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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섭 - (하)
“행복했으며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하리라”
‘왜 그랬을까.’
동사섭 내내 하루하루가 뉘우침과 깨달음, 뉘우침과 깨달음 반복이었다. 근래 갈등의 골만 깊어졌던 가족관계가 부끄러웠다. 가정을 꾸리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17년. ‘언어 중 언어는 칭찬이다’는 말은 쥐구멍을 찾게 만들었다. 놀람과 감사의 연속이었다. 화안애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음 나누기였다. ‘맑은 물 붓기 명상’은 참회의 장이자 ‘나’를 씻어내는 정화의 장이었다. 본래 맑은 물은 오염되지 않은 세계였다. 정신 또는 혼, 부처님마음이라고도 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백지 같은 마음상태라는 말이 가슴에 걸렸다. 유리컵에 물을 따랐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주위 칭찬들. 옹알이하고 처음 걸음마를 뗄 때 쏟아지는 칭찬. 맑은 물은 유리컵 가득 차올랐다.
투명한 컵에 가득한 맑은 물
잉크 한 방울이 검게 물들여
온갖 번뇌 먹구름에 가려진
본래 청정하고 순수한 불성
‘맑은 물 붓기 명상’서 발견
“첫 번째 화살로 쏜 화·미움
두 배로 커져서 내게 돌아와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아야”
검은 잉크 한 방울, 유리컵 안으로 떨어졌다. 기저귀 안찬 상태로 쌌던 오줌 때문에 엉덩이 한 대 맞았던 상처였다. 숟가락과 연필은 오른손으로 잡아야 한다는 관념의 주입. 또 검은 잉크 한 방울, 떨어졌다. 살아가면서 받은 크고 작은 충격들과 상대에게 상처 줬던 일들로 인해 맑은 물과 검은 잉크는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검게 변했다. 궁금했다. ‘어떻게 맑게 돌아갈 수 있을까?’ 위쪽에 고무주머니가 달린 유리관인 스포이트로 잉크를 연거푸 찍어서 밖으로 빼는 일은 밤을 새도 어려워보였다. 정화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사섭이 촌철을 날렸다.
“다 오염됐다는 착각을 버려라.”
물이 잉크처럼 검다는 생각부터 버려야했다. 실제 잉크는 몇 방울 떨어지지도 않았다. 99%가 물이고 검은 잉크는 1%에 불과했다. 맑은 물을 계속 붓자 잉크는 컵 밖으로 흘렀고 유리컵은 다시 맑은 물로 가득 찼다. 놀라웠다. 다시 맑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부정적인 마음을 빼내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더했다. 맑은 물은 그동안 동사섭에서 수련했던 수심(修心), 화합, 작선(作善)으로 우려낸 에너지이자 감사며 보시였다.
동사섭 일반과정 5박6일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방에 어둠이 깔렸다. 촛불 두 개가 주먹 크기로 어둠을 밀어냈다. 주전자 2개와 투명한 유리컵 2개, 탁자 2개, 좌복 2개가 놓였다. ‘맑은 물 붓기 명상’ 수련을 시작했다. 좌복에 앉아 맞은편에 상대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대화해야 했다. 상처를 줬던 사람에겐 참회를, 상처 받았던 인연들에게는 관용을 보내며 달라질 자신을 서원해야만 맑은 물을 부을 수 있었다. 용기가 생겼다. 남편보다 먼저 유리컵 앞에 앉았다. 속으로만 삭여왔던, 아이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몸만 빌어 나왔을 뿐, 고귀한 생명임을 깨달았노라 미안함을 토했다. 상처받았던 아이들을 떠올리니 먹먹함에 가슴을 쳤다. 가슴이 찢어졌다. 비로소 참회했다. 맑은 물을 따랐다. 남편도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겠노라 약속했다.
어둠 속에서 흘리는 눈물은 더 맑고 뜨거웠다. 동그랗게 앉은 수련생들 모두 가슴이 뜨거워졌다. 원불교 예비교무는 흐느꼈다. 차라리 통곡이었다. 그는 정치에 휘말려 수배까지 받으며 고통 받았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가족을 두고 출가하려는 뜻을 밝히던 아버지가 싫었노라 고백했다. 아버지가 짊어졌어야할 삶의 무게를 이제야 이해한다는 말이 뜨거운 눈물로 흘러나왔다. 이날 밤 아버지에게 참회했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가 흘린 눈물만큼 유리컵에 맑은 물이 채워졌다.
