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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1 오후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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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일상의 공부 점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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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부 점검 기준

수행자라면 재가자(在家者)이든 출가자(出家者)이든 수행에 대한 일상의 점검 기준이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산다는 것 자체가 수행이요, 모든 사람이 수행자라 할 수 있다. 평생의 수행 길에서 우선 다음의 몇 가지는 기본적으로 정립되어 있을 것이라 본다. 무엇으로 마음공부의 방편을 삼고 있는가? 얼마나 전력하고 있는가? 얼마나 진전이 있는가? 수행력의 기준은 무엇인가?

공부 방편이야 각자의 인연을 따라 정해질 것이리라 마는, 여타의 것들은 대체로 비슷한 기준으로 점검되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염불선(念佛禪)을 주(主) 바라밀로 그럭저럭 사 반 세기의 세월을 보낸 자로서, 한결 지엄한 잣대로 심판한다면 많이 아쉬운 정도이겠지만  딴에는 제법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며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침묵하나 말을 하나, 혼자 있으나 더불어 있으나 사뭇 염불의 관행(觀行)에 주력하고자 한다. 얼마나 진전이 있는가에 대하여서는 일단 자신의 주 바라밀에 몰두되어지는 밀도가 얼마나 한가, 시간은 얼마나 한가, 자동화되어진 흐름은 어느 정도인가 등으로 진단할 수 있지 않을까. 수행력의 점검은 과연 무엇으로 기준할 것인가? 내게는 일상 가운데서 점검되어지는 몇 개의 자등명적(自燈明的) 기준이 있다. 정서대, 욕구대, 사고대의 구체적인 현황이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조용히 앉아서 나의 일상의 공부 점검 기준 및 습관을 정리해 보았다.

일상의 바탕정서를 점검한다. 새벽에 자고 일어나면 눈뜨자마자 그 순간의 정서점검이 생활화되어져 있다. 의지가 이완되어 있는 밤새 수면의 동안에서 막 잠을 깨어 아직 이성적ㆍ의지적으로 가누지 않은 상태의 정서,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기초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깨어있는 동안 줄곧 자신의 정서를 점검한다. 밝은지 어두운지, 맑은지 탁한지, 고요한지 들떠있는지, 정체되어 있는지 생기와 활기가 있는지 등을 살핀다. 내가 지향하기로는 맑고 밝은, 그리고 생기 있게 고요한 정서이다. 그 순도가 지극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욕심을 점검한다. 섬세하고 정직하게 살펴보고자 노력한다. 욕심이라 하면 가장 먼저 물욕(物慾)이다. 그다지 문제 삼을만하지는 않은 정도라도 습관적인 욕심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지, 부당한 욕심ㆍ불합리한 욕심은 없는지, 대의명분을 내걸고 자신을 기만하는 어두운 욕심은 없는지 등을 살핀다. 내 개인적인 소망으로서는, 수행자는 모든 것에 앞서 먼저 물욕을 순화하여야 한다고 본다. 수행자는 다른 어느 욕심보다도 다루기가 쉬어서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기초생활이 보장되어 있고, 기초생활 이후의 것들은 언제든 포기해도 되는 분명한 수행목표가 있으며, 정녕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때맞추어 천지기류가 형성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욕 다음으로는 인정욕과 명예욕, 성욕, 구현욕 등에 깨어 있고자 한다. 이러한 욕심들은 더러 치장과 변장을 하고서 나타나기 때문에, 상당히 예리한 깨어있음을 요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을 살게 하는 원초적 동기는 바로 이 욕구 에너지라 여겨진다. 무엇인가에 대한 성취욕구, 그것이 창조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건강한 욕구에너지는 활기 있고 성장되는 삶을 살게 한다. 그것의 건강ㆍ불건강의 기준은 정서에 맞추어 보면 한 잣대가 되어줄 것이다. 그 욕구가, 그리고 성취의 과정이, 나아가서 성취되어졌을 때에 맑고 밝고 안정되며 생기와 활기를 준다면 좋으리라. 수행자는 일체의 욕심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자유로움을 지향해 가고 있는 바이니, 수행이란 결국 모든 욕심의 순화를 지향함인즉, 모름지기 욕심에 대하여서 호리의 타협과 느슨함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精神)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음은 사고대 점검이다. 사고대 점검 및 관리는 사실 인생에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과제라 볼 수 있다. 맑ㆍ밝은 정서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끝내 순화되지 못한 욕심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며, 욕심은 지혜롭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맑ㆍ밝은 정서를 삶의 목적으로 두고 역대 성현들의 가르침을 따라 통찰해보면, 모든 상황에 어리석지 않게 사고할 수 있다면, 지혜롭게 사고할 수 있다면, 아마 부당한 욕심은 없을 것이며 욕심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논리적으로 그러하고 경험적으로 그러하다. 다만 얼마나 열심히 깨어 있을 것이며, 얼마나 순도 높게 지속시켜갈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때그때의 사고가 합리적인가 불합리한가, 합당과 부당 여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그리고 습관적인 잡념 여부, 나아가서는 무념(無念)으로 얼마나 있는가 여부 등을 살핀다.

이러한 분명한 잣대가 있다는 것이 내 삶을 얼마나 선명하게 하는지 모른다. 자신의  정서대, 욕구대, 사고대 흐름의 전반을 어항 속 고기들이 노닐고 있는 것처럼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다. 반복적ㆍ지속적 훈련을 통하여 가능해진 일이다. 감사하다. 위의 정리를 하며 보다 투철한 자기 점검을 통하여 보다 밀도 높은 성숙을 꾀하리라는 작심을 거듭한다.

2005년 6월 15일
명상의 집 대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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