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한발 한발 돈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번 고급과정에서 돈파자들과 함께하며 마치 나도 돈파한 느낌이 들어다.
다만 마음 한 구석에 세상에서 돈파관행을 거의 하고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이 걸림으로 왔다.
동사섭 수심교재를 보니 중간 중간 밑줄이 쳐져 있었다.
고급과정에 오기 전 읽은 표시이다. 줄이 안쳐져 있는 부분은 이해했다는 뜻일 텐데, 다시 보니 줄이 없는 부분이 더 눈에 들어오며,
아하! 하고 고개 끄덕여진다.
거듭 들어온 큰스님의 말씀도 새롭다.
「탈」이라는 개념, 우리 모두는 「무탈」을 바란다.
몸에서 피의 흐름이 순조로워야 무탈하듯이,
마음 또한 걸림이 없어야 무탈하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 색성향미촉법에 걸려들어 실체시하며,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했던 미성숙한 삶이 부끄럽다.
새삼 깊이 부끄럽다.
존재와 실체의 차이를 혼동하며 살아온 습관적인 삶에 「돈망」의 관행이 해법임은 분명한 것이 한발 더 다가왔다.
그리고 돈망의 삶이 나를 위해, 사회, 세상, 전 우주를 향해 좋음은 명확해졌다.
다만 더 깊고 깊어져 절대 좋고, 의심이 없기를 관행을 통해 뚫어야겠다.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연필 박해성
돈망에 대해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돈망은 3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돈망을 통해 우리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무한한 해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돈망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다. 돈망을 해도 심심하고 무미건조할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게된다면 극심한 괴로움이 닥쳤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돈망을 한번 뚫어보는것도 꽤나 유익할거라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깨달으려면 계속해서 관행해야 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성실히 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명상 자체가 그다지 힘이 들지는 않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명상의 목표가 힘이 아에 들지 않는 것이니까 하면 할수록 더 편해질 것이다.
3관중 1관은 ‘그냥있음’이다. 일상에서 매번하고 있는 ‘개념화’를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냥 있는다. 아무것도 안하니깐 애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이 조금 느껴졌다. 그리고 첨예하게 깨어있는 의식을 의식하니 무한이 팽창하는 광활한 공간감이 느껴지면서 담담했다.
2관은 ‘아공법공’이다. 사실 해공 27조 책을 읽고 와서 상대적으로 이 파트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나는 보통 몽환고공을 통해 천지만물이 공하다고 느꼈다. 예전에 자각몽에대해 알아본적이 있다. 꿈에서 꿈인 것을 자각하게 된다면 이것이 현실과 다른게 있을까? 생각했었다. 둘다 내가 인지함으로써 존재하는 세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몽환고공은 처음 읽을때부터 아주 와닿았다. 몽환고공을 통해 세상이 공하다고 느끼니깐 별로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우며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자신감이 넘치면서 몸이 약간 흥분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느낌은 해탈감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수도 생각하여 몸이 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렇게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마지막으로 3관인 자비회향이다. 사실 이 파트가 가장 쉽게 와닿았다. 평소에도 충분히 느끼게 되는 ‘연민지정’이 이 파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위로를 건낸다. 그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시에 정말 나는 그들 모두의 행복을 원할까 의문도 생겼다. 항상 나의 내면에 집중이 치중되어 있는 내가 정말 천지만물의 행복 해탈을 기원할까?
아마도 나는 개념적으로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이 의식을 ‘나’라고 규정지으며 자연스레 그 외의 것들을 ‘너’라고 규정짓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통받는 존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석연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이 애처로운 감정에 집중하다보면 행복 해탈의 주체가 ‘나’보다는 ‘우리’라고 점차 생각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동사섭 고급과정에 오게되니 동사섭의 핵심 포인트를 습득한 기분이어서 뿌듯하다.
이젠 이 포인트를 자주 의식해가며 성실히 관행해서 돈망에대한 보다 전면적인 습득을 추구하려고 한다.
무한 해탈을 구현하기 위한 한걸음 한걸음 소중히 내딛는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치겠다.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새벽빛 조효경
고급과정을 마치고 나에게 떠오른 감은 후련감과 행복감입니다. 거기에 돈망 준파지자라는 큰 선물이 더해져 큰스님과 지도자님, 함께한 도반에게 고마움이 파도칩니다.
그러나 준파지자는 어떤 상태일지 소감문을 올려 공유하는 것이 숙제인 것처럼 자리하니 부담감이 있습니다.
잘 쓰고싶다...는 ‘나’를 치우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감을 공유합니다.
그냥있음
그냥있음 하면서 치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냥있음 개념과 다양한 의식이 머릿속에서 춤을 추는데 컵을 치우고 손을 치우고 교실을 치우고 허공을 치우고...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식에서 치웠습니다. 남는 것은 또‘나’가 있더군요. 다리, 손, 어깨, 허벅지, 그리고 머리를 치우고 가슴을 치웠습니다. 집중하고 애쓰려는 나의 자아를 치웠습니다. ‘그냥있음’이‘치우라’는 말과 통하면서 감이 올라왔습니다. 3일간의 치열한 싸움이 정리되고 고요한 에너지,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며 ‘원단’‘순수의식’‘돈망의식’의 감이 쓰윽 찾아왔습니다. 처음 드는 감은 ‘이것이라고?, 정말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거야? 좀 미안한 일인걸! ’ 두 번째 드는 감은 ‘참 쉽고 좋다. 쉬워서 더 좋다. 가벼워 좋고 편안해 좋다. 좋다. 좋다.’세번째 드는 감은 ‘ 알에서 깨어났네. 눈을 떠도 감아도 되네. 신기한 일일세. 대박이다’ 이렇게 감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아공 법공
치우는 작업속에 그냥있음이 체험되자 아공법공의 감은 덩달아 잡히는 감이었습니다.
나와 세상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치우자 남는 것은 돈망의식 뿐이었습니다. 또한 과거와 미래는 아직 오직 않았으니 없고 현재의 나는 찰나 변화속에 남는 잔상, 세상도 잔상, 허깨비임을 함께 관하였습니다.
