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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8:25
제목
116. 지루하고 심심할 때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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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심심할 때>

“행복이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처음 이 말을 듣고 행복의 개념이 선명하게 잡히면서 마치 지금 구름을 뚫고 밝은 햇살을 맞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하는 모든 행위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성취하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심지어 도를 닦는 행위에 이르기 까지 궁극적으로는 모두 기분 좋음을 지향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아, 나도 드디어 행복의 길을 찾았구나’ 하는 선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목적을 모르고 수단에 얽매여 울고불고 하던 어리석음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생생하네요. 그러므로 이 말은 그저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각은 한 가지 숙제를 남깁니다.

나의 삶을 ‘좋은 느낌’으로 채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낌’에 대해 사색을 했습니다.

느낌은 크게 고(苦), 락(樂), 사(捨)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즉, 즐거운 느낌(락), 괴로운 느낌(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사)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행복이란 이 세 가지 느낌의 유형 가운데 전체 락(樂)수에서 고(苦)수를 뺀 나머지 기분 좋음의 총화에 의해 결정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은 고(苦)수를 줄이고 락(樂)수를 크게 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도 있겠네요.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까? 먼저 느낌의 촉발 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느낌은 어떤 조건에 상응하여 일어납니다. 내 몸의 상태가 조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건이 자극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피어납니다. 때로는 미세하게 때로는 크게 일어나는데 그 크기는 어떤 조건 자극의 강도에 의해 비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 삶에서는 뚜렷한 느낌을 촉발시키는 조건들이 그리 흔하지 않고, 그 결과 우리들의 삶은 대부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무감각하고 덤덤하게 흘러가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 무덤덤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즉 좋은 느낌을 찾아서 많은 행위들을 합니다. 삶이란 행위는 모두 이 좋은 느낌을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만든 좋은 느낌이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곧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느낌이 사라지고 나면 반드시 그에 반대되는 부정적 느낌이 찾아옵니다. 사랑이 사라지면 미움이 찾아오고 기쁨이 사라지면 허무감이 밀려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파동은 강렬하고 쾌락적 느낌을 경험 했을 수록 더 큽니다.

그러므로 행복, 즉 좋은 느낌을 어떤 조건에 의해 성취하려고 하는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런닝머신 위에서 아무리 뛰어봐야 늘 제자리이듯 행복 수준은 늘 그 자리에서 맴돌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Treadmill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길은 사(捨)수의 좋음에 눈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뚜렷하게 즐거운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닌 사수의 시간들, 우리들 삶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이 덤덤하고 밋밋한 시간들의 좋음을 체험해보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捨)수라도 어떤 미세한 느낌이 흐르고 있습니다. 뭐라 이름 붙이기는 쉽지 않으나 어떤 여여한 느낌의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바쁘거나 산만하거나 흥분되어 있거나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어딘가를 헤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냥 있어보면 그때 비로써 문득 한줄기 바람이 느껴지고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들꽃이 보이며 세상의 여러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멈추면 비로써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냥 펼쳐져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신선하게 느껴지며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때의 느낌을 ‘존재의 느낌’이라 부로고 싶습니다. 아무 애를 쓰지 않고 그 냥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행복감, 이 자리는 존재의 본래 자리요 삶의 근본이 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냥 존재의 좋음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허공을 헤매며 ‘수고하고 짐진 자’의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심심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는 축복입니다, 습관적으로 이를 벗어나 무엇을 찾으려 하지 말고 미세하게 흐르는 존재의 느낌에 귀 기울여 볼 때입니다.

‘그냥 있는다.'

글. 정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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