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상컬럼

NO1작성일 : 2015-11-12 오후 08:35
제목
123. 세상에서 가장 소프트한 것
작성자
관리자
파일

Kinfolk_Soft-Serve-Menu_K10_01-2-767x500

세상에서 가장 소프트한 것

 

 

우리 사람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기타의 존재들에 비해서 사람이 지적, 윤리적 차원에서 꽤나 잘났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면 그 사람을 ‘개 같은 놈’이라고 하고 그보다 더 강하게는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한다. ‘개’라는 자연물이 볼 때는 그런 부정적 수사법에 자기 족속의 이름이 들먹여 진다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겠지만 아무튼 그런 표현법은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자긍심을 보여준다.

사람으로서의 자긍심. 그 자긍심의 근거가 되는 종목들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제법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이 지닌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한다고? 무슨 소리! 죽어도 안 바뀌는 것이 사람이야! 나이 오십이 넘어 고등학교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 말씀은 이러했다. “사람은 참 안 변하는구나 싶다. 너희들을 보면 모두 고등학교 때 보이던 그 기질대로 살고 있어.” 그럴 것이었다. 열여섯 덜렁뱅이는 오십 살 덜렁뱅이로 늙고 열여섯 꼼꼼쟁이는 오십 살 꼼꼼쟁이로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과 개를 비교해보라. 개는 아무리 타락해도 개이고 아무리 성숙해도 개다. 개는 기껏 타락하면 똥개이고 기껏 성숙하면 사냥개다. 개는 개로 프로그램 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프로그램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하면 악마로까지 추락하고 성숙하면 천사로, 보살로, 부처로 고양된다. 변화의 가능성! 그 가능성은 사람을 개만도 못하게 추락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개만도 못한 존재를 성인으로, 부처로 성숙하게 하지 않는가! 인간이 지닌 그 변화의 가능성을 타락이 아닌 성숙 쪽으로 방향 잡게 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

 

“사람처럼 완고한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실은 사람의 마음처럼 소프트한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도 첫 번째 동사섭 수련에서 나를 감동시킨 말씀 중의 하나였다. 안 변하려면 죽어도 안 변하지만 변하려면 악마에서 부처로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무엇이 변하면 악마가 부처로 되는 걸까? 관점이다.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죽어도 그 타령이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이 전환되면 단시간에 악마가 부처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관점의 전환을 일으키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이성의 힘, 사유의 힘이다. 사유는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유는 사물의 겉모습을 뚫고 밑바닥까지, 그 근원까지 들어가 사물의 본래를 보게 한다. 사람은 납득이 되면 그 납득된 바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이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면 그 문을 통해 출입한다. 벽에 부딪쳐 피를 흘리고 상처 입는 것은 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문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매번 벽에 부딪쳐 피 흘리는 일이 괴로운 사람은 드디어 문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 따져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인가 따져 보는 일, 그것이 사유이다.

아무도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무언가를 애써 행하는 것은 모두 행복해 지기 위해서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불행한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난다. 도대체 그 까닭은 무엇일까? 행복해지려고 애쓰고 있다지만 사실은 불행해지려고 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해지려고 기를 쓰는 행위 중의 대표 격은 서로서로 중중 연기로 촘촘하게 엮여져 있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 행복해지겠노라고 이기심을 발하는 짓일 것이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중중연기라는 이 세계의 질서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면 이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똑 떨어진 몸뚱이를 가지고 내 발로 움직이고, 내 입으로, 내 마음대로 지껄이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 겉모습을 조금만 들추고 생각해보면 이 <나>라는 것은 부모를 위시하여 이 우주의 천지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도무지 <나>라고 할 만한 요소가 없는 <비아 非我>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이해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벽을 문이라고 생각하고는 벽에 부딪쳐 피 흘리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짓임을 담박에 알게 된다.

그렇다. 이해가 우리를 변하게 하고 우리를 구원하고 악마를 부처로 화하게 한다. 원효대사의 말씀처럼 오해 하나 풀리면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다. 천지를 개벽케 하는 사람의 힘. 이성의 힘, 사유의 힘으로 변화해나가는 사람이란 존재. 나는 그 사람이란 존재가 만물의 영장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변화해갈 수 있는, 영적으로 성숙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란 존재로 태어난 것이 무척이나 행복하고 행복하다.

 

글. 선혜님

Kinfolk_Soft-Serve-Menu_K10_01-1-374x500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