텅빈 맑은 상태의 의식과 에너지가 전해졌습니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텅빔은 저에게 좀더 큰 에너지로 다가와 순간 당황했습니다. 분명 아공 법공을 관했는데 고요하고 투명한 그 자리에서 중중연기되어 쑥 지금의 나로 이불로 옷장으로 건물로 다가왔다가 다시 삭삭 사라지며 다시 투명한 자리로 오고감이 반복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큰스님을 비롯 모든 것들이 돈망의식과 일물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아하! 이렇게 왔구나 존재하는 구나 싶어 눈물이 나고 그 고마움이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이 연기에서 주인공으로 서는 것인지에 대한 답 같은 것도 일어났습니다. 고마움과 활발발한 에너지를 장착하는 순간입니다.
‘천하의 주인인 이 일물은 우리모두의 행복해탈을 위하여 기전향 합니다.’라는 말이 쑥 올라와 져서 또한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위 돈망의식 감은 마지막날 새벽에 잡은 감입니다. 3일동안은 겉을 계속 맴돌았지요. 제 업식은 치열함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참 열심히 한다. ’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는데 가끔 칭찬이 아니게 들릴때도 많아요. 그러니 그냥있음도 빨리 해야하는 일이며 넘어야하는 산이었습니다. 3일 동안 쓴 일기에는 ‘그냥있음 하는데 까만물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해온거 이것이 아닌가보다. 돌덩어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느낌이다. 쉬는게 맞나? 빼야하는데 더하기 하는 느낌이다. 힘들어. 그냥있음만 해봐. 나의 그냥있음이라고 아이고 복잡해. 답답해. 더 가야하나보다. 뭘 놓치고 있지. 어렵다. 쉽다는데 어렵다. 다 없는데 논리적으로 말하라고. 넌 Being을 Doing하고 있잖아. 바보. 바보. 그냥있음도 못하는 바보. 수수께기다. 보물찾기다. 보물이 쉽게 찾아지나?’ 쓰면서도 웃음이 납니다. 그러나 보물찾아서 개운한 감도 있네요.
이 돈망의식 감을 잡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또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웃으며 퇴직원을 제출했지만 지금까지 흐르던 강에서 벗어나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답답한 마음, 두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고급과정에서 누군가 해답을 찾았느냐?라고 묻는 다면
“ 정답을 모르기에 ‘예’라고 답할 수는 없네요. 그러나 어떻게 풀어야할지 그 감을 찾았고, 아닌 것 같다라는 감이 왔을 때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알 것 같아요.”라고 답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있음 아공법공 자비회향’을 저의 첫 번째 자리에 두었습니다. 고급과정 마치니 이 12자가 선명해서 기쁨이 있습니다. 아직도 ‘나’라는 놈이 너무 커서 그냥있음보다 잘하는 나, 잘 보이고 싶은 나, 나, 나 합니다. 이렇게 불쑥 불쑥 고개드는 나의 주관성을 그냥있음으로 깨어 바라볼 수 있다니 참 좋고 돈망의식을 자등명 삼고 인생을 살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 뿜뿜입니다.
1년간 나에게 쉼을 주자 했는데 그 출발점이 고급과정이어 그 인연에 저를 칭찬하고 모두에게 감사와 찬탄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셀프 박건희
20년 2월 진행하려던 고급과정이 코로나로 인해 취소된 뒤, 처음으로 진행한 대면 고급과정이다.
생각만큼 성원이 되지 않아서 다소는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여러 여건을 뚫고 함께하기로 마음을 모은 분들만 모여서 그런지, 공부열기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양장력 덕분에 공부도 깊어지고, 더불어 ‘돈망파지’라는 인가를 받게 된 것 같아서, 감사하다.
따뜻한 자비심으로 넘치는 지도자님, 도반님들께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다.
도반이 전부다..라는 말씀을 또 한 번 상기하는 순간이다.
1. 돈망파지 인가의 공덕.(있고 없음의 차이)
첫 소감으로 인가의 있고 없음을 쓰려고 하니, 너무나 노골적인가 싶지만, 이것이 솔직한 나의 소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저지른다.
돈파인가를 받고나니, 인가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느껴진다.
이전에는 그냥있는 이 의식상태를 경험하고 있으나, ‘제대로’인가?에 대한 불확신성이 다소는 있었고, 덜 안정된 감이 있었다면, 지금은 ‘아, 맞았어!’라고 하는 확신과 더불어 당당함이 생긴다.
더 이상 흐트러질 일 없는 깨어있는 의식상태를 경험하면서, 평화감, 마음천국, 돈망천국을 경험한다.
늘 함께였으나, 알아주지 못했던 이 세계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주신 큰스님의 자비로움에 깊이 감사드린다.
2. 끊임없이 작위하는 에너지로 살아온 습관
그냥있음을 하려고 한다.
그냥있음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그냥있으면 되는 것인데, 그냥있음을 작위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그냥있음이 될 리가 없었다.
그냥있음이라는 개념을 붙들고, 그냥있음을 경험하려니 터덕거릴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니 시원하다.
선혜님의 말씀, 그냥있으라고 하면 그냥있으면 되지, 왜 그냥있음에 손가락질을 하느냐는 말씀에 머리가 하얘지고, 번뜩였다.
아! 그랬구나! 내가 그냥있으라고 했으나, 정말 그냥있지 못했구나.
그냥있음 조차도 작위에너지로 ‘있으려고’ 했구나!
그냥있으려고 애쓰는 에너지였구나!
작위하는 에너지, 향하는 에너지로만 있었구나!
그렇게 늘 내가 늘 작위하는 에너지로 살아왔구나!
하며, 한 번도 그냥있지 못하고, 무언가 하려는 에너지로 살아왔노라고 고백하셨던 일지님의 말씀이 스쳐지나갔다.
아, 내가 그렇구나..
그 순간 진정 자유인이 됨이 느껴졌다. 사다리, 뗏목은 부숴지고 그냥있음으로 깨어있는 의식상태를 오롯이 경험하는 기분, 즐겁다.
무한을 경험하는 무한감이다. 감사하다.