막 수능을 치르고 재수와 진학 사이에서 갈등했던 여고생은 서성였다. 그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미움의 대상이었다. 이해하고 용서하면 엄마와 언니, 자신에게 줬던 상처가 사라질 것 같았다. 방문 잠그고 공포에 떨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기억, 1년에 10번도 안 오던 집에만 오면 물건 던지며 화내는 아빠와 무릎 꿇고 비는 엄마…. 나지사 명상도 소용없었다. 그에게 맑은 물 붓기 명상은 아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일용직 근로자로 힘들게 돈 버는 아빠가 불쌍했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 표현한 적 없었던 자신을 깨달았다. 지금은 더 자주 집을 찾고 잘해주려는 아빠의 노력에 상처 주지는 않았을까…. 절대 열리지 않으리라 여겼다. 미움의 문틈 사이로 미안함이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그로 인해 완성되지 못 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퍼즐이 완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어둠 안에서 마음껏 울었다.
용타 스님은 공명법문을 했다. 부모도 어릴 때부터 성장하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마음에 검은 잉크를 떨어뜨려왔던 사람일 뿐이랬다. 외려 부모야말로 사랑받을 존재라고 했다. 결국 ‘나’의 문제였다. 두 개 바이올린을 놓고 한 개를 연주하면 다른 바이올린도 소리를 낸다. 부모와 내 DNA는 99% 일치하고 미워할수록 부모에게 탁한 떨림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다시 자신에게도 탁함 떨림이 생긴다고 말했다. 미움이라는 첫 번째 화살을 쏘면 두 배로 커진 미움이 두 번째 화살이 돼 자신을 맞춘다고 일렀다. 스님은 강조했다.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
마음 하나 바뀌니 세상이 달라졌다. 동사섭문화센터 내 공용 컵은 누군가 조용히 설거지했다. 눈 쌓인 계단도 아침 108배를 끝내자 울력이라며 빗질을 했다. 공양시간에는 음식의 고마움을 느끼며 서로에게 “잘 먹자”는 인사를 건넸다. 용타 스님은 이미 허물 벗어던지고 스스럼없이 수련생과 어울렸다. 스님의 제안으로 공양시간도 ‘나’를 떼버리는 수련의 장이 됐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싶어했던 29살 여인은 함께 앉아 식사하는 이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했다. 표현이 서툴렀던 여고생은 큰소리로 “식사 맛있게 하세요”를 외쳤다. 수련생 모두 “감사합니다”로 화답했고, 공양자리는 행복 에너지가 넘실댔다.
한 수련생 마지막 소감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나는 행복했으며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하리라.”
“구나·겠지·감사명상으로 찾은 생활수행”
관찰자 입장 버리기 어려워
가족의 소중함 느끼는 계기
직접 체험해보니
5박6일 동안 온전히 동사섭에 몰입하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고, 좋은 수행프로그램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게 두 번째였다. 몸에 밴 습은 도리가 없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동사섭 이론은 받아 적느라 바빴고, 실습 땐 취재사진 걱정이 앞섰다.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입장이 강했다. 그럼에도 동사섭 흡입력은 놀라웠다. 어느 순간 수련생들과 웃고 울며 ‘나’ 버리는 연습에 몰입하고 있었다.
‘부처 게임’과 ‘나지사 명상’, ‘맑은 물 붓기 명상’이 인상 깊었다. ‘부처 게임’은 절 명상이다. 과연 절 받을 만한 존재인지 되묻는 계기였다. 서로를 부처님으로 모시고 절 올리며 손을 맞잡는 그 행위가 ‘나’를 한없이 낮추고 비웠으며, ‘나’의 빈자리는 상대를 향한 존중이 채웠다. 어느 예술가도 빚지 못하는 몸이 있고 사지가 멀쩡하고 주변에 좋은 인연들이 있고, 살아 숨 쉬고 있는 순간이 감사했다. 나 이외 모든 인연들에게 자비를 보낼 수 있는 존재 그 자체로서 존귀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수련생 모두 그렇게 느꼈고, 그 속마음은 서로에게 공명을 이뤄 동사섭 내내 행복(좋은 느낌)이 가득했다.
입소할 때 별칭으로 ‘울컥’을 적었다. 기쁨과 슬픔보다 분노가 솟아오르는 마음을 살피고 싶어서였다. 나지사 명상은 울컥하는 마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길러줬다. 직장일과 육아 그리고 집안일 틈바구니에서 가족과 부딪히는 여러 상황들을 ‘~구나’로 거리두기한 뒤 ‘~겠지’로 이해하자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때마다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용기 내서 참여했던 맑은 물 붓기는 진실한 참회로 후련하고 따듯한 느낌을 줬다.
내 마음을 알고 다루고 나누다보니 상대 속마음과 포옹할 수 있었다. 속마음과 속마음이 만나자 ‘나’와 ‘너’라는 경계는 사라졌다. 동체대비. 동사섭 기간 내내 이 느낌은 행복으로 다가왔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