리는 부정적 염체를 가장자리로 보내어 한 가운데를 깨끗이 치운다는 상상이 체험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기뻤다. 손짓으로 치우는 시늉과 치운다는 상상이 실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반복 명상의 덕택이라고 생각하며 기뻤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것도 내가 주관적으로 떠올린 염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 인식 체계 창고 안에 있는 기억 조각들을 재구성하여 내가 형상화시킨 것’이라고 정리해 보는 깨달음이 있었다. 염체라는 것을 더욱 뚜렷이 실감하는 계기가 되어 아주 좋았다.
 
사람 지족 명상에서 대전제를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만족스럽다, 긍정적이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거울님의 가르침이 날카로운 깨우침으로 가슴을 쳤다. 비교적 사람을 대할 때 긍정적으로 본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듯한 체험을 했다. 싫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심지어 진저리쳐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의식 공간에 ‘싫음, 진저리쳐짐’이라고 하는 염체로 새카맣게 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그림을 그려 보이신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식이다[萬法唯識] 하는 말들이 나를 꾸짖는 말로 내 뇌리를 친다. 99.9999%의 긍정성은 어디로 가 버리고 0.0001%의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인가! 마음공부의 길이 어렵다는 인식이 드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우선적인 느낌은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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