3. 무탈이 니르바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탈과 탈을 구분하면서 살아왔던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탈과 무탈이 서로 뒤죽박죽인 상태로 살아왔던 시간들이 대부분이고, 이제서야 무탈이다, 탈이다를 구분하며 생각 해 보게 된 것 같다.
큰스님께서, 탈은 고통의 요인이 되는 Something이고, 무탈은 행복이고, 니르바나이다 라는 말씀을 들며면, 이제야 그렇지, 무탈이 행복이고, 니르바나이지하는 고개 끄덕임이 깊이 되어지면서, 말씀이 입력이 아닌 몸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들면서 행복했다.
의도적으로 무언가 하는 것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는 큰스님 말씀이 정말 딱! 맞는 말씀이다 여겨진다.
우리가 작위하는 일들이 행복하려고 하는 일들이 아니던가.
의도적으로 무언가 하는데, 무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고급과정인 것이다.
의도적으로 하나, 그것은 업장을 강화시키는 일이 아닌, 업장소멸에 도움이 되는 일을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이 무심함, 무탈함, 니르바나를 경험할 수 있는 복된 생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4. Doing vs Being
큰스님의 말씀,
-작위를 내려놓고, Doing을 놔 버려라.
-Doing을 놔두고 존재만 하는 것, Being만 하는 것을 우리는 연습하는 것이다.
-Being을 관행 하는 것, 돈망이다.
그토록 Doing하고 살아왔던 삶에서 잠시라도 의도적으로 심심한 Being상태를 경험하는 것이 돈망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 내가 얼마나 Doing하고 살아왔던가!
단 한번도 그냥있질 못하고, 무언가 작위하던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듯이 Doing이 익숙한 삶에서 잠시라고 의도적으로 Being 해보는 것이다.
마음의 북적 거림없이 평화로움으로 깨어있는 이 상태가 좋다.
무탈 중 무탈이며, 니르바나라는 큰스님 말씀처럼, 고요하고 심심한 이 맛을 즐기는 즐거움을 느낀다.
멸수상의 즐거움, 이 맛을 음미하며..
으흠~ 즐기는 즐거움을 느껴본다. 정.말. 좋다.
5. 1% 해결, 99%의 해나갈 일, 돈망3관의 반복관행.
의식의 무탈을 경험하면서 석가모니의 이 상태 말고 더 무엇이 있겠는가?
이 상태로 있지 어떤 상태로 있겠는가?
달리기하는 일은 끝났다. 제자리 뛰기만 하면 된다는 큰스님 말씀이 이제야 드디어 잘 들리기 시작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망파지를 하였다.
이 무심한 마음으로 있을 때, 석가모니가 이 상태로 있지 더 무엇이 있었겠는가 해진다. 무심한 깨어있음을 나도 경험한다. 기쁘다!
돈망파지를 했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 1%를 해결한 것이고, 99%는 돈망3관을 반복관행하여 삶에 깊이 스며들도록 하는 과정이 남았다는 큰스님의 말씀에 진정 그러하겠다는 고개 끄덕임으로 이어진다.
현생, 전생, 전전생 얼마나 많은 시간을 실체시하고, 시비-분별하면서 업장을 강화하면서 살아왔을 것인가?
육근으로 촉해서 시비-분별하는 에너지는 빛의 속도만큼 빠를 것 같다.
그 와중에 이 현생에 와서 업장을 소멸하고, 인생을 구제받는 길을 알았으니 얼마나 복된 삶인가!
그 찰나를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의식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내가 또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인생자체가 구제된 기분이다.
앞으로 제자리 뛰기하며, 가치관정립을 단단히하고, 돈망3관 관행을 꾸준히 하여 용해탈로 거듭나는 삶으로 만들어보리라 다짐하며, 기대된다.
또한, 기쁘고, 감사하다.
6. 요즘 나는...
고급과정 후 지금까지 내 생활을 돌아보면,
순간에 시비-분별-집착하는 에너지로 빠졌다가도 다시 정신 차리고 돌아오는 일을 수없이 하고 있음을 본다.
정말 다행이다. 더 이상 마음에 감정을 남기지 않고, 무심함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다행 중 다행이고,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분노, 시비, 분별의 에너지는 꼭 필요로 할 때는 써야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에너지 쏟을 일 없는 쓸데없는 짓임을 다시금 느낀다.
아, 내가 필요치도 않는 곳에 에너지 소모를 이렇게나 많이 하고 살았었구나..하는 돌아봄도 생긴다.
돈망파지를 한 공덕이 이렇게나 크다. 감사하다.
정말, 무심이 니르바나임을 느낀다. 지금 나는 무탈~하다.
감사하다.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가은 Anne Lee
소감문을 쓰려니 부담스럽다.
에궁~ 그 마음을 헤아리며
내 친구 인생3박자의 저질러라!와
즐겁게 어깨동무 한다.
1.<수행처>의 공통점
*가장 Simple 해 지는 것 (단순)
*세속적으로 무의미한 것을 한다.
*그것이다!하는 것을 거듭 반복한다.
쉽고 가벼운 이것이 그토록 어렵다니..
후후~ 실소가 터져나온다.
2.<의식이 없다면..>
죽음도 없고, 역사도 없고, 내 인생도, 전 우주도 없다.
즉 의식이란 의미의 거점이자, 의미 자체임에, 의식으로 살고 있다는 자체가 풍요임을 확인하며..
이미 9천조 거부로 살고 있는 이 일물의 삶이 더욱 더 풍요롭고 넉넉해진다.
3.<이번 고급과정의 주제>
‘돈망이야말로..
시명가은의 인생의 목적이자,
삶의 수단이며 도구이다!’ 로 정했다.
허니 철저하게 돈망이란 인과를 밟아 천국을 만든다.
왜냐하면 우연한 행복, 우연한 천국은 어불성설이다. 설혹 있는다 해도 일시적인 행운일 뿐이다.
그래그래.. 반복 관행만이 답이구나.
각오가 더욱 단단해지니 불끈불끈 힘이 솟는다~
4.<돈망 3관의 체계>
모든 감각 인지과정에는 그에 상응하는 느낌이 있다.
1관 그냥있음으로 그 감을 느끼고
2관 아공법공으로 그 감을 느끼고
3관 자비회향으로 대원심을 느끼고
=그러므로 일미통감인,
우주가 통틀어서 텅 빈 성성적적감.
그 니르바나를 누리고 누리게된다.
이렇게 가닥가닥을 잘 잡아놓으신 큰스님의 뜨거운 자비심 덕분에
무심한 평화가,
걸림없는 자유가
더 명징하게 다가온다~
5.<돈망 산책>
머리를 띠고 몸뚱이만 걷는다.
*깨어 있어야 한다.
즉 각성만으로 걸어야 한다.
그리고 돌아올 땐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공필름으로 돌아온다.
깨끗한 공한 상태인 창조자로 걸어야 하는 돈망도인의 철저한 실천론이 신선하고 재밌다.
그 걸음걸음에 돈망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듯 향기롭다~
6.<자등명법등명>
*스승이신 석가모니의 죽음을 대면하게 되어 심각해진 아난존자. 우리 스승도 죽을 날이 있구나 하며 슬픔에 잠긴 그의 슬픔이 언젠가의 나의 슬픔이 되어.. 아련하게 가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간다.
*법등과 자등은 중도적이야 한다.
즉 법등과 자등이 적당한 조화를 잘 이루고 굴러가야 하지만
법은 무심한 돌멩이와 같으니 끝내 수렴처는 자등이다.
*그 사람의 삶을 보면 법이 보이고,그 삶을 보면 그의 인생과 메시지가 보인다는 큰스님의 말씀에~
정견으로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리라 하며 마음이 더욱 삼엄해 진다~
7.<무수 돈법>
돈법은 세상에 무수하다.
그 무수한 돈법을,
문득문득 내 삶으로 살리라! 한다.
*인생이 괴롭지 않다고 하면 돈법이 필요없다.
스승님께서는 고통이 없다고 하면 최고로 심각자인 석가모니 같은 존재는 나오지도 않았을거라고 하신다.
석가모니 또한 ‘내 가르침은 고통이 없다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듯이
돈망이 내 삶과 무관하다면 과연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며..
<돈망의 필요성>을 생각해 본다.
(1)세상과 나의 고통과 전쟁을 발본색원 시키어, 모든 생각과 느낌이 사라져 버리니.. 내 의식이 쉬어지고 놓여진, 지금 여기의 무탈한 이 마음.
의식의 원단이요, 존재의 원단으로 그냥 있게 되어 진다.
(2)더 좋은 것은 더 이상 업을 짓지 않기 때문에 윤회가 사라진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니..
돈망 의식으로 성성하게 깨어있는
내 인생, 참으로 성공이요 밥값의 완성이란 생각에 뿌듯하고 당당해진다~
8.<인과>
돈망 3관 관행으로..
맨소리가 참소리되고
맨마음이 참마음되니.. 의식의 Mode가 무위로 바뀌어, 문득문득 있는 그 자리에서 무탈중에 최고의 무탈인 니르바나를 경험하면서 한없는 지복감을 누리곤 한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 이런 횡재를 했나 싶다.
운세가 확! 열려버린 내 인생.
그저그저 감사요, 지복이다 ~
9.<행복한 노년을 꿈꾸며..>
이제 할 일 1% 를 끝냈으니
종점에서 뛰는 일만 남았다.
세세생생 99%의 이 작업을 해나가리라.. 다짐하면서
이 일물의 행복한 노년이 설레임으로 기대된다~
10.시명가은을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나의 스승이신.. 용타큰스님.
일우 원장님
선혜님과 도반님들
이 은혜를 감히 무슨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그저 함께 하는 중중한 인연에 삼배 올립니다.
가은합장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한뜻 윤석우
1. 와선 : 참 좋다.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데 제격이다.
2. 큰스님 법문1 : 석가모니 가르침을 이고득락이다. 돈망이야말로 이고득락이다. 즉 탈에서 벗어나 무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탈이 났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구나하고 연기관 한다. 의도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돈망은 멸수상을 지향하는 과정이다. 이 경지를 위해 나아가자는 큰스님의 말씀에 힘이 솟는다. ‘의식’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써 보라. 막막하다. 그런데 큰스님께서 선선히 그 사유살림을 보여주시어 시원하다.
1) 만일 의식이 없다면 내 인생 없다. 죽음이다. 역사도 없고 우주도 없다. 곧 의식은 의미의 거점이자 의미 자체다.
2) 몸을 거점으로 의식이 활동한다. 그러므로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매우 소중하다. 의식이 없으면 역사 끝, 우주 끝 아닌가. 의식에 대해 합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의식은 양가적이다. 단적으로 히틀러, 테레사가 그 증거다. 천사 노릇도 악마 노릇도 한다.
3) 몸과 의식이 인생의 거점이다. 인생의 거점인 의식이 다양하게 탈에 휩싸인다. 고통을 산다. 그러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대응론이 나와야 한다. 당연하다. 대응하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닌가. 만일, 의식에 탈이 없으면 그것이 니르바나다.
4) 스스로의 의식을 주목해 보라. 무탈한가. 100% 무탈이라면 그것이 니르바나다. 의식의 완전 무탈 경험.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큰스님의 사유물은 언제 들어도 놀랍다. 용수-세친-달마-혜능에 걸친 의식의 변화 발전 과정을 보여주신 대목대목이 살아 숨쉬어 가슴이 뛴다. 머릿속이 개운하다. 무심한 이 마음, 이것 말고 어디 가서 안심입명을 찾겠는가. 그냥있음, 아공법공, 자비회향. 이것뿐이다.
3. 큰스님 영상 법문1 - 있고 없음의 차이 : 그냥 있을 수 있고 그냥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1) 그 차이가 느껴지는가. 그냥 있지 못하면 ‘육창일원’처럼 고요한 삶을 살지 못한다. 그냥 있으면 창의적 생각이 나온다. 그냥 있으면 고요한 천국, 그냥 있지 못하면 아수라장이다. 2) 아공법공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아공법공으로 있는 사람은 무한 평온의 고요, 평화 속에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쟁터에 있다. 3) 현실 수용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현실을 수용하면 해탈 열반에 있고 수용하지 못하면 아수라장에 있다. ‘있고 없음’의 방편으로 돈망 3관을 관하니 의식이 선명하기 짝이 없다. 삶 속에서도 이 방편으로 감사감사감사하며 살 일이다.
4. 큰스님 영상 법문2 – 돈망 3관의 체계 : 그냥있음, 아공법공, 자비회향, 감으로 느끼고 일미통감으로 느끼면 이 얼마나 좋은가. 거기에 일미통감 상태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이름인 아미타불을 붙여라. 그러면 더 체화, 육화되어 의미가 또렷해진다. 그 감을 공성상일여라 한다. 그리고 그 아미타불 노래를 무한 만트라라 한다. 돈망 3관의 체계가 이렇게 보리방편문과 연관되어 있구나. 아는 기쁨, 구조화된 개운함이 있다.
5. 큰스님 영상 법문3 – 없잖아. 이것뿐! : 공에도 비(非)자를 붙여라. 없음도 없다. 없는 줄 수긍하는 의식, 없잖아. 이것뿐! 138억 년의 기적, 신비가 임재하고 있는데 어디 가서 깨달음을 찾겠는가. 무위의 한 생각을 여니 세상은 없다. 있다-좋다-싶다-썅으로부터 벗어난 공덕이 얼마나 큰가. 부처님은 항하의 모래알만큼 목숨을 바치고 또 바쳐도 부족하다 하셨다. 금강경 지경공덕분의 말씀이 놀라우면서도 감동이다.
6. 교재 읽기 : 똑박 또박 고급과정 교재를 읽어 가는 품이 신선했다.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읽어갔다. 큰스님의 수십 년 사유 과정을 떠올리니 지복감으로 벅차다.
7. 원장님 말씀1 : 이완과 집중이 필요하다. 마음은 몸의 영향을 받으므로 마음 관리 잘하기 위해 몸 관리 잘해야 한다. 깨어있으면서 멍한 상태가 ‘돈망’이다. 먼지 같은 금가루가 모여 금반지가 된다. 그 마음을 키워 가자. 짧은 틈, 0.1초의 가치에 눈 뜨라. 틈, 공간, 사이, 여백에 깨어있는 의식으로만 있는 그것의 가치를 알고 주목하자. 이 고급과정이 그 과정이라는 말씀에 그렇구나. 수긍한다. 묘사력이 참 대단하시다.
8. 나누기 실습 : 에너지가 밖으로 향한다. 그래서 그냥 있어지지 않는다. 파랑새 님의 말씀이 깊이 이해된다. 그것 회수하는 것이 그냥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누기 실습 시간이 참 의미 있다. 나누는 시간의 귀함이여!
9. 원장님 말씀2 : 초월하자. 어떤 사람이 초월자인가. 우리는 이미 초월자이다. 그냥 자연으로 있고 인공으로 있지 않는다. 인공 이전 상태, 자연 상태, 존재 이전 상태의 근원으로 간다. 그런데 개념화해서 지옥의 나락에 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초월자다. 그러니 이미 초월자로 있기, 주관자로 있기, 성성하게 깨어있을 때의 느낌을 느끼라. 감에 유념하라. 이미 초월자이니 초월자인 줄만 알면 된다. 말씀 말씀이 시원하다.
10. 큰스님 영상 법문4 – 자등, 법등 : 평생 살면서 메시지를 전한다. 메시지의 거점은 어디인가. 그 거점은 그 사람의 이성, 지성, 아뢰야식, 식주체다. 그것들이 책이 된다. 그 주관적 소리가 ‘자등’이고 ‘법등’이다. 이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끝내는 자등이다. 왜냐하면 자등이 법을 흡수하지 않으면 돌멩이와 같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법등, 자등’ 하지 않으시고 ‘자등, 법등’ 하셨다. 수많은 공부인이 이성을 제쳐 두고 법을 찾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성에 깨어있어야 한다. 큰스님 말씀이 가슴을 시원하게 뚫는다.
11. 큰스님 법문2 : 돈망 3관은 지금 여기에 ‘그냥 있음’으로, 온전한 자유를 무한으로 OK하는 것이다. 무한감, 무한 만트라다. 돈망 3관은 공성상일여의 아미타불과 같다. 제1관을 관행해서 해탈감이 느껴지나 보라. 그냥 있다는 말은 안이비설신의로 색성향미촉법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것이 곧 벡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말씀이니 말이다. 수백 번도 더 들은 말씀인데 새로이 크게 들린다. 제1관은 본 성품을 경험, 주목하는 것이다. 묵묵히 깨어있기만 하면 깨어있는 심리과정이 된다. ‘그냥 있음’은 불꽃만으로 된 듯하나 만약 촛대가 필요하다면 아무 것도 DOING하지 않는 조건일 것이다. 한 겹 또 한 겹 펼쳐지는 마술 같다. 제2관을 관행하면 연기이므로 무아구나. 무아가 확실하면 자아가 자유롭구나. 연기이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래서 걸릴 것 없이 자유로운 감이 느껴지는가. 불가득공. 그것 하나만 봐도 우리는 허상 놀음하고 있다. 현재도 찰나 무상이지 않은가. 잔상으로 느낄 뿐이다. 그 말씀에 시원하다. 제3관을 관행하면 연민지정이 일어나는가 보라. 구류중생을 다 제도하리라. 모든 존재들의 행복해탈을 서원하는 자리에 이기심이 들어설 틈이 있겠는가. 천하가 따뜻이 안아진다. 그윽하고 그윽하도다.
12. 원장님 말씀3 : 어떻습니까. 이 소리를 범종소리처럼 듣자. ‘선’을 만들어 거기 서 있으라. 그 말씀에 정신이 차려진다. 영성촌의 공통점 3가지 1) 단순 2) 무의미 3) 반복. 그렇구나 하고 아는 재미가 있다.
13. 큰스님 영상 법문 – 촉수구조 : 근경식 삼사화합을 촉이라 한다. 거기에 느낌이 있다. 그 느낌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 행복해지려면 촉 관리를 잘하면 된다. 색성향미촉법 중 최고의 촉은 법이다. 돈방법을 촉하면 무한 기쁨이 온다. 법에는 무위법과 유위법이 있는데 무위법이 핵심이다. 돈망3관은 무위법이다. 무위법이야말로 염체 중 염체다. 무위법을 잡으면 도통인 것이다. 촉수구조가 선명히 이해되어 개운하다.
14. 오링 테스트 : 심리작용의 단면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여서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있었다.
15. 원장님 말씀4 : 한 걸음만, 질주하는 나 바라보기(상상하기). 삶은 한 걸음부터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는 말씀이 돈망명상에 접근하기 쉽게 한다. 정말 그렇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한 걸음 뗀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본다.
16. 큰스님 영상 법문5 – 돈망 점검록 쓰기 : 이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1) 방법 : 그냥 있음, 아공법공, 자비회향. 2) 시행 : ‘감’을 느껴라. 돈망은 지금 여기, 걸림 없는 삶을 살게 하는 썸씽이다. 3) 좋은가. : 관행하여 체험하니 좋다. 4) 절대 좋은가. : 금강경의 지경공덕품이 확실하면 영원히 확실하다. 5) 용해탈 : 돈망3관을 생활 차원에서 관행하고 살면 어떤 변화가 있겠는가. 6) 기타. 또박 또박, 혼신의 힘을 다해 돈망3관을 작성하라는 말씀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17. 큰스님 법문3 : DOING은 작위다. BEING하라. 주제는 BEING이다. 일체유위법은 몽환포영로전이다. 허망한 것이니 집착할 이유 없다. DOING, 작위를 놓으면 그것이 BEING이다. 이 마음 이대로 부처다. 선불교 종지다. BEING 상태를 의도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돈망이다. 그렇다면 이 상태가 왜 그토록 의미 있는가. 1) 무탈 중 최고의 무탈이기 때문이다. 2) 이 상태는 작위가 없으므로 더 이상 업을 짓지 않는다. 시원하고 시원하다.
18. 큰스님 영상 법문6,7,8,9 – 최소한의 인문학, 해오해탈 5요, 불가불행 5단계 원리, 개념의 양가성 : 듣고 또 듣지만 새로이 각인된다. 한 말씀도 버릴 것이 없다. 체득할 일만 남았다. 주머니 주머니가 빵빵하게 차오르는 느낌이 참 좋다.
19. 큰스님 법문4 : 心(심). 이 생의 주제가 마음이구나. 이 한 말씀에 가슴이 꽉 차오른다. 그렇지. 마음먹은 대로 살지. 수긍한다. ‘마음이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다’가 고급과정의 노림 포인트라 하시니 정신이 차려진다. 상수멸의 인생이 궁극 노림 포인트다. 돈망을 뚫으면 상수멸이 경험된다. 이것을 가로 막는 것은 비돈망적 패턴으로 살아온 습성이다. 있다-좋다-싶다-썅. 색즉시공, 무유정법, 유식무경, 불사선불사악, 해골통 등 썸씽 그것이 실재가 아니라 주관적 느낌이 실재구나. 그렇다면 그 자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도다. 양변지양이다. 초월이다. 천하는 고요요 초월자다. 내가 이러저러할 뿐이다. 그것은 신성한 썸씽일 뿐이다. 다 내 몫이다. 열심히 돈망 3관 관행하고 돈망록을 꾸준히 쓸 일이다.
20. 큰스님 법문5 – 서비스 말씀 : 동사섭은 해오주의다. 해오주의의 상대 개념은 증오주의다. 증오주의는 마음 닦음이 차올라 통하는 것이다. 만만치 않다. 참선할 때는 좋으나 머리가 시원하지 않았다. 초기 석가모니는 해오주의자다. 보리수하 대각 내용은 사유를 통해 연기법을 터득했다. 이성으로 사유해서 초월의 이치를 파악하는 것, 이성이 사유한다는 점이 맥점이다. 해탈의 이치를 수긍하는 것, 그것이 해오주의 깨달음이다. 깨달으니(인) 좋더라(과). 부처님은 사유주의, 해오주의자다. 5비구와 야사를 비롯한 54명의 친구, 60명 아라한이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후 3개월 안에 깨달았다. 삼매하지 않았다. 선종은 위계가 없다. 즉심즉불, 이 마음 이대로 부처다. 동사섭은 해오주의다. 이미 넘치는 풍요 속에 있는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해오주의다. 중요한 과정이 돈망 파지다. 그것이 99% 수행이다. 그러나 돈망을 파지했다면 1% 해결한 것이다. 나머지 99%는 반복 관행이다. 곱씹고 곱씹어라. 무심히 깨어 무탈한 이것을 별것 아니라 생각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것 빼고 부처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 떠나 부처, 불성 없다. 그것이 견성이다. 자기를 살피며 개념 정리할 필요 있다. 경사 중 경사인데 자기 부정하면 안 된다. 무심은 달마, 천하 없음은 석가, 용수, 세친법이다. 만일 만족이 안 된다면 만큼 OK로 통과시켜라. 관행하라. 상수멸에 이른 것처럼 하라. 큰스님의 해오주의 말씀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당연하신 말씀이다. 해오주의 법을 만나 본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어 벅차기 그지없다. 서비스 말씀이 아니라 마지막 방점을 찍으시는 느낌이다.
21 맺음 말 : 오랜만에 고급과정에 참여하니 긴장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행복감이 훨씬 크다. 아니 밀물처럼 밀려오는 지복감이다. 무슨 복이 있어 큰스님을 만나 해오주의를 만나는, 이토록 긴 인연을 이어 왔을까.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선혜님, 우산님, 새벽빛님, 연필님, 진원님, 파랑새님, 가은님, 표현님, 지훈님, 일지님! 함께한 도반님들께도 진정으로 감사하다. 이렇게 마음 모두어 공부할 수 있는 것 모두 도반님들 덕분이다. 특히 이번에 돈망을 파지한 가은님, 셀프님, 준파지하신 새벽빛님, 축하드린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신 일우 원장님, 셀프님! 참으로 감사하다. [끝]
제 46회 고급과정 소감문
선혜 유소림
햇수로 3년 만의 오프라인 고급 과정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길고 긴 사회적 거리두기와 뒤이은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수련생들은 평소만큼 모이지 않았지만 수련장의 장력은 여느 때보다도 충실하였다. 3년 동안 쌓였던 아쉬움과 코앞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오히려 더 간절해진 영적 성숙에 대한 갈구 덕분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1. 돈망명상과 상수멸(想受滅)
첫 강의에서 큰스님께서 상수멸의 경지를 말씀하신다. 초기 경전에서 반복 언급되고 있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인 그 상수멸의 경지가 바로 돈망 의식 상태임이 깊이깊이 수긍된다. 돈망 수행인은 엄청난 수도위차(修道位次)를 다 통과해서 비로소 그 경지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돈망 수행인은 이 존재계가 본래 개념 이전의 세계임을 이해하고 그러한 의식 상태를 경험하면 된다.
모든 개념은 사실이 아니라 작위된 것이므로 그 작위물을 다 내려놓으면 절로 무념(無念)의 상태가, 상(想)이 멸(滅)하는 상태에 이르고 그 상(想)이 촉발시키는 수(受) 또한 멸(滅)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맨 땅에 헤딩하는 고역스런 시간을 견디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가 본래 지니고 있는 이성(理性)의 힘으로 그러한 이치를 이해하고 아무 한정도, 갈라침도 없는 본래 청정하고, 본래 무한하고, 본래 온전한 이식의 본바탕을. 상수멸의 의식 상태를 맛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돈망 의식을, 상수멸의 의식 상태를, 우주의 본래를, 순리를 경험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작위와 주관의 세계를, 역리(逆理)를 살아 왔는가를, 역리가 필히 불러오게 되어 있는 그 무지막지한 번뇌 속을 우격다짐으로, 미련 극치로 살아왔는가를 실감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용수 보살님, 세친 보살님, 달마 대사님, 그리고 금생의 스승님, 그 감사함을 무엇이라 표현하면 좋을지요!
2. 의식이란?
큰스님께서 의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각자 써보라고 하신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나누지 못했던 것들을 아래에 정리해본다.
* 의식이 없으면 인생도 없고 우주도 없다.
* 이 의식이 맑고 투명해져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 상태가 해탈이고 니르바나다.
* 의식은 기존 중의 기존이다.
* 그러므로 최고의 의식 상태인 상수멸의 경지는 새로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즉 재발견하면 된다.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 인간의 의식은 무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 무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의식은 추락하여 악마가 되기도 하고 상승하여 부처가 되기도 한다(의식의 형벌성과 지복성).
* 그러하기에 인간의 의식으로 태어난 존재에게 의식관리는, 마음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 부처님은 가장 바람직한 의식 관리법(정견, 정사유를 비롯한 8정도, 등등)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 선각자, 최고의 의식 관리자이시다.
* 우주는 우리에게 의식 선물을 주면서 그 선물 관리 책임을 각자에게 일임하였다. 그러므로 똑같은 존재계의 선물로 불행을 사느냐, 행복해탈을 사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다(一切唯心造가 사무치게 스며든다).
* 고도로 섬세하게 발달된 인간의 의식을 지닌 존재가 자신의 의식 상태를 관리하지 않고 태만하게 사는 것은 우주의 선물을, 존재계의 축복을 쓰레기통에 처박는, 용납되기 힘든 행위다.
* 의식은 그것에 머물러볼수록 신비, 신비, 신비하다. 가장 단순하게는 대상을 의식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객관화하며, 더더욱 나아가 의식이 의식을 의식하여 스스로를, 우주 전체를, 전 존재계를 존재하게 하고 이를 온전히 품게 하는 이 신비. 신묘한 의식이라는 무한보(無限寶)의 기존소유! 그 앞에 오로지 두 손을 모을 뿐이다.
앞으로도 이 작업을 시시때때로, 계속 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나를 삼엄하게 깨어나게 하는 한편 존재계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함께 무한 신비감에 젖게 한다.
3. 원성실성(圓成實性)의 느낌
이미 몇 번이고 보았던 ‘돈망3관의 체계’라는 동영상을 이번 고급과정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도대체 몇 번을 보아야 스승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걸까. 돈망 1관, 2관, 3관이 일미 통합으로 느껴지고 그것이 아미타불이라는 무한 만트라 속에 녹아들면 그것이 바로 법성원융(法性圓融)의 경지요 원성실성의 의식 상태임을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들으며 진정 기뻤다.
처음으로 돈망 의식을 경험하였을 때 느꼈던 의식의 온전함, 그리고 그에 따른 궁극의 휴식감, 무욕의 해방감, 그것이 의식의 원성실성에서 오는 것임을 거듭 확인한다. 돈망 의식을 경험하기 전, 나의 의식은 밖으로 달려 나가 그 어떤 대상을 끝없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끌어들이고 끌어들여도 내 속의 결핍감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고 항상 어떤 헛헛증과 그에 따른 끝없는 피로감을 느껴야했다. 나의 의식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으로 변질되어 끝없는 주객 행위에 지쳐가고 소모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돈망 명상으로 경험된 의식은 주(主)도, 객(客)도 없이, 그 어떤 조건도, 그 어떤 끌어들임도 없이, 이미 스스로 온전히 각성되어 있는, 둘이 아닌 일심(一心), 끝내 한정되지 않은 무한일심이었다. 그러니까 변계소집성으로 변형되어 있던 나의 의식은 돈망이라는 사다리를 통과하여 그 본래 성품인 원성실성을 회복한 것이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유식 이론을 이해 못하는 것은 것을 물론이요, 유식 이론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르던 나는 ‘그냥있음’이라는 간단한 사다리를 통하여 유식에서 말하고 있는 원성실성의 의식 상태를 활구적으로, 온몸으로 경험한 것이었다.
유식(唯識) 이론이 원성실성이라는 의식의 성품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나의 경험에 그 고상한 이름을 붙이기에는 얼마간의 주춤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돈망 의식의 원만무애함을, 원융무애함을 너무도 확연히 경험하는 나는 어느 날 부터 돈망록에 원성실성의 의식이라고 커다랗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예전에 만들어진 동영상에서 큰스님께서 돈망으로 경험되는 의식을 원성실성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번에야 보게 된 것이다.
아득하게만 여겨지던 그 의식 상태를 이성(理性)에 의한 이해와 이해에 따른 느낌 유념으로 곧장 경험하게 해준 ‘그냥있음’이라는 사다리를 내려주신 금생의 스승께 무한 감사를 올린다. 백만 권의 이론서를 읽어치웠다 해도 나의 경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것은 그저 무게만 더해주는 지식일 뿐이다. 그런데 ‘그냥있음’이라는 사다리를 통해 돈망 의식 상태를 경험한 나는 ‘원성실성’이라는 이름붙임에 망설임이 없다. 이 이름은 벌써 벌써, 예전 예전에, 앞서고 앞서서 그 경험을 하시고 우리 의식이 본래 지니고 있는 그 자유로움을, 그 온전함을, 그 해탈의 성품을 전해주신 각자(覺者)들께서 붙여주신 이름이 아니던가. 그분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한없는 감사를 드린다.
4. 돈망 의식, 부처 의식, 그리고 일심법계
“여러분 스스로가 질문을 해보라. 그 질문을 간절히 품고 있으면 존재계가 그 답을 알려준다.” 언젠가 큰스님께서 강의 중에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하여도 무언가 신비하게 들렸고 그 답을 준다는 존재계는 저 밖에 있었다. 저 밖 어딘가에 박혀 있는 답이 나의 간절함에 끌려나온다는 정도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돈망 경험이 쌓여가면서 그것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지금 여기 이 속에서 경험되는 이 텅 빈 돈망 의식은 바로 부처님의 의식 세계이고 역대 각자들의 의식 세계이며 나의 스승의 의식 세계이고 바로 일심법계, 존재계 자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있음’을 통한 돈망 의식 경험에 전율이 일어난다. 존재계가 보내오는 답이란 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속에서, 마치 끝없는 지하수처럼 샘솟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존재계의 그 샘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왜소하고 왜소한 개체 의식에 갇혀서 존재계에 넘치고 있는 그 샘물을 눈뜨고도 볼 수 없고 마실 수 없기 때문임을 절감한다. 부처님께서 사권(師拳) 속에 그 무엇도 감추고 계시지 않듯이 존재계는 이미 모든 것을 내보이고 있다. 단지 에고의 어리석음에 갇혀 있는 내 마음이 그것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진정 나의 의식을 끝없이 열어가고자 하는가. 영적 개화에 필요한 답을 얻고자 하는가. 그 소망의 절실도에 따라 이 속에서 그 답이 떠오를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5. 귀족불교, 평민불교
“달마대사는 귀족불교를 단박에 평민불교로 바꾸어 버렸다.” 큰스님 말씀에 천근 만근의 무게가 날아간다. 머리 깎고 입산 출가하여 아승지겁을 닦아야 무언가 깨달을 수 있다면 세상 한 복판에서 밥벌이하고, 아이 기르고, 지지고 볶으며 사는 99 퍼센트의 머리 긴 사람들은 그저 세세생생 중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영적 금수저론을 깨끗이 날려 보내고 “지금 네 마음속에 무슨 괴로움이 있느냐, 그것을 내놓아 보아라.” 하신 달마대사야말로 진정 흙수저들을 구원하신 혁명가시다. 달마대사님, 고맙습니다. “방석 위에서 죽어라 참선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으로 태어날 정도로 이미 정(定)이 되어 있으니 네가 지닌 그 이성이라는 도구로, 혜(慧)로 잘 생각해 보고 잘 느껴보아라.” 이런 말씀해주시는 이 시대의 달마대사이신 우리 해오주의 스승님, 고맙습니다.
6. 도반들과의 나눔
도반들과의 나눔 시간은 자신의 공부 정도를 확인하고 정리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만남 중에서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하는 귀한 인연 맺음의 시간이다. 이 세상 그 어디에서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영적 열림이라는 고귀한 목적지로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 46회 고급 과정을 함께 한 모든 도반님들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보냅니다.
7. 돈망 제 3관
돈망 명상에서 제 3관 ‘자비회향’의 있고 없음의 차이가 참으로 크게 느껴진다. 물론 제 1관과 2관에서 이미 경험되는 의식 상태이긴 하나 그것을 독립된 방편으로 관행하면 미세하게 남아 있던 자아의 흔적이 더욱 깨끗이 증발되고 순수한 돈망 의식이 그대로 존재계 순리의 흐름으로 스며든다.
이 존재계는 본래 개념 이전으로 그냥 있고, 개념살이 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그 모든 존재가 자의식(自意識) 없이 존재하며, 그 모두가 이 존재계의 작동에 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길가의 풀 한 포기도 하늘의 저 태양과 똑같이 동등하게, 우리 존재계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임을 해내고 있다. 나의 존재 상태에 그 풀잎사귀도 어떤 작용을,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존재계는 이미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세계이다. 보살들의 세계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모두가 그 앞에 삼배를 올려야 하는 존재들이다.
돈망 1관, 2관, 3관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으면 그야말로 이 존재가 존재계의 온전한 일원으로, 아니, 자타가 없으니 일원이라고 할 것도 없이, 존재계 법도에 온전히 흡수되어 존재계 자체의 기운으로 화하고 있다. 진정 순리의 바다, 사랑의 바다, 존재의 바다로 화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행복해탈을 위하여 방일하지 않고 계속 관행해나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상기합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여라.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하라.”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8. 감사합니다.
46회 고급과정을 있게 하신 모든 인연에 감사 올립니다. 그 중에서도 인자하신 어머니 모습 그대로 하루에 세 번씩이나 정성어리고 아름답고 정갈한 음식으로 우리들의 심신을 보살펴주신 반야지 보살님께 깊은 감사 올립니다. 보살님께서 준비해주신 음식은 말씀 그대로 공양이었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행복하소